소설리스트

1화 (14/24)

1

사거리의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강의 흐름이 바뀌듯 차들이 멈춰 서자 보행자들은 빠르게 도로를 건넜다. 바쁜 걸음 사이 몇 개의 양산이 흔들렸다. 연신 땀을 닦아내는 와이셔츠 차림의 회사원들이 전투적인 태도로 건널목을 돌파한다. 띠띠띠- 하는 성급한 신호음에 뒤늦게 동참한 이들이 종종걸음을 쳤다.

정오의 태양 아래 아스팔트는 녹아내리듯 이글거렸다. 신호등의 녹색 칸은 하나씩 순서대로 지워졌다. 건널목에 남은 것은 낡은 모시옷을 입은 할머니 한 명뿐이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바닥을 향한 파마머리는 숱 적은 민들레 씨앗 같다. 좁은 보폭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긴장이 감도는 차들 앞을 할머니는 천천히 느릿느릿 나아갔다. 순간 깜박, 하며 도로의 색이 변했다.

부우웅하는 엔진음과 함께 승용차와 버스가 앞다투어 출발했다.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차 중 도로에 남은 할머니를 기다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놀란 얼굴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비단 보따리가 땅에 떨어졌다.

푸른색 109번 버스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버스는 그대로 할머니를 밀어붙였다. 바퀴에 말려든 모시옷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풀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여름 하늘 위로 뿌려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멈춰서는 차도 없었다. 도로는 순식간에 달리는 차들로 가득 메워졌다.

“삑삑--.”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교통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함부로 차선을 변경하려는 차를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장갑을 낀 손이 절도 있게 움직인다. 연신 몰려드는 차를 안내하느라 바쁜지 그는 발치까지 굴러온 시신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구두가 피에 젖은 머리를 툭 차고 지나간다. 주름진 눈이 데굴, 하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경찰의 뒤로 현수막 하나가 펄럭였다. 굵은 글씨에는 2주 전 이곳에서 일어난 뺑소니 사고의 목격자를 찾는다는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를 토하는 듯한 붉은 글씨를 눈 여겨 보는 사람은 없었다.

몇 번의 경적이 울리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건널목 앞에 줄을 서듯 몰려들었다. 푸른색 유모차 옆에 어른거리는 모시옷이 나타났다. 고개를 푹 숙인 할머니는 비단 보따리를 가슴에 꼭 안은 채 신호를 기다렸다. 이번만은 반드시 길을 건너, 무사히 손주들이 사는 집으로 가겠다는 듯.

건널목에서 조금 떨어진 고궁 앞, 유난히 큰 나무가 보도블록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속속 그 아래 모여들었다. 얼음이 담긴 음료수 컵을 든 어린 여자들은 맨다리를 훤히 드러낸 채였다. 그사이 헤진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긴 장총을 들고 서 있다. 구멍 난 옷, 피와 땀으로 더러워진 뺨. 우그러진 철모 아래 분노에 찬 얼굴이 눈앞의 생을 노려본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림자들. 도시는 죽음으로 가득했다.

영준은 모자를 벗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마지막 남은 한 모금으로 생수병은 바닥을 보였다. 가을의 초입이었지만 태양은 조금도 기세를 줄이지 않고 이글거리며 살갗을 태웠다. 영원히 여름이 끝나지 않을 기세였다. 모자를 부채 삼아 흔들며 영준은 길 저편을 응시했다. 눈에 익은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세게 불자 파라락, 하고 신문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벤치 위에 누군가 놓고 간 스포츠 신문이었다. 그 위에 양복을 입은 회사원 하나가 자리를 잡는다. 낡은 구두와 유행 지난 회색 양복이 궁색한 차림이었다. 남자는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더니 안 되겠다는 얼굴로 이보오, 하고 영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나 삼성역으로 가는 길 좀 알려주시오. 출근해야 하는데, 어제까지는 분명 잘 다니던 길이 왜 갑자기 전혀 생각 안 나는지 모르겠네.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갑자기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어두운지 하나도 보이지가 않아서 원. 저기, 제 말 들리시오? 이러다 지각한단 말입니다. 내가 안가면 회사가 돌아가지를 않아요. 그러니 얼른 삼성역, 삼성역 가는 길 좀…….”

몸이 달아 말하는 남자의 구두 아래 점점 넓게 물웅덩이가 퍼졌다. 갈색 구두에서 퐁퐁 탁한 물이 솟아오른다. 강물 특유의 비린내가 역하게 풍겼다.

언제의 어제를 말하는 것인지. 영준은 못들은 척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이런 혼령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서도 용케 영준에게 다가온다. 꼭 빛에 끌린 벌레 같다. 어정어정 다가와 엉뚱한 질문을 하며, 자신이 아직 삶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확신을 원한다.

영준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장소를 바꾸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잠시 자리를 뜬다 해도 몇 분이 고작일 것이다. 다행히 이런 혼령은 아는 척만 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다. 참는 수밖에 없단 결론을 내린 영준은 빈 병을 가방에 넣고 MP3를 꺼냈다. 익숙하게 이어폰을 연결했지만, 음악을 켜지는 않았다. 듣는 시늉만 할 뿐이다.

며칠 전, 공사장 아래를 지나다 바로 앞에 철근이 추락하는 일이 있었다. 3미터는 족히 넘는 길이의 두꺼운 철근이 떨어진 곳은 4층 높이였다. 아스팔트 위에 내리꽂힌 철근은 바닥에 큰 자국을 남겼다. 떨어지기 직전 근처에 있던 인부들이 소리를 지르며 경고를 했다는데, 영준은 이어폰을 끼고 있던 터라 듣지 못했다. 만약 걸음이 조금만 빨랐거나 몇 초만 늦게 떨어졌어도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지 모른다. 그날따라 유난히 말을 거는 혼령들이 많아 음량을 최고로 높여 놓았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 위를 보자 희게 질린 인부들 뒤로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뒤로 영준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이어폰 사용을 자제했다. 이제 이 정도는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평소 조금씩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돌리자 벤치에서 몇 걸음 떨어진 나무 아래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훈수 두는 사람들 사이로 흐릿한 형체가 몇 섞여있다. 허리를 숙인 채 장기판을 노려보며 무어라 호통을 친다. 누구도 신경 쓰거나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이봐요, 무시하지 말고 말 좀 해달라니까. 삼성역 가는 길이 어느 방향이냐고!”

영준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바뀐 일상의 풍경은 천천히 소화된다. 매일매일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듯이. 조금씩 아물어 간다고 생각했던 상처는 서울에 온 뒤 도리어 심해졌다. 회복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앞으로 네가 귀신을 보지 않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을 다 믿지는 말라더니, 그 말대로지 않은가. 영준은 습관처럼 김도연의 말을 떠올렸다. 떨어져 지내면 점점 보이지 않게 되거나 나아질 것이라 했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제발 다른 아침이기를 아무리 빌어도 똑같았다. 오히려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외로울 뿐이다.

싸울 결심을 했을 때, 자신에게 목표가 없었다면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에 압사되지 않은 것은 그 덕이었다.

“오래 기다렸어?”

친근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안경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조금 작은 키에 두꺼운 목이 유도선수 같은 덩치다. 고등학교 동창인 중혁이었다.

“앉아서 졸만큼 내가 늦었어?”

“아니, 나도 조금 전에 왔어.”

“오케이, 가자. 저쪽에 주차해뒀어.”

인사가 끝나자마자 앞장서는 그를 선선히 뒤따랐다. 다리가 짧은 탓인지 중혁은 금방 따라잡혔다.

“나올 때 너희 형이 별말 없디?”

“사무실로 와도 안 잡아먹는다고 작작하란다.”

영준은 얼굴에 얼핏 웃음이 서렸다. 중혁의 큰 형은 종로에서 소위 말하는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자질구레한 불륜 상대 조사나 증거조사 등이 많았지만 사람 찾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판이다. 2년 전쯤, 돈이 급해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 중혁의 소개로 잠시 파트타임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간단한 잡일 정도를 예상하고 갔다가 마주친 현장에서 불법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에 질려 오래 있지는 못하고 그만두었다.

불륜 뒷조사에서부터 협박, 소위 ‘입원’으로 불리는 작업은 명백한 납치 감금이었다. 중혁의 형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알아듣게 설득해보고 정 안 되면 풀어주는 일’이라고 둘러댔지만 피해자 입장은 그게 아니었다. 페이는 쎈 편이었지만 차라리 막노동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뻣뻣하니 고지식한 놈, 이라는 것이 형님이 영준에 대해 내린 평가였다. 그런데 지금은 의뢰인 입장이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도로 한쪽에 주차된 차는 검은색 세단이었다. 어떻게 봐도 이십 대 초반이 몰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차였다. 더구나 검은색으로 코팅된 유리창이 수상해 보였다.

“사무소거야. 일 시작했다고 받았어.”

으쓱한 얼굴로 차 문을 열며 중혁이 말했다. 조수석에 올라탄 영준은 배낭에서 플라스틱 서류첩을 꺼냈다. 이십 대 여직원을 스토킹하고 있는 중년 남자의 각서였다. 이번 주 내로 집을 비우고 이사를 한 뒤, 두 번 다시는 여자의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는 절절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사무실에서 주면 될 걸 번거롭게…….”

“불편해 거기.”

“안 잡아먹는다니까. 보기보다 깨끗한 회사야.”

서류첩을 연 중혁이 수기로 기록된 각서를 빠르게 확인했다.

“잘 나왔네.”

칭찬 아닌 칭찬이었다. 영준은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어깨만 으쓱했다. 영준은 흥신소의 의뢰인이었지만 동시에 단기 알바생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아와 불쑥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넣자, 사장은 마치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되는 듯 그럼 의뢰비 대신 노동으로 대신하면 해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은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문제는 그게 순수하게 호의만은 아니라는 것에 있다. 질색을 하는 영준을 가지고 노는 것이 꽤 재미있다는 듯, 떨어지는 일들은 간단했지만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서류를 넣은 중혁이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화려한 은색 라이터를 손가락 사이로 한 바퀴 돌려 불을 켠다. 후읍, 하고 깊게 연기를 빨아들인 중혁이 영준을 흘깃 보았다.

“창문 좀 열까?”

영준은 손잡이로 뻗는 중혁의 팔을 급히 잡았다.

“괜찮아.”

“너 담배 연기 싫어하잖아.”

“됐어. 에어컨도 켜져 있는데, 더운 게 더 싫어. 도로 나가면 열어.”

중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핸들을 잡았다. 검은색 세단이 도로 위로 뒤뚱거리며 출발했다. 차가 움직이자 창문 밖에서 무어라 외치던 사내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는 분한 얼굴로 철벅거리며 차 꽁무니를 뒤따랐다. 거리가 벌어지자 조금 전까지 창문을 내리치던 주먹이 허공을 휘저었다. 너 이 새끼, 왜 날 무시해. 길 좀 알려달라는데 왜, 같이 좀 타자는데 왜…….

중혁은 영준의 복잡한 표정을 오해했는지 혀를 찼다.

“그런 얼굴로 봐도 소용없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어”

“음? 아.”

영준은 별 실망한 기색 없이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도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조금 어두웠다.

“진오 형님한테도 부탁했다면서.”

“양다리야. 공권력에도 기대어 보는 거지.”

“경찰이라고 다를 거 없을걸. 그 사람 정말 아무것도 안 나온대. 이렇다 할 기록도 없고, 가족도 없고. 살던 집도 단기임대 형식이고. 있다 해도 대부분 미성년자 시절이라 지금은 별 쓸모 있는 정보가 안 되니까.”

“그럴 거라 생각했어.”

“뭐 기다려봐. 형이 성질은 지랄 같아도 일 하나는 잘하거든. 발도 넓으니 일부러 어디 산골짜기에 숨어 들어간 것 아닌 이상 금방 잡을 거다.”

“잡으려는 것 아니라고 했잖아 자식아.”

“아 맞다. 그냥 미아 찾기였지.”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진짜야. 혹시라도 찾아지면 확인만 해주면 돼.”

“돈 먹고 튄 것도 아니고, 사고나 납치도 아닌데 그렇게 찾아서 뭐 하려구? 질색하던 일까지 해가며.”

“……은인이야. 맡아 놓은 물건도 있고.”

“너 나 몰래 장기이식이라도 받았냐?”

“맞아.”

뜨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중혁에게 영준은 정말이란 듯 담담하게 말했다.

“생명의 은인이지.”

허, 하고 기가 막힌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쯤 되어야 말이 된다. 최영준이가 빚쟁이 잡으러 다니는데 그 정도 스토리는 있어야지. 말 좀 해주라 신장이냐, 간이냐? 뭘 받았기에 순둥이 티를 벗었는지 나도 좀 알게.”

순둥이란 말에 얼굴이 절로 구겨진다. 중혁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재미있어했다.

“조금만 더 이 바닥에서 구르면 그림 좀 나오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 짓도 얼마 안 남았어.”

영준은 다리를 쭉 뻗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해 지난 몇 번은 가벼운 심부름으로 끝났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인데 제값은 받아야지? 라며 중혁과 함께 빚을 지고 도망친 여자를 찾아오라는 일이 떨어진 것이다.

아직 뻐근한 옆구리를 문지르며 천천히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마지막 진통제를 먹은 것이 3일 전. 소영이 퇴원했으니 다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일주일 전이다. 중혁에게 연락을 해 사무실로 간 것이 열흘 전, 서울로 올라온 것이 3주 전. 그리고…….

‘한 달.’

열린 창문 너머로 매연 섞인 바람이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는 이제 이마를 덮을 정도로 자랐다.

강가에서 도연의 배낭을 찾아온 뒤부터 영준의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기울어진 세상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당장 헉 소리가 나올 만큼 청구된 병원비는 생활마저 위협했다. 현실의 무게와 비현실의 무게가 동시에 영준을 눌러왔다. 충격에 휩싸여 있을 여유는 없었다.

혼란 속에서 먼저 배운 것은 입을 다무는 법이었다. 어차피 경찰도 병원 관계자들도 영준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것을 실종이라 보지 않았다. 한 성인이 병원에서 없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도연이 복도를 달려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영준뿐이었다.

유일하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사람은 소영뿐이었다. 그녀는 건강을 찾아가며 점차 왜 자신에게 아무 기억도 없는 것인지, ‘친척’은 어디로 간 것인지, 부쩍 말수가 줄어든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언제까지고 미루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곧, 설명해줘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면 좋을지 몰랐다. 지난 며칠간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떠올려 볼수록, 단어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것은 더욱 심해져, 최종적으로는 그저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거짓 웃음으로 상대를 안심시키고 만다. 영준은 점점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 변화가 없다면, 언젠가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처럼 능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빨간 불이 켜지자 도로의 차들이 서서히 멈추었다. 그들의 바로 옆, 빨간색 외제차가 멈춰 섰다.

“차 죽이네. 저런 거 몰고 다니면 여자들 쫙쫙 붙겠다.”

중혁은 늘씬한 외제차에 감탄을 터트렸다.

“이 차도 좋아.”

“나쁘진 않지. 그래도 급이라는 게 있잖냐.”

그 후로 한동안 차에 대한 장광설이 이어졌다. 페라리가 어쩌고 람보르기니가 어쩌고 하는 소리에 대강 응응 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나 이 차가 좋다는 영준의 말은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사무소의 수입이 좋은지 새로 뽑은 세단에는 어떤 잡다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공장에서 바로 나온, 깨끗한 새 차. 자신도 한때는 도로에서 근사한 차를 보면 감탄하고 부러워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전혀 다른 기준이 들어선다.

문득 도연이 뭐가 문제냐는 듯 핑크색 카시트에 앉아 있던 것이 떠올랐다. 실용성으로 따지자면 그만한 광경도 없었다. 그리고 보면 외숙이 연락처를 주면서 말했을 때, 김도연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했다. 15년,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15년간 이런 광경을 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제 고작 한 달이 넘은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약 앞으로 15년간 계속 이런 광경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

미칠지도 모르지. 외출 한 번 하는 것에 며칠의 고민이 필요한 생활에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언젠가는 술이나 약에 빠져 헛소리를 하는 노숙자가 되거나, 정신병원에 갇혀 헛소리를 하는 노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 전에 집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지 않고 숨어 지내는 폐인이 먼저이리라. 어쩌면 그것은 가장 쉬운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면서 쉬운 길을 선택해본 기억은 없다.

자신에게는 집에 쳐 박혀 있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다. 책임져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이 자신을 미치지 않게 붙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가족, 미래, 그리고 사라진 도연.

‘아니, 실종이지.’

영준은 마음속에서 단어를 고쳤다. 사라진 게 아니다. 사람은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 있지만, 그게 어디인지 모를 뿐이다.

‘그러니까 찾으면 되는 거야.’

약속했다. 은혜를 갚겠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영준은 자신의 손을 펴 보았다.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함부로 감아놓은 붕대 속, 상처는 붉게 달아올라 건드리면 욱신거린다. 이대로는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으리란 예감이 든다.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영준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강해져야 했다. 그럴 이유는 충분했다.

차는 오래된 고가도로를 지나 재래식 시장이 있는 주택가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뻗은 거리는 마구잡이식 개발로 무엇 하나 균형이 맞는 것이 없었다. 경사가 심한 길은 산에 그대로 시멘트를 부어 바른 것 같았다. 중혁은 주차된 차들을 보고는 혀를 찼다. 대부분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뒷바퀴 쪽에 벽돌이 놓여 있었다.

“무슨 서커스도 아니고…….”

탕, 하고 거칠게 운전석 문을 닫은 중혁이 바지를 추켜올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영준에게 넘겼다. 종이에는 주소와 함께 조잡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길을 따라 작은 슈퍼마켓과 만화 대여점, 셔터가 내려진 철물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오래된 주택과 간판조차 없는 폐점된 가게가 많은 거리는 가난의 냄새가 풍겼다.

5~6분 정도 경사를 오르자 점점 가게가 사라졌다.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얻은 납작한 건물들이 촘촘하게 붙은 동네가 나왔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골목 사이로 수많은 가구가 붙어 있는 쪽방촌이다. 한낮임에도 이곳만 해가 들지 않는 듯 어두웠다. 균열이 난 벽에 누군가 그려놓은 벽화는 오히려 어설픈 눈속임처럼 이곳의 그늘을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폐지와 쓰레기 더미를 지나 안쪽 골목을 향하던 중혁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영준이 보이지 않았다.

“뭐해?”

영준은 쪽방촌 초입 부근에 서 있었다. 인상을 조금 쓴 채 쪽방촌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는 중혁의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린다. 그는 자신의 뒤를 한 번 보았다. 지저분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 알콜중독자와 노숙자, 노인들이 주로 사는 가난의 바닥에 위치한 동네다. 확실히 내키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문제 될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준의 시선은 이제 조금 높이 머물러 있다. 지대 자체는 높았으나 이곳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나지막하게 늘어진 전선이 새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게 복잡했다.

“이런데 처음 와봤냐? 일 안 할 거야?”

인내심이 다했는지 중혁이 짜증을 냈다. 영준은 자신의 오른손을 펴 바라보았다. 붕대 너머 희미하게 핏기가 비친다. 꽉, 움켜쥔 주먹이 가늘게 떨린다.

“해야지.”

간단한 대답 끝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후읍, 하는 긴 숨을 끝으로 한동안 호흡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냄새야?

중혁이 코를 킁킁거리며 투덜거렸다. 어디선가 지린내와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가 풍겼다. 악취는 찌들다 못해 이곳의 벽과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근처의 공중변소에서 나는 것 같았다.

“이 근처 같은데.”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한참 걷다 멈춰 섰다. 영준의 말에 멈춰선 중혁이 여러 개의 문이 나 있는 좁은 길을, 차라리 ‘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공간을 가리켰다.

“여기. 봐.”

중혁은 핸드폰을 켜 저장된 사진을 열었다. 비슷한 쪽방촌 사진이 열 장 정도 나왔다. 주소와 지도는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던 중혁이 짜증이 났는지 투덜거렸다.

“시발 이거야 쓰레기장에서 쓰레기 찾기잖아. 난 돈 열심히 벌어 나이 들어서 이런 데서 끝장나지 않게 조심해야지. 여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겠다.”

발치에 있던 더러운 양동이를 걷어찬다.

“말조심해.”

“내가 틀린 말 했냐. 듣는 사람도 없구만.”

“있어.”

중혁은 삐쭉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했다. 그는 있기는 누가 있어, 하고 투덜거렸다.

“왜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냐. 안 그래도 분위기 개판인데. 이 여자도 하필 고르고 골라 여기냐고.”

그들은 좁은 벽 사이를 비스듬히 지났다. 말이 없는 영준 탓에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형한테 들었지? 보통 독종이 아니야. 돈을 몇천이나 여기저기에서 빌려놓고는, 집 담보까지 받아서 튀었어. 일가족이 다 잠수야. 존나게 독한 년이지. 이번에도 못 잡으면 형이 날 대신 팔아넘기려고 들 거다.”

더위에 지친 쪽방촌 주민들이 얇은 민소매와 런닝 바람으로 나와 앉아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경계의 눈초리로 둘을 보던 노인들 몇이 자신의 집 안으로 숨어들 듯 사라졌다.

“하나 밖에 없는 애가 아프다고 통사정해서 빌려준 사람들이 많았나 본데, 애도 병원에서 빼돌려서 같이 튀었대. 보통 엄마란 년이 그러냐? 허긴 남편은 그 전에 도망갔다니까 그 집안 종특일지도…….”

쉬지 않고 떠드는 중혁의 말을 건성으로 받는다. 남의 불행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장소도 시간도 좋지 않았다.

낡은 문을 몇 개인지 지나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내려앉은 집이 나왔다. 판자를 사면으로 둘러 슬레이트를 얹기만 한 허술한 건물이었다. 나지막한 샷시문 옆에는 연한 감색 치마와 조그만 후드 티가 걸려 있다. 파란색 후드는 사이즈로 보아 아이 옷이었다. 널어놓기만 하고 걷지 않았는지 비 얼룩이 심했다.

“여기다.”

중혁이 당첨이라는 듯 주먹을 불끈 쥔다. 확실히 지도상으로도, 제보 사진으로도 건물의 외양은 똑같았다. 그는 이것 보라는 듯 걸려 있는 여자와 아이 옷을 가리켰다.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이다. 텅텅 소리가 나는 샷시문은 불투명한 유리가 깨져 누런 박스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빚쟁이를 피해, 집도 버리고 도망친 종착점이 고작 이런 곳이라니 씁쓸한 일이다.

몇 번인가 두드리고, 문을 열라는 외침에도 안쪽은 조용했다. 불투명한 유리문을 애써 기웃거려 보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이거 벌써 튄 건 아니겠지……?”

문을 뜯어낼 듯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 봤지만 열리지 않는다. 더위와 여기까지 오는 수고로 짜증이 난 중혁의 태도가 점점 거칠게 변했다. 기어코 문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한다. 널린 옷에 붙어 있던 파리들이 윙 하고 날아올랐다.

쾅 쾅 하고 구둣발이 연속해서 문을 걷어찬다. 바작바작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진 유리가 쩍쩍 갈라졌다. 있는 힘을 다해 발을 내지르자 얇은 문이 비틀려 떨어졌다.

순간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냄새였다. 비린내인지 지린내인지 모를 냄새가 더운 골목을 가득 채운다. 우욱, 하고 손으로 입과 코를 막은 중혁이 뭐라고 욕을 했다. 그는 쓰러진 문을 옆으로 치우고는 영준에게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손짓했다. 문짝을 내던지자 와장창하고 소란이 인다. 누군가 내다볼 만도 하건만 조용하다.

팔을 들어 코와 입을 막은 채 영준은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은 토굴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벽을 더듬어 전등을 찾았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손끝에 파리가 툭툭 건드려진다. 여긴 빈집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나 확실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었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자신에게 떨어진 일인 것이다.

“아무도 없어?”

중혁이 초조히 재촉했다. 대답을 위해 몸을 돌리던 영준은 순간 멈칫했다. 시선의 끝에 뭔가 하얀 게 스쳤다. 어둠 속에 누군가 있었다. 그늘에 반쯤 가려진 맨발과 반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멘트로 발라진 배수구 끝, 조그만 아이가 앉아 있었다. 양다리를 감싸 안은 아이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조잡한 주방기구들 사이에 숨듯이 웅크려 있었다. 오물이 묻은 다리가 어찌나 가느다란지 조그만 새 같았다.

“이게 무슨 냄새야.”

영준의 어깨를 잡고 중혁이 들어왔다. 좁은 입구는 두 사람이 서 있는 것도 힘겨웠다. 영준은 아이를 밟거나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비켜섰다. 중혁은 단숨에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행방에 대한 단서라도 찾을 생각이리라.

아이는 모르는 사람들에 겁에 질렸는지 바짝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작은 손가락이 새카맣게 더러웠다. 여기서 얼마나 있었던 걸까. 엄마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뭐라고 해야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잠시 곤혹스럽게 아이를 보던 영준이 중혁에게 일단 말을 해야겠다 싶어 굽혔던 허리를 펼 때였다.

“여기-”

“어우 씨발!”

갑자기 왁 하는 소리가 터졌다. 외마디 욕설을 뱉은 중혁이 허겁지겁 방에서 뛰쳐나온다. 혼비백산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방으로 다가간 영준은 안을 들여다보았다. 성인 두 명이 겨우 누울 정도의 공간. 맨 먼저 보인 것은 구겨진 이불이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녹색의 두꺼운 이불 사이로 하얗고 작은 발이 나와 있다. 동그랗게 몸을 만 채 엎드려 있는 그것은 어린아이였다. 대여섯 살 정도의 조그만 몸.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파리들이 쉬지 않고 웅웅거린다. 어림잡아도 수십 마리는 넘어 보였다. 빈 빵 봉지와 바짝 말라붙은 패트병 안에도 파리가 들락거리고 있다. 방 끝에는 아이 옷 몇 벌이 뭉쳐있다. 병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더니 환자복도 섞여있다. 그 옆, 몇 벌의 더러운 팬티와 함께 하늘색 비니 모자가 걸레처럼 굴러다닌다.

순간 코와 입으로 역한 비린내가 스며들어왔다. 부패의 냄새, 그것을 이해하자 눈앞의 광경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흑, 하는 낮은 신음이 터진다. 급히 돌아서자 웅크리고 있던 아이는 어느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고 있다. 퀭하고 텅 빈 눈. 아무것도 담지 않은 어두운 눈이 영준을 똑바로 향한다. 방에 누운 육신과 똑같은 물빛 반바지. 중혁이 아이를 미처 못 보고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형……?’

갑자기 아이의 혼령이 입을 열었다.

‘형아야-’

우는 듯 가냘픈 목소리다.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영준은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아이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영준이 아무렇지 않은 척 좁은 부엌을 지나 막 골목으로 한쪽 발을 내딛었을 때였다.

‘영준이 형-’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지금껏 마주쳤던 혼령들 중 자신의 이름을 아는 놈은 없었다. 어떻게?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자 아이의 눈에서 눈물처럼 검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조그맣게 벌린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섬뜩하게도 아이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었다. 그것은 눈썹도 마찬가지로, 입이 벌어지자 바싹 야윈 얼굴은 마치 뭉크의 그림처럼 길어졌다. 죽은 이들의 얼굴은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혼령은 양팔을 벌린 채 다시 한 번 영준이 형, 하고 말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낯익은 모습이다. 불현듯 겹쳐지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방에 있던 환자복과 하늘색 모자. 영준은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신형아?”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름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혀엉.’

기다렸다는 듯 뻗은 팔이 길게 늘어난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닿기 직전, 영준은 튀어 오르듯 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중혁이 담에 기대 서 웩웩거리며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영준은 그를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질질 끌어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 여자 이름이 뭐야?”

“무, 무슨 이름?”

“이 집 살던 여자, 우리가 찾으러 온 빚쟁이!”

더듬거리며 준형이 여자 이름을 말했다. 기억에 없는 지극히 흔한 이름이다. 내가 신형의 엄마 이름을 알고 있던가? 모른다. 들었다 해도 기억할 리가 없다.

잡았던 멱살을 놓고 영준은 문이 뜯겨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아이가 어둠에 반쯤 가려진 채 그곳에 서 있었다. 한쪽만 내놓은 얼굴이 엿보듯이 이쪽을 응시한다. 크고 공허하게 빈 눈. 자신을 부르는 듯 달싹이는 입술. 맙소사. 영준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돌아섰다.

“야, 어디가?”

중혁이 놀라 외쳤다. 그리고 대꾸 없이 멀어지는 영준과 빈집을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허둥지둥 뒤를 따랐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지독히도 많은 시선. 어두운 틈과 지붕의 그림자, 골목의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몇 명인지, 어디까지가 산 사람인지 어디부터가 죽은 사람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다. 밀실 공포증 같은 숨 막히는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빨라지던 걸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뜀박질로 변했다. 흐릿한 눈의 혼령들이 골목마다 쪼그려 앉은 채 돌아보았다.

어디로 가든 시선에서 피할 곳이 없다. 살아있음에 대한 질투와 분노가 화살처럼 꽂혀온다. 도대체 이 좁은 골목은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언제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것일까. 층층이 내려앉은 죽음은 대부분 고독하고 누추했다. 슬픔도 추억도 없다.

우당탕하고 발치에 뭔가가 걸려 넘어진다. 여기에서 나가야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뛰다 보니 어느새 넓은 도로가 나왔다. 갑자기 넓어진 하늘과 햇볕이 어지러워 영준은 멈춰선 채 비틀거렸다. 쓰러진다, 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야!”

뒤에서부터 팔이 낚아채졌다. 중혁이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대며 숨을 몰아쉰다.

“뭐야 너. 갑자기, 안 그래도, 놀랐는데 지리는 줄 알았잖아!”

불독 같은 몸이 양다리를 쩍 벌린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웅웅거리는 이명을 고함과 욕설이 뚫는다. 중혁은 그러고도 성에 안 차는지 주먹으로 어깨를 한 대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시발 진짜 지린 것 같은데.’ 하고 한심한 얼굴을 했다.

둘은 도로 외곽의 작은 턱에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고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각자의 이유로 진정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숨 쉬는 것만 생각한다.

“괜찮냐?”

“그래. 괜찮아.”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형한테는 뭐라고 하냐.”

“일단 신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경찰에? 안 돼, 일 복잡해진다고 형이 화낼 거야.”

확실히 채무자 대신 흥신소 사람이 문을 불법으로 뜯고 들이닥친 경우니, 경찰에 신고를 한다면 일이 복잡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애초에 경찰과 그리 사이가 좋은 직종도 아니다. 신세를 지는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 우린 여기 안 왔던 거야. 본 사람도 없고, 있다 해도 노인네들이 우리가 누군지 알게 뭐야. 원래 이런 동네는 고독사니 뭐니 매일 죽어나가는 게 일이니까. 알아서 처리하겠지. 냅둬, 냅둬.”

홧김에 문을 뜯어냈으니 불법침입에 기물 파손이다. 거기에 시신의 첫 번째 발견자. 중혁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약간의 저항감은 있었지만 조금 전의 일을 생각하니, 그렇게 하자는 말 이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나저나 난년은 난년이다. 어떻게 지 애를 저 꼴로 놓고 튈 수가 있지? 진짜 전망을 알 수가 없는 여자다. 일이 진짜 대차게 꼬이네.”

“……이 일은 손 떼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노인이 자연사한 것도 아니고, 어린 애가 혼자 이런 데서 죽었어. 보통 일이 아니잖아. 당연히 경찰에서도 부모를 찾게 될 테고 그럼 수사에 들어갈 텐데 경찰하고 같이 엮고 싶진 않을 것 아냐.”

“그런가.”

중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죽인 걸까, 그러니까, 친엄마가?”

“…….”

“아니 그냥 궁금하잖아.”

“나도 모르겠어.”

“아오. 앞으로 한 일주일은 제대로 밥 먹긴 글렀다.”

중혁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듯 부르르 떨었다.

그들이 나온 방향은 왔던 길의 반대였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쪽방촌을 가로지르거나 빙 돌아야 했다. 영준이 앞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자, 중혁은 별 반대 없이 따라왔다.

중혁은 걸으면서 연신 양어깨를 손으로 탁탁 쳐댔다. 액을 턴다는 것이다. 십중팔구 집에 가기 전에는 굵은 소금을 구해서 전신에 뿌려대겠지. 학창시절부터 태도가 큰 것에 비해 은근히 겁이 많았다. 괴담도 싫어했다. 여름이면 야자 시간에 모여 하던 시시껄렁한 귀신 이야기도 질색을 했다. 정작 자신은 그런 것은 믿지 않았고, 딱히 무서워하지도 않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 이름은 왜 물은 거야?”

“무슨 이름.”

“아까 그 집 앞에서, 빚쟁이 이름 말하라고 했잖아. 혹시 아는 사람이야?”

“기억 안 나.”

“허 이 자식 보게. 아주 죽일 듯이 지랄을 하더니.”

관둬라, 관둬. 중혁은 혀를 찼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에는 그림자 하나 없다. 낡은 표지판이 복잡하게 얽힌 도로는 급격한 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이어진다. 짙푸른 가로수 아래 어른거리는 얇은 그림자를 몇 개 지나간다. 나무 옆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는 사인물이 걸려 있다. 00:00~24:00의 시간 표시는, 결국 이 근처가 아이들에게 언제나 금지된 장소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신형은 왜 혼자 그런 곳에 있었던 걸까. 영준은 마지막으로 만났던 아이의 모습을 더듬어 보았다.

‘엄마하고 놀러 가기로 했어. 엄마가 그러는데 나 암 아니래.’

천진하게 웃던 작은 얼굴. 자신이 선물해준 모자를 쓰고 곧 퇴원하게 된다고 즐거워했다. 그토록 오래 소아암 병동에 있었으면서, 갑자기 암이 아니며, 엄마와 함께 놀러 간다고 했었지. 아이의 치료가 이제 지친다며,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고 그러니 차라리 함께 죽자고 하던 그 히스테리컬한 엄마와. 설마 이런 재회가 될 줄은 몰랐다.

그만. 영준은 실처럼 풀리는 생각의 끝을 다잡았다. 모든 죽음은 슬프다. 모든 혼령은 혼란스럽고, 대부분은 분노해 있다. 동정은 덫처럼 자신을 잡아 단숨에 수렁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생존 앞에서 도연에게 배운 철칙이었다. 단순하고 흑백처럼 분명하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만.”

도로 쪽으로 걷던 중혁이 갑자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글거리는 도로 가운데, 망가진 털모자 같은 것이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달라붙은 그것은 로드 킬 당한 짐승이었다. 죽은 뒤 수십 번은 바퀴에 깔려 바닥에 판판하게 붙어 있다. 생전에 개였는지, 고양이였는지, 아니면 너구리였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중혁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살피는 듯한 눈이었다. 별다른 반응이 없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씩 웃는다.

“너 우리 처음 합숙여행 갔던 거 기억 나냐?”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은 걸까. 영준은 그래, 하고 대답했다.

“날을 잘못 잡아서 삼일 내내 비만 왔잖아.”

“덕분에 실내에서 윗몸일으키기하고 팔굽혀펴기 내기만 죽도록 했지.”

“그때 우리가 뭐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해?”

“글쎄…….”

합숙 중 둘은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을 했었다. 싸움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필시 시시껄렁한 이유겠지. 단순히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거나 뭐 그런. 중혁과는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둘은 성장환경도,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달랐으니까.

“그 다음 날 잠깐 휴식시간에 자전거 빌려서 호수까지 갔었잖아, 왜.”

기억이 난다. 새벽에 일어나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또 한바탕 할 뻔했었다. 앙금이 남아 서로 눈만 마주쳐도 어색했다. 선배들은 두 사람에게 왕복 3시간의 자전거 여행을 떠나도록 지시했다. 납작 엎드린 먹장구름 때문에 사위는 컴컴했고 때때로 천둥소리가 났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둘은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며 함께 자전거를 탔다. 화해는커녕 대화도 없었다.

“나도 그때는 속이 좁은 놈이라, 가는 내내 네 등만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지. 선배들만 아니었으면 가만 안 두는 건데. 이대로 확 어디 끌고 가서 죽여 버릴까 뭐 그런 생각도 하면서. 근데 한참 가다 말고 중간에 네가 갑자기 멈춰서는 거야. 꼭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그래서 나도 같이 세웠지.”

영준은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갸웃했다.

“싸움 거는 거면 받아주마 하고 기다렸는데 넌 내 쪽은 보지도 않더라고.”

우뚝 멈춰 선 소년은 숨을 몰아쉬며 몇 초간 도로 한가운데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로에 죽은 개가, 아마 요만한 강아지였을 거야. 차에 치였는지 굶어 죽었는지 몰라도 꼭 봉제인형처럼 납작하게 누워있었어. 생각 안 나? 너 그걸 맨손으로 들어 올렸다는 거 아냐. 맨손으로!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걸. 그리고는 길가 풀숲에 내려놨어. 조심스럽게. 자는 것도 아닌데 깨어나기라도 할 것 마냥. 그다음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는 쌩하니 가버렸지. 척, 척, 척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꼭 바닥에서 동전이라도 주웠다는 식으로. 그래서 아 이 새끼가 이런 짓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구나, 하고 알았지.”

“……내가 나중에 손은 씻었어?”

“아 이 미친 새끼.”

가벼운 농담에 흐흐 하고 웃음이 터졌다.

“도덕 선생마냥 시시한 소리나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입만 산 건 아니구나 했달까. 내가 널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준 이유가 그거야.”

“…….”

“그 일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날 저녁에도 우린 또 싸웠을 거야.”

쨍쨍 내리쬐는 길은 전혀 낯선 길로 이어진다. 슈퍼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그 후에도 친구로 지낼 일은 없었을 거고, 졸업하고 나서도 연락도 안할 거였고, 우리 엄마 죽었을 때 네가 애들 다 몰고 와서 상 치르는 거 도와주는 일도 없었겠지. 노친네 피해서 너희 집에서 지냈을 때 소영이가 끓여준 라면도 못 먹었을 테고. 그거 진짜 끝내줬어. 그리고 또, 뭐냐. 지금 이렇게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야.”

중혁이 손을 펴 보였다.

“갑자기 뭔 소리야.”

“그냥. 오다가 본 것 때문에 갑자기 생각이 났어.”

“…….”

영준은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이미 꽤 걸어온 탓에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야 아무리 그래도 아까 그건 아니다. 껌도 아니고 바닥에 완전 붙었었잖아.”

“어릴 때나 하던 짓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이젠 그런 짓 안 해.”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으로 도와달라고 찾아온 놈한테 단번에 오케이도 못하고 이런 식으로 질질 끌게 만든 거 면목 없다. 개 죽은 것도 못 지나치던 놈한테 사람 죽은 거까지 보게 만들고.”

뜻밖의 고백에 영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쑥스러운지 약간 팔자걸음으로 걷는 중혁은 누가 봐도 말보다 욕이, 욕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놈이지만 의외로 감성적인 데가 있었다. 속물적이지만 귀신 이야기라면 오금을 못 펴는 동창에게 무어라 짓궂은 농담을 해주려 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새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작렬하는 해가 온몸을 태울 듯 지진다. 가을, 계절상으로는 이미 가을이건만 몸으로 느끼는 것은 여름이다.

오늘도 30도를 넘는 폭염이다. 내일도, 또 모레도 그럴 것이다. 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런 더위라면 모든 것이 금방 마르고, 부패하겠지. 중혁의 말은 틀린 것이 없다. 내버려둬도 누군가 시신을 거둘 것이다. 이런 날씨에 부패는 더 심해질 것이고, 열린 문으로 걷잡을 수 없이 악취는 번질 테니까. 그러나 정확히 언제가 될까? 오늘, 혹은 내일? 이길 수 없는 무게에 눌려 껍데기만 남아 있던 짐승의 시체처럼 앞으로 또 몇십 번을 밟히게 될까.

“……아까 그 집.”

“?”

“시체가 발견 되도 신원을 모르면 인계가 안 될 테지.”

“아마. 시에서 가져가서 처리할걸.”

“…….”

“왜?”

영준은 망설이다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애 같아.”

두 사람 모두 걸음을 멈췄다.

“병원에 있을 때 만났던 애 같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 아니, 맞다고 생각해.”

“잠깐잠깐, 병원이라니? 어떻게 아는 사인데? 그 엄마가 돈이랑 애 데리고 튄 게 언젠데 널 알아?”

“지금이 아니라 한 달 조금 더 된 이야기야. 소아암 병동에 있던 애였어.”

“확실해? 얼굴 봤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영준은 엎어져 있던 아이의 시체를 떠올렸다.

“봤어.”

“그래……?”

“내가 사준 모자를 가지고 있더라.”

으아, 하는 신음이 터진다.

“파리가 많았으니 내버려두면 곧 구더기가 끓겠지. 그런 식으로, 신원미상으로 처리되게 하고 싶지 않아.”

“근데 야, 신고하게 되면.”

“진오 형한테 부탁해볼게.”

경찰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 이름을 꺼내자 떨떠름해 하던 중혁의 얼굴이 조금 풀린다.

“집 주소하고 위치, 이름이랑 치료받던 병원 정도 알려주면 그 후에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익명으로 처리해달라고 하고 이쪽 신원은 안 밝혀달라고 해둘게.”

“아는 애라고?”

중혁은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집 앞에 차가 도착한 때는,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한사코 데려다 주겠다고 우기던 중혁은 차에서 내리는 영준에게 뜬금없이 ‘여자 소개시켜줄까?’ 하고 물었다. 기분이 다운된 자신을 위한 나름의 위로였다. 실없는 소리 한다며 웃자 진심이라고 우기는 것을 억지로 사양했다. 그는 이번 일은 틀어졌으니 곧 다음 일로 또 보자며 씩 웃고는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영준은 마루로 기어 올라가 그대로 대자로 누웠다. 눈을 감자 멀리서 매미 울음과 함께 나지막한 냉장고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광경. 조용한 집안에는 아무 인기척도 없다. 소영은 어제부터 경북에 있는 친구의 집에 내려가 있다.

나 혼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약간의 외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종일 지속되던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낡은 고무줄처럼 퍼진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영준은 누운 채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몇 건의 스팸 문자와 안부를 묻는 전화들. 그러나 눈에 익은 번호는 없다. 기다리는 연락은 언제쯤 올까.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아무 진전이 없다. 그렇다면 내일, 그리고 또 내일에 희망을 건다. 가진 것은 그뿐이니까.

문득 괴로워져서 눈을 감았다. 혼자가 되자마자 당장 찾아오는 고독에 깊게 심호흡을 한다.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영준은 미동 없는 핸드폰을 가슴 위에 올렸다. 그리고 손끝으로 익숙한 감촉을 더듬었다. 작은 스티커 위에 덧발라 놓은 스카치테이프의 감촉.

“김도연…….”

마루에 뒷머리를 누르며 영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듯, 여름 내 돌보지 못한 정원에는 잡초가 무섭도록 자라 있다. 우거진 잡초가 팬지와 봉숭아가 심어져 있던 곳을 차지해 예전의 아름답고 작은 정원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가 봤다면 혀를 차셨을 것이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마치 자신의 마음 같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나…….”

자조 섞인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누구라도 좋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하는 것인지 확인 받고 싶다. 지금 하는 일들이 과연 도연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엉뚱한 곳에서 헤매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마에 팔을 올린 채 눈을 감는다. 그렇게 꼼짝도 안 하고 누운 지 몇 분이 지났을까. 팔을 크게 움직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영준은 양 뺨을 손으로 짝짝 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래왔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에 놓인 앉은뱅이 상 위에는 나가기 전까지 살펴보던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밀린 세금고지서와 공과금, 병원비 청구내역 사이로 보험사 약관서류가 섞였다.

우선순위, 우선순위. 영준은 중얼거리며 엉덩이를 끌어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인상을 쓴 채 골치 아픈 숫자들과 싸움을 시작한다. 가계부를 작성하는 영준을 거실 한쪽에 걸린 거울이 비춘다. 미간을 찌푸린 채 펜 끝을 잘근잘근 씹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 푸른빛이 어른거렸다. 거실 창가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청색 배낭이었다. 비스듬히 놓인 그것은 마치 피곤한 사람이 그러듯 벽에 기대앉아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7시, 막 해가 진 번화가는 갑작스런 비에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로 축축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큰길을 벗어난 뒷골목에선 고깃집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자욱했다. 벌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 비에 젖은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여기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파르스름하게 수염이 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가 어딘지 모르게 칠칠치 못한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그러나 얼빠져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는 얼마 전 발령이 난 강력계 형사였다.

“진오 형.”

영준이 들어서자 그는 발로 옆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빼냈다.

“앉아라. 밖에 비와?”

축축이 젖은 머리와 어깨를 털며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 나설 때는 괜찮았는데, 내리니까 뿌리네요.”

자리에 앉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와 술이 나왔다. 미리 시켰어, 하고 말한 진오가 기다렸다는 듯 소주를 따랐다.

“마셔라, 간만에 쉬는 날인데 이날 안 마시면 언제 마시겠어.”

잔을 받은 영준은 반만 마신 채 잔을 내려놓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눈 뒤 집게를 받아 고기와 야채를 굽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들어와 가게는 이내 만석이 되었다.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떠들썩한 목소리가 비 내리는 거리로 퍼져 나간다. 진오는 몇 번 더 술을 권해보다 영준이 내켜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억지로 권하지 않았다. 대신 기분을 내기 위해서라며 그의 빈 잔에 사이다를 하나 시켜 따라주었다. 어린놈의 새끼, 놀리는 어조에는 희미하게 웃음이 담겨 있었다.

“된장찌개 시켜줄게.”

“됐어요, 형. 고기를 둘이서 4인분이나 시켜놓고.”

“한창 먹을 나이인 놈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이거 너 혼자 3인분이야. 어떻게 된 게 볼 때마다 더 말라가지고 와. 자, 먹어라.”

진오는 자신의 그릇에 있던 밥을 반 퍼서 영준의 앞에 담았다. 됐다고 해도 무시한다. 결국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너 요즘 중혁이네 일 돕는다며.”

“……네.”

“왜 하필 거기야?”

“신세 지는 게 있어서요.”

“돈?”

“아뇨.”

“그럼 뭔데?”

영준은 머쓱하게 웃었다.

“사람 찾는 거요.”

아아- 하고 진오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 아직도 찾는 거야? 새끼야 내가 기다 싶으면 연락 준댔잖아. 못 믿냐?”

“그게 아니라.”

영준은 말끝을 흐리고는 그냥 웃어넘겼다.

“뭐, 저번에 헛다리 짚은 것 때문이면 할 말 없다만.”

진오는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신경 써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며칠 전, 도연으로 짐작되는 신원미상의 행려병자가 있다는 소식에 울산에 다녀왔다. 결과적으로는 허사였다.

“흥신소 일 하지마라. 여차하면 같이 말려들어가. 너하고 맞는 일도 아니고.”

“생각보다 깨끗한 데에요. 불법적인 일도 안하고.”

흥, 하고 비웃은 뒤 잔을 비운다.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불법적인 일 안 해서 느닷없이 전화해가지고 익명으로 그딴 신고를 넣어?”

“그거야…….”

할 말이 없어진 영준은 소주잔에 담긴 사이다만 홀짝였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됐어요?”

“신원 파악해서 친척한테 인계 됐다. 알아서 장례 치러주겠지. 인적사항 확인할 길이 없어서 말 안 해줬으면 십중팔구는 무연고로 보일러실로 갔을 거야.”

보일러실이란 친인척 없이 고독사한 이들이 가는 화장터를 뜻했다.

“어떻게 알게 된 앤지 몰라도 불쌍한 애기더만. 치료하면 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돈이 원수지, 하고 말하며 진오는 다시 잔을 넘겼다.

“엄마는요?”

“글쎄.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뭐 좋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죽었든 살았든 제대로 살기는 글렀지. 그 여자 찾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알고 있냐? 어디서 돈을 끌어 모았는지 위험한 곳도 얽힌 모양이던데 아서라. 관여하지 마. 길게 말해봐야 술맛만 떨어지니까 고만하자.”

그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른다. 영준 역시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화제를 바꾸어 새로 발령 난 진오의 강력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했다. 어떤 선배들이 있는지, 주로 무슨 일을 하는지, 검거 중에 있던 이야기들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것들이었다. 허리를 세우고 조금 긴장된 자세를 유지하는 영준과 달리, 진오는 술에 들어가자 흐트러져 편안해 보였다.

시끄러운 가게의 한쪽, 야채를 손질하던 아주머니가 TV를 틀었다. 얇은 LCD가 대세인 요즘 보기 드문 옛날 TV다. 다리를 다쳤는지 깁스를 한 그녀는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올린 채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뉴스가 나오자 진오도 영준도 자동적으로 화면에 눈이 갔다. 어느 지역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고, 무슨 사고가 있었다는 내용의 소식이 설명된다. 층간 소음으로 인해 이웃 간의 살인사건, 대낮 묻지마 차량 질주로 인한 사상자 등 음울한 뉴스들뿐이다. 관심을 잃은 영준과 달리 진오는 직업적인 흥미인지 뉴스에 집중했다.

“흉흉하네요.”

“한여름보다는 낫지. 날이 좀 선선해지니까 당장 사건이 줄었단 말이야. 더운 날씨라는 게 사람을 돌게 해.”

중요 뉴스가 끝나고 나자 사회의 훈훈한 미담이 소개되었다. 다문화 가정에 자원봉사를 하러 다니는 대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흥미를 잃은 진오는 생각났다는 듯 고기를 주워 먹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아주머니가 당장 채널을 바꾼다. 드라마를 지나 계속 돌아가던 채널이 한 곳에서 멈췄다. 때마침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순간 고기를 먹던 사람들 몇이 TV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조금 전 8시 15분경 전북 KX석유화학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현재 5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관내의 스케일을 떼어내는 작업 중 발생한 불꽃으로 인한 폭발로 보이며, 대형 화재로 발생할 가능성이 커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시뻘건 불기둥이 검은 연기 사이로 솟구쳐 오르는 영상이 비추자 여기저기서 헉, 하고 숨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큰 폭발이었다.

-현재까지 5명이 숨지고 8명이 크고 작은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약 7억 원에 가까운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가는 동안 밑의 자막은 화재를 진압 중인 소방관들이 탈진하고 있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바로 옆 테이블의 여자가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술에 조금 취한 듯 높은 목소리였다.

“여기선 사망자 6명에 부상자 총 10명이라고 하는데.”

“아직 다 확인이 안 됐나 보지.”

“죽은 사람들을 저 불구덩이에서 다 어떻게 찾을 거야. 저래서는 뼈도 안 남을걸.”

뉴스를 보던 진오가 몸을 바로 했다. 괜히 봤다는 얼굴이다. 씁쓸함을 삼키듯 잔에 조금 남은 술을 마저 털어 넣는다. 어느새 거세진 빗줄기에 가게 입구로 물이 튀어 들어왔다.

“비가 저기에서 내려야 할 텐데.”

“…….”

대답 없이 뉴스를 보는 영준의 얼굴은 가면처럼 무표정했다. 그리고 보면 이 녀석은 전부터 이런 종류의 사고에 쉽게 우울해 했지. 진오는 달래듯 말했다.

“그만 봐라. 사상자는 확실한 사람만 집계해서 내보내니까 실종도 포함시키면, 일이 커질 거야. 화상이라는 게 또 변수가 많으니까 어차피 지금은 몰라. 내일 아침이 되어 봐야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지금은 사람 찾는 것보다 불 끄는 게 우선이고.”

“……11명이에요.”

“응?”

진오는 소주를 먹다 말고 별생각 없이 되물었다. 영준은 여전히 굳은 채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방금 들어온 현장 화면이 중계되고 있었다.

“뭐가 11명이야?”

“저기서 죽은 사람들…….”

진오는 저도 모르게 다시 TV를 보았다. 헬기에서 촬영한 뉴스 화면은 이제 어둠 속에서 고군분투 소방관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막에는 여전히 사망자 5명, 부상자 8명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영준은 대답 없이 손을 뻗어 진오의 술잔을 집었다. 잘랑잘랑 차 있던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부족하다는 듯 술병을 들어서 다시 한 잔을 따랐다. 순식간에 안 먹겠다던 술을 두 잔이나 삼키는 것에 진오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술병을 빼앗자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탕, 하고 거칠었다. 뭔가를 견디듯 조그만 유리잔을 움켜쥔 손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침묵에 진오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야, 뭐가 11명이냐고?”

흠칫 영준의 몸이 흔들렸다. 그리곤 어딘지 슬퍼 보이는 눈으로 진오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대답을 재촉하듯 진오의 한쪽 눈썹이 휙, 하고 위로 치켜 올라갔다. 서서히 영준의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번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앉아서 꿈이라도 꿨냐? 여름 다 가서 더위 먹은 것도 아니고.”

“그러게요.”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영준은 자신의 앞에 놓인 밥을 한입 가득 물었다.

“몸이 허한가 봐요. 고기 타요, 얼른 드세요. 이모, 여기 상추 좀 더 주세요.”

진오는 실없는 새끼, 라고 한마디 하고는 잔을 기울였다. TV 볼륨이 조금 커졌다. 몇 번 더 수저가 오가고, 음식을 씹던 영준이 소주잔의 사이다를 훌쩍 넘기고는 무릎에 손을 문질렀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 어 그래.”

벌겋게 달아오른 목을 물수건으로 문지르며 진오가 한쪽 손을 휘저었다. 다행히 영준이 테이블에서 멀어지기가 무섭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것은 보지 못했다.

가게 안쪽에 위치한 화장실은 마침 텅 비어 있었다. 좁은 남녀공용 화장실에는 문이 단 한 칸뿐이었다. 영준은 빠르게 천장과 바닥을 살핀 뒤 반쯤 닫힌 문을 발로 걷어찼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참고 있던 헛구역질이 다시 올라온다. 영준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서둘러 물을 틀었다. 쏴—하는 소리가 좁은 화장실을 가득 채웠다. 찬 손을 담근 채 숨을 골랐다. 식은땀이 이마와 목,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끈적거리는 기분 나쁜 땀이었다.

급히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자, 거울 너머 젖은 얼굴이 비쳤다. 수면부족으로 살짝 쳐진 눈매와 날카로워진 턱선이 어두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전에 없던 그늘이었다. 체중이 조금 빠진 탓인지 자신의 얼굴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다. 눈을 깜빡이자 속눈썹에 붙어 있던 물이 떨어졌다. 젖은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핏물이 도는 것 같았다. 영준은 손을 들어 지우듯 거울을 문질렀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그런 뉴스를 보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현장 상황을 전달하는 앵커의 뒤로 느닷없이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숯처럼 새카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몇 초간, 영준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방송 사고라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뉴스 앵커의 설명 사이사이, 비명이 섞였다. 그러나 웅성거리는 인파와 속속들이 도착하는 앰뷸런스는 그들을 완전히 무시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폭발의 충격으로 몸 여기저기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카락도 이목구비도 뭉개진, 부서진 장작 같은 사람들.

살려줘 도와줘 도와줘 죽고 싶지 않아 도와줘 살려줘 살려줘

영준은 세면대에 고인 물을 거칠게 손으로 내리쳤다. 집에서는 도통 TV를 켜놓는 일이 없다. 간혹 뉴스를 보더라도 대부분은 사건이 일어난 뒤의 자료화면 정도였다. 충격이 가시자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보다 왜 하필이면 지금, 하는 공교로움에 대한 분노가 앞섰다.

진오 형이 혹시라도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예전부터 도움을 많이 받은 형이다. 아직 학생일 때 알게 된 뒤 처지가 비슷하다며 그 뒤로 종종 불러 밥을 먹여주고, 법적으로 도움받을 일이 있으면 상담 상대도 되어준다. 도연을 찾기 위해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을 몇 마디 잔소리 정도로 받아준 것도 진오였다. 한 번씩 막무가내로 굴긴 해도 영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괜한 걱정을 끼치거나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싫었다. 진오의 부름이 아니었다면 영준이 해가 진 뒤 집을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큼한 공중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굳은 목과 어깨를 움직여, 마치 타석에 나서기 전에 하던 것처럼 몸을 풀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마음을 다잡고 자리로 돌아가자, 채널이 드라마로 돌아가 있었다. TV 자막으로 올라온 사망자 수는 1명 늘어났다. 진오는 그사이 남은 소주를 모두 비우고 된장찌개를 깨작이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지며 가게를 찾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다. 내려진 비닐발이 걷히고 또 두 팀 정도의 사람들이 가게로 들어왔다. 젊은 커플과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였다. 커플은 가게를 한 번 죽 보더니 이내 알아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부부는 치워지는 테이블을 기다리며 근처에 멈춰 섰다. 부부가 빈자리를 찾아들 때였다.

영준의 등에 가벼운 충격이 느껴졌다. 누군가 달라붙어 허리를 휘감듯 안은 것이다. 무심히 돌아본 영준의 눈에 가늘고 멍든 손가락이 보였다. 작은 손이 자신의 옷자락을 단단히 쥐고 있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붕, 하고 파리 한 마리가 눈앞을 지나간다.

“형.”

작은 목소리가 치근거리며 속삭였다. 이쪽을 올려다보는 퀭하고, 텅 빈 눈. 대일 병원이라 적힌 얇은 옷이 가느다란 손목 위로 미끄러진다.

영준은 채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끽- 하고 의자 밀리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의 대화가 뚝, 끊겼다. 난폭하게 밀쳐진 아이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대여섯 살쯤 된 뚱뚱한 사내아이였다.

영준은 얼어붙은 채 넘어진 아이를 응시했다. 신형이 아니었다. 어느 한구석도 닮은 곳이 없었다. 환자복이라 생각한 것은 평범한 흰 셔츠와 반바지였다.

“어머, 성재야!”

아이 엄마가 얼른 다가와 아이를 감싸듯 안았다.

“애가 착각한 모양이네요.”

그녀의 어조에는 비난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이렇게까지…… 하고 말하는 것이다. 명백한 과민반응이었다. 여자는 다시 한 번 영준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진오도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영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희게 질려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진오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 앉은 영준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잠 못 잤다더니 진짜 무슨 일 있냐?”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지금. 아까부터 영 이상하잖아.”

“진짜 괜찮아요. 그냥, 좀 착각을 한 것뿐이니까…….”

영준은 얼른 컵의 물을 들이켰다. 맙소사. 어째서 그런 터무니없는 착각을 한 걸까. 말도 못하게 놀란 탓에 등이 땀으로 축축했다.

“누구랑?”

“아니라니까요!”

저도 모르게 언성이 올라갔다. 아차하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뒤로는 분위기를 다시 바꾸려 해도 무리였다. 두 사람은 고기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차 가자, 2차.”

고깃집을 나오자 당장이라도 헤어져 쉬고 싶은 영준과 달리 진오가 그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형사의 직감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맘 편히 기대라는 유혹. 영준은 몇 번이나 진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남자 형제가 없는 영준에게 진오는 큰 형 같은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고민이었다면 몇 번이든 상담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소영의 일, 도연의 일, 신형의 일까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만약 자신이었다 해도 이런 이야기는 믿지 못했을 테니까. 결국 영준은 점점 익숙해지는 거짓의 가면을 썼다.

“정말 괜찮아요, 형.”

한밤의 유흥가는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했다. 둘이 헤어진 것은 결국 12시가 조금 못되어서였다.

“택시 타고 가라.”

“버스 아직 다녀요.”

가벼운 실랑이 끝에 진오는 구겨진 만 원짜리를 기어코 뿌리듯이 내던지고는 가버렸다. 다급히 떠나는 그를 배웅한 뒤, 영준은 휘황찬란한 거리에 혼자 남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유흥가는 낮이었다면 삼사십 분 정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일단 해가 진 이상, 영준에게 밤거리는 마음 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차가 다니는 큰길로 가는 도중 몇 번이나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쳤다. 웃는 얼굴이던 조금 전과 달리, 영준은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어지간하면 술김에 시비를 걸만한 이들도 못마땅한 투덜거림 정도로 물러났다.

마주 오던 남자들 몇이 어깨가 부딪히자 거 조심하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눈이 마주치자 움찔해서는 시선을 피한다. 호기롭게 욕설을 뱉던 것이 민망할 정도다. 취객으로 가득한 거리, 영준은 화가 나 몸을 구부린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가진 평범한 자리. 가능한 즐겁게,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싶었다. 조금만 참으면 되었을 것을, 멍청한 착각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아니.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상념은 금방 데굴데굴 굴러 아래로 내려간다. 어두운 생각을 하기에 밤은 좋지 않은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계를 보자 자정이 훌쩍 지나 있었다. 버스정류장은 인적 없이 조용했다.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로, 띄엄띄엄 밖에 가로등이 없는 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영준은 새벽의 거리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 무단횡단을 선택했다. 도로를 건너 성큼성큼 걷는 영준의 발걸음은 무의식중에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차라리 사람이라도 다니면 좋겠는데, 흔한 주정뱅이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젖은 나뭇잎을 밟으며 골목에 접어들었을 무렵, 앞에서 할머니 한 명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슈퍼를 다녀오는지 손에 든 비닐봉지가 묵직했다. 조금 큰 샌들을 신은 아이는 할머니의 걸음에 맞추지 못해 뒤처져 있었다. 아이를 보자 가게에서의 일이 떠올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뒤돌아갈까? 영준은 망설였다. 젖은 나뭇잎에서 떨어진 이슬이 어깨를 축축이 적셔왔다.

“고마 잘 밤 다 돼가꼬 무신 니는 아이스크림이고 아이스크림이……뚝 그치라!”

거리가 가까워지자 주고받는 대화가 들렸다.

“너거 엄마가 알 면은 할매가 무식해가꼬 아한테 자꾸 불량식품 사멕인다고 흉본다 아이가.”

“괜찮아.”

“괜찮기는 개코가 괜찮노.”

희미한 달빛에 비춘 것은 지극히 평범한 할머니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였다. 한참을 울며 보챘는지 아이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심드렁하니 걷던 할머니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놀란 기색으로, 덩치 큰 남자를 위아래로 훑는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을 끌어당겼다. 보호하듯 아이를 가린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멀어진 뒤, 영준은 손으로 뺨을 더듬어 보았다. 또 소영이 말하던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걸까. 정말 겁을 먹은 것은 내 쪽이건만. 찡그린 이마에는 땀이 축축하게 솟아 있었다.

“하…….”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 놀란다더니. 자신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자 우습기까지 했다. 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골목을 나가자 우측에 편의점이 보였다. 조금 전 두 사람이 장을 보고 간 곳이리라. 24시간 편의점이라는 문구가 어둠 속에서 분명한 빛을 내뿜었다. 영준은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며 편의점 앞에 섰다. 뒤숭숭하던 마음이 조금 냉정해진다. 그러고 보니 집에 물도 음식도 없다. 소영이 집을 비운 뒤로 장을 보러 가지 않았다.

생수 한 병과 컵라면 몇 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은 영준의 시선이 매장 밖의 아이스박스에 꽂혔다. 속이 한 번 뒤집혔던 탓인지 갈증과 함께 뭔가 시원한 것이 먹고 싶었다. 네모난 아이스박스에는 가지각색의 아이스크림이 쌓여 있었다. 2+1 이라고 표기된 것 중 적당히 골라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편의점 유리에 알몸의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비쳤다. 비썩 마르고 병색이 있어 보이는 사내였다. 남자는 가게 안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뒤에 있었다. 두 발자국 정도 뒤였다. 벌거벗은 어깨를 웅크린 채 흰 삼각팬티 한 장만을 걸치고, 멍한 얼굴로 영준을 바라본다.

“…….”

영준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하마터면 뒤를 돌아볼 뻔했다. 영준은 남자의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물건을 고르는 척 한참을 서성이다 진열대에 몸을 숨긴 채 밖을 살폈다.

아직 있다. 밤을 배경으로, 편의점 불빛에 흰 상체가 흑백그림처럼 떠오른다. 사십 정도 되었을까, 볼품없는 몸에 흰 면 삼각팬티는 차라리 나체가 나았을 정도로 병적인 인상을 줬다. 기분 나쁘다 이외에 적당한 표현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영준은 차가워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풀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남자의 혼령은 마치 버려진 개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 손으로 자신의 팔을 잡고, 늘어트린 팔은 다리 사이를 가리고 있다. 구부정하고 비굴한 태도였다.

시간은 곧 새벽 1시였다. 내일도 아침 일찍 흥신소 일이 잡혀 있다. 잠을 못 잔 지 이틀이 지났다. 오늘은 단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는데. 이대로 해가 뜰 때까지 밖을 빙빙 돌고 있을 수는 없다.

수상하게 생각한 아르바이트생이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떠밀리듯 편의점을 나온 영준의 뒤를 서늘한 기척이 따른다. 역시 따라오고 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집으로 갈 수 없다. 영준은 근처에서 가장 밝고 사람이 많은 곳이 어디인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조금 멀지만 늦게까지 문을 여는 호프집이 떠올랐다.

‘흐윽…… 흑, 흑으윽…….’

몇 걸음 가지 않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울고 있었다. 그 앙상하게 마른 알몸의 남자가, 뒤에서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한 것이다. 헐떡이는 소리는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얼마나 가까이 있는 걸까.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냈다. 제발 그만 따라와라, 제발.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흐느낌은 전혀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서럽고, 분에 찬 듯 숨을 들이킨다.

빌라와 단독주택으로 이어진 골목을 누비는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에 따라 울먹이는 음성도 점점 더 격해졌다. 사이사이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런 종류의 예감은 자연스러운 법이다. 뛰자, 하는 생각을 한순간이었다.

‘내가 보이지?’

웅얼거리던 목소리가 처음으로 완전한 문장을 토했다.

‘날 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무시하지 마’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지만 정말 들린다는 것을 들킬까 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멈췄던 발이 다시 움직인 순간이었다.

‘날 보란 말이야!’

새된 외침에 몸이 휘청거렸다. 팔이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차가워졌다. 잡혔다, 생각하자 참을 수 없었다. 전신이 심장으로 변한 것처럼 쿵쿵 맥박친다. 영준은 차가워진 팔을 뿌리치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벽을 짚었다. 그 바로 옆으로 달라붙은 혼령이 얼굴을 바싹 가져왔다. 눈이 마주쳤다. 젖은 눈에서 증오가 뿜어 나온다.

‘왜 무시하는 거야!’

침을 튀기며 혼령이 주먹으로 벽을 마구 내리쳤다. 갈비뼈가 드러난 마른 맨 가슴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쾅, 쾅 하는 소리는 물리적인 힘으로 흙먼지를 일으켰다. 분을 참지 못한 듯 혼령은 입가에 거품처럼 침을 흘리며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발을 구르며 어린아이처럼 마구 흔드는 얼굴에 눈물이 번들거린다. 그것은 곧 붉은 피가 되어 뿜어 나왔다. 영준은 그의 몸에 닿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리 가!”

영준은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것을 혼령에게 집어 던졌다. 그러나 형태가 없는 몸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오히려 화만 나게 했는지 태도가 한층 거칠어졌다.

‘봐! 보란 말이야!’

새의 발톱 같은 손가락이 뻗어온다. 바닥에 주저앉아 피하자 이번에는 양팔을 펼치고 목을 끌어안았다. 그럴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맨살이 와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기분 나빠,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엄청난 자기연민과 증오, 후회와 죄책감 같은 것이 덩어리로 밀려들어 온다. 슬픔, 원망, 질투와 외로움뿐 아니라 충족되지 못하고 좌절된 성적 욕망까지 마구잡이였다. 평생을 무시당하고 소외당한다고 믿으며 자신 안으로 파고들던 삶이 강제로 펼쳐진다. 보잘 것 없는, 심지어 고난도 보잘 것 없는 인생이다.

“놔!”

영준의 입에서 악에 받친 고함이 튀어나왔다. 아니 소리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억눌린 신음 소리뿐이었다. 남자가 옷을 모두 벗은 채 걸어놓은 노끈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아니 자신이다. 아니, 내가 아니다. 그러나 마치 내게 벌어지는 일 같다. 거친 끈이 목에 감기고, 흔들리는 의자를 걷어찬다. 크게 휘청이며 목을 조여 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컹컹컹!”

개 짓는 소리가 골목을 뒤흔들었다. 굵고 쩌렁쩌렁한 울음소리 사이로 쇠사슬이 부딪혔다. 덩치 큰 개가 앞발을 낮은 울타리에 올리고 마구 뛰어올랐다.

“컹컹컹컹!”

숨넘어가게 짖는 소리에 어두웠던 주택에 하나둘 불이 켜졌다.

“아이고,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찰칵, 하고 2층 집의 현관문이 열린다. 잠옷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산이야, 왜 그래. 도둑이라도 봤어?”

“컹컹컹!”

주인이 나오자 개는 더 흥분해 짖어댔다. 손전등 불빛이 어두운 마당을 한 번 훑고는 골목을 향했다. 둥근 빛이 바닥을 지나다 운동화를 신은 다리를 찾아냈다. 어머, 하고 낮은 비명이 터졌다.

“거기 괜찮아요?”

숨을 헐떡이던 영준은 눈이 부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일어나려던 시도는 벽에 뒷머리를 박는 것으로 끝났다. 온몸이 춥고 기운이 없어 겨우 무릎을 세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방금 전 본 환상이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목이 몹시 아팠다.

불안한 듯 이쪽을 바라보던 여자가 짖고 있는 개를 달래며 울타리 가까이 나왔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몸을 내민 여자가 다시 말했다.

“이 새벽에 애까지 데리고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는 거예요?”

목이 잠겨 끽끽거리는 소리가 났다.

“넘어져서…….”

열린 현관문 사이로 뒤늦게 중년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야? 하는 질문에 여자는 취한 사람인가 봐, 하고 대답했다.

“상관하지 말고 들어와!”

남자는 경계하는 얼굴로 영준 쪽을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채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영락없는 취객이었다.

“하지만…… 어머?”

어쩔 수 없다는 듯 영준을 가리키던 여자가 의아한 얼굴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뜬 채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어댔다.

“어머, 어디 갔어?”

“애가 있긴 어디 있다고, 빨리 들어와!”

“아니야 진짜야. 요만한 애가 산이한테 돌을 던지더라니까……?”

어리둥절한 대화는 현관문이 닫히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불 붙은 것처럼 날뛰던 개는 주인이 들어가자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저도 개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관의 자동불이 꺼지자 골목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몇 분이 흘렀을까, 비로소 균형 감각이 돌아온 영준은 벽을 짚고 일어났다. 알몸의 혼령은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만큼 느닷없이 사라진 것이다. 다행이란 생각보다는 불안이 앞섰다. 쓰라린 목을 만져보자 피부가 따끔거렸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저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문득 유난히 하체가 차갑게 느껴졌다. 만져보니 엉덩이 부분이 축축하다. 놀라 내려 보니 뒤쪽만 젖어 있었다. 빗물이 고인 곳에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란 생각도 잠시, 갑자기 한심해졌다. 왜 이런 곳에 주저앉아 고작 바지에 실수를 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느껴야 한단 말인가. 계속되는 피로와 긴장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절제가 무너진다. 영준은 거칠게 눈가를 비볐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싶은데 다리가 떨려 맘처럼 걸을 수가 없다. 빙의의 후유증이었다. 체온이 떨어지고 앞으로 몇 시간 정도 머리가 아파올 것이다. 내일은 할 일이 많은데……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화가 났다.

빌어먹을 놈, 자살을 했으면 곱게 사라질 것이지. 제가 좋아 죽어 놓고 왜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단 말인가. 그런 역겨운 꼴을 한 주제에 자길 봐달라니. 그따위로 죽어놓고 시신을 발견한 가족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생각이나 해 봤을까. 이 도시 너머에서는 바로 몇 시간 전, 열심히 살던 11명의 사람들이 허무하게 화재로 사라져버렸다.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발치에 바스락거리며 비닐봉지가 걸렸다. 편의점에 사 들고 온 물건이었다. 조금 전 일로 나동그라져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몸을 굽혀 주섬주섬 챙겨 들던 영준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영준은 집어 든 짐을 다시 인도로 힘껏 내던졌다. 와당탕 소리를 내며 생수병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검은 물줄기가 하수구를 향해 흘러간다. 부글부글 끓는 자신의 마음같이 엉망진창이다. 좌절과 울분을 억누르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형.”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속삭인다. 급히 팔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어두운 골목, 저 멀리 가로등불빛만이 희미하다.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다. 문득 바람을 타고 비릿한 악취가 풍겨왔다.

“……뭐야.”

낮은 음성에는 분노가 배어 났다.

“이번엔 또 뭐냐고!”

영준은 싸울 듯 앞으로 나섰다. 계속해서 억눌러오던 짜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화가 난 탓인지 신기하게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어디 한번 나와 보라는 듯 찌그러진 컵라면을 발로 걷어차자 벽에 맞아 떨어졌다. 그 근처, 조그만 맨발이 보였다 사라진다. 며칠 동안 영준을 노이로제처럼 괴롭혀오던 존재였다.

영준은 망설임 없이 아이의 혼령이 있음직한 관목 그늘로 다가섰다. 내가 너에게 뭘 잘못했기에 너마저 이러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가까이 가자 그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등을 부드럽게 떠밀었다. 아차 하고 앞으로 한걸음 디딘 순간 발아래가 확 낮아진다. 넘어지지 않으려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다.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담이 닿지 않았다. 관목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거기에는 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어둠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급히 물러난 영준은 얼른 좌우를 확인했다 조금 전과 다를 것 없는 골목이다. 근처 빌라의 불 켜진 창 너머로 희미하게 TV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앞에는 어둡고 매끄러운 어둠이 펼쳐져 있다. 빛 하나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깊고 밀도 높은 어둠. 양면유리처럼 미끄러지는 듯 균일한 질감마저 느껴졌다.

여길 떠나야 해. 이성이 영준에게 속삭였다. 돌연 펼쳐진 이질적인 광경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작지만 불규칙적인 호흡 같은 것이었다. 다친 짐승이 내는 것 같은 가냘픈 숨소리였다. 바로 몇 발자국 앞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런 것을 확인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정답만을 말하는 목소리가 소근거린다.

영준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불을 밝혔다.

뿌연 빛이 안개처럼 퍼졌다. 생각했던 데로였다. 영준의 바로 앞에 누군가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오롯이 앉아, 공처럼 세운 무릎을 양팔로 단단히 끌어안고 있다. 숙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또 혼령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섬뜩해진 순간이었다. 빛에 이끌리듯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

충격 속에서 영준은 입을 딱 벌렸다.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도연이었다.

“김도연!”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도연의 시선은 오직 영준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거기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이 흐릿했다. 태어나 처음 빛을 보는 사람 같았다. 영준은 급한 마음에 불길해 보이는 어둠 속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둠은 마치 타르처럼 끈적하게 영준의 손을 휘어 감았다. 그러나 아무리 뻗어보아도 닿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어째서. 몇 번이나 더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도연은 여전히 넋 나간 사람처럼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볼 뿐이다.

“김도연! 날 봐!”

영준은 애타게 외치며 있는 힘껏 팔을 뻗었다. 흔들리는 시선이 핸드폰을 쥔 팔을 따라 올라 온다. 겨우 눈이 마주친 순간, 도연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영준은 소리를 지르며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이 영준을 뱉어냈다. 다리가 허공에 뜰 정도의 강력한 힘이었다. 몸을 일으켜 다시 달려들었으나 이미 단단하게 변해 더 이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리 같은 장애물 너머, 도연이 우두커니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향한다. 매달리듯 절박한 시선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 핸드폰의 불이 꺼졌다. 영준은 허겁지겁 바닥에서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그러나 다시 불을 켰을 때는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어둠도, 도연도.

“……안 돼.”

영준은 정신없이 거친 돌담을 양손으로 더듬었다.

“안 돼! 안 돼!”

영준은 이끼 낀 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단단한 벽은 조금 전의 일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듯 미동조차 없었다. 영준은 소리를 지르며 피가 나도록 벽을 두들겼다. 그런 영준을 비웃듯 우거진 관목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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