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도연은 기절한 사람처럼 잠만 잤다. 차에서 내릴 때에도 일어나지 않아 엎고 들어와야 했다. 방에 내려놓자 그대로 축 늘어져 숨이 깊어진다. 걱정이 되었지만, 호흡도 고르고 깊이 잠이 든 것 이외의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영준은 쓰러지듯 벽에 기대어 앉았다. 지독히도 피로했다.
도연은 이불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풀어진 얼굴은 아예 의식이 없어 쉽게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영준은 그대로 앉아 잠든 도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을 흘려 검은 머리칼이 이마와 뺨에 달라붙어 있다. 폭탄을 터트린 사람치고는 평화로운 얼굴이다. 통증을 참아내는 것처럼 떨기만 하던 것보다는, 자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영준은 무릎 위 올린 팔에 얼굴을 기댔다. 그러다 거칠게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무릎을 올렸다 내렸다, 자꾸만 뒤척이게 된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후우, 하고 영준은 뒷머리를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자 작은 창문으로 석양의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놀라 시계를 보자 늦은 저녁이었다. 곧 밤이 올 것이다. 시선이 느껴져 도연을 향하자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곧게 누운 채 그는 영준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이 그늘 속으로 숨어든다. 영준은 팔을 뻗어 작은 전등을 켰다. 물처럼 뿌연 빛이 퍼지자 도연은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숨을 죽였다. 그리고 몇 번인가 초조하게 몸을 뒤척이더니 견딜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무슨 말?”
“비난이든 욕이든.”
영준은 그를 다시 보았다.
“왜 내가 널 비난할 거라고 생각해?”
“보통은 그럴 거야.”
도연은 실망하기라도 한 눈치였다. 비난을 듣고 싶었던 걸까. 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영준은 이런저런 단어를 골라봤지만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어.”
도연은 슬프다는 말을 태어나 처음 들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사실은 아직 잘 모르겠어.”
“뭐가?”
“네가 한 이야기.”
방안이 조용해졌다. 저녁 해의 붉은 빛이 서서히 걷혔다.
“……그건 믿지 못한다는 뜻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보다는 뭐랄까 잘 이해가 안 가서.”
영준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 일에 이해해야 할 건 없어. 그냥 일어난 일만 있을 뿐이지.”
“널 못 믿는 게 아니야. 다만…….”
영준은 숨을 크게 마셨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위화감이 있단 말이야. 오는 내내 택시에서 네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해봤어. 솔직히 처음에는 두렵고 놀랐지만. 생각해볼수록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저항이 있어. 전에 병원에 있을 때 말이야. 아픈 아이를 하나 사귀어서 소아암 병실을 다녔었어.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아이들이 굉장히 쉽게 자책한다는 거야. 어떤 애들은 병이 난 것도 스스로가 나쁜 아이이기 때문이라고 믿기도 해. 부모가 언쟁만 해도 불안해하고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고민하지. 넌 그때 해봐야 여섯, 일곱 살이었는데 들어보면 모든 일을 네 잘못처럼 말하고 있잖아. 풀숲에 멈춘 것도, 휴게소를 그냥 지나친 것도, 사고가 난 것부터 부모님의 죽음까지…….”
“그게 사실이니까.”
“그럼 네가 상처 하나 없이 구조되었다는 건 뭐야.”
“사실이야. 깨어났을 때 난 멀쩡했어.”
“난 네 허리와 등의 상처를 봤어. 차 안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고 했지? 그 사고에서 다친 게 아니라면 대체 그런 흉터를 어디서 얻은 거지?”
“흉터?”
“허리에서 꼬리뼈까지 있는, 수술한 흔적 말이야.”
“난 수술한 적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거짓도 발뺌도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움찔 놀라는 도연에게 손을 들어 가만히 있으라고 한 뒤, 상의를 들쳤다. 흐릿한 불빛 아래 허리를 가로질러 바지 안으로 들어가는 긴 흉터가 드러났다. 욕실에서 본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 그것은 명백한 수술자국이었다. 마치 철길처럼 도연의 몸을 가르고 있다. 아무리 뒤쪽이어도 이걸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기에서.”
영준은 손가락으로 등 아래쪽 흉터의 시작을 짚었다.
“여기까지.”
바지로 가려진 위를 기억에 의지해 대강 표시했다. 도연은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황당한 표정이었다.
“정말 모르겠어?”
진지한 얼굴에 영준이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도연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뒤를 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영준은 도연의 손을 잡아 흉터에 대주었다. 도드라진 살이 닿는 순간 도연의 몸이 흠칫 떨렸다.
“…….”
점자를 읽듯 흉터를 더듬어 간다. 정신없이 허리를 만지던 도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을 뛰쳐나갔다. 뒤따라 나가자 욕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웃옷을 벗은 도연이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욕실 조명 아래 흰 몸이 부서지듯 빛났다. 거울에 비친 등을 확인한 도연은 심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거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모를 수 있었을까. 보이지 않아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흉터였다.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도 도연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기억에 없는 수술 자국을 더듬었다.
“이게 뭐지?”
도연은 거울에 비친 영준을 발견하고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혼란에 빠진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영준이 대답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육체에 일어난 일이었다. 본인이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자고 가지.”
“괜찮아요. 내일부터 학원가야 해서 지금 가는 게 나아.”
아쉬워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미혜는 현관을 나섰다. 신발을 신는 어머니에게 나오지 말라며 배웅을 겨우 떨쳐내자 아쉬운 듯 쇼핑백을 넘긴다. 쇼핑백 안에는 바리바리 반찬이 담겨 있었다. 현관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며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역까지 가 전철을 타면, 아무리 빨리 원룸에 도착해도 11시를 훌쩍 넘길 것이다. 조금 더 일찍 나설 것을. 역에서 자취방까지는 재래시장이 있어 밤에 다니기에는 조금 불안했다. 그쪽 그늘에서 가끔 폭력이나 강간 사건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미혜는 가볍게 혀를 차며 문이 닫힌 집을 흘깃 돌아보았다. 그래도 집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겠지.
동네에서 제일 깨끗하고 보기 좋게 보수된 2층 주택. 창문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가족들은 안에서 과일을 먹으며 낮에 있던 일에 대해 끝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산 55인치 TV에서는 케이블 드라마가 쉬지 않고 흘러나오겠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여유와 멋이 넘치는 집. 그러나 미혜는 가족들이 어떻게 이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해가 들어도 항상 어딘지 모르게 음습하고, 아무리 청소를 해도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집. 거기에 시시때때로 이상한 소리까지 난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을 때면 어디선가 나는 쿵, 쓱, 하는 이상한 소리에 시달렸다. 오래된 집이라 삐걱거리는 거라며 아버지는 수리와 증축을 결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로 듣는 사람은 자신과 언니로, 나중에는 노이로제가 올 지경이라 굿까지 했다.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게 되어 서서히 적응한 다른 가족들과 달리 미혜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자취를 시작해 집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는 가끔 본가로 돌아와도 하루 이상 머물거나 자고 가는 일은 없도록 조심하고 있다.
남들은 집에서 엄마 품이 제일 좋다는데. 미혜는 요즘 들어 어딘지 거리감마저 느끼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가족들과 마음이 맞지 않고,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슬펐다. 쇼핑백을 추슬러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뒷목이 서늘했다. 휙 돌아보았지만, 마당에는 아무도 없다.
“…….”
분명 시선이 느껴졌는데. 바람이 불자 떨어진 낙엽과 먼지가 데구르르 구른다. 그러고 보니 왜 꺼지질 않는 거지. 현관 센서 등의 주황빛 아래 을씨년스러운 계단을 잠시 응시하던 미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시 이 집은 기분 나빠. 서둘러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섰다. 철문을 잠그고 돌아선 그녀의 앞에 불쑥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미혜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악--!”
“잠깐 잠깐만요. 괜찮아요!”
가로등 아래에서 튀어나온 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그는 한발 물러나서는 양손을 펴고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식겁해 도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려는 미혜의 뒤에서 잠깐,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무시하고 마당으로 들어간 순간, 아무도 없는 현관 불이 다시 자동으로 켜졌다. 깜빡, 하고 들어온 불에 계단은 마치 어서 오라는 듯 환하게 밝아졌다. 미혜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지금은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미혜의 마음을 읽은 듯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가로등 불빛 아래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낮이면 모를까 밤에 만나기에는 위협적인 체격이었다. 그는 미안하다는 듯 멋쩍은 표정이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낮에 왔던 사람인데…… 할 얘기가 있어 왔다가 누가 나오는 게 보여서 그만.”
낮? 미혜의 머리에 낮에 일어났던 폭풍 같은 해프닝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짙은 눈썹에 큼직한 이목구비가 낯익었다.
“아…….”
미혜는 대문을 가운데 두고 그를 마주했다. 왜 또 온 걸까. 낮에 두고 간 인감을 가지러 온 건가. 겁이 나긴 해도 다른 가족을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미혜는 낮의 일로 가족들에게 조금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우린 적어도 양심의 가책 정도는 느꼈어야 했어. 그런데 도리어 막말을 퍼부었으니 그들이 화를 낸 것도 당연하다.
“무슨 일이세요?”
남자는 머뭇머뭇 미혜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
“괜찮으면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왜요?”
아무리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해도, 이 밤중에 그런 취약한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저 남자 어딜 보는 거지? 미혜는 뒤를 흘끔 바라보았다. 현관 등이 아직 켜져 있다. 고장 난 걸까. 아니면…… 그러고 보니 이 남자, 사촌이었던 김도연과 함께 왔었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긴장에 목소리가 뒤집어진다. 미혜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대로도 상관은 없지만, 얘길 하려면 아무래도 사람을 보고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어린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말투였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운 태도다. 잠시 망설이던 미혜는 결국 골목으로 나갔다. 남자도 꺼림칙했지만 더 이상 이 집의 테두리 안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다. 여차하면 비명을 지르자. 바로 집 앞이고 하니 괜찮겠지. 문을 닫고 몇 걸음 나서자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서 이리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주춤 다가서자 그는 안심시키려는 듯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조근조근한 말투하며, 살벌했던 낮의 인상과는 전혀 다르다.
“무슨 얘기를 하려구요? 혹시 낮의 일이라면 판매 엎어졌어요.”
큰소리치던 것과 달리 경찰은커녕 과수원 판매도 전부 백지화되었다. 도용이니 고소니 하는 말에 중개인이 발을 뺀 것이다. 남자는 별로 안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조금 놀란 얼굴이다.
“이 집 식구 맞죠?”
그는 손으로 본가를 가리켰다. 미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서 내다보기만 했던 터라 자신을 못 본 모양이다.
“그럼 여기서 살던 김도연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사촌의 이름에 미혜는 어쩐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어제 꿈자리가 사납더니만…….
“네. 그런데 저도 그 애에 대해서라면 잘 몰라요. 어릴 때 나가서. 오히려 그쪽이 저보다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그 어릴 때 일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럽니다.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라도 좋으니 가르쳐주셨으면 하는데요.”
“본인에게 물으면 되잖아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정중한 요청에 미혜는 미심쩍은 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날렵하고 가느다란 체형은 아니었지만 근육질의 남자다운 몸을 하고 있었다. 운동을 했거나 격투기를 배운 사람 특유의, 양다리에 고루 체중을 실은 곧은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조각을 공부하는 미혜는 사람을 골격과 대칭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었다. 껄렁하거나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왜 본인에게 묻지 않고 마주하기 껄끄러울 이곳까지 온 걸까. 문득 하얗게 질려 집을 뛰쳐나가던 도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희미한 죄책감이 가슴을 쿡 찌른다. 떠밀린 것처럼 미혜는
“뭘 알고 싶은 거죠?
하고 물었다.
그는 처음 사촌이 집에 왔던 나이와 당시 상황 등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해 질문했다. 가능한 자세하게, 라는 요구에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역으로 걸으며 답하기로 했다.
“사촌이 처음 우리 집으로 온건 10살이었어요. 그전에는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할아버지네로 갔는데 거기서 적응을 잘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뒤로 이집 저집 전전하다가 결국 우리 집으로 왔어요. 하얗고 얌전한 애였어요. 나보다 몇 살 아래라 처음에는 동생이 생긴 것 같았는데, 좀처럼 말이 없고 행동이 좀…… 남다른 애라 친해지진 못했어요.”
친해지지 못했다는 말은 빙 돌린 감이 없지 않다. 사실상 집안의 왕따나 다름없었지만, 그렇게 표현하자니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되는 것 같았다.
“부모님도 모두 죽고 혼자가 된 상태니 정서가 불안정한 건 이해해도, 종종 아무것도 없는데서 깜짝 놀라거나 길이 막힌 것처럼 꼼짝 못 하고, 허공을 향해 무어라 말하는 등……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좀 과했죠. 병원도 몇 차례 보냈어요. 아동 심리 쪽이었죠. 상담을 받고 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전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상담 덕이라기보다는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싫어서였다고 봐요. 전과 달라진 건 없는데 표현하는 걸 참는다고 해야 하나. 유난히 병원을 싫어했거든요. 하긴 그렇게 오래 입원했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입원했었나요?”
“네. 거의 반년 가까이 있었죠.”
그는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반년? 하고 겨우 되묻는 남자에게 미혜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고가 워낙 크게 나서, 한두 군데 다친 게 아니었거든요. 수술도 여러 번 하고, 물리치료도 받아야 했는데 워낙 질색을 해서 곤란했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어려서 회복은 빨랐대요. 후유증 때문에 어디가 아플 만도 한데 그런 소리는 한마디도 안 했죠. 뭐랄까, 굉장히 과묵한 애였어요. 사람을 보는 눈이 어린애답지도 않았고.”
미혜는 어린 도연이 두르고 있던 특유의 눈빛과 분위기를 떠올렸다. 마치 다 안 다는 듯, 너란 인간이 어떤 바닥을 가졌는지 다 보인다는 듯한 그 눈빛. 가끔 어깨나 발치 같은 부분을 빤히 바라볼 때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섬뜩할 때가 있었다.
그런 도연을 가장 질색하던 것은 오빠였다. 어느 날 세차를 하던 오빠에게 뭐라 했는지, 주먹으로 도연을 때린 적이 있다. 나가떨어져 코피를 흘리는 것은 어린 사촌이었지만, 정작 겁을 먹은 것은 오빠였다. 그 며칠 후 집에 경찰이 찾아와 오빠는 조사를 받았다. 미혜는 학교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라 자세한 경위는 모르지만 무슨 교통사고 뺑소니 건이었다고 한다. 별 문제 없이 풀려났으나 이미 온 동네에 소문이 다 퍼져 한동안 수군거림을 견뎌야했다. 오빠는 그 뒤로 도연과 함께라면 식탁에도 앉으려 하지 않았다. 싫어한다기보다는 피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는 어땠었죠? 그 사고로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누가 대신 간호를 했는지는…….”
“저도 그건 몰라요. 그땐 저도 학생이어서, 그냥 갑자기 집에 어린애가 들어와 살게 됐다고만 알았거든요.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우리가 돌보게 된 사촌이라고만. 아마 병간호를 한 건 할아버지 쪽이었을 텐데, 이미 돌아가셨어요.”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가자 점점 화려한 가게들이 나왔다. 벌써부터 술과 고기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역 주변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도연이 자기 부모님이나 입원 당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요?”
역 앞에 선 남자가 다시 물었다. 미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니요. 제 기억에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 애니까 엄마아빠가 보고 싶다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오히려 누가 그런 걸 물으면 무척 싫어했어요. 사실은, 두 분 돌아가신 뒤 그 집하고 물건 정리를 친척들이 도맡아서 싹 했거든요. 그러면서 유품이다 할 만한 게 이집 저집 건너다니다가 분실돼서 마땅히 남은 게 없어요. 섭섭해 할만도 한데, 그런 걸 얘기하지도 않았죠.”
문득 미혜는 자신이 한 말을 쭉 돌아보았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온통 애매모호한 부정뿐이다. 다른 이야기는 없나. 김도연은 어떤 애였던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했지? 5년. 5년간 같이 산 사촌에 대해 할 말이 이런 것뿐인가?
“아 그러고 보니.”
미혜는 퍼뜩 떠오르는 기억을 서둘러 잡았다.
“걔가 우리 집에 왔던 처음 몇 달, 계속 집으로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담당 간호사라고 했는데, 잘 지내는지, 또 전해줄 물건이 있는데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던 전화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더 왔다. 어머니는 3년이나 지나서 일개 환자였던 아이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친척집에까지 전화한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기분 나쁜 사람이라며 매번 전화를 그냥 끊었고, 마지막에는 다시 연락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경고까지 했다. 당시 뉴스에서는 한창 스토커 사건에 대한 기획 방송에 나왔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며칠 동안 불안해했다. 저 애가 이상한 사람 달고 온 것 아닌지 모르겠네, 하고 종종 걱정하던 기억이 난다.
“병원 이름이 뭔지 기억하나요?”
“아뇨…… 아마 부모님도 모르실 거예요. 사고가 났던 지역 근처 병원이었다는 것 정도밖에는.”
남자는 그래요, 하고 대답한 뒤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던 걸까, 아니면 실망한 걸까. 그러나 그는 이내 떨치듯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을 텐데, 친절하게 대답해줘서 감사합니다. 낮에는 여러모로 죄송했습니다.”
“아, 아뇨. 저야말로…….”
미혜는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개찰구 앞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마음에 걸리던 질문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런데 도연이하고 그쪽은 무슨 사이에요?”
그는 거실에서 사촌을 대신해 화를 냈었다. 누군가를 위해 대신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본인에게 직접 들을 수 있을 이야기를 여기까지 와서, 거절뿐 아니라 모욕까지 당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물어야 하다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자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약간의 뜸을 들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어쩐지 그가 말하는 친구, 라는 단어에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이걸로 된 건가. 이름도 말 안 해주고 가네. 어차피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미혜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가방을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 서둘지 않으면 귀가 시간이 더 늦어질 것이다. 개찰구를 지나자 마침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계단을 올라왔다. 차례를 지키는 이는 없었다. 대부분 서로가 서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거나 밀치며 내린다. 사과를 하거나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 하나 없다. 그 속을 거슬러 가려니 미혜 역시 사방에서 부딪히는 어깨에 비틀거렸다. 무뚝뚝하고 배려 없는 사람들 같으니. 투덜거리며 겨우 인파를 벗어나 고개를 든 순간, 앞에 전면 거울이 보였다. 지하철 이용자들을 위해 마련된 거울은 미혜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비추고 있었다. 흐트러지고, 조금 지쳐 보이는 긴 머리의 여자. 기억을 더듬으며 되돌아갔던 8년 전보다 확실히 어른의 모습이 되어있다.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동안 사촌이 어떻게 지냈는지는 왜 묻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중 누구도 그의 안부를 묻거나 궁금해 한 사람은 없었다. 8년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에게 실망했다고 해놓고, 나도 똑같잖아. 미혜는 순간 뒤를 돌아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잠시만요!”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올라 큰소리로 외치자 막 역을 빠져나가기 직전, 남자가 돌아보았다. 그는 미혜의 손짓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개찰구에 매달려 미혜는 부유하는 마음을 뱉어내듯 단숨에 말했다.
“도, 도연이한테요. 말 좀 전해주세요. 미안했다고. 오늘 일 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다 미안하다고요. 그리고 내가 왕따 당한 거 너 때문이 아니라고, 아빠랑 언니가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도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성정이 괴팍해지셔서 그래요. 사실은 다들 말한 것처럼 도연이가 우리 집에 와서 나쁜 일만 있던 건 아니에요. 내가 말한 것처럼 이상하기만 한 애도 아니었어요. 사실은 되게 착한 애였어요. 종종 학교에서 돌아올 때 버려진 병아리나 다친 새, 고양이를 데려오곤 했는데, 한 번도 키우게 해주질 못해서…….”
숨을 헐떡이는 미혜를 남자는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그런 식으로 나가게 두면 안 됐던 건데, 오늘도 그런 말을 듣게 돼서 정말 미안했다고 좀 전해주세요. 그러실 수 있죠? 친구니까. 그렇죠?”
“그럴게요.”
미혜는 안심한 듯 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걔, 잘 지내나요?”
“……네. 잘 지냅니다.”
“다행이다.”
남자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급히 달려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고르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다행이라며 가슴에 손을 얹은 미혜는 정말 안도한 표정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도 부탁 하나 할게요.”
“네?”
“앞으로는 본가에 있을 때, 조금 이상하다 싶은 일이 생기면 그냥 무시해요. 조금 전 현관에서 같은 일이 생겨도, 신경 쓰지 말고, 자꾸 의식하지 말고. 알았어요? 그냥 다 기분 탓이려니 넘기는 거예요.”
미혜는 입을 벌린 채 가방을 움켜쥐었다.
“본가니까 아예 발을 끊을 수는 없다 해도,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가급적이면 가지 말구요. 뭔가 들리거나 느껴진다 해도 절대 말하지 말아요. 없다 생각하세요. 모든 게 내 착각이다, 하고.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죠?”
“네, 네.”
진지한 당부에 미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는 틀림없이 전해줄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뒤돌아 성큼성큼 빠르게 멀어졌다. 멍하니 선 미혜의 뒤로 띠르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전철이 도착한다는 안내가 울려퍼졌다.
오래된 역사가 흔히 그렇듯, 밤의 수원역은 몹시 을씨년스러웠다. 아무리 불을 환히 키고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려도 그 특유의 음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른 곳보다 유난히 머무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장소가 있다. 소위 기가 빨린다고 표현되는 곳은 대부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래되고, 해가 잘 들지 않으며, 습하다. 이런 곳에서는 제 아무리 불을 밝혀도 어둠은 희석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복잡한 역을 빠져나와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깊은 바다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영준은 택시에 타자마자 핸드폰을 꺼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깨어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몇 번 신호가 가자 전화 너머 진오형 특유의 느긋한 목소리가 여보세요 하고 대답했다.
“형, 영준이에요.”
-어 뭔 일이냐.
“지금 바쁘세요?”
-나야 항상 바쁘지.
흐흐 웃는 진오형에게 영준은 16년 전 여름, 영동 고속도로에서 있던 교통사고기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지 물었다.
“5중 추돌에 사망자 6명,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이어서 기록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부상자가 얼마나 있었는지, 특히 그중 김도연이라는 어린애가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 등 최대한 자세히 알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너 이 새끼 맨날 전화만 했다 하면 나한테 이런 거 묻지 어?
투덜대면서도 진오는 사고가 난 장소와 경위에 대해 물었다. 영준은 도연에게 들은 기억을 떠올려 대답해주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조금 전 대화를 통해 도연의 기억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6개월 가까운 입원. 계속된 통원치료, 극심한 부상과 후유증…… 도연의 기억에서 완전히 소거된 그 기간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전화를 끊은 뒤 영준은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팔짱을 꼈다. 그리고 생각을 이어갔다. 사고를 당한 시점과 저 집에 가기까지 총 3년의 시간이 빈다. 여수 아저씨는 도연이 잠시 맡겨져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다. 뱀에 씌웠다던 사람을 고치고, 산으로 도망쳐 결국 다른 집으로 보내졌던 어린아이. 그렇다면 병원에서부터 귀신이 보였다는 말은 진실일 것이다.
혹시 의식이 오랫동안 없었던 건 아닐까. 너무 힘든 일을 겪는 경우 의식적으로 뇌가 기억을 조작해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계속된 수술과 통증을 잊으려고? 아니야, 그렇다면 자기 몸의 흉터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돼. 아무리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렇게까지 아예 모를 수 있을까? 더구나 정말 힘든 일이라 잊으려 했다면 수술이 아니라 사고 당시의 정황을 잊어야 옳았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다는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그 후로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연의 삶을 지배하고 이제는 그 촉수를 나에게까지 뻗치는 걸까. 원한을 사기에 8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다. 영준은 문득 진오가 전에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진짜 나쁜 것들은 절대 너를 죽이지 않는다. 그럼 죽이지 않고 뭘 하느냐, 끝까지 따라붙어 괴롭히는 거지. 상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거야. 이해가 되냐? 난 이 일을 하기 전까진 그게 전혀 이해가 안 갔거든. 살인이야 말로 최악의 범죄니까. 그런데 사건을 겪다보니 무슨 말인지 점점 알 거 같아. 원한이나 화를 참지 못해 찔러죽이고 때려죽이는 살인은 차라리 다루기가 편한데, 가끔 정말 기분 나쁜 놈들이 있거든. 뚜렷한 목적이 없는 놈들, 그냥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걸 즐기는 새끼들이 있어. 이런 놈들은 피해자를 단번에 죽이지 않아. 이제부터 너에게 뭘 할 건지 자세히 설명해주는 놈부터, 일주일 넘게 질질 끌고 다니며 말을 잘 들으면 살려줄 것처럼 희망고문을 해 상대가 애원하는 걸 즐기는 놈까지. 이런 놈들은 교화도 안 돼. 그냥 천성이 그런 거야. 사마귀나 뱀이 그렇듯 그렇게 타고난 거지.’
그렇다면 악령의, 도연을 따라다니는 놈의 천성은 어떠한 것일까. 소영에게 붙었던 것의 천성은 또 무엇인가.
무심코 창밖에 시선을 던졌던 영준은 바로 옆 차선의 차에 시선을 고정했다. 검은색 승합차 위에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펄럭이는 긴 옷을 입은 채 짐승처럼 네 발로 운전석 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창문을 반쯤 열고 담배를 피는 운전자는 자신의 머리 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채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까닥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맞춰 여자의 이마가 차 위를 쿵, 쿵하고 내리찍는다.
차가 막 출발하기 직전, 바람에 여자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길게 빼문 혀가 늘어져 가슴까지 닿아 있다. 거칠게 출발하는 차 위로 펄럭이는 치마 아래 피로 물든 더러운 팬티가 언뜻 보였다. 기분 나쁠 정도로 길게 늘어난 목과 팔다리, 변형된 육체는 죽음 이후 원한의 크기를 보여준다. 여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얼핏 거미나 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택시는 공교롭게도 계속 승합차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갔다.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도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어쩔 수는 없었다. 몇 번의 경적 소리와 함께 승합차가 차선을 바꿔 영준이 탄 택시 바로 앞으로 왔다. 차라리 눈을 감을까, 하던 때였다.
검은색으로 코팅되어 안이 보이지 않아야 할 승합차 뒤쪽 창문에서 뭔가 희끗희끗한 것이 비췄다. 눈의 착각처럼 뾰족하게 흔들리다 사라지던 것들은 점점 수를 늘렸다. 빼곡하게 창문을 메운다 싶더니 어느 순간 문을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헉, 하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가느다란 여자의 손이었다.
검은 창문을 뚫고 뻗어 나온 손은 이내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이어졌다. 수십은 될 법한 수였다. 번들거리고 미끈한 팔이 승합차의 트렁크 위 창문으로 아우성치듯 흔들린다. 푸르스름한 피부는 온통 날카롭게 베인 상처투성이였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손과 팔 뿐인 혼령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지나치게 길어 크기가 맞지 않는다. 키가 2미터가 넘지 않는 이상 저렇게 긴 팔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 다섯 손가락을 쫙 편 수십의 팔이 바로 뒤의 택시를 향해 일제히 뻗어왔다.
“아저씨, 다른 차선으로 가주세요.”
영준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혀를 찼다.
“아이고 도로를 봐요. 끼어들 곳도 없고, 여기는 원래 이렇게 정체가 심하니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도로는커녕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말미잘처럼 서로 얽힌 창백한 팔이 앞다투어 시야를 막고 있을 뿐이다. 안 되겠다 싶어 도로로 뛰어내릴 각오를 한 영준은 차도를 확인했다. 막 문을 열려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열리는 문을 스치듯 붕하고 지나갔다. 움찔 물러난 순간 택시가 다시 출발했다.
갑작스러운 출발에 몸이 뒤로 넘어가 정면을 보자 택시의 앞 유리에 닿을락말락했던 손이 멀어지고 있었다. 도로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준은 이를 악문 채 기사에게 다시 한 번 차선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강한 어조에 기사는 결국 차선을 바꾸고 영준의 주문대로 속력을 줄였다.
차가 멀어지자 손들은 일제히 형태를 바꿨다. 손바닥을 위를 향해 치켜든 것이다. 뭔가를 바라듯,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은 소름끼치면서도 얼핏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거리가 멀어져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자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검고 덩치 큰 차는 여전히 뒤에 손의 촉수를 내놓은 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 위의 여자의 길게 빼문 혀가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렸다.
도대체 저 차는 어떻게 된 차길래…… 영준은 지금까지 도로에서 여러 종류의 혼령 붙은 차들을 봐왔다. 사고로 죽은 이들은 의외로 차에 붙지 않는다. 대부분은 사망한 장소에 머문다. 어지간한 원한이 아닌 이상 죽음 자체의 충격이 워낙 강해 생전의 기억은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 어지간한 원한이라면. 영준은 새삼스레 승합차를 다시 보았다. 앞뒤 할 것 없이 진한 선탠 유리는 수상한 면이 있다. 중혁이네 차도 저런 식이었지. 영준은 번호판을 유심히 보았다. 묘하게 각도가 이상했다.
“아저씨, 저 앞의 승합차 보이죠.”
“네? 아 네.”
“번호판 보이세요? 어쩐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어디 보자.”
기사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아 꺾기 해 놨구만.”
기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번호판을 이렇게 40에서 70도 정도 꺾어 놓는 거예요. 그러면 무인카메라나 CCTV에도 잘 안 보이거든. 단속 피하려고 저러는 거지. 아마 스프레이도 뿌려 놨을 거야.”
“저게 많이 하는 겁니까?”
“에이 하는 놈들이나 하지. 걸리면 벌금이 더 드는데. 저건 좀 꼬롬한 차에요. 더 본격적으로 개조한 것도 많아. 저런 승합차는 특히.”
짙은 선탠, 번호판 조작에 저런 심상치 않은 여자 혼령들이 단체로 붙어있는 검은 승합차? 흥신소 일을 하며 뒷세계의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머리에 주입시켜 놓은 탓일까. 영준은 의심스러운 차를 바라보며 납치나 인신매매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실종된 딸이나 여자 형제를 찾아달라는 의뢰의 끝이 섬이나 지방 골방에서 끝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더구나 차에 올라탄 여자의 피에 물든 속옷…… 만약 범죄에 사용된 차라면, 더구나 저 혼령의 어마어마한 수라면……
영준은 순간 생각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그만두자, 방금도 위험할 뻔 했는데 운 좋게 벗어났으면서 무슨 참견이란 말인가. 바로 반 시간도 전에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하란 소리를 건방지게 할 땐 언제고. 그러나 자꾸만 눈이 번호판 쪽으로 간다. 신호가 바뀌기 직전, 승합차는 부웅하고 속력을 내 건널목을 지나 도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펄럭이는 흰 치마가 깃발처럼 나부낀다. 시간은 벌써 11시에 가까웠다. 검은 차체는 밤에 숨기 좋을 것이다.
택시가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 결국 영준은 핸드폰을 꺼내 차 번호와 운전자의 인상착의를 문자로 찍어 진오형에게 보냈다. 형의 표현에 따르자면, ‘귀찮지만 검거 건수 올려주는 올바른 시민의 문자’였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가 다였다.
차에서 내릴 즈음 영준은 도연에게 입원과 사고에 대해 새로 알아낸 정보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안 그래도 혼란에 빠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자신에게는 혼자 있고 싶다며 매몰차게 굴긴 했지만, 본인 이상 당황스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오형에게 연락이 와서 더 명확해지면 그때 한 번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친척분의 사과도 전해줘야 할 텐데. 내 멋대로 잘 지낸다고 말한 걸 화내지는 않겠지.
영준은 대문으로 열쇠를 열며 심적으로는 도연에게 크게 기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는 자신이 신기했다. 여차했을 때면 내가 뭔가 해야 한다, 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마도 본인은 싫어하겠지만.
“어?”
마당으로 들어선 영준은 깜짝 놀랐다. 아직 12시가 되기 전이라 도연이 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항상 거실과 주방 불은 환하게 켜두는 편인데. 잊고 잠이 든 걸까. 영준은 서둘러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덜컹거리며 몇 번 당기고 나서야 현관이 안쪽에서 잠겨있음을 깨달았다. 세게 문을 두들겼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다.
어찌된 일이지. 스멀스멀 불안해지기 시작한 영준은 얼른 현관 옆 화분을 뒤져 예비 열쇠를 꺼냈다.
문을 따고 들어가자 집안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영준은 서둘러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달칵달칵 하는 소리만 어둠 속에서 허무하게 울릴 뿐이다.
“김도연?”
영준은 거실로 올라가 큰 소리로 도연을 불렀다. 그러나 어디서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준은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열어 보았다. 어두운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당황한 영준은 정적에 휩싸여 잠시 서 있었다. 그러다 퍼뜩 신발장으로 달려갔다. 손전등을 켜 제일 먼저 도연의 배낭부터 찾았다. 다행히 그것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잠깐 외출을 한 건가. 불안했지만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곳은 자신의 집이 아닌가. 잘못된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다. 아니 안 된다. 침착하자. 괜찮을 거야. 영준은 자꾸만 날뛰는 상상을 겨우 가라앉혔다.
일단 불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딘가 쪽지를 써놓고 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전기가 나갔다면 정전 밖에는 답이 없었다. 오래된 주택은 가끔 혼자 전압기가 내려갈 때가 있다. 어둠 속에서 두꺼비집을 열어 차단기를 올렸지만 곧바로 다시 내려간다. 뭐가 문제지. 영준은 손전등을 비춘 채 다시 한 번 두꺼비집을 들여다보았다. 한참 차단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바람처럼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신음 같기도 하고 호흡 같기도 한, 아주 낮고 가녀린 소리였다. 영준은 손을 딱 멈춘 채 얼어붙었다. 정적 속을 집중해 귀를 기울이자, 간헐적으로 끊어졌다 이어지는 소리의 방향은 자신의 방이었다. 분명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는데.
짧은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준은 천천히 두꺼비 집을 닫은 뒤 거실에 내려섰다. 그리고 손전등을 최대 밝기로 올렸다. 여기는 평생 살아온 집이다. 이곳에서까지 두려워할 수는 없었다. 영준은 방문 손잡이를 움켜쥔 뒤 깊이 숨을 마셨다.
벌컥! 단숨에 문을 열어 재낀 동시에 둥근 빛이 방을 비췄다. 묵직한 손전등을 무기처럼 앞으로 겨눈 채 영준은 자신의 방을 여기저기 비추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소리의 근원이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또다시 흐흑,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목에 걸린 호흡을 억지로 넘기는 듯한 숨소리였다. 영준은 얼른 소리가 들리는 쪽을 비췄다. 자신의 책상이었다. 주황색의 둥근 빛이 책장과 사진,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책상을 훑고 의자를 향했다. 불빛이 아래로 내려간 순간 영준의 눈이 크게 홉떠졌다. 책상 아래 좁은 틈, 웅크린 젊은 남자가 있었다.
“김도연?”
영준은 놀라 무릎을 꿇고 허둥지둥 의자를 치웠다. 바닥에 내려놓은 손전등이 빙그르 돌았다. 도연은 무릎 위에 양팔을 두르고, 얼굴을 파묻은 채였다.
“김도연, 왜 그래? 나 좀 봐.”
긴장으로 단단히 굳은 등에 손을 올리자 감전된 것처럼 펄쩍 뛰어오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몸이 얼음장 같았다.
“쉬, 나야, 나.”
영준은 부드럽게 말하며 그의 뺨을 건드렸다. 눈을 맞추려 했지만 도연은 감은 눈을 뜨려하지 않았다. 이쪽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영준은 순간 어둠 속에 혼자 앉아있던 그날의 환영을 떠올렸다. 아차, 하는 생각에 천장을 올려 보았다. 정전 때문이구나. 무의식적으로 그날 이후 도연의 방에는 항상 작은 불이라도 켜져 있던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진 영준은 도연을 감싸 책상 밑에서 조금씩 끌어냈다. 한사코 버티던 도연은 결국 조금씩 무너져 품으로 쓰러졌다. 영준은 한쪽 다리를 들어 그의 몸을 안은 채 책상 밑에서 나왔다. 그리고 벽 쪽으로 향한 손전등을 집어 그의 얼굴에 비춰주었다.
“이것 봐. 빛이야. 알겠어? 괜찮아 넌 이미 거기서 빠져나왔어. 여긴 우리 집이야. 우리 집이라고. 넌 안전해. 괜찮아.”
아이를 달래듯 한참 같은 말을 반복한다. 영준은 떨리는 몸을 꽉 압박하듯 끌어안았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기억났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동물은 벽에 자신의 몸을 세게 누른다는 것이다. 무리가 있는 경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붙어 기댄다. 강한 포옹으로 발작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포옹의 힘이라고 했다. 그렇게 반 시간쯤 지났을까, 노력이 통했는지 서서히 도연의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 눈을 떠 봐. 어둡지 않아. 이건 그냥 정전일 뿐이야.”
영준의 말에 반응하듯 질끈 감겨 있던 눈이 느리게 떠졌다. 깊은 눈은 부시지도 않은지 빛을 빨아들일 듯 크게 열렸다. 영준은 마치 체한 사람을 달래듯 계속해서 도연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손전등을 도연의 품 가까이 넣어 주었다.
“네가 아무리 그러라고 해도 혼자 두고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데 괜찮을 리 없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걸 네 말대로 진짜 난 돌머리인가 봐.”
영준의 말에 도연이 고개를 들었다. 멍하고 황폐해 보이는 검은 눈이 영준을 비추고 있었다. 자신의 핸드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매달리던 시선과 비슷했다. 내가 뭘 해주면 될지 말해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왜 네가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렸는지…….
어두운 방 안, 둥근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벽에 커다랗게 일렁였다. 붙어 앉은 두 사람으로 인해 그것은 마치 외로운 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