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17/24)

4

차는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낯선 거리에 멈춰 섰다. 작은 공원을 낀 한적한 주택가였다. 빌라와 단층 주택이 쭉 늘어선 동네는 닳고 닳은 인상을 풍겼다. 도연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기사에게 넘겨주고는 잔돈도 받지 않고 내렸다. 돈을 건네받은 영준이 급히 차에서 내리자 도연이 이층집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벽돌과 녹색 지붕의 이층집은 다른 건물들이 비해 눈에 띄게 깔끔했다. 한눈에 봐도 지붕과 창문 등은 새로 해 넣은 티가 역력했다. 동그랗게 손질된 정원수가 나지막한 담 위로 솟아 누군가 집 안을 엿보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주물 대문 뒤로 잔디와 돌길이 보였다.

도연은 온몸에 전의를 두른 채 초인종을 눌렀다. 나지막한 클래식 음악이 이어지다 달칵, 하고 끊어졌다.

-누구세요?

“김도연입니다.”

-누구요?

어리둥절한 음성이 재차 물었다. 도연은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답조차 없었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다섯 번째에야 비로소 대문이 열렸다. 도연은 민첩하게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흘깃,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따라가자 지붕 위로 뭔가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솟아 있는 게 보였다. 구부정한 자세로 누군가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2미터는 족히 될 신장이었다. 영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더 자세히 보려 했다. 역광 탓에 마치 초점이 어긋난 사진처럼 흐릿했다. 그것은 다음 순간 지붕 너머로 휙, 하고 사라졌다.

“더 커졌네…….”

도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도연은 이미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던 도연은 물끄러미 과거에는 외부 화장실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공사되어 화분 놓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족히 20개는 넘을 크고 작은 화분들은 정성들여 손질된 티가 났다. 이 집 주부가 가진 취미가 그대로 드러난 공간이었다. 예전에는 마당 한켠에 겨우 풋고추와 상추 정도 밖에 심지 않았었는데. 부모님의 유산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연은 화사하게 꾸며진, 지금은 사라진 화장실 자리를 바라보며 씁쓸한 감상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 저기에 자주 갇히곤 했었다. 어른 된 후에도 가끔 꿈에 나오던 장소였는데,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구나. 문득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저거 때문에 못 살아요 정말! 그 사람 있는 데서 뭐라는 줄 알아요? 내가 죽은 애기 때문에 배가 아픈 거래,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것 때문에 날 원망하는 거래 글쎄! 슬슬 결혼 이야기 나올 참이었는데 이젠 그 사람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어린애 하는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 그랬어. 뭐라고 하디 그 사람이?’

‘당연히 화내지. 처음에는 가정교육 못 받은 애라고 화내더니 나중에는 나한테 그러더라. 뭐가 있었으니까 애가 집에서 보구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냐고. 자기한테 숨기는 거 있느냐고. 내가 미쳐 진짜!’

자주 아랫배가 뭉치고 아프다며 병원을 들락거리던 사촌누나는 머리가 길고 항상 화장품 냄새가 났다. 원인 모를 복통에 시달려 한여름에도 핫팩을 배에 올리고 자야했다. 어느 날 잠깐의 변덕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다 준 그녀를 위해 용기 내어 한 말을 집 앞에 왔던 애인이 들었다. 그 뒤 그녀는 자신을 그거, 저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 종종 도연을 화장실로 데려가 이유 없이 따귀를 때리곤 했다. 손을 휘두르는 여자나 눈앞이 번쩍하던 고통보다도 싫었던 건, 그녀의 아랫배에 매달려 끊임없이 울어대던 두 아기의 모습이었다. 아, 어느새 하나 더 늘었잖아.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손을 내리쳤다.

볼이 빨갛게 부어 다녀도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거짓말쟁이에 기분 나쁜 아이. 모두가 자신을 곁눈질 했다. 있어도 없는 존재처럼. 나는 이 집에서 감당해야 할 부의 대가였다.

도연은 자신의 팔을 잡는 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뒤에서 영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 곧은 시선이 찌르는 것처럼 강렬했다. 염려가 담긴 투명한 눈동자에 머릿속이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도연은 잡힌 손을 풀어냈다.

“가자.”

문은 열려 있었다. 현관에 가득 벗어놓은 무수한 신발들이 오늘 있을 친족모임이 벌써 시작되었음을 알게 했다. 도연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구두를 피해 집안에 들어섰다. 거실로 통하는 복도 쪽에 노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엉거주춤 서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홉떴다. 굳은 어깨와 뻣뻣한 자세에 환영의 기미는 조금도 비추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큰어머니.”

담담한 인사에 움찔하더니 대답 없이 휙 돌아선다. 그 뒤를 쫓아 도연은 거실 쪽으로 갔다. 난 화분과 붓글씨 액자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거실 가운데, 묵직한 가죽 소파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인원이었다. 회의 중이었는지 흐트러진 서류와 각자 앞에는 찻잔이 놓여 있었다. 그중 양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은 명백히 친척이 아니라 중개인처럼 보였다. 복도에 있던 큰어머니가 그사이 무어라 했는지 몰라도,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거실로 들어서는 도연을 본 이들의 표정은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놀람과 분노, 경악과 약간의 두려움이 제각각 복잡했다. 제일 상석에 앉은 큰아버지를 향해 도연은 가볍게 묵례를 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흰머리가 늘고 무서울 정도로 살이 찐 노인은 불시에 기습이라도 당한 것처럼 화난 얼굴이었다. 7년 전에 비해 많이 늙고 심하게 비대해졌지만 그 기질은 여전했다. 어디서 감히, 하듯 위아래로 도연을 훑는 눈이 번뜩였다. 다른 친척들은 위압감을 풍기는 큰아버지 뒤에 숨듯이 몸을 움츠렸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오늘 회의가 있다고 해서요.”

“네가 언제부터 여기에 참석 했다구?”

“오라고 보내신 거 아닌가요, 그 편지.”

도연의 말에 찔리는 것이 있는지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말을 해봐.”

앉으란 말도 없이 그는 도연을 거실 입구에 세워 놓은 채 쏘아붙였다. 도연은 흡,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은 더 이상 어린 애가 아니었다.

“과수원, 거기 안 팔 거예요.”

도연의 말에 그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미 결정 난 일이다.”

“……제가 허락하기 전까진 아니에요.”

“뭐가 어째?”

노인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찻잔이 쓰러져 연두색 물이 서류들 위로 번졌다. 아이고, 형님.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허겁지겁 서류들을 챙겼다.

“어디서 건방지게……!”

“이미 전화로 몇 번이나 말씀드렸었죠. 다른 건 몰라도 거긴 안 된다고. 그 대신 나머지 재산은 어떻게 처분하든 마음대로 하시라구요.”

도연은 단숨에 말한 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큰어머니를 향해 물었다.

“집 많이 좋아졌네요. 과수원 수입이 괜찮았던 모양인데, 왜 갑자기 결정이 난 거죠? 못해도 일 년에 4, 5천은 들어올 텐데. 왜요?”

“그따위로 집을 나갈 땐 언제고, 연락도 없이 기어 들어와서는 네가 지금 우리한테 따지고 드는 거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그게?”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목까지 찐 살에 힘겨운지 씨근덕거리는 호흡이 망가진 자동차 같았다. 소란에 주방에서 음식을 하던 이들이 거실을 내다보았다. 앞치마를 두른 여자는 이십 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머리와 눈꼬리를 내린 화장이 순한 인상이었다. 그 옆에는 어린 시절 도연의 뺨을 때리던 사촌 누나가 서 있었다. 나이가 들어 살이 찌고 선이 망가졌지만 옛날 인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도연을 알아보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왔으면 먼저 어른들한테 인사부터 하고 잘못했습니다, 빌기부터 할 것이지!”

“빌어요?”

“그럼, 네가 이 집에 끼친 피해가 얼만데!”

도연은 친척들이 앉은 중후한 물소 가죽 소파를 바라보았다. 그 뒤에는 거실 벽만한 크기의 TV가 붙어 있다. 들어오면서 본 가구도 모두 새것이었다. 고급 자기와 족자 등 한국식으로 꾸며놓은 집은 바닥부터 벽지까지 모든 것을 뜯어고쳐, 예전과 같은 것은 토지와 집의 기본 골격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전의 허름하고 지저분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윤택한 살림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반항심이 불쑥 솟아오른다.

“지금 보기에는 득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요.”

순간 테이블 위에 있던 찻잔 하나가 날아왔다. 도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잔은 벽에 맞아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졌다.

“뭐가 어쩌고 어째!”

옆에서 불안해하던 큰어머니가 ‘아이고 여보, 혈압 조심해요!’ 하고 외쳤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된 양 친척들 모두 우르르 소파 옆에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도연을 향해 당장 잘못했다고 빌라며 소리를 질렀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같으니. 어릴 때부터 저놈 저렇게 싹수 노랄 줄 알았다 내가!”

“저거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것 좀 봐요. 저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네, 그래.”

도연은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다시 말했다.

“인감하고 증명서 내주세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뒷목을 잡던 노인이 벌떡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걸 왜!”

마치 팔이라도 떼어 달라한 것 마냥 질겁을 한다. 분명 오늘이 계약일이겠지. 일찍부터 모여 회의랍시고 뭐라도 얻어먹을 것 없나 찾아온 친척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선물들이 거실 한쪽에 쌓여 있다. 설마하니 도연이 쳐들어와 판을 엎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편지와 날짜는 도연을 초대하거나 의견을 물으려 넣은 것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도용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까 미리 약을 치는 것이었다. 그것 자체가 이미 도연이 과수원을 팔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나가서 바로 변경신청을 할 수도 있어요. 미리 말은 해야 예의인 것 같아 온 겁니다. 그 전에 사용한 재산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안 할 테니 이것만 양보해주세요.”

“예의? 그걸 아는 놈이 이래? 그리고 재산이라니, 무슨 재산!”

“……큰아버지.”

뒤에서 그릇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소리의 주인공은 뒤늦게 도연의 정체를 안 사촌이었다.

“뭐야, 저게 그거였어?”

돌아보자 그녀는 새파랗게 날이 선 얼굴로 한바탕 할 기세가 등등했다. 마치 벼르고 벼르던 원수라도 만난 사람 같았다.

“이게 무릎으로 기어 들어와도 모자랄 판에.”

“지혜아, 그만해라.”

딸을 말리는 어머니를 사촌은 거세게 밀어냈다.

“남부끄럽게…….”

“부끄러울 게 뭐 있어요, 우리가? 다들 안 데려가려고 버티는 저거 데려다가 입히고 먹이고 할 만큼 했어, 왜 이래! 그랬는데 이게 어떻게 했어?”

“그만해라!”

“아버지도 참기만 하지 말고 할 말은 하고서 살아요. 저거 집에 들이고서 한 번이라도 좋은 일 있었던 적 있어요? 집안 말아먹을 뻔 했잖아. 공장은 망해, 엄하게 뺑소니범으로 몰려, 돌아가며 병치레에 하나하나 꼽을 수도 없어. 정신병이라고 해서 병원은 몇 번을 다녔어요? 하다못해 집에서 키우던 개에 화초까지 싸그리 죽었어. 맨날 이상한 짓만 하고 다닌 통에 온 동네에 귀신 붙은 집이라고 소문나서 미혜는 학교에서 따돌림까지 당했다구.”

그녀는 도연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 나가고 나니까 그 이상한 소리도, 냄새도 안 나더라. 네가 그런 거지? 관심 끌고 싶어서 거짓말한 거지? 거기에 속아서 우리가 굿하는 거에 돈을 몇백을 썼는지 몰라 이 새끼야. 근데 이제 와서 뭐 재산? 니가 염치가 있으면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되지. 우리처럼 너 같은 것 상대로 다 희생하면서 참고 인내하면서 돌봐줬던 사람이 어디 있는 줄 알아? 두고두고 평생을 갚아도 모자란 판에 어디서 고개를 쳐들고…….”

인내와 희생을 침 튀겨가며 외치는 그녀는, 도연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밤이 되면 일부러 마당에 내보내 혼자 세워두곤 했다. 이곳에 온 지 6개월이 되던 때였다. 조금 크고 나자 이번에는 학교에 다녀올 시간에 맞춰 현관문을 잠근 뒤, 모르는 척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밖의 야외 화장실에 들어가 작은 전등을 켜고 다른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자리에 누우면 밖에서 다른 가족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렸다. 어유, 정말 이상한 애야. 왜 저렇게 유난을 떨지. 누가 보면 우리가 괴롭히는 줄 알 거 아냐. 동네 창피해서 진짜.

“……우리 부모님 유산으로 차린 공장이었죠. 굿도 그 돈으로 한 거였고.”

“이게 근데 미쳤나.”

도연은 2층으로 통하는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가 거실을 염탐하다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뺑소니범으로 몰렸다던 사촌 형이었다. 그는 두려운 눈으로 도연을 보다 얼른 이 층으로 도망치듯 올라갔다.

“좀 컸다고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거 봐. 이게.”

“제가 끼친 손해배상금이 어떻게 되죠? 1억? 3억?”

도연은 큰아버지와 친척들을 향해 다시 물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5억? 그럼 그만큼 받으시고 남은 유산 돌려주실 건가요?”

“뭐가 어째?”

소파 주변에 몰려 있던 친척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더 크게 화를 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큰아버지를 똑바로 보며 도연은 다시 말했다.

“인감 내놓으세요. 거기 있던 데로 그대로 두시는 것 이외에 더 바라는 것 없어요. 과수원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그대로 가지시면 됩니다.”

“……이미 다 배어 버렸다.”

“뭐요?”

“이미 다 결정 난 일이라 하지 않았어!”

“왜 그랬어요!”

“어디서 큰 소리를 내?”

목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큰아버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거긴 애초에 우리 집안 땅이었다. 우리 아버님이 차린 과수원이었고, 재석이가 물려받긴 했지만 그 뒤로 내가 관리했어! 너 같은 어린 애가 뭘 안다고 결정을 해!”

“하지만…….”

“애초에 재석이가 죽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안 그래도 제 어미하고 꼭 닮은 놈이 하는 짓까지…….”

쯧쯧 혀를 차는 소리에 도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집구석이랑 엮이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 나이에 어린 동생 상 치르는 꼴을 보고 살진 않았겠지. 네가 그렇게 부모한테 지극정성이었으면 평소에 제사나 좀 챙기지 않구서! 왜, 그건 싫드냐?”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도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남편 잡아먹은 아내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것은 큰아버지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리 대단치도 않은 집안 주제에 그는 항상 도연의 외가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어머니를 닮아 남자아이답지 않게 희고 곱상한 도연의 얼굴도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게 오빠, 사주가 흉할 때 결혼을 막았어야 했는데. 우리 집안에 없던 무당 핏줄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겠어. 다 외탁이지.”

다른 친척이 불쑥 끼어들었다. 작은 어머니였다. 도연은 그녀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눈이 크고 바싹 마른 시어머니의 혼령이 항상 안방구석에 앉아 도연이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걸곤 했다. 그녀는 한 달도 못 채워 도연을 다음 집으로 보냈다. 저 새끼는 무당 새끼야. 누구 핏줄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 식구는 아니야.

“무당이 신내림 받으려면 저만 아니라 주변까지 싹 조져놓는다잖아요. 저게 혼자 살아서 우리한테 계속 동티나게 하는 걸 예사로 두고 보면 안 된다니까요? 막말로 지 애미애비까지 잡아먹고…….”

“입 다물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도연이 거실로 한 발 나섰다.

“이게 어디서!”

기다렸다는 듯 사촌이 도끼눈을 뜬 채로 다가와 손을 치켜 올렸다. 도연은 어딘가 남의 일처럼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래전 일을 다시 겪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한없이 어리고 나약한 그때처럼. 그러나 각오했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뺨을 후려치려던 손은 공중에서 잡혔다. 영준이었다. 내내 아무 말 없던 그는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도연은 그가 엄청나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번쩍이는 눈은 금방이라도 상대를 내동댕이칠 것 같았다.

“이, 이거 놔!”

예상치 못한 방해에 그녀는 한풀 꺾인 목소리였다. 영준은 사촌을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게 한 뒤에야 놓아주었다. 조용히 물러나 있던 만큼, 앞으로 나선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누구냐 그 사람은.”

“…….”

“누구기에 남의 집에 함부로 데려와 행패야!”

조금 전 도연에게 반말을 들은 원한이라도 풀려는 듯 작은 어머니가 이죽대며 말했다.

“보아하니 벗바리라도 데려온 모양이네. 무슨 떡고물을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지 몰라도, 꿈 깨. 저거랑 같이 엮여서 좋은 꼴 본 사람이 있는 줄 알아? 우리뿐이 아니야. 전에도 친구랍시고 같이 다니던 애가…….”

갑자기 도연이 몸을 돌려 거실에서 뛰어나갔다. 뒤에 서 있던 큰어머니가 놀라 비틀거리며 벽에 손을 짚는 동시에, 현관을 나서는 소리가 우당탕거리며 났다.

영준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보다 분노가 앞섰다. 자신도 변변치 못한 친척들로 인해 고생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막장은 아니었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는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당신들이 인간이야?”

험악한 목소리에 긴장이 감돌았다. 영준은 거실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똑바로 노려보았다. 움켜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제왕이라도 된 양 소파에 버티고 앉은 노인이 지지 않고 고함을 쳤다.

“이 놈이 어디다 대고……!”

“그게 조카한테 할 소리냐고, 이 돈벌레 같은 인간들아!”

“지혜 너 당장 경찰 불러라.”

그러나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홧김에 해꼬지라도 당할까 두려운지 모두 눈만 굴렸다.

“당장 나가!”

영준은 돌아서기 전 근처에 있던 청자 하나를 집어 보란 듯이 내던졌다. 큰 소리와 함께 도자기가 박살이 났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된 노인이 어버버, 하고 손가락질만 했다. 곧바로 말릴 새도 없이 그 옆의 다른 도자기도 바닥으로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이것도 어차피 조카 돈 훔친 걸로 샀겠지. 나중에 경찰 불러서 도용 문제로 시시비비 가릴 때 따지면 되겠네.”

영준은 이를 갈며 거실을 나섰다. 앞서 나간 도연을 서둘러 쫒으려는데, 복도 한쪽에 조금 전 마당에서 보았던 검은 인영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2미터는 훌쩍 넘을 거대한 키였다. 구부정하게 서 있는 것이 마치 노인 같았다. 그러나 짧은 다리와 팔 등 체형은 유아의 것이었다. 분노 탓인지 아니면 그 자체에서 딱히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도연이 말했던 더 커졌다, 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집에서 적어도 7년 전부터 있던 존재라는 것 정도는 추측 가능했다.

바로 옆을 지나는 동안에도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분 나쁜 악취가 풍겨왔다. 마치 노숙자나 오래된 쓰레기통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였다. 어쩐지 밖에서 본 것보다 더 커진 것 같은데. 영준이 생각한 순간이었다.

검은 인영이 갑자기 바닥으로 몸을 굽혔다. 그리고는 어린 아기가 하듯 네발로 엎드려 기기 시작했다. 크게 손을 뻗은 뒤 몸을 당긴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무릎을 끄는 소리가 슥-슥- 하고 났다. 질질 끄는 듯한 불쾌한 소리를 내며 그것은 복도를 지나 거실을 향해 나아갔다. 영준은 벽에 기댄 채 모퉁이를 지나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기? 조금 후 거실에서 ‘아 그 소리야. 또 그 소리가 나!’ 하는 히스테릭한 외침이 들려왔다.

대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확하고 얼굴을 쓸었다. 맑은 공기에 겨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영준은 도연의 행방을 쫓아 택시가 왔던 방향으로 급히 달렸다. 몇 미터 가지 않아 그가 전봇대에 기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달려가 어깨를 건드리자 거칠게 뿌리친다. 도연은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무섭도록 창백한 모습이었다. 한참이나 방향도 없이 걷던 도연은 결국 쌕쌕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영준은 더 이상 뿌리칠 힘도 없어진 그를 붙잡았다.

“미안해.”

움찔, 밀어내던 손이 멈췄다.

“뭐가.”

“같이 싸워주겠다고 와놓고 저런 헛소리나 듣게 내버려둬서.”

음울한 얼굴로 영준을 올려다본다. 이윽고 그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안 도연이 생각지도 않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너는-”

도연은 눈을 감고 신음을 내뱉었다. 어지러운지 영준의 팔을 잡고 휘청거린다. 근처의 빌라 화단에 앉히자 얼굴을 감싼 채 다리 사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지러워?”

“괜찮아.”

트럭 한 대가 골목을 지나갔다. 마른 먼지가 발치에 흩어졌다.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이 지나서야 도연이 조그맣게 물었다.

“그럼 뭐가 달라졌는데?”

“저 사람들 대면하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도 있었을 거야.”

“…….”

영준은 그의 동그란 뒷머리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에게 상담한다는 선택지는 생각도 못 한 거겠지.

“저런 인간들한테 무슨 예의에 경우를 따져?”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거칠게 말하는 영준에게 도연은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들었잖아. 내가 끼친 피해도 만만치 않으니까.”

“무슨 피해? 자기들 욕심대로 벌였다 실패한 사업? 들어가는 길에 보니 주차장에 외제차만 두 대더라. 그러면서도 집에서 키우는 개 죽은 것까지 너한테 떠넘기는 인간들이야. 감기만 걸려도 네 탓을 하게 생겼더만.”

그런 일이 없진 않았다.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몰라서 그래. 내가 온 뒤로 저 집에선 안 좋은 일만 생겼어. 장사도 사업도, 하다못해 건강도 망가졌지. 내가 계속해서 불러오는 귀신과 불행이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을 후려쳤으니까. 원인이 무엇인지는 너무 명백했어.”

“그건…….”

영준은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친척들의 반응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의 경험상 사람은 자신이 찔리는 것이 있으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이 되곤 한다.

“저 집에 처음 간 게 몇 살이었는데?”

“10살이었을 거야.”

“고작 10살 된 애한테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 지목했다고?”

“그게 아니야.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 처음에는…….”

처음에는 어땠더라? 모두가 상냥했던가? 기꺼이 받아줬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도연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백지 같다.

“그러니까 말하잖아! 나하고 같이 있으면……!”

“그런 소리 좀 그만해.”

“죽은 사람도 있어!”

“아까 그 친구란 사람 말이지? 전에 말했던 나처럼 보이게 됐다는 사람.”

“그래. 죽었어. 나 때문에 죽었어! 그 사람뿐이 아니야, 네가 처음 말했던 기범이란 사람도, 결국 죽었어. 나 때문에!”

“그게 왜 너 때문…….”

“내가 죽였으니까!”

도연은 소리를 질렀다.

“내 부모님도 그랬어,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저 사람들은 어머니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야. 내가 그런 거야. 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넌 아무것도 몰라!”

비명 같은 외침의 끝에 울음이 묻어났다. 붉게 충혈된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넌 몰라!”

“알려줘 그럼, 나한테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네가 이렇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고작 열 살도 안 된 애가 자기 부모님을 죽였다고 믿게 됐냐구!”

도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날 봐. 네 옆에 있어서 피해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오히려 넌 내 은인이야. 너 때문에 우리 남매가 살았어. 네가 아니었으면 내 동생도 죽었고, 나도 혼자서는 버티지 못했을 거야. 다시, 또다시 가족을 잃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런 일을 또 겪느니 차라리-”

꿀꺽, 목울대가 넘어간다. 마주하는 눈빛은 무슨 일이 있든 피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빛났다.

“네가 무슨 일을 했든 난 널 비난하지 않아. 그러니까 말해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는지, 가르쳐줘.”

도연은 충혈된 눈으로 영준을 바라보았다. 궁지에 몰린 것처럼 겁먹은 빛이었다. 무릎 위의 손을 꽉 쥐자 도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면 그에게도 알 자격이 있는지 모른다. 진실을,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도연은 떨리는 입술을 열어 아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6번 국도를 달리던 은색 승용차가 방향을 틀어 서행을 시작한 것은 오후 4시 반 경이었다. 그리고 풀숲에 잠시 멈췄던 차가 다시 출발해, 휴게소에 도착한 것은 6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내내 불안에 떨며 뒷좌석에 누워 있던 아이는 차가 속력을 늦추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유리창 너머를 보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도연아.”

“잠깐만 세우려는 거야. 엄마하고 아빠 좀 쉬게.”

“가! 그냥 가!”

“도연아, 너 진짜 왜 그러니.”

항상 얌전하고 어른스럽던 아이의 돌변한 태도에 부부는 곤혹스러웠다. 어렵게 얻은 휴가였다. 아이에게 첫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가장 좋은 펜션도 빌렸고, 좋은 레스토랑도 예약해두었다. 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려 병원이 있는 지방 도시로 빠진 것이 실수였을까. 갑작스럽게 심한 정체를 만나 일정도 어긋났고, 아이는 계속 울기만 한다. 한번 어긋난 계획은 좀처럼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가요 여보. 안 되겠다.”

“뭐라도 좀 먹여야지.”

“괜찮아. 그보다 얼른 도착해서 푹 쉬는 게 낫겠어.”

“쟤가 갑자기 왜 저러나 모르겠네.”

부부가 뒤를 돌아보자 아이는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엄지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내내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세 살 이후로 손가락 빠는 건 처음 봐.”

근심에 찬 표정에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가벼운 떨림과 함께 차가 다시 주차장을 벗어났다. 은색 승용차는 곧 다른 차들과 합류했다. 조금 전까지 막히던 것이 거짓말처럼 도로는 뻥 뚫렸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움직이자 불안해하던 아이도 안정을 되찾았다.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손가락을 빨고는 있지만 더 이상 울거나 보채지는 않았다.

앞좌석에서 부부는 운전 중의 졸음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준비해온 과일을 까서 입에 넣어주며 나누는 두런두런한 대화 사이로 라디오 음악이 흘렀다. 엄마는 몇 번이나 과일을 권했지만 아이는 고집스레 입을 다물었다. 그저 불안하게 창밖을 흘끔거릴 뿐이었다. 다행히 정체되는 구간을 벗어나 차가 멈추지 않자, 속력이 느려질 때마다 창문을 두드리던 똑똑 소리도 멈췄다.

대형 화물트럭 한 대가 옆 차선에 나타난 건 10분쯤 지나서였다. 짐을 가득 실은 22톤 화물차로 단순히 옆에 선 것만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덩치였다. 거칠게 질주하는 다른 화물차들과 달리 마치 속력이라도 맞추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달린다.

“여보, 차선 바꿔서 좀 떨어져요.”

아내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승용차가 천천히 화물차에게서 멀어졌다. 남편은 뒤에 오는 다른 차량을 확인하며 서서히 속력을 높였다. 그렇게 2분쯤 달렸을 때였다.

뒤쪽 창문에 달라붙어 ‘그 장소’와 자신이 얼마나 멀어졌는지에 대해 생각하던 아이는, 어둠 속에서 사라졌던 화물트럭이 속력을 붙이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마치 만화에 등장하는 차처럼 뒤로 뿌옇게 흙먼지가 날리며, 번쩍이는 헤드라이트는 눈처럼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곧 가족의 차와 트럭 사이에는 하얀 경차 하나만이 남았다. 트럭은 속력이 빨라질수록 점점 불안정하게 흔들리더니 곧 갈지자로 도로를 누비기 시작했다. 빵빵거리는 경적이 여기저기에서 울려댔다. 왜 저러는 거지? 엄마에게 저것 좀 보라며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쾅!

뭔가가 폭발하는 듯 굉음이 터졌다. 동시에 가가가가가— 하는 지독한 쇳소리가 뒤를 이었다. 화물트럭이 흰 경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경차는 너무나 쉽게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런데도 트럭은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았다. 들이받은 경차를 앞에 붙인 채로, 엄청난 기세로 돌진해 온다. 마치 처음부터 노린 것은 너희였다는 것처럼. 무서운 충격과 함께 귀를 찢는 소음이 덮쳐왔다. 파도에 휩쓸리듯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그다음은 깜깜한 어둠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심한 아픔에 정신을 차렸다. 온몸의 고통이 도연을 두드려 깨우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자 자신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차가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숨을 크게 쉬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할 수 없다. 깜빡이는 눈꺼풀 위로 뭔가 뜨겁고 끈적이는 것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비릿한 냄새가 난다. 사방이 어두웠다.

“어, 엄마……!”

영문 모를 일에 울음이 터졌다. 입속에서 비릿하게 녹슨 쇠 맛이 났다. 도연은 두려움과 아픔으로 패닉에 빠졌다. 팔을 휘젓고 싶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깨진 유리창 너머 멀리,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빛이 사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우성과 비명으로 밖은 너무나 소란했지만 뒤집혀진 차 안은 정적이었다. 불빛도,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도 그들의 차 안에는 닿지 않았다.

“엄마, 엄마! 아빠!”

무서움에 엄마, 엄마! 하고 불러봤지만 엄마는 답이 없었다. 목을 타고 뜨거운 것이 자꾸만 뚝뚝 떨어졌다. 입안이 비리고 기분 나쁜 맛으로 가득했다. 몸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것만 같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극심한 고통에 도연은 점점 숨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붉고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이 파도처럼 부서진 차 안을 비추며 지나갔다. 스치는 불빛 사이로 겨우 부모님이 앞좌석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아빠의 엄마의 머리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은 누구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저 사람이 정말 우리 엄마 아빠일까? 그저 매달려서 끙끙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는 그저 엄마, 엄마하고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울었다. 누군가 구해주러, 도와주러 올 거라 믿으며.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무섭고 아픈데, 왜 누구도 와주지 않는지. 왜 엄마도 아빠도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는지. 너무 아파, 무서워, 누군가 도와줘요, 제발…….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딸랑딸랑하는, 작고 여린 방울 소리였다. 아주 멀리서 다가오듯 방울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지며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질수록 다른 소리도 들렸다. 음률을 탄 노랫소리였다. 처음에는 한 명이었다가 점점 수가 늘었다. 얼마 안 가 여러 명이 동요나 민요 같은 것을 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재주 보게 재주 보게 우리 어매 재주 보게 나도 낳고 베도 낳고 어린 자식 젖 먹여 놓고 실건 자식 밥 맥여 놓고 이 세상을 마다하고 저승 살림 가신다네, 나도 가네 나도 가네 어매 따라 나도 가네 고랑 깊은 청태산 깊은 골로 억만층 바위 밑에 묻힌 어매가 대답할까…….’

처음 듣는 낯설고 이상한 노래였다. 어딘지 처연하고 서글픈 곡조였다. 도연은 다급히 노래하는 이들에게 애원했다. 도와줘, 너무 아파, 무서워. 돌연 노래가 뚝 끊겼다. 일시에 입을 닫은 것처럼 갑작스러운 중지였다. 멀리서 방울소리만 딸랑이고 있었다.

서러움에 훌쩍이는데 늘어져 있던 엄마가 눈을 떴다. 얼굴에서 눈꺼풀만이 거짓말처럼 움직였다. 반쯤 뜬 눈이 차 안을 한 바퀴 훑고는 이번에는 고개가 뒤로 돌려진다. 온통 터진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우리 도연이, 아프니?”

“어, 엄마?”

엄마의 눈은 혈관이 터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이 도연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처럼 어둠 속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윽고 눈이 마주치자 되었다는 듯 빙긋 웃는다. 피에 젖어 앞니가 새빨갛다. 여전히 축 늘어진 팔과 손은 박살난 유리 위에 늘어트린 채였다. 움직이고 말하는 것은 목의 윗부분뿐이다. 어딘지 모를 위화감의 정체를 어린 도연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엄마.”

“도연아, 살고 싶니?”

엄마의 목소리는 어조의 높낮이가 없는 대신 참을 수 없을 만큼 다정했다. 당장이라도 안기고 싶다. 도연은 훌쩍거리며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무서운지 대해 애원했다.

“대답해야지. 도연이 살고 싶니?”

“네, 네.”

“안 아팠으면 좋겠니?”

“네.”

“얼마나?”

“많이요 아주 많이요.”

“죽는 게 어떤 건지 아니?”

“엄마, 엄마.”

“대답해야지.”

차가 흔들렸다. 뭔가 우수수 떨어져 뒤집어진 천장 위로 나뒹군다. 가슴을 찌르는 고통에 아이는 할딱거렸다.

“아니야 엄마, 엄마 그러지 마요. 잘못했어요.”

눈물이 이마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네 네 하고 대답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지? 그럼 엄마하고 약속 하나만 해다오.”

“네.”

“잘 들으렴, 도연아. 이건 약속이야. 죽고 싶지 않으면 아빠를, 아프고 싶지 않으면 엄마를……알겠니?”

어둠 속에서 다시 불빛이 부서진 차량 내부를 핥듯이 지나갔다. 붉게 터지고 충혈된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도연은 흑흑 울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싫어.”

“그럼 엄마도 어쩔 수 없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가 끼기기긱—하고 기울었다. 금방이라도 짜부라트릴 것처럼 몸을 조이는 압력이 한층 심해진다. 아이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딱 벌린 채 숨만 헐떡였다. 눈앞에 빨간 점이 빙글빙글 돈다. 하얗게 시야가 변하는 순간 코에서 피가 터져 얼굴을 타고 흘렀다. 흰자가 뒤집히자 정신을 잃게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듯 엄마가 다시 말했다.

“어서 말하렴. 어서.”

어서, 어서 편해지렴. 엄마의 상냥한 말투에도 아이는 역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방울 소리가 점점 커진다. 고개를 저으며 버티는 아이의 시야에 창밖으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검고 둥근 것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불빛이 아스팔트 위를 스쳤다. 그리고 그 역겨운 모양새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 엄마!”

도연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낮에 보았던 그것이다. 가까이 가면 절대 안 되는, 흉하고 더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부서진 창문을 통해 차 안을 기웃거렸다. 똑똑, 예의 노크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바스락거리는 유리 아래를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처음부터 도연을 겨누고 있었다는 듯 방향에 망설임이 없었다. 뻥 뚫린, 이제는 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냄새를 맡듯 도연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스쳤다. 악,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다. 한참을 킁킁대던 그것은 뒤집힌 천장에 고인 핏물에 얼굴을 쳐 박았다. 씁, 씁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도연이 흘린 피를 빨아 먹고 있는 것이다.

“몸에서 필요 없는 것과 가장 필요한 것을 먹고 나면 무엇을 더 먹어야 할까…….”

엄마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흥얼거렸다. 피를 모두 마신 그것은 조금 전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벌름거리던 입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저어 피하려 했지만 이마에 미지근하고 불쾌한 감촉이 닿는다. 춥, 하고 피부가 빨려드는 흡입감이 느껴졌다. 내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견딜 수 없는 혐오감에 소름이 끼쳤다.

“엄마 엄마!”

“먹고 있는 거란다 너를…….”

“엄마!”

“그대로 먹히고 싶지 않으면 준다고 말하렴. 아빠를, 엄마를…….”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속살거리며 파고들었다. 약속하렴, 그럼 더 이상 아프지도, 두렵지도 않게 될 거야……

“그만 그만해!”

이마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빨고 있다. 그때마다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대로 머리부터 삼켜지는 걸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줄게, 줄게, 줄게!”

‘천동무 만동무 머리칼에 얽힌 동무, 어데든지 같이 가세 흉은 갑작을 잡아먹고, 역신은 비위를 잡아먹고, 도깨비는 웅백을 잡아먹고……’

멈췄던 노래가 다시 시작됐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리는 방울과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쩌렁쩌렁했다. 작은 개 만해진 검은 덩어리가 도연에게서 물러나 엄마에게 향했다. 엄마? 불렀지만 조금 전까지의 대화가 거짓말처럼 엄마는 눈을 감고 늘어져 있었다. 한 번도 깨어난 적 없다는 듯 맨 처음 보았던 자세 그대로였다. 그럼 아까까지 나와 이야기 한 사람은 누구였지. 살고 싶으면 엄마와 아빠를 준다고 약속하라고 했던 사람은? 도연은 입을 벌린 채 놈이 엄마의 목에 달라붙는 것을 보았다.

“윽…….”

엄마의 몸이 움찔, 떨렸다. 검고 흉한 덩어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것은 곧 작은 개만한 덩치로 부풀어 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은 순간 도연은 아픔도 잊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취소하겠다고 아무리 외쳐도 약속은 무를 수 없었다. 엄마에 이어 아빠를 모두 먹어치운 놈은 유유히 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윤곽이 길게 늘어난다. 마치 잔뜩 굽혔던 허리를 펴는 사람처럼 사지가 돋아났다. 처음 보았을 때 작은 덩어리 같던 것이 어느새 작은 키의 사람만큼 커진 것이다. 무엇을 먹고 저렇게 자랐는가. 무엇을 먹였는가.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번쩍이는 경광등 빛이 다가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도연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곳은 병원 침대였어. 하얀 방 안에 나 혼자 누워 있었지. 일어나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어. 부모님은 모두 죽었다는 걸. 간호사와 의사는 숨기려 했지만, 복도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어. 그런 큰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다니 정말 운 좋은 아이라고. 비록 가족은 잃었지만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며. 그래, 6명이 죽고 심하게 다친 사람만 8명인 5중 추돌사고에서 큰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한 건 나뿐이었어. 오직 나 한 명만이, 어떤 장애도 없이 멀쩡히 살아남은 거야. 몇 개의 반창고만 붙이면 될 경미한 부상으로.”

도연은 고개를 들었다. 공허하고 황폐한 눈이 영준을 향했다.

“내가 부모님을 내주고 받은 삶이 어떤 것인지는 곧 알 수 있었어. 거긴 병원이었으니까. 얼마 못 가 내 침대 주변에 서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살아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눈 돌리는 곳 모두가 귀신들로 가득했다. 도연은 간호사를 붙잡고 ‘저 사람들 나가게 해주세요. 모두 여기서 나가라고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애원했다. 처음에는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하고 달래주던 간호사들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차가워졌다. 그들은 도연이 묘사하는 외양이나 특징을 가진 생전의 환자를 기억해냈다. 도연의 병실은 곧 누구도 찾고 싶어 하지 않는 외딴섬처럼 변했다. 반면 의사들은 한사코 도연이 충격으로 병에 걸린 것이라 주장했다. 치료하면 나을 병이라며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증세는 매일매일 심해지기만 했다.

병원에서 나가야만 했다. 여기에서 나가면 모든 게 나아지리라 믿었다. 매달릴 것은 그뿐이었다. 도연은 집에 보내달라고 매일 울며 애원했다. 그러나 아무리 필사적으로 빌어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절박함은 도연을 영악하게 만들었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열심히 생각했다. 도연은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척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곧 그것이 사람뿐 아니라 혼령들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을 보면, 그들도 도연을 봤다. 인식한다는 건 인정한다는 것과 같았다. 완강히 무시하면 죽은 이의 인파 속에서도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나온 뒤에도 집에는 갈 수 없었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 풀숲에서 만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차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무수히 많이 생각해봤어. 혹시 저승사자는 아니었을까, 도깨비나 귀신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내가 무당이 되어야 해서 겪는 신병인걸까. 혹시 정말로 의사들이 말하는 정신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약을 먹으면, 병이라면 낫는다는 희망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어.

아무리 많은 부정을 해봐도 변하는 건 없었어. 나는 정체 모를 괴물에게 부모님을 내주고, 귀신의 길을 선택한 거야. 놈은 나를 살려놓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흥을 위해서였어.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 내가 아직 자신의 영역 안에 있음을 알렸으니까.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도망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녀석은 나와의 놀이에 질려가는 것 같았어. 점점 나타나는 기간이 짧아지더니, 마침내 너무 오래 방치해 미지근해진 요리처럼 한입에 삼키려 들었어.”

말을 멈춘 도연은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영준은 창백해진 낯빛 이외에는 이렇다 할 반응 없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한 시선에선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알겠어?”

도연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내가 도어뷰를 통해 뭘 봤는지?”

“…….”

“놈이 나타날 땐 항상 자신이 삼킨 혼령을 앞세워. 마치 호랑이가 창귀를 부리는 것처럼 가장 결정적인 카드만 꽂아 넣지.”

탈진한 듯 조금씩 작아지던 음성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거기에 있는 건 부모님이었어. 죽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 있었지. 도축된 짐승처럼 피를 뒤집어쓰고 날 보고 있었어. 네가 뭘 했는지 잊지 말라는 듯.”

영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플 정도로 도연의 손을 꽉 쥔 손가락 마디가 핏기없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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