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23/24)

10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어지럽던 머리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발을 움직여보자 어느새 철길은 사라져 있었다. 묘하게 걷기 편한 좁고 판판한 평지가 발에 닿는다. 주위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은 마치 땅굴 속에 있는 것처럼 폐쇄적인 냄새를 풍겼다. 하늘을 보자 새빨간 달이 떠 있다.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보이는 귀도의 달.

기어코 이곳으로 돌아왔구나. 도연은 절망적인 기분으로 탄식했다. 어떻게든 이곳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이곳은 자신에게 어떤 승산도 없게만 느껴진다.

“괜찮아?”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잡아주는 목소리. 도연은 다행히 아직 자신의 손에 남은 것에 정신을 집중했다. 따뜻하고 든든하게 깍지를 낀 손.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또다시 함께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미안해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 여기 있어선 안 돼, 가자.”

도연은 잡은 손을 꽉 움켜쥔 채 말했다.

영준은 놀랍게도 의연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무리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이라 해도, 이런 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도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날 위해 견디는 거야. 내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니까.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도연은 이를 악물고 앞장섰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일단 빛을 찾아야 했다.

항상 그랬다.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오직 그뿐이었다. 빛을 찾는 것. 그것은 어떤 종류의 빛이어도 상관없었지만 아무 때나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 이틀, 혹은 한 달 이상이 걸릴 때도 있었다. 운이 좋다면, 제발. 내 운이 나쁘다면 영준의 운이라도.

여기저기에서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작은 벌레들이 그러듯이 사사삭하고 움직이는 기척과 시선. 온몸의 털이 다 솟구치는 것 같은 섬뜩한 악의. 춥고 습한 이곳의 대기는 사람의 피를 차갑게 식힌다. 그리고 자꾸만 머릿속에 나쁜 생각을 심어 놓는다. 부정적이고, 두려운.

이 어둠 속에서 오직 서로에게 호의적인 것은 둘 뿐이었다. 도연은 저도 모르게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너무 세게 잡지 마.”

“어? 어.”

영준이 아야, 하고 낮게 투덜거렸다. 손에 너무 힘을 준 걸까. 도연은 얼른 힘을 풀었다. 그는 방금 전 일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마주 잡던 손을 힘없이 대고만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단단한 깍지가 무색하게 이쪽에서 놓으면 금방 풀려버릴 가벼운 접촉이었다. 그리러 보니 내내 말도 없다. 왜 그러는 거지?

도연은 직전에 영준이 피를 토하듯 했던 당부를 떠올렸다. 긴장한 탓이겠지. 그에게도 이곳은 두려운 장소일 테니까.

“어디로 가는지 알고 가는 거야?”

영준이 불쑥 물었다. 도연은 깊은 물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말했다.

“일단 빛이 있는 곳을 찾으려고.”

“거기가 어딘데?”

“모르겠어.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딘지 모른다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잖아.”

퉁명스러운 말에 기가 꺾인다. 도연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화가 났다.

“그렇다고 한자리에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왜, 그놈이 올까 봐?”

“그래.”

“그게 뭔지는 알고 있어?” 도연은 눈을 찡그리고 눈앞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 노력했다. 발밑이 매끄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걸음걸음이 긴장의 연속이다. 원래 기차역에서 들어왔기 때문일까, 귀도 자체의 길도 무척 좁고 끝없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낭떠러지처럼 솟구치고 꺼지는 바닥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도 몰라.”

“20년 가까이 쫓겨 왔으면서, 그게 뭔지 정체가 궁금하지도 않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영준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묘하게 비난이 섞여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이다. 왜 나는 그게 뭔지 알아내려 하지 않았을까. 그저 두렵고 두려워, 내내 피하기만 했을 뿐이다. 도연은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심 상처를 받았다.

“알고 싶지 않았어. 이름을 붙이면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그냥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었어.”

“넌 오히려 두려움을 키우기만 한 거야. 맞설 생각조차 안 해보고.”

맞선다고? 도연은 그런 생각은 정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어른이 된 다음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리치는 질문에 답이 궁해진다. 하지만 싫은 일로부터 전력을 다해 달아나는 것이 가능한데, 일부러 맞서려는 사람이 있을까.

“넌 어땠을 것 같은데?”

결국 곱지 않은 어조로 말이 튀어나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봤겠지. 그런 식으로 산다는 건 정상이 아니야. 결국 어떻게 됐는지 봐.”

“…….”

도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자신이 무척 위축되는 기분이 든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볼품없는 삶을 선택하다니.”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극복하려고 하지도 않았잖아?”

“그건…….”

도연은 어쩐지 영준의 손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살이 박힌 야구 선수 출신의 손은 원래도 큰 편이었지만, 지금은 잡고 있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결국 너 때문에 나까지 이런 꼴이 됐어.”

“그, 그런 말 하지 마.”

한심하게도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난 그래도 네가 어떤 해결책은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대책이 없을 줄 알았다면 따라나서지 않았을 거야.”

매정한 목소리가 채찍처럼 후려쳤다. 어둠 속에서 도연은 더 이상 한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네, 네가 따라오고 싶다고 했어.”

“그거야 이 정도까지 한심할 줄은 몰라서였지.”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도연은 한참 위에서 들려오는 영준의 냉혹함에 진저리쳤다.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 건 모두 네 잘못이니까.”

“아니야!”

“아니라고?”

영준은 정말 우스운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만 드러낸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다 뚝 웃음을 그치고는 얼음장 같은 어조로 따져 물었다.

“그럼 누구 잘못이지? 이건 다 네가 나쁜 아이라서야. 사람 죽는 걸 개돼지가 길가다 자빠진 거 구경하듯이 구는 아이, 너 혼자 살겠다고 부모를 버리는 아이, 친구를 배신하고, 이웃을 죽이고,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아이이기 때문이지.”

“난 아이가 아니야!”

“네 꼴을 한 번 봐.”

도연은 영준의 말에 자신을 보았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어둠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조그만 손발, 짧은 다리, 영준의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키. 도연은 정말 어린 아이였다. 노란색 반바지가 뿌연 달처럼 어둠 속에서 선명히 떠오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당황할 새도 없이 영준이 다시 말했다.

“너 때문에 나도 죽게 생겼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만해!”

도연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매달리듯 잡고 있던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쪽에서 놔주지 않았다.

“날 조, 좋아한다고 했잖아!”

영준은 코웃음을 치며 도연의 어린아이 같은 외침을 비웃었다.

“좋아한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기분 나쁘게.”

“시끄러워! 넌, 넌 영준이 아니야, 그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아!”

그래, 영준은 내게 이런 말 하지 않아. 도연은 주머니를 뒤져 영준이 주었던 작은 손전등을 찾아냈다. 그리고 빛을 켜 자신의 앞에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거기에는 마치 거대한 손이 뭉개놓은 것 같은 비틀린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목구비 전체가 사라져 돌아가 버린 얼굴에서 유일하게 흔적만 남은 입이 경악한 도연을 비웃듯이 격렬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의 다른 손이 도연을 향해 뻗어 왔다.

도연은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비명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김도연!”

영준은 어둠 속을 달리며 도연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러나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직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는데, 혹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 깍지를 낀 채 최대한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김도연!”

영준은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이름을 외쳤다. 장막 같은 암흑은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다. 바로 그가 옆에 있다 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소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멀어진 것인지 도연은 기척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아예 떨어진 것은 아니겠지. 영준은 무서운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산에서 우연히 빠졌던 현실과 비현실의 틈바구니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것도 믿으면 안 되고, 누구에게도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용케 한 번은 빠져나왔던 곳. 그러나 그때는 둘이었다. 더구나 그때는 이 정도로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다. 마치 강바닥에 잠긴 것처럼 춥고, 무거운 공기에는 빛 한 점 통하지 않는다.

영준은 일단 판판한 바닥을 더듬어 앉은 뒤, 메고 있던 가방을 뒤졌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손전등을 넣어 왔을 텐데. 짐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났다. 으아앙 하는 가늘고 높게 울리는 목소리가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진다. 이런 곳에서? 영준은 가방에 손을 넣은 채 굳었다. 이건 속임수야. 전에 귀도에 들어갔을 때 마주했던 수많은 거짓과 위험이 아직도 생상하다. 온갖 사연과 동정심을 이용해 그들을 한입에 삼키려 했지. 그러나 울음소리는 통 가까워질 줄을 몰랐다. 마치 영준에게 자신을 찾아오라는 듯 조금씩 멀어질 뿐이다.

무시하려는데 갑자기 묘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언제가 이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이 소리가 익숙하다. 어디서 들었더라? 영준은 손전등을 켜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빛을 겨누어 보았다. 끝없는 어둠에 빛은 그리 멀리 퍼지지 못했다. 마치 심해의 바닥에서 작은 전등을 켠 것 같은 꼴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안도는 컸다.

분간할 수 없이 똑같은 어둠 속, 영준은 망설임 끝에 결국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차피 다른 곳도 모두 똑같은 위험이었다. 더구나 이 울음소리는, 어쩐지 익숙했다. 전에도 이 소리를 듣고 따랐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한참 걸었을 즈음, 빛이 퍼지는 끝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쪽진 머리를 한 여자가 반갑다는 듯 이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갈매 같은 길을 어데 마실 가는가. 난저라 갈구지말고 이리오소…….’

하얀 저고리를 입은 여자는 마치 이곳에서 산책이라도 했다는 듯 한가롭게 앉아 손짓한다. 영준은 못들은 척 지나갔다. 역시나 곧 뒤를 따르는 기척이 느껴졌다.

‘머스매 몸푸도 큰 것이 따다 고우면 국죽이 느끈하겠구나.’

탐이 난다는 듯 속살이는 목소리에 누군가 거든다.

‘고풀이 없이 오래 곯았는데 개살 떤 보람이 있게 되었어.’

꼬리를 단 부담에 더 이상 도연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 혹여 그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었다. 영준은 최대한 모르는 척 거북한 대화 사이사이 들리는 아이의 소리를 따랐다.

어둠 속을 걷다 보니 어디서 들었던 소리인지 서서히 기억이 난다. 영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을 한탄강의 밤, 산에서 도연을 찾아 헤매는 동안 환청처럼 울렸던 소리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꿈처럼 들었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자신을 그에게 데려다줄지 모른다.

“이게 설사 함정이라 해도…….”

영준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어느새 뒤를 따르는 무리는 셋으로 늘어 있었다. 돌아설 곳은 없었다.

묘하게 걷기 편하던 귀도는 소리를 따라갈수록 점차 험해졌다. 바닥이 울퉁불퉁하더니 갑자기 사방에서 벽이 튀어나온다. 마치 좁은 구멍을 지나가는 것처럼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다. 영준은 몸을 비스듬히 돌려 틈을 지났다. 뒤에서 손을 뻗어 오는 귀도의 망령들은 길이 험해지자 포기한 듯 근처에서 서성이다 욕설을 내뱉었다.

울음소리는 이제 지척인 듯 가까웠다. 영준은 발걸음을 빨리해 사방으로 빛을 비춰 보았다. 그리고 거기 바로,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아이는 장난감을 앞에 어질러 놓은 채 무엇이 서러운지 크게 울고 있다. 낯이 익은 아이였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 같았다. 한참 울던 아이는 느닷없이 사람이 나타나자 놀랐는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뚱거리며 어둠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잠깐만!”

급히 손을 뻗었지만 조그만 몸은 금세 구르듯 사라진다. 영준은 급히 그 뒤를 쫓았다.

다시 아이를 따라잡았을 무렵, 아이는 조금 커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공놀이를 하던 5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영준이 따라온 것에 몹시 놀랐는지 공을 떨어트리고는 다시 달려가 버렸다.

“기다려봐! 네가 누군지 알 것 같단 말이야!”

영준은 서둘러 뒤를 쫓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어린아이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아이는 마치 신기루처럼 다시 사라졌다. 영준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팔랑이는 연 같은 몸이 어둠 속에서 감질나게 흔들리다 사라진다.

숨이 턱에 달았을 무렵, 바닥에 돌을 쌓아놓고 노는 아이가 보였다. 7, 8살 정도 된 아이는 사진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곧게 잘린 검은 머리를 차분하게 내린 채 통통하고 하얀 뺨이 부드러워 보였다.

“……김도연.”

영준은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자갈을 가지고 탑을 쌓으며 놀던 아이가 멈칫 이쪽을 올려다본다. 놀란 얼굴로 영준을 보던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왜 이런 곳에 당신이 있느냐는 표정이다. 이건 환각이겠지. 영준은 혼란 속에서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진 속에서 본 도연이 이런 곳에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왜 어린 시절의 도연의 기억과 모습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가. 영준은 자갈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점점 처음 보았던 3살 경의 아이로 다시 어려지는 것을 보며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어린 도연은 자꾸만 작아지더니 이내 갓난아기로 변했다. 아기는 담요에 쌓인 채 조그만 주먹을 휘두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 소리였다. 영준은 퍼뜩 앞으로 나섰다. 영준이 산에서 내 들었던 아기 울음소리였다. 익숙한 음성에 순간 경계를 푼 영준은 다가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담요에 쌓인 채 서럽게 울던 아이는 영준이 자신을 안아 올리자 눈물을 뚝 그쳤다. 그리고 단숨에 조용해졌다. 마치 돌덩이처럼.

“이게 도대체…….”

영준은 신음을 흘렸다. 너무 무겁고 단단하다. 안아 든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딱 갓난아이 크기의 조그만 돌부처였다. 비바람에 닳아 형체조차 희미한 모습의 그것은 마치 영준을 놀리듯 차갑게 굳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영준은 기가 막혀 그것을 도로 바닥에 내려놓으려 했다. 그 순간 뭔가가 발꿈치를 꽉 물었다.

“악!”

깜짝 놀란 영준은 들고 있던 손전등을 무기처럼 뒤로 휘둘렀다. 그러나 거기 있는 것은 혼령도 괴물도 아니었다. 발치에 작은 개 한 마리가 화가 난 것처럼 영준에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너는……?”

영준은 뒤로 물러나 빛을 비추어 보았다. 반투명한 요크셔는 낯이 익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영준은 지옥 같은 귀도에서 자꾸만 만나는 낯익은 존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간호사의 집 거실에서 보았던 개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귀도에 와 있다. 죽은 혼령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하려 해도 도대체 어떻게, 왜 이런 곳에 나타났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요크셔는 다시 물기라도 할 것처럼 허공에 이를 딱! 하고 부딪히더니 월월 짖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빙빙 돌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영준은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개의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다.

“이건……?”

영준은 깜짝 놀라 주변을 향해 빛을 뿌렸다. 도연의 환각이 가지고 놀던 자갈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계속 걸어오던 매끈하던 길이 아니라 이곳은 온통 자갈밭이었다. 그리고 자갈밭 가득, 높이 솟은 돌탑이 여기저기 솟구쳐 있었다. 족히 백은 되는 수였다.

“이게 뭐지?”

영준은 느닷없는 광경에 위축되었다. 소원을 비는 돌탑은 보았지만 이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밑동이 넓고 나지막하게 솟은 그것은 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돌로 만든 무덤 같았다.

설마, 영준은 섬뜩한 상상에 뒷걸음질 쳤다. 그때 바로 뒤에 있던 돌탑을 건드렸는지 어설프게 쌓였던 자갈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왓, 하고 물러서려는데 쓰러진 자갈 사이에서 뭔가 희끗한 것이 비췄다. 불을 비춰보다 그것은 흰 천에 쌓인 작은 뭉치였다. 맙소사. 영준은 얼어붙은 채 그것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의 고민 끝에 자갈을 마저 치워냈다. 거친 호흡 속에 천을 풀자, 안에서 조그만 백골이 쏟아졌다.

“우욱……!”

아무리 상상했어도 직접 대면한 충격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영준은 조그만 해골들을 확인하고 난 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주변에는 무수한 다른 돌무덤들이 쓸쓸하게 솟아있었다. 문득 방금 영준이 쓰러트린 돌무덤에서 작은 반딧불 같은 빛이 반짝이며 솟아올랐다.

도연은 다리를 굽혀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무릎 위에 얼굴을 묻자 한껏 웅크린 몸이 조금 안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도연은 울먹였다. 손에 쥔 조그만 손전등만이 발치를 동그랗게 비추고 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그것을 쥐고 있자니 어쩐지 자신의 발이 이상해 보인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조그만 발과 가느다란 발목. 여자애 같이 고운 손과 통통한 팔, 자신의 것이 분명한데도 어쩐지 몸이 어색하다.

이런 곳에 와버려서야. 도연은 훌쩍이며 생각했다.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곳에 온 걸까.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또, 또 누구였지. 중요한 사람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젠 싫어.”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린다. 도연은 작은 손으로 젖은 얼굴을 문질

러 닦아냈다. 그때 붕, 하고 어디선가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왔다. 파리는 젖은 얼굴과 손, 무릎 등을 치근거리며 귀찮게 웅웅거렸다. 짜증스레 그것을 몰아내자 다시, 또 한 마리가 달려든다. 도연은 그만 화가 나 숙였던 고개를 들고 성가신 것을 쫒아내려 팔을 휘저었다.

‘미안.’

조그만 목소리가 소근거린다. 도연은 놀라 말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창백한 아이가 서 있었다. 맨발에 마른 몸에는 병원복이 걸쳐 있었다. 보드랍게 밀린 머리와 눈썹이 어딘지 기괴한 느낌을 주었지만, 아이는 뒷짐을 진 채 부끄러운 듯 서 있었다. 헉, 하고 숨을 몰아쉬는 사이 아이가 단숨에 다가왔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도연의 머리를 만졌다.

‘괜찮아. 곧 형이 올 거야.’

“형?”

다정한 목소리에 두려움도 잊고 도연은 되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왜 모르는 것처럼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아이의 뺨에 검은 파리가 달라붙어 슬슬 기었다. 이미 익숙하다는 듯 아이는 그것을 떨쳐 내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조심해야 해. 얼른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아이는 머리를 다시 한 번 토닥여준 뒤 타박타박 어디론가 사라졌다. 뒤따라가려 일어났으나 다리가 저려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른이라고? 도연은 자신의 작고 연약한 손을 펴 보았다. 언제 어른이 되지? 어른이라는 것이 뭐지?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형이란 누구일까? 도연은 눈을 꼭 감은 채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누가 온다는 걸까, 누군가 나를 구해주러 온다는 뜻일까. 형은 누구일까.

-어두운 길이 무섭다고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럼 그보다 어두운 길은 없는 거야. 넌 더 이상 8살 어린애가 아니야, 잊지 마!-

갑자기 누군가 머릿속에서 소리를 쳤다. 눈 감지 마, 잊지 마!

도연은 얼른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쩌렁쩌렁하던 외침은 귀를 웅웅 울릴 지경이었다. 어쩐지 몸이 뜨거워진다. 도연은 자신의 손을 활짝 펴 보았다. 곧고, 쭉 뻗은 손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영준은 무수히 많은 돌무덤을 발로 마구 차 무너뜨렸다. 그때마다 허공으로 조그만 빛이 깜빡이며 날아올랐다. 작은 빛이 영준의 몸에 닿을 때마다 마치 벌에 쏘이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라기보다는 정신적 고통에 가까웠다.

그것은 너무나 오랜 옛날부터 반복된 살해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무수히 많은 무덤이 모두 제1의 도연이며, 또한 99번째의 도연이었다. 이 끔찍한 짓이 언제부터 반복되어 왔는지는 몰라도, 도연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확이라고 했지.”

영준은 씩씩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수확, 마치 열매를 따듯 어린아이를 제가 원하는 정도로 몰아가 고통을 주어 만족스러울 때 먹어치우는 짓. 그게 이것의 천성이라면 설득도 해결도 불가능하다. 내가 이 짓을 멈출 수 있을까? 영준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돌무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생각했다. 맞서 싸워 이겨낼 수 있을까? 이토록 오래된 존재를? 아니 달아나는 것만 해도 불가능했는데? 약한 생각이 들었다.

“도연, 도연을 먼저 찾아야 해.”

영준은 허공을 향해 부르짖었다. 무덤은 모두 99개였다. 그것은 너무나 의도된 숫자였다. 놈은 오랫동안 공을 들인 만큼 100개를 채우려 할 것이다. 100을 채우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결코 좋은 꼴은 보기 힘들 것이다. 영준은 이를 악물었다.

도연은 몸을 움츠린 채 자신을 지켜보는 무수한 혼령들 사이를 지났다.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도연의 모습을 손가락질했다. 육체가 없기에 마음의 타락을 숨길 수 없는 혼령들은 저마다 기괴한 신체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천동무 만동무 머리칼에 얽힌 동무, 어데든지 같이 가세 흉은 갑작을 잡아먹고, 역신은 비위를 잡아먹고, 도깨비는 웅백을 잡아먹고……’

웃기지 마. 도연은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 노래가 원래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갑작은 흉을 잡아먹고, 필위는 호랑이를 잡아먹으며 웅백은 산과 못의 귀신을 잡아먹는다. 이건 귀신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 도리어 역질 귀신을 쫓는 말이다. 이것을 거꾸로 하여 제멋대로 부르는 것뿐이야. 네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야.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왜 처음부터 깨닫지 못했을까.

도연은 이를 악물고 되뇌었다. 영준을 찾아, 여기를 빠져나가 줄 거야. 나쁜 아이를 먹는다고? 언제까지고 날 속여 네 장난감처럼 흔들어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아? 가장 오래 버텼다고 했다. 내가 제일 오래 버틴, 마지막 아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끝이 되어 주겠어.

도연은 비틀거리며 귀도를 걸었다. 일부러 험한 길로만 향했다. 편한 곳으로 가면 점점 내밀한 지점으로 연결된다. 옳은 길은 고되고, 여러 번 넘어질수록 일어나는 법은 익숙해진다.

달려드는 손을 피해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멀리 뭔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빛?”

도연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위아래로 쉬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들고 뛰는 것처럼…….

“최영준!”

도연은 몸을 일으켜 있는 힘을 다 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뛰려 할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릿한 악취가 풍겨왔다.

‘도연아.’

‘우리 도연이 어디 있니.’

달리려던 모습 그대로 도연은 얼어붙었다. 누군가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평생 들어온 귀에 익은 음성. 숨을 곳도 없는 곳에서 오직 자신뿐이었다.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뒤에서부터 들렸다. 돌아보자 거기에 익숙한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두 혼령은 혼자 발광하듯 푸르게 빛난다. 자신이 최대한 잘 볼 수 있도록.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원망과 조소로 가득한 표정으로. 네가 우리에게 뭘 했는지 한 번 보렴, 아들아. 네가 바라던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넌 정말, 정말 나쁜 아이야.

“아니야.”

도연은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아니야! 당신들은 내 부모가 아니야!”

‘보렴, 네가 뭘 했는지.’

“아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려는데 두 사람이 가리키는 곳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뱀에 온몸이 감겨 시커멓게 독이 오른 채 죽은 기범이었다. 그는 검게 부어오른 풍선 같은 얼굴로 도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심하게 부어 눈도 잘 떠지지 않는지 진물이 묻어난 눈에서 끈적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기범 아저씨는 살아있어!”

안간힘을 쓰며 외치는데 목소리가 어쩐지 이상하게 가늘었다. 마치 변성기가 온 소년처럼 높고 찢어지는 음성이었다. 도연은 헉하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또 시작이다. 이 미친 곳에서 나는 얼마나 휘둘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야, 아니야.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당신들은 다 거짓말을……!”

영준이 있던 곳으로 가려던 도연에게 오래된 친구가 다정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단경호였다.

‘너는 언제나 계집애 같은 눈으로 날 봤지.’

그는 옆에 누군가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는 여전히 중학교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거만한 표정으로 도연을 바라보며, 마치 소개하듯 여자의 손을 들어 보였다. 고개를 든 것은 소영이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야!”

소영의 손에는 둥근 물체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도연에게 잘 보라는 듯 들어 올렸다. 머리카락을 휘어 감은 소영의 손에는 중혁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아니야, 아니…… 다들, 무사히.”

‘정말로 확신할 수 있어? 정말로? 사실은 네 기억이 모두 진실이고 내가 해준 말이 모두 거짓이라면 어떡할래? 사실은 기범이 아저씨도, 소영도 네 기억처럼 모두 죽었고 너만 살아있다면? 모든 게 네 착각이고 꿈이라면? 넌 사실 그 후 여기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면? 모든 게 네 꿈이 아니라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어?’

“……!”

꿈이라고? 꿈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자신의 믿음이 바보같을 정도였다. 맹목적인 믿음도, 친절도, 상냥함도, 애정도, 다 내가 늘 꿈꿔오던 것이었다. 비록 나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주길 바랬었다. 사실은 그 모든 게 내 잘못이 아니기를, 큰 착각이나 오해이길 기도했었다.

내 꿈이 만들어낸 환상. 그렇게 생각하자 너무나 쉽게 납득되었다. 추억, 웃음, 모두 내 것은 아니었다.

도연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몸은 어느새 조그맣게 줄어들어 있었다. 작은 아이로 변한 도연의 주변에 검은 그림자가 몰려들었다. 그것은 작은 덩어리가 하나로 모이는 것처럼 조금씩 모여 점점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어설프게 사지가 돋은 추한 덩어리가 되었다. 거기에는 눈도, 입도 있었지만 결코 살아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굶었기에 더욱 오랫동안 키워온 제물 앞에서 만족스럽게 웃는 오래된 악의가 있을 뿐이었다. 남의 고통과 괴로움을 만끽하며, 무력한 아이를 사냥하는. 길게 늘어난 손이 뻗어 왔다. 이제 수확의 시기였다.

전의를 상실한 도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죽는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눈 떠 이 바보야!”

그때 거친 손이 도연의 뒷목을 잡아 확 당겼다. 덜렁 들리듯이 끌려간 몸이 뜨거운 가슴에 안겼다. 비릿한 악취가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의 땀 냄새가 훅 느껴졌다. 영준이었다.

“뭘 포기하고 앉았어!”

“하지만 난, 어린애가 되어 버려서…….”

“어린애라니 무슨 소리야?”

영준은 황당하다는 듯 버럭 고함을 질렀다. 도연은 하지만, 하지만, 하고 말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어?”

허공으로 들려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두 다리는 단단하게 땅에 붙어 있었다. 완전한 성인의 몸이었다.

“눈 감지 말라고 했지, 저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영준은 거칠게 말하며 도연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팔을 잡아당겼다.

“가자, 어서!”

둘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것에 뒤에서 끔찍한 분노가 느껴졌다. 귀도에 웅크린 악의 그 자체였다. 길은 급격히 오르막으로 변해갔다. 걷거나 뛰는 것이 아니라 기어 올라가다시피 해야 했다. 도연을 먼저 앞서 보내고 영준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숨이 차도 멈출 수는 없었다. 도연은 숨이 터져라 계속 기어올랐다. 붉은 달이 멀리서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옆, 별처럼 빛나는 아주 작은 빛이 있었다. 오직 거기만 보고 달려 올라간다. 아무리 해도 가까워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라는 의문이 계속 차올랐다. 누군가, 제발, 누군가, 나는 괜찮으니까, 제발, 제발!

간절한 소망을 울먹이는 동안, 영준은 메고 있던 배낭 하나를 끌러 뒤로 던져 버렸다. 따라오던 것들이 우르르 배낭으로 달려들었다. 갈가리 찢어 생의 맛을 보겠다는 듯 순식간에 난도질을 한다. 그때 배낭에서 천에 둘둘 감긴 돌부처가 떨어졌다.

그것은 어린 도연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귀도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뒤를 쫓던 무리들은 갑자기 멈춰서 돌부처 주위에 몰려들었다. 으득으득 하는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리 갉아도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단단한 대체재였다.

달리는 중간 뒤를 돌아보자 아우성의 가운데 흔들리는 작은 초가 하나 서 있었다. 그것은 촛농이 다 녹아, 더 이상 심도 얼마 남지 않은 초였다.

그리고 그 옆, 창백한 소녀 하나가 손으로 그들이 가는 방향 저 앞을 가리키고 있었다. 찢긴 몸에 걸친 남방이 헐렁거렸다. 그녀는 도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어서 가라는 듯, 두 번 다시는 오지 말라는 것처럼 보이는 손짓이었다. 기도의 보답을 해준 이가 누구인지 겨우 확인을 한순간, 도연은 갑작스레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빠아앙----”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두 인영으로 인해 운전자는 기겁을 하고 차를 멈춰 세웠다. 뒷좌석에 두었던 애완견이 난데없는 봉변에 큰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부부는 혹시 자신들이 사람을 친 것은 아닌지 놀라 서둘러 도로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낮에 잠시 만났던, 국토대장정을 한다던 청년 둘이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니, 낮에 봤던 총각들 아냐?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왔어요?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전라남도야!”

둘은 부부의 말을 듣더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짓다가,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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