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19/24)

6

아주 춥고, 어두운 곳을 기억한다. 발밑이 매끄러운 길을 망설이며, 방향도 없이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겁고 기름진 대기에선 비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온 적이 있는 곳이다. 끝나지 않고 영원히 반복되는 악몽 속. 이곳에 온 지 얼마나 지난 걸까. 1년? 10년?

이봐, 여기야. 이쪽이라구.

뒤쪽에서 누군가 부르고 있다. 친근하지만 거짓투성이의 목소리.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목소리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수록 공기가 바뀌고, 지면이 달라진다. 시간이 점점 느리게 흘러간다. 얼마나 걸었지. 얼마만큼이나 온 걸까. 바로 코앞의 것도 보이지 않는 장막 같은 완전한 어둠.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니 내게 눈이 있던가. 나는 누구지? 점점 의식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멈추면 안 된다. 발이 느린 추적자가 곧 도착할 것이다. 이곳은 그의 구역이니까.

이건 오래 가는구나. 제일 오래 갔지.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네. 벌써 어른이니까.

누군가 말을 주고받고 있다. 위인지 아래인지, 뒤인지 앞인지 모를 곳에서 어린아이 같은 혀 짧은 음성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운율을 타는 목소리는 마치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지. 하지만 이제 조금 더, 조금만 더 지나면…… 곧 수확되겠지…….

그만, 영문 모를 소리로 나를 괴롭히지 마. 고개를 저으며 귀를 막는다. 더 빨리 가야 하는데,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로 가려는 거였지. 내게는 갈 곳도, 기다리는 이도 없는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너무 오래 걸었다. 무릎이 꺾여 넘어지자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어둠 속에 녹아들 듯 숨을 수 있을까. 이대로 사라질 수 있을까. 내가 뭘 잘못했기에 벌을 받는 걸까. 끔찍한 실수들,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 내가 뭘, 무엇을 더…….

잠에서 깨어났지만 도연은 쉽사리 눈을 뜰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숨을 죽이고 눈을 감지 않으면, 봐선 안 될 존재와 마주치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초간 얼어붙은 채 누워 있는데 문득 단단하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바로 옆에서 등을 돌린 채 잠든 남자의 것이었다.

긴장이 풀린 도연은 눈을 뜨고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등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몸을 돌리고 잠든 탓에 부드러운 흰 면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상체는 따뜻했다. 생의 열기 같은 것이 선명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신기한 마음에 살짝 손을 대자 몸이 닿은 부분에서 전해 오는 온기가 악몽의 여운을 서서히 몰아낸다.

그러고 보니 또 옆에서 잠들었네. 정전이 있던 밤 이후 벌써 세 번째다. 영준은 해가 지고 나면 무슨 할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방에 들어와서는 나가지 않는다. 본래 자기 방에 있겠다는 사람을 내몰 수도 없어서 거실에서 자려 했더니 또 거실로 따라 나온다. 오늘도 책을 읽는다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결국 그대로 눈을 붙인 것이다. 누군가와 한 자리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낯선 도연으로서는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악몽에서 깨어날 때만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솔직히 쓸쓸하지 않아 좋았다.

그가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것도 아마 자신의 이런 나약한 마음이 드러난 탓일 것이다.

도연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보았다. 환하게 켜진 형광등 위로 검은 벌레가 몇 마리. 어느새 익숙해진 사각의 천장이 머리 위를 떠받들고 있다. 조금 색이 바란 벽지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처음에는 좁다고 생각했던 방이 이제는 딱 맞게 안락하다.

‘적응해서 어쩌려는 거지.’

불현듯 든 생각에 도연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영준이 깨지 않도록 조용조용 거실로 나온 도연은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한 뒤 뜨거운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아내자 하얀 얼굴이 또렷해진다. 눈 밑의 그늘이 한심하다. 이래서야 그의 태도도 당연했다.

거울에 물을 확 끼얹고 돌아서는데 또 상처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자꾸만 봐야 소용없는 일인데. 그것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도연은 수건으로 대강 물기를 훔치고는 욕실을 나왔다.

시계는 새벽 3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안은 구석의 작은 전등 하나까지 모두 켜져 환했다.

주방으로 가 식힌 보리차를 한 잔 마시고 식탁 의자를 빼 앉았다. 어제저녁에 영준이 읽던 책이 식탁 한쪽에 그대로 놓여 있다. <체육과교육과정 총론> <운동학습과 제어> 등 영어책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공서적이었다. 두꺼운 책에는 노트와 함께 몇 장의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호기심에 펴보자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이것저것 옮겨 적은 것이었다.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저녁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도연은 육체와 운동능력에 대한 설명이 쭉 적힌 종이를 팔랑팔랑 넘겨보았다.

체육 선생님이라.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잘 어울리는 일이다. 노력해 상상할 필요도 없이 운동장에서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의 모습이 바로 떠오른다. 학생들에게 인기는 있지만 조금 만만하게 놀림도 당하는 좋은 선생이 되겠지.

“…….”

살짝 미소 짓던 도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래의 전망도 위에 책장 뒤 숨겨져 있던 빙의와 무속에 관련된 책들이 겹쳐진 것이다. 자연스럽던 상상은 단번에 깨졌다. 도연은 펼쳤던 책을 덮어 한쪽으로 밀어 버렸다. 중학교 시절 자신이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가 학교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영준은 정말 자신이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도연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마 그렇다고 하겠지.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긴 했지만 곧 복학할 생각이라 공부를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고 했으니. 도대체 어떻게 다닐 생각이냐고 묻자 맥락을 전혀 잡지 못해 딴소리를 할 정도로.

‘안 그래도 택시비가 너무 들어서 안 되겠어. 차는 힘들어도 중고 오토바이를 한 대 사야할 것 같아.’

저녁을 먹으며 영준은 2종 소형 면허에 대해 이야기 했다. 굳이 면허를 따지 않아도 탈 수 있지 않느냐는 자신의 말에 그는 이쪽을 빤히 보다가 갑자기 웃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아니, 정말 너한테는 매번 놀란다.’

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변해 혹시 운전면허는 있느냐고 물었다. 어깨만 으쓱하자 집요하게 그래서 있다는 거냐, 없다는 거냐 하고 따지더니 결국 넌 앞으로 운전은 금지라는 둥 얼빠진 소리를 해댔다. 왜 내가 네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고 매몰찬 소리를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던 것은, 며칠 전 보였던 추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떠오른 몇 가지 기억들도.

도연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길고, 마디가 가늘지만 평범한 손. 자신의 몸에 있는 이것이 자신의 것임도 기억하지 못했던 어둡고 긴 터널. 도연은 이제 지난 한 달간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는 귀도에 있었다. 그것도 가장 깊고 어두운, 빛도 공기도 통하지 않은 폐쇄된 갱도 같은 곳에. 그곳을 끝도 없이 헤매며 무언가에 쫓기고, 숨었다. 점점 자신의 이름도 잊고, 내가 누군지, 무엇인 조차 희미해 공포만이 남게 될 때까지.

영준은 자신이 발견되기 며칠 전 환영을 보았다고 했다. 느닷없이 입을 벌린 깊은 어둠 속에 자신이 있었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도연은 어둠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사라진 영준을 분명히 보았다.

‘김도연!’

희미한 별처럼 허공에서 아른거리던 빛과 자신의 이름에 매달려 버틸 수 있었다. 점점 공기가 줄어드는 폐광에서 숨을 아껴 쉬는 사람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출구를 찾을 의지가 되어 주었다.

도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나는 소영이 죽었다고 기억하고 있던 걸까?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자박자박 맨발로 거실을 지나는 기척이 이어진다.

“안 자?”

눈을 비비며 영준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부스스하게 한쪽은 일어나고 한쪽은 눌린 머리는 어설픈 90년대 로큰롤 가수 같기도 하고, 장난꾸러기 꼬마 같기도 했다. 그는 잠시 주방을 휙 둘러보더니 귀찮다는 듯 도연이 반쯤 남긴 차를 훌쩍 마셔버렸다.

“옆으로 누워서 책을 봤더니 목이 뻣뻣해. 이론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았는데.”

“그거야 그 상태로 자서 그렇지.”

“교재가 지루한 게 당연하잖아.”

툴툴거리며 영준은 크게 하품을 했다.

“휴학 중이면서 왜 그렇게까지 공부를 해?”

의자에 앉은 영준은 식탁에 엎드려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댄 채 그는 웅얼거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제대로 학점을 못 따면 안 되는데, 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조금만 놔도 다 까먹어. 출발도 늦고 다른 애들보다 몸도 부실한데 죽자고 하지 않으면 밀려나는 거 한순간이야. 다들 얼마나 살벌하게 관리하는지 몰라.”

부실하다고? 도연은 그의 어깨와 팔을 보며 좀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 전에 무릎에 대해 말한 것을 떠올렸다.

“대학을 다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가야지.”

단호하게 말하는 영준의 얼굴은 진지했다.

“내 말은,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느냐는 뜻이야.”

“그건 해봐야 알 거 같은데.”

애매하게 긍정적인 대답에 도연의 한쪽 눈썹이 휙 치켜 올라갔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생각 안 해봤어? 서울에 온 뒤로 학교에 가 본 적은 있어?”

“응.”

계속 말해보라는 듯 도연은 손을 저었다. 영준은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그가 말하는 포인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만나야 할 사람이 생겨 서울에 온 초반, 학교에 잠시 갔던 적이 있다.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맨 처음 보았던 것은, 운동장 한가운데서 어슬렁거리는 학생 하나였다. 항상 누군가 운동을 하는 곳이어서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깥으로 완전히 꺾인 다리와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왼쪽 팔은 고장 난 인형처럼 몸에 그저 매달려 있는 물건 같았다. 줄 엉킨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는 다른 손에는 수십 장의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깨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운동장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전단지 알바생처럼 종이를 내밀고 있었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 영준의 대학에도 괴담은 있었다.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연도와 계절은 조금씩 달랐지만 주된 줄거리는 같았다. 체육학과 특유의 규율잡기에 시달리던 1학년 하나가 학교에서 자살을 했다. 그 1학년은 사소한 일로 선배들 눈 밖에 나,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매일 엎드려뻗쳐와 기합을 받고 허벅지 뒤가 시커멓게 변할 때까지 이른바 정신주입을 당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매번 같이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던 동기들에게도 결국 따돌림을 당해, 그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1학년은 억울함과 분함, 원망을 가득 담은 유서를 수천 장이나 뽑아서 옥상에서 날리고 뛰어내렸다. 낙엽처럼 흩어진 유서에는 편집증적인 손 글씨로 몇 월 며칠 누가 어디서 어떻게 그에게 기합과 폭력을 가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로 빽빽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가끔 비가 오거나 해가 진 뒤 학교에 남아 있던 학생들이 자살한 1학년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피투성이가 돼서는 자신의 유서를 읽어보았냐고 묻고는 사라진다는…….

영준이 입학했을 당시,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에 취한 선배들 몇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귀신 이야기로 겁을 주려는 것인지, 기합 하나 못 참는 패배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위협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로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영준의 학교는 후배들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학교 괴담이 어느 정도는 진짜라는 걸 알았지.”

“이건 농담이 아니야.”

발끈한 도연의 말에 영준은 얼른 알고 있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말했지만 실은 진지한 문제였다. 잠깐이면 몰라도 매일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지내다 보면, 오래된 원한이 어떤 식으로 뻗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영준에게는 안전만큼이나 앞으로의 미래도 중요했다. 아무 계획 없이 하루하루 숨어서 지내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넌 안 된다고 생각해?”

“안 된다기보다는…….”

정작 의견을 묻자 도연은 갑자기 약한 태도를 보였다.

“대학은 중고등학교하고는 다를 테니까.”

말끝을 흐린 도연은 결정에서 한발 물러났다. 영준은 좀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렇게 대학에 가고 싶은 걸까. 아니, 그냥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야구를 하다가 꿈이 꺾이고, 이번에는 교사를 목표로 한다. 소영의 일 때도 그랬지만 뭔가 한 번 정하면 망설이거나 뒤돌아보지 않는 모양이다. 단순한 것 같지만 명쾌하기도 하다. 심지어 혼령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힘들어하기는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처음의 바보 같던 모습이 무색하게 적응도 빠르다. 어떻게 저렇게 강한 거지?

문득 자신은 한 번도 뭔가를 하고 싶다거나, 원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여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싫다’는 것이 행동의 원동력이었다. 죽기 싫다, 관여되고 싶지 않다,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은 곧 살고 싶다는 뜻일까. 나는 정말로 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삶의 의욕 같은 것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도연에 영준은 오해 한 듯 당황해 말했다.

“당장 가겠다는 게 아니야. 어차피 이번 학기는 이미 휴학인걸. 해봐야 다음이니까 아직 결정할 시간은 있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는 조금 기쁜 얼굴을 지었다. 미소를 지은 채 책과 노트를 챙긴 영준은 빈 컵을 개수대로 가져갔다.

“난 조금 더 자야겠다. 방에 있을 테니까 불편하면 깨워.”

영준은 손으로 도연의 머리를 툭 건드리고 주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도연은 영준이 흐트러뜨린 머리를 매만졌다.

-그 김도연이라는 사람, 친구라고 했지?

“네.”

-기구하네.

“혀엉…….”

-뭐 짜샤. 네가 말 안 해주는데 궁금한 게 당연하지. 꼬우면 공권력 남용으로 고소하든가.

“병원 이름이요, 형. 병원 이름.”

펜을 종이에 탁탁 치며 영준은 어이없이 고개를 저었다. 웬일로 아침부터 전화가 울리나 했더니 진오형이었다.

-강릉아산병원이다. 네 말대로 가해자가 명백하네. 화물트럭 운전사가 안전거리 미확보 상태에서 졸음운전까지 겹친 모양이야. 지는 급발진이니 뭐니 우겼나 본데 안 먹혔지.

급발진이라. 대형화물차가 돌진하는 장면을 상상하자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나중에 그 친구란 사람이나 한번 보자. 같이 술이나 하자구. 네가 얼마나 쌔빠지게 찾아 다녔는지 내가 아주 구구절절 풀어 줄 테니까.

셋이서 술자리라. 꿈같은 이야기지만 나쁜 상상은 아니다.

-아 그런데 너, 그 차는 어떻게 알았냐?

“무슨 차요?”

-왜 네가 수상하다던 차. 그거 대포차더라. 번호판 조작으로 조사하다가 나왔는데 어째 좀 수상해. 형사는 네가 해야겠다.

“우연이죠 뭐…….”

대강 얼버무려 전화를 끊은 뒤 영준은 영동병원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간호사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 16년 전, 전화로 하기에는 어려운 설명이었다. 휴대폰으로 머리를 탁탁 치며 영준은 혀를 찼다.

어떻게 할까. 사고 후 3년이 지나서도 물어물어 연락을 해온 간호사. 맡고 있다던 물건. 호기심은 생기지만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으니 완전히 헛걸음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사고 당시를 기억할 만한 사람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본인은 아예 부상 자체를 잊었고, 친척들은 관심이 없으며, 유일하게 알만한 할아버지는 사망한 지 오래다.

영준은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친척들의 연락처가 적힌 노트를 뒤져 여수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모두 집을 비웠는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앉아 십분 가량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영준은 이내 에이! 하고 일어났다.

도연은 마당에 나가 있었다. 체력이 너무 떨어진 탓에 약한 느낌이 싫다며 간단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병약한 체질이 아니니 기다리면 체력도 순조롭게 돌아올 테지만, 본인은 성에 차지 않은 듯했다. 예비체육선생이니 할 만한 운동을 알려 달라기에 줄넘기를 주었다. 고작 이거냐며 매섭게 노려볼 땐 언제고, 도연은 굉장히 열심이었다.

며칠 전 일도 있고 해 걱정이 되긴 했지만,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정전이 있던 날 밤 이후로 도연은 조금 변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먼저 이것저것 물어오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땐 손을 내미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졌다. 겨우 그쪽에서 먼저 조언을 원했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뭐, 보기보다 고집하고 깡이라면 상당하니까.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 그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창문을 훌쩍 뛰어내린 남자 아니던가.

마당으로 가자 도연이 화단 옆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휙휙 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맞춰 밭은 숨이 가쁘다. 발갛게 달아오른 도연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영준은 작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물병과 작은 수건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원 옆 돌에 앉았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하자, 도연이 줄넘기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왜?”

“병원 이름을 알아냈어.”

“…….”

줄이 바닥으로 늘어졌다.

“그런데 간호사 이름을 모르니까,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 16년 전에 근무했던 사람이라면 아직 있을지도 불확실하고.”

도연은 줄을 정리한 다음 영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수건으로 이마를 문질러 땀을 닦으며 숨을 크게 고른다. 내려뜬 눈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한참 말이 없었다.

“……내 진료기록을 뽑아 보면 알겠지. 정확히 어딜 어떻게 다쳤는지, 정말 6개월간 입원을 했었다면 무슨 치료를 했는지.”

“담당의가 누구였는지도 나와 있겠네.”

도연의 말에 영준은 무릎을 쳤다.

“그래. 부모님에 대한 것도 확실하게 하고 싶어. 서류 기록이라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니까.”

“사촌 말을 아직 못 믿겠어?”

“그런 게 아니야.”

도연은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털었다.

“그냥,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야.”

도연은 손을 돌려 허리 뒤쪽을 만졌다.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흔적, 그러나 분명히 몸에 남은 자국은 자신의 기억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더 이상 어설픈 남의 말이나 기억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확실한 증거를 통해 공백을 채워나가고 싶었다.

“거기서 혹시 그 간호사를 찾을 수 있으면 더 좋고.”

도연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곧 정오가 될 것이다. 미루고 싶지 않은 마음에 둘은 점심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기로 했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고만고만하게 들어선 길을 쭉 따라 달리자 거대한 흰 건물이 나왔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솟은 흰 건물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병원들도 익히 그랬지만, 이곳은 주변에 마땅한 고층건물이 없어서인지 유난히 위압감이 들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소나무와 정원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상쾌한 공기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벤치에 나와 일광욕을 하는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로비로 가는 동안 도연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는 마치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너무 많이 변해 버린 탓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낯설기만 했다.

넓은 로비에는 높은 전면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데스크에는 단정한 외모의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약간의 긴장 속에 개중 나이가 있어 보이는 직원의 앞으로 갔다.

“저, 진료기록서 발급받으려고 왔는데요.”

“외래신가요?”

“아뇨, 예전에 여기 입원을 했었던 기록을 보려구요.”

도연은 신분증과 내밀었다.

“입원 시기요.”

옆에 있던 영준이 얼른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진오가 알려준 정확한 이송 시기 날짜였다. 종이를 확인한 여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저어- 하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10년이 지난 기록은 파기하도록 되어 있어요. 입원하신 시기가 16년 전이신데, 그때 기록은 폐기 처분하여 확인서를 받을 수가 없겠는데요.”

“네?”

깜짝 놀란 둘에게 직원은 다시 한 번 ‘폐기되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상황은 시작부터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이럴 수가.”

로비 의자에 앉아 영준은 머리를 잡아 뜯었다. 이래서야 담당의고 뭐고 알 수가 없어진다. 강릉까지 와서, 헛수고라니. 왜 출발 전에 이런 걸 확인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됐다. 오히려 침착한 쪽은 도연이었다. 그런 것쯤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저 연신 로비와 엘리베이터 쪽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나.”

“당연하지. 넌 그때 중환자실에 있던 꼬마였어.”

“그래도.”

영준은 약간 고개를 돌려 도연의 얼굴을 봤다. 도연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간단히도 그럼 별수 없지, 하고는 만다. 꽤 기대를 하고 왔을 텐데. 실망한 티를 내지 않는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척해 넘기는 것. 그것이 도연의 방식인 모양이다.

“음료수라도 사올게. 여기 있어.”

무릎을 두들겨준 영준이 자판기를 찾아 로비를 가로질렀다. 뒤에 남은 도연은 천장의 화려한 조명에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예전에도 이런 식이었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 지은 것일까. 16년.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절반은 넘게 변했을 시간.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른 것은 당연하다.

너무 오래되어 기록이 삭제됐다. 마찬가지 이야기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 바보 같을 정도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도연은 한심함에 화도 안날 지경이었다. 내가 돌아와 확인하고 싶어질 때까지 모두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거라 생각했단 말인가. 사람들도 다 바뀌었겠지. 자신을 수수께끼의 상자처럼 바라보던 의사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매번 볼 때마다 손을 덜덜 떨던 겁쟁이 간호사도.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차박차박하고 희미하게 들렸다. 영준이 돌아온 것인가 했지만 시야 끝에 나타난 것은 하얀 맨발이었다. 쪼글쪼글한 발가락과 종잇장처럼 얇은 발등. 누렇고 긴 발톱은 마치 가위로 자르기라도 한 마냥 거칠다. 수없이 혈관을 찾아 바늘이 꽂힌 푸르게 멍이 든 혈관.

초라한 맨발은 연신 도연에게서 일정 거리 떨어진 곳을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배회하고 있었다. 그래, 병원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도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순간 콧속으로 비릿한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순간 도연의 등에 식은땀이 솟았다. 가끔은 보고 만지는 것보다 후각이 더 내밀하게 와 닿을 때가 있다. 비릿한 지린내가 신호탄처럼 터지자, 갑자기 오랜 기억이 밀려들었다.

그것을 본 것은 한밤중이었다. 간호사들이 급히 복도를 지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나던 밤. 기압이 낮은 새벽에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기침을 하는 사람들도, 배가 아픈 사람들도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주로 밤에 아팠다.

도연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신의 병실에서 서성이는 이들이 그만 나가주길 기도하고 있었다. 창문에 비치는 병실에는 침대에 누운 도연과 꽃병, 가습기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매일 밤 서너 명은 되는 사람들이 도연의 병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죽은 이들이었다. 풍으로 온몸을 벌벌 떠는 노인과 머리가 반쯤 떨어진 여자, 창백하게 야위어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빛에 이끌린 것처럼 도연의 병실로 찾아들어왔다. 그리고는 아직 죽기 싫다, 죽고 싶지 않다며 울부짖었다. 가족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고 애원하는 이도 있었다. 혹시 시키는 대로 해주면 떠나지 않을까 말을 들어주자, 가족에게는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며 도연의 몸으로 들어오려 했다.

매일 밤 침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머리맡에 서 있는 이들로 인해 도연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벌벌 떨어야 했다.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하고 주문처럼 외우며.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가 항상 젖어 있었다. 지친 간호사들은 8살의 도연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싶어 했다.

그날은 기저귀 차는 것을 거부한 탓인지 간호사가 소등까지 모두 끄고 나갔다. 다시 켜고 싶었지만 하필 스위치 바로 앞에 양팔이 없는 귀신이 서 있었다. 도연은 할 수 없이 눈을 꼭 감고, 이 모든 게 아주 나쁜 꿈이고, 지금은 내 방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정말 집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끼던 장난감, 모형, 퍼즐들. 그런 것 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니 서서히 잠도 왔다.

발자국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축축한 가죽이 바닥을 스치는 것 같은 묘한 소리. 그것은 복도 저편에서부터 다가와 도연의 병실 앞에 멈춰 섰다. 이윽고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사이로 빛이 길게 들어왔다.

간호사인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살그머니 한쪽 눈을 뜨자, 열린 문 사이로 하얗고 창백한 발이 보였다. 짐승처럼 휜 누런 발톱. 찰박이는 발자국 사이로 다각다각하는 기분 나쁜 부딪힘이 이어진다. 발의 주인은 무서울 정도로 더러운 몸을 가진 넝마귀신이었다. 회색의 헝클어진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치고, 전신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털이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다. 흰자뿐인 하얀 눈과 누런 이, 발과 마찬가지로 끔찍하게 휜 손톱이 맹금류처럼 이쪽을 겨눈다. 그것은 번들거리는 하얀 눈으로 도연의 병실 안을 엿보았다. 그리고는 쭈욱 얼굴을 빼 병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 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도연은 정신없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다음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그냥 나가라 제발……

넝마귀신이 좁은 병실 안으로 들어온 기척이 났다. 그것은 비틀거리며 침대 발치를 서성였다. 도연은 이불 속에서 온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았다. 갑자기 와그륵, 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흐트러지고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것이 침대 머리 쪽으로 온다. 덜컹덜컹하는 불안한 흔들림이 느껴지더니 서랍이 차례로 열렸다. 더러운 손으로 서랍 안을 휘젓는다. 뭔가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뭘 찾는 걸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도연은 금방이라도 그 매 같은 발톱이 자신을 휘어잡아, 머리부터 잡아먹을 것만 같은 기분에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군가 와준다면, 불을 켜면 사라지지 않을까. 순간 너스 콜에 생각이 닿았다. 귀신은 아직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이 틈에 얼른 누르고 다시 숨으면…… 도연은 두려움에 죽을 것 같으면서도 조심조심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 순간, 도연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아아아아아악--!”

불투명한 하얀 눈이 바로 코앞에 떠 있었다. 허리를 굽힌 채 도연의 얼굴 바로 앞이 들이밀어진 추한 얼굴이 크게 확대되어 다가온다.

“아가 큰마니 두고 어듸메 갔듸렌.”

몇 개 없는 누런 이 사이로 쉰 목소리가 속삭인다. 반갑다는 듯 길게 웃는 입에서 생선 썩는 악취가 풍겼다. 비명을 지르는 도연에게 갈고리 같은 손이 뻗어왔다.

“아아아악-!”

울부짖는 도연의 몸을 그것이 움켜잡았을 때였다. 병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환하게 불이 켜졌다. 놀란 간호사들이 뛰어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넝마귀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밝은 형광등 불빛을 받고 더욱 자세하고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자지러지게 울며 소리를 지르는 도연을 간호사들은 황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제히 달려들어 넝마귀신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 할머니, 여기서 이러면 안 되죠!”

“막내야 가서 경비원 불러와, 빨리!”

밀고 당기는 사이에 도연은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다시 잡으려 뻗치는 팔에 마구 발버둥질 쳐 침대에서 뛰어내린 뒤 반대편 벽에 가서 달라붙었다. 반항하는 넝마귀신을 잡아 누른 간호사들이 병실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와중에 털썩, 하고 떨어진 더러운 회색 외투가 바닥을 뒹굴었다.

잠시 후 머리가 흐트러진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뼘과 목에 할퀸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할딱이는 도연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오늘 들어온 응급 환잔데 치매가 심해서……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미안하다. 넌 아직 이해 못 하겠지만 할머니가 많이 아파. 너를 아마 잃어버린 손자인 줄 알았나 봐.”

간호사는 도연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 혹여 다친 곳은 없는지 살핀 뒤 침대에 눕혔다. 따뜻한 손이 어루만져주는 것에 도연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떨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 그 할머니는 그럼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뭔가 안심이 될 만한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따뜻하던 손은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간호사의 눈에 아주 잠깐 스친 표정은 ‘얘가 또 이러네.’ 하는 것이었다. 대답 없이 이불을 덮어준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집어 들었다. 도연의 눈에 귀신의 몸에 난 털처럼 보였던 계절에 맞지 않는 겨울옷이었다.

“놀랐을 테니 오늘은 잘 때 불 켜줄게.”

간호사는 병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도연은 턱 밑까지 이불을 덮은 채 아직도 두근거리는 작은 가슴 위에 손을 올려 보았다. 살아있는 사람, 그 할머니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공포가 서서히 잦아든다. 대신 그 자리에 화가 몰려왔다. 바보 같이, 진즉 알았다면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을 텐데. 손자인 줄 온 걸 모르고. 어쩌면 날 안아주려 했는지 모른다. 얌전히 있었다면 간호사들 몰래 밤새 같이 있어줬을 텐데. 조금 더럽고 무섭긴 했지만, 눈물이 나게 아쉬웠다. 도연은 문을 응시하며 그 할머니가 혹시 다른 밤에라도 또 와주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준다면 모르는 척 할머니의 손자가 되어도 좋았다. 도연은 긴 밤을 혼자 뜬 눈으로 지냈다. 남은 것은 병실 안에 가득한 비릿한 악취뿐이었다.

이제 할머니는 넝마대신 얇은 병원복을 입었다. 그러나 여전히 백내장으로 하얗게 변한 눈을 허공에 향한 채, 새로 단장한 로비를 헤매고 있다. 앞으로 손을 뻗어 안아줄 누군가를 찾으며.

“하, 하…….”

도연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실소했다. 한때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길 바라던 마음의 기억. 치매에 걸린 더러운 할머니에게라도 안기고 싶었던 자신이 박제된 채 거기 있었다.

16년, 16년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죽기 전에도, 또 죽은 후에도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대로. 또 우리 둘이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도연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와 함께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 영준은 이온음료 두 개를 뽑았다. 자판기 옆 현금입출금기 근처는 돈을 뽑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차가운 캔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로비 쪽으로 가려던 영준은 입출금기 앞의 인파를 피하려다 급하게 마주 오던 간호사와 부딪혔다. 카캉, 하고 바닥에 캔이 굴러떨어졌다.

“어머, 죄송합니다.”

얼른 무릎을 굽히는 그녀를 따라 영준도 서둘러 몸을 숙였다.

“괜찮아요. 제가 잘 봤어야 하는데.”

굴러가는 캔을 잡은 간호사가 그것을 얼른 자신의 상의에 문질러 닦았다. 사과라도 닦는 것처럼 슥슥 문지른 다음 생긋 웃으며 건네준다.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인상이 좋고 마른 여자였다.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영준은 얼른 간호사를 다시 불러 세웠다.

“저, 혹시 뭐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말씀하세요.”

“혹시 이 병원에서 근무하신 지 얼마나 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으레 있는 질문이려니 대응하던 간호사는 영준의 말에 네? 하고 반문했다.

“여기서 오래 전에 근무했던 간호사분을 찾고 있거든요.”

“아아. 말씀하세요. 전 여기서 쭉 장기근속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영준은 혹시 눈앞의 간호사가 자신이 찾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그렇다면 강릉까지 내려온 것도 헛수고는 아니다.

“16년 전에 여기서 근무하던 간호사 분이신데요. 당시 입원했던 8살 된 교통사고 환자와 관련해서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김도연이라고. 퇴원 후 3년 정도 지나서 그쪽에서 개인적으로 연락도 주신 적 있고요.”

영준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16년 전이면 잘…… 전 여기서 근무한 지 14년째에요. 그 전에 계시던 분은 잘 모르겠네요.”

순간 실망으로 어깨가 축 늘어진다. 영준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더 오래 근무하신 분은 안계신가요?”

“여기선 제가 제일 고참이에요. 워낙 이직도 많구요.”

미안한 듯 미소 지으며 간호사가 말했다. 역시 그만둔 뒤구나. 영준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실망한 기색에 간호사가 다시 물었다.

“꼭 찾아야 하는 분인가 봐요?”

“네. 음, 퇴원 후에 그쪽에서 잘 지내는지 몇 번이나 연락을 해주셨는데 제대로 답을 못했거든요. 건네주실 물건도 있다고 하고…….”

“그래요…… 16년 전이면 환자분 애기셨을 텐데.”

“교통사고를 당해서요.”

“어머.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잘 컸네요.”

간호사는 입원했던 사람이 영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애써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영준은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가슴 따뜻한 훈담이라 생각했는지 안타까워하며 열심히 고민했다. 그러다 손뼉을 짝! 쳤다.

“아! 약재 팀장님이라면 20년 근속으로 얼마 전에 상도 받으셨으니까 아실지도 몰라요. 퇴직하신 분들하고 아직 연락도 주고받으시고요. 중간에 이직하신 경우만 아니면 아실 수도 있어요.”

희망적인 말에 영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간호사는 약재실이 어디인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영준은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는 서둘러 도연에게 달려갔다.

간단한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도연은 두말할 것 없이 앞장섰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더니 한 번 들은 설명으로 지하 2층까지 잘도 찾아낸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기운이 돌아온 걸까, 도연은 MP3와 이어폰 없이도 질색하던 병원 복도를 아무렇지 않게 달렸다.

간호사가 말한 대로 약재실에는 머리가 희게 센 약재팀장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복도에서 만났던 간호사에게 듣고 왔다고 하자 뚱하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든다.

“우리 김 간호사 소개면 내가 상대해줘야지.”

영준은 다시 한 번 오래전 사고와 연락에 대해 설명했다. 조금 전 경험을 살려 약간의 미화를 더해 감동적인 훈담의 느낌을 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약하고, 더 도와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16년 전?”

약재팀장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나 그냥 모른다, 고 자를만한 지점에서 다시 숙고에 들어갔다.

“그 정도로는 알기 힘들지.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그때 근무하던 간호사들 싸그리 바뀌었는데……특히 소아과 쪽은 원래 직원들이 착해서 환자들한테 애착도 강해요.”

“그냥 환자가 아닙니다.”

불쑥 끼어든 도연이 말했다.

“그럼?”

“아마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있었을 거예요. 귀신이 보이는 애라거나 붙은 애라는 식으로.”

영준은 깜짝 놀라 도연을 바라보았다. 그가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귀신……?”

약재팀장은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뒤쪽에서 일하던 직원 하나가 거들었다.

“아 왜 팀장님 그 이야기 못 들어봤어요? 우리 병원에 3대 미스터리. 그중 하나잖아요. 귀신 보이는 꼬마.”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팀장님이야 만날 약재실에만 있으니까 모르죠.”

“저어…….”

미스터리의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정작 안절부절못한 것은 영준이었다. 도연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퇴원 후 3년까지 연락을 했다는 걸 보면 남다른 애착을 가진 분 같았는데요. 본인을 ‘전담 간호사’ 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하신 걸 보면 교회나 성당에 다니시던 분 같은데요.”

“담당 간호사겠죠.”

이제는 완전히 대화에 참여한 여직원이 냉큼 끼어들었다.

“아뇨, 전담이라고 하셨다고…….”

“에이 전담은 전문적으로 정해진 거 하는 건데. 만약 primary nursing 말씀하시는 거면 16년 전에는 우리 그거 안 했어요. 다 로테 돌렸지.”

그때 약재팀장이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손을 들었다.

“잠깐잠깐, 아 그 얘기하니 한 명 생각나네. 3년 전에 퇴직한 정 간호사가 그러고 다녔지. 환자들 중에 유난히 정을 붙인 사람들한테는 지정되지 않았어도 자기가 전담 간호사라고 했어. 누가 뭐라든 입 퇴원부터 자기 환자라고 싸그리 다 챙기려고 들었지. 맞네, 맞아.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어조로 ‘좀 특이한 양반이니까.’ 하고 말했다. 그리고 서랍에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주소를 알긴 하는데, 아마 이 시간에는 집에 없을 거야. 몇 달 전에 연락이 닿아 퇴직하고 뭐 하는지 한 번 물어봤는데, 매일 교회에 나간다고 하더라고. 새소망교회. 뭐 그런 이름이었네.”

그는 쪽지에 새소망교회라는 이름을 적어 주었다. 병원 근처, 초등학교를 지나 있는 주택가의 교회라고 했다.

영준은 쪽지를 받아들자마자 당장 약재실을 나가려는 도연을 붙잡아, 겨우 감사인사를 끝마쳤다. 여직원은 둘 중 누가 그 3대 미스터리의 주인공인지 궁금한지 투닥대는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택가에 위치한 새소망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였다.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뾰족한 건물은 검소하면서도 밝은 인상을 줬다. 기도하는 예수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나무와 벽돌로 지어진 건물에 운치를 더했다.

교회 외부에서는 한창 바자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얀 천막 아래 이것저것 생활용품과 수제작한 물건들, 중고물품들이 판매된다. 한쪽에서는 아이스 커피를 나눠주는 신자들이 보였다. 아이들을 데려온 주부들과 노인들,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모임이었다. 이 중 누가 정 간호사인지 단번에 찾기는 어려웠다.

바자회에 참여한 여자 신도를 하나하나 보던 도연은 문득 시선을 느꼈다. 옆을 보자 영준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빤히 응시하는 눈은 신기한 걸 다 본다는 듯 갸우뚱하다.

“왜?”

“아니, 뭐가 이렇게 널 적극적으로 만들었나 해서.”

“며칠 내내 날더러 입원했던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한 건 너였어. 간호사를 찾아보자고 한 것도 네 아이디어였고.”

“그래. 하지만 병원 3대 미스터리가 될 것 까지는 없잖아.”

도연도 그 부분만은 어이가 없었다. 피식 웃자 영준이 낄낄거리며 한마디 더 했다.

“난 도대체 나머지 2개가 뭔지 신경 쓰여 죽겠어.”

농담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도연은 두 사람으로 나눠서 찾아보자고 말한 뒤 교회 안을 보러 갔다. 어차피 같은 신도들끼리니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될텐데,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직 편치 않은 모양이다. 커피를 받으며 영준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유가 어쨌든 그가 축 처져 있지 않아 기뻤다. 아까처럼 무심한 척하며 실망을 감추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바자회는 거의 끝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영준은 커피를 나눠주는 아주머니에게 가 혹시 정 간호사라는 분을 알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장 손가락으로 바자회 안쪽을 가리켰다. 꾸벅 인사를 하고 보세옷을 진열해 놓은 곳으로 가는데 도연이 교회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안에는 아무도 없어. 어린애들 몇이 핸드폰을 보고 있을 뿐이야.”

“저기서 물어봤는데, 이쪽 천막 중에 있을 거라고 해.”

둘은 세 개의 천막을 차례대로 들여 보았다. 16년 전 간호사를 하다 3년 전에 은퇴했다면 젊은 여성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의 강도가 센 일의 특성상 할머니일리도 없었다. 영준과 도연은 거의 동시에 오른쪽 천막을 바라보았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희고 인상이 좋은 여성이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화장기 없는 낯에 파마 하지 않고 깔끔하게 묶은 머리가 어딘지 소녀 같은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바자회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부와 인사를 던지며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라는 확신이 선다. 당장이라도 말을 걸 기세로 한걸음 나서던 도연은 갑자기 뭔가에 걸린 사람처럼 덜컥 멈췄다. 뭔가 저항감이 들었다. 불쑥 이 모든 일에 회의가 몰려왔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자신은 진료기록서를 통해 부상의 정도와 입원시기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더불어 부모님의 사망에 대한 자세한 확인도. 그런데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애써 만나서 무얼 하는가. 전화했던 이유? 혹 시답잖은 이야기라면 도리어 실망만 클 것이다. 그녀가 근무 당시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큰어머니의 퉁명스러운 전화에 실망해 꼭 전해줘야 한다며 간곡했던 물건도 이미 옛날에 버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익숙한 회피와 부정에 돌아서지 않은 것은 영준 때문이었다. 준비가 되었느냐며 등에 올린 손이 도연을 앞으로 살짝 민 것이다. 얼결에 천막 앞에 서자 중년 여성이 이쪽을 보고는 어서 오세요, 하고 말했다. 말문이 막힌 도연은 그녀의 얼굴만 빤히 바라봤다.

어떤 기억이라도 떠오르길 바랐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자신을 바라보던 차가운 눈빛의 간호사들과 수군거리던 뒷말은 그토록 선명한데. 마치 그녀만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백지였다.

“안녕하세요. 아산병원에서 근무하시던 정 간호사님 맞으시죠?”

침묵이 흐르자 영준이 나서 먼저 인사를 했다. 그녀는 정 간호사라는 말에 어머, 하고 수줍게 웃었다. 눈꼬리가 접히는 웃음주름이 보기 좋게 부드러웠다.

“아직도 그렇게들 불러주시기는 하는데, 이미 퇴직한 지 오래예요.”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세요?”

“지금은 좀 바쁜데…… 무슨 일이에요?”

“사람을 좀 찾는 중이라 확인했으면 하는 게 있어서요.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조금 긴장한 얼굴로 영준과 도연을 번갈아가며 보던 여자는 옆의 아가씨에게 잠시 자리를 부탁했다. 그녀를 따라 바자회 구석으로 가며 영준은 도연에게 왜 그래? 하고 물었다. 그러나 도연은 자신도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싫었다.

천막 아래 그늘진 곳으로 간 그녀는 자, 하듯이 손을 벌렸다.

“뭘 물어보려고 왔어요?”

영준은 도연을 흘깃 보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어딘지 불쾌해 보이는 얼굴로 눈앞의 여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의아했지만 일단 나서 설명했다.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안산병원에서 근무하던 16년 전에 교통사고로 실려 왔던 애가 하나 있었어요. 화물트럭에 의한 사고로…….”

얘기가 진행될수록 여자의 표정이 점점 변했다. 처음에는 담담하던 표정이 영준의 설명에 따라 서서히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3년 만의 전화에 대해 이야기 하자 그녀는 양손으로 입을 막고 어머, 어머 하고 반복했다.

“맞아요, 맞아. 기억 나. 있었어요. 퇴원하고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 꼭 달라고 했는데도, 물리치료 하러도 안 오고 궁금해서 연락을 했었죠, 기억나요.”

그녀는 용케도 도연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영준은 반색을 하며 도연을 보았다. 그러나 도연은 기쁘다기보다는 예상외라는 반응이었다.

“그 애가 날 찾아요? 왜? 어떻게?”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양손을 모은 것이 기도하는 자세였다. 뜻밖의 열렬한 반응과 도연의 묘한 태도에 영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한발 빨랐다. 영준과 도연을 번갈아가며 유심히 살피고는 도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것이다. 그녀는 도연의 희고 깨끗하기까지 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혹시…….”

이미 확신이 담긴 질문이었다. 도연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도연의 손을 와락 잡았다.

“맞구나! 맞아. 이름이, 김, 김…….”

“…… 도연입니다.”

“김도연, 그래!”

아이고, 하며 반가워하는 그녀에 비해 도연은 잡힌 손을 어쩔 줄 몰라 했다. 명백한 온도 차에도 여자는 개의치 않는지 도연의 얼굴과 몸을 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세상에, 다 컸네. 요만했던 애가 다 커서 벌써 어른이야.”

“…….”

“다 컸어도 분위기는 그대로다. 하나도 안 변했어.”

여자는 영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 거에요?”

“아산 병원에서 약재 팀장님이 알려주셨어요. 지금 시간에는 교회에 있을 거라고도…….”

그랬구나, 하고 말하며 그녀는 다시 도연을 바라보았다. 양손은 여전히 꼭 맞잡은 채였다. 따뜻하고 그렁그렁한 눈은 호의와 애정으로 넘치고 있었다. 도연은 점점 더 불편해지는지 손을 빼고 싶어 꼼지락거렸다. 안되겠다 싶어 영준이 나서 말했다.

“정 간호사님 맞으시다니 잘됐네요. 얘기가 좀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시간 좀 더 내주셔도 괜찮으세요?”

“아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바자회 일하는 중이라 못 빠져나와요. 우리 교회에서 다 같이하는 거라 당장은 안 되고. 그러지 말고 교회에서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정도만 기다려줄래요? 곧 끝나니까 뒷정리만 하고 얼른 올게요.”

그녀는 아쉽다는 듯 도연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잡은 뒤 어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야 천막으로 돌아갔다.

“…….”

그녀가 멀어지기가 도연은 조금 전까지 잡혀있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지에 대고 세게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식겁한 영준은 얼른 천막 쪽을 확인한 뒤 자신의 몸으로 도연을 가렸다.

“기분 나빠.”

“기분…….”

말문이 막힌 영준은 입만 벙긋거렸다. 도연은 미간을 모은 채 정말로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반가워서 잡은 손이 싫었다고 한들 그렇게까지. 까칠한 도연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아닌 이상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한다고 함부로 판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넌 아무것도 못 느꼈어?”

“뭘?”

“아까 그 간호사. 가까이 올 때부터 이상했는데, 손이 잡힌 순간 꼭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속이 뒤집어지면서 울렁거리고.”

도연의 항변에 영준은 단박에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혹시 뭔가 보였어?”

“특별히 보이는 건 없었지만…….”

도연은 말끝을 흐렸다. 느낌은 나빴지만 정확히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그 상대가 호의를 품고 있는 경우는 더욱더. 어쩌면 그로 인해 느끼는 어색함일지도 모른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신뢰를 잃은 자신의 느낌 따위로 망칠 수는 없다.

“네가 뭔가 느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걸 거야.”

단호한 영준의 말에 도연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바지에 손을 문지를 뿐이었다.

그녀는 교회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둘은 입구 쪽 계단에 앉았다. 도연이 교회 안에서 혼령을 몇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건물에 모여드는 혼령들은 굉장히 성가셨다. 마음을 다듬고 영적 수행을 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꼬이는 잡귀들로,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을 건드려 흐트러트리는 것을 좋아해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2시간 정도 걸리니 영준이 잠시 식사라도 하고 오자고 권했으나, 도연은 입맛이 없다며 거절했다. 다행히 바자회에서 음료수와 김밥 등을 판매했다. 그러나 도연은 커피만 마실 뿐 밥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미 오후를 지나 곧 저녁이 될 시간이다. 출발할 때 먹은 샌드위치가 유일한 끼니였다. 배가 고프지 않을 리 없다.

영준은 도연이 자꾸만 오른손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교회 안에 화장실이 있을 거야. 씻고 올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른 시선을 들어 다른 곳을 향한다.

“됐어. 아무래도 그냥 기분 탓이었던 것 같아.”

괜한 고집에 혹시 아까 자신의 반응이 비난처럼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준은 걱정이 되었다.

“잠깐 손 좀 줘봐.”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무릎 위로 팔을 얹은 영준은 그의 손을 잡고 손금을 볼 때처럼 젖혀 쫙 펴게 했다. 그리고 곧게 쭉 뻗은 손가락 사이와 둥근 손금을 찬찬히 살폈다.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손등까지 확인한 뒤 해에 비춰본다. 흰 손가락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스며들었다. 남자치고 마디가 고운 손이다. 운동과 아르바이트로 굳은살이 박인 자신하고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힘을 빼자 손가락이 자연스레 동그랗게 모였다. 영준은 고개를 숙여 물을 담은 것처럼 오목해진 도연의 손바닥에 살짝 코를 대보았다. 깊이 숨을 들이쉬자 희미하게 물과 로션냄새가 났다.

고개를 드니 도연이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아무 데도 이상하지 않아.”

“뭐?”

“네 손. 깨끗하다구.”

갑자기 팔이 확 빼내졌다. 도연은 손을 뒤로 숨긴 채 영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이상해.”

도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한 번 보고, 영준을 다시 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흘긋거리는 것이 느껴져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이상해?”

영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가? 이상하기보다는 오히려 평소보다 좋은 편이다.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원래 운동하는 놈들은 이렇게 남한테 쉽게 치대는 거야, 아니면 너만 그래?”

치댄다는 표현에 영준이 발끈했다.

“내가 언제?”

“그렇잖아. 괜히 치고 지나가거나, 머리를 만진다거나, 지금도 그렇고…….”

“그 정도는 다 하는 거잖아. 친구끼리 손 좀 잡고 어깨동무도 하고 하는 거야 평범하지.”

“그럼 원래 치, 친구끼리 손도 잡아?

“가끔은?”

영준은 동창이나 동기 놈들 손을 잡은 적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일단 우겼다.

“난 남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거 본 적 없어.”

“난 널 엎고도 다녔어.”

“그거야…….”

뭔가 반론하려던 도연은 순간 헷갈려 뭐라고 하려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뭐가 틀렸는지 모르겠다. 사실 도연에게 친구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이 있을리 만무했다. 생각해보면 원래 손을 가만 못 두는 편이긴 했다. 산에서도 내버려두었더니 개라도 쓰다듬듯 머리를 만지작거렸으니까.

내 과민 반응인가. 도연은 아직도 간질간질한 손을 꽉 움켜쥔 채 생각했다. 애초에 남자끼리 뭘 하든 신경 쓰는 게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정전이 있던 날 때문이야. 도연은 확 인상을 썼다. 바보같이 넋을 놓고, 정신을 차려보니 밤새 포옹이라도 하듯 안겨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생각할수록 창피한 일이라 떠올리고도 싶지 않지만, 신경이 아예 안 쓰일 수는 없다.

바자회가 끝난 것은 1시간 반 뒤였다. 남은 물건들을 다 정리한 그녀는 계단에 앉아있는 둘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다소 분위기가 어색했던 만큼 합류는 반갑게 이루어졌다. 곧 해가 질 시간이라 조급해하는 둘에게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바로 이 근처에요. 여기는 마땅한 커피숍도 없고, 편하게 있으려면 집이 제일 좋을 테니까. 정리를 못 해서 조금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이해해줘요.”

환한 웃음과 애교 섞인 부탁은 거절이 어려운 무기였다. 그녀의 말대로 집은 십 분도 걷지 않아 나왔다. 갈색 벽돌이 중후한 맛을 내는 주택이었다.

“들어와요.”

은색 대문을 지나자 나지막한 건조대에 빨래가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을 붉힌 그녀는 얼른 건조대로 달려들어 마른 옷들을 걷어냈다.

“내가 좀 바빠서…… 아이고 창피해라. 그러지 말고 들어가요.”

현관을 연 여자가 신발을 벗어 한쪽으로 치웠다.

그녀는 불도 켜지 않고 앞장서서 성큼성큼 들어갔다. 영준과 도연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그녀 뒤를 따라갔다.

집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훈훈한 날씨에도 집안은 서늘했다. 언제나 그늘인 장소 특유의 서늘함이었다.

“우리 집이 구조가 좀 이상해서, 복도가 좁고 길어요.”

그녀의 말대로 좁은 복도는 거실까지 쭉 이어졌다. 발자국마다 나무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오래된 주택을 중간에 중축하거나 수리하다 생긴 비틀림 같았다. 그 좁은 와중에 놓인 서랍장과 자질구레한 장식품들이 종아리를 툭툭 건드렸다.

현관에 들어설 때부터 나던 냄새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진해졌다. 남의 집 살림 특유의 낯선 살내음 사이로 개 비린내와 고양이 오줌 냄새가 섞여들었다.

“개를 키우세요?”

영준은 복도에 걸린 요크셔테리어의 사진을 보고 물었다.

“어머, 왜, 티가 나요?”

그녀의 대답에 도연은 장식장 위에 잔뜩 올려놓은 개와 고양이 조각품을 보며 눈썹을 들었다. 이 정도로 티를 내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복도가 끝나는 곳에는 둥근 형태의 거실이 있었다. 창마다 흰색 커튼이 길게 늘어져 저녁 햇살이 뿌옇게 어둠을 흐리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조각된 나무 십자가 하나가 거실 가장 중앙의 벽을 차지한다. 여자가 들어선 순간 고인 공기가 물처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불을 켜자 찌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단숨에 밝아진다.

“어서 들어와요. 편한 데로 앉아요.”

방석과 쿠션을 꺼내며 부산스레 손님 치를 준비를 하는 그녀는 흥겨워 보였다. 이 거실이 그녀의 주된 생활 장소인지,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꾸밈새가 드러났다. 나무로 된 테이블 위에는 둥근 꽃병에 흰 꽃이 흐드러지게 꽂혀 있었고, 비단 천으로 만든 조각보가 꽃병을 받치고 있었다. 밝은색의 방석이 세 자리에 내려놓아졌다.

“어서요.”

그녀는 방석을 가리키며 환히 웃었다. 그러나 환대에도 불구하고 도연과 영준은 거실의 입구에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거실은 말 그대로 동물 보호소나 다름없었다. 열 마리는 족히 넘을 수의 소형견과 여기저기 가구 위를 넘나드는 고양이들도 보이는 것만 대 여섯 마리였다. 심지어 작은 햄스터에 깃 빠진 새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중 살아있는 동물은 단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이다. 거실에 있는 개와 고양이는 모두 죽은 동물의 혼령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