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아득한 봄날
카트 바퀴가 꼬였는지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평일 낮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마트에는 일가족이 같이 온 이들과 신혼부부로 보이는 젊은 커플, 딸이나 아들을 대동한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들을 집어 담고 있다. 박스로 넣은 사과, 여섯 개들이 맥주, 몇 근이나 되는 소고기, 사람 키만한 망에 들어있는 양파, 산지직송 10kg 호박고구마. 정말 필요해서 사는 걸까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무조건 담고 보는 걸까.
“이거 어때?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거야.”
불쑥 코앞에 내밀어진 것은 샴푸다. 여배우의 사진이 크게 박혀 있는 큰 샴푸 옆에는 그보다 반 정도 작은 사이즈의 병이 박스테이프로 둘둘 말아 붙어 있었다.
“이거도 샴푸잖아. 기왕 붙어 있는 거로 사려면 린스로 해야지.”
“그래?”
손에 든 샴푸를 빤히 바라보는 눈이 자못 진지하다.
“그럼 다른 걸로 골라올게.”
“아니, 잠깐만.”
뒤돌아 목욕용품이 쌓여있는 곳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금세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사람 많은 곳은 가기 싫다고 그렇게 버티더니 꽤 즐거워 보였다.
나는 리스트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찬다. 소영이 적어준 리스트는 물건들의 우선순위도 마트 내 물건 배치의 동선도 전혀 배려되어 있지 않다. 치약 바로 아래에 돼지고기가 그 바로 밑에는 다시 욕실매트가 적혀 있는 식이다. 그것도 괄호치고 (예쁜 것) 따위의 사항이 추가된다. 다른 건 다 똑똑하게 잘하면서 이런 데서는 허술하다.
언제나처럼 최대한 빨리, 저렴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장보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벽이 나타났다. 태어나서 대형마트에 처음 와 본다던 도연이 새 집들이 물건을 원한 것이다.
처음에는 통화 중에 마트에 간다고 했더니 자기 물건도 사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집에 물건이 너무 없다며 나열되는 필요한 것들이 애매하게 많다 싶어 그냥 같이 가자고 했고, 언제나처럼 사람 많은 곳은 싫다고 빼는 것에 괜한 고집이 생겨 어르고 달래고……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곳이고, 이미 몇 번 왔던 곳이라 별문제 없을 거라는 호언장담에 넘어오기에 웬일인가 싶었더니. 실은 본인이 흥미가 있던 모양이다.
바로 사야할 물건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나와 달리 도연은 마트 입구부터 샅샅이 모든 매장과 진열대를 구경하려 했다. 입으로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앞장서서 가는 등에 ‘흥미진진’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 처음 오는 장소에 끌고 온 것도 있고 해서 순순히 따라다녔지만 마트에 들어오고 벌써 사십 분이 지났는데 리스트에 있는 물건들 중 절반은 고사하고 아직 식품관이 있는 지하는 내려가지도 못했다. 생활용품에서 이러는데 지하에 내려가면 얼마나 열중할지 짐작도 안 된다.
“이건 어때? 린스가 붙어 있는데.”
도연이 돌아왔다. 손에 샴푸 통을 들고 있었다. 쳐다보니 아까 것보다 훨씬 비싼 제품이었다. 천연 허브가 들어가 있고, 민감성 두피가 어쩌고 하는. 고작 머리 감는데 이런 비싼 돈을 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갖다 놓고 오라고 말하려고 했다.
“잘 골랐어.”
천연 허브 성분의 샴푸가 카트 안으로 들어갔다. 필요 없는 돈 4천 원이 더 나가게 생겼지만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연은 으쓱한 얼굴로 카트에 한쪽 손을 올렸다.
‘천연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질 거야.’
나는 뒤를 따라가며 비싼 샴푸의 장점을 열심히 떠올렸다.
‘머리도 덜 빠질 거야. 소영이가 좋아하겠네. 웬일로 비싼 거 사 왔다고. 그리고 도연이 저걸 쓰면 향이 좋겠지. 누가 쓰던 장점은 많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마지막 생각이 머리에 걸렸다. 나는 힐끔 카트에 담긴 샴푸통을 훑었다. 로즈마리향이라고 쓰여 있었다. 로즈마리가 어떤 향인지 알지 못하지만. 갑자기 도연이 나를 돌아보았다.
“바디젤도 사가자.”
“바디젤?”
우리 집에는 바디용품이 없다. 소영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비누로 몸을 씻었다. 리스트를 확인하자 확실히 거기에 바디젤이라는 표기가 있기는 하지만……
난생처음 바디용품을 사려니 나도 뭘 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 어색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알아서 골라올래?”
“알겠어.”
도연이 바디 쪽으로 이동했다. 리스트를 보니 아무래도 오기 전에 소영이와 통화를 한 모양이다. 같이 간다고 말을 해놨더니 그녀석이 지 입맛대로 약을 친 모양이군.
곧 도연이 연분홍색 통에 든 제품 하나를 들고 왔다. 뒤집어보자 가격표가 보였다. 만원이었다. 그냥 비누와 딸기향 사이에서 나는 잠시 갈등했다.
자신이 골라온 제품 두 개가 무사히 카트에 들어가는 것을 도연이 가만히 쳐다보다 등을 돌렸다. 순간 지나간 그의 얼굴은 일견 무표정해 보였지만 나는 그 무표정 속에 숨겨진 감정을 읽는 것도 꽤 익숙했다. 뭐든지 일단 살 때는, 함께 사는 걸 좋아한다. 따로 살지만, 기분만이라도.
“다음 칸으로 가자. 욕실용품으로. 욕실매트 사야 해.”
“욕실매트가 뭐에 쓰는 건데?”
“그 왜, 목욕탕 앞에 까는 발깔개.”
“나도 그거 필요한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휙 하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카트 미는 사람 발을 좀 맞춰달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얼른 그 뒤를 따른다. 필요하면 필요한 거지 필요한 것 같은 건 또 뭐람.
“그게 뭐야?”
“생리대.”
“……그걸 왜 사는 건데?”
“리스트에 적혀 있어. 동생이 쓸 거야.”
분홍색 생리대 대자와 중자를 집어 카트에 던져 넣는다. 도연은 뭐가 좋은 느낌인 거냐고 중얼거리더니 욕실매트로 생리대를 덮어버렸다.
샤브샤브용 돼지고기와 야채를 카트에 담자 벌써 짐이 한 가득이다. 이 중 절반은 나와 도연이 합심하여 충동구매한 물건이었다. 샴푸, 욕실매트, 곰팡이제거 실리콘, 1+1으로 묶은 냉동만두, 1+1으로 묶은 치킨까스, 시럽이 붙어있는 핫케이크가루, 이상한 무늬의 휴지 걸이 같은 것들이 카트 구석을 굴러다닌다. 계산하기 전에 어떡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결국 그것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사고 말았다.
처음이란 항상 중요한 법이다. 첫 마트 쇼핑의 전리품이다. 계산대에서 하나씩 꺼낼 때마다 무엇이 자기 물건인지 체크하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휑한 집이 좀 사람 살만한 곳으로 변하겠지.
“집에 들렀다 가지 않을 거야?”
주렁주렁 비닐봉지를 도연이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소영이가 너 데려오라고 했는데.”
“됐어. 다음에…….”
도연의 다음은 절대 오지 않는다. 짐을 나눠 들고 같이 내리자 도연이 ‘그냥 가지 뭘 하러’하고 투덜거렸다.
빌라입구에 들어서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이 보인다. 아파트 단지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이곳에는 종종 아이들이 놀러 온다. 10살, 11살 정도 된 아이들 여럿이 술래잡기 비슷한 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길이 간 것은 그 중 한명으로, 명백하게 이미 죽은 아이였다. 허름하고 커다란 멜빵 치마를 입은 아이는 무릎 양말 아래가 희미했다. 놀고 있는 몸 곳곳에는 심한 흉터가 나 있었다.
가끔 이런 광경을 보게 된다. 모르는 척 산자들의 무리에 끼어들어 섞이는 혼령들, 신기한 것은 다른 이들이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예민한지 종종 이런 광경이 보였다. 특별히 나쁜 영향은 없지만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아예 익숙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연의 빌라로 방향을 바꿨을 때 아파트 쪽 길에 여자 한 명이 나타났다. 편안한 옷을 입은 40대 초반의 여성이 아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인희야! 인식아! 그만 들어와- 밥 먹어야지.”
“조금만 더 놀고오!”
“안 돼 이제 학원도 갈 시간이야. 들어와!”
투덜거리며 아이 둘이 무리에서 빠져나간다. 손을 흔들고 엄마의 옆으로 달려간 아이들은 강아지들처럼 양옆의 손을 하나씩 잡고 매달렸다.
“나도 학원 가야되는데.”
“나도.”
“집에 가자.”
“조금만 더 놀다 가자-”
“안 돼 엄마한테 혼나.”
무리의 일부가 빠져나가자 갑자기 썰물처럼 아이들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저마다 손을 흔들고, 때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이터에서 집으로, 혹은 학원으로 갈 곳을 찾아 뛰어간다. 그대로 허공으로 뛰어오를 것 같은 가벼운 뜀박질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혼령 하나만이 오롯이 남아 있다. 아무 곳에도 갈 수 없고,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존재.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서 있는 아이 주변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생의 흔적도, 존재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숙인 고개 아래 뭔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흐릿한 다리 아래는 누군가 붓으로 슥 문질러버린 것처럼 뭉개져 있다. 혼자 남게 되자 흉터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인다. 교통사고였을까?
“가자.”
도연이 먼저 앞장섰다. 집으로 가려면 아이의 바로 옆을 지나가야 한다. 도연은 아이를 스치듯 걷는다. 몸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빌라 입구 계단으로 올라섰다. 모르는 척하는 것만은 점점 익숙해진다.
식탁 위에 사 온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식료품을 먼저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도연은 그런 것보다는 마구잡이로 집어온 충동구매목록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거 지금 써볼까.”
“욕실에 곰팡이 있어?”
“아니.”
“그럼 지금 써도 소용없지.”
“그래?”
곰팡이용 실리콘제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던 도연이 얼른 내려놓는다. 그리고 욕실매트를 집어 든다. 나는 냉장고로 들어갈 물품을 정리하며 흘깃 바디젤을 쳐다보았다.
도연의 집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더 집 같이 변했다. 처음 왔을 때의 살벌한 광경- 살림이 들어 있던 수많은 박스와 온통 비닐과 신문이 붙어 있던 창문은 이제 떠올리기 힘들었다.
2주 전에 내가 직접 바르고 간 아이보리 벽지와 커튼이 상당히 잘 어울린다. 아무래도 창이 훤히 보이는 것은 적응하기 힘들다고 해서 구매한 커튼이지만 전의 것보다 색이 밝아, 덕분에 전체적으로 집 분위기가 온화해졌다. 온 집안에 쌓여있던 박스 대신 이제는 장식장과 서랍장에 수납을 하고, 소파의 비닐도 벗겨 그 위에 부드러운 천을 깔아 놨다. 소파를 보는데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다. 저 위에서 있던 일이 새삼 생각난다. 왠지 간지러운 기분에 얼굴을 슥 문질렀다. 불쑥 도연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어때?”
주방 밖으로 따라 나가보니 욕실 앞에 매트를 깔아 놓았다.
“갈색이라 벽지하고도 잘 어울리네. 괜찮다.”
“그렇지?”
뒤늦게 집을 꾸미는 것에 재미를 붙인 그는 요즘은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물건을 사온다. 대부분은 딱히 필요도 없는 장난감 같은 물건이지만 본래 사람 사는 집이라는 것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주방으로 돌아와 식탁 구석에 놓인 닭 벼슬이 달린 주방 장갑을 들고 나는 그만 픽 웃어버렸다.
“가려고?”
“응. 소영이가 집에서 기다려.”
“그래.”
“정말 안 갈래? 오늘은 너 꼭 오라고 했어. 같이 저녁 먹자고.”
“다음에, 다음에 갈게.”
한사코 사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소영이 쪽에서는 친해지고 싶어 한다. 원래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요즘은 도연도 나도 전보다 혼령을 보거나 그쪽에서 따라오거나 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실제로 줄어들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소영이 건강해진만큼 딱히 필요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연은 또 이 일에 대해선 이유를 묻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하고 나가려는데 도연이 잠깐만, 하고 불렀다.
“이번 주 중에 한 번 와서 영어 좀 봐줘.”
“그래? 언제가 좋을까.”
“아무 때나 너 편한 시간에 맞추면 되니까. 오기 전에 전화나 한 통 해.”
“알았어.”
나는 머뭇거리다 결국 손만 들어 보이고 나왔다. 현관을 닫자 한숨이 푹 나온다.
도연은 요즘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건 좋지만, 덕분에 공부하는 시간이 바빠 따로 만나거나 연락할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도연 쪽에서 변덕스러운 충동이 생기지 않는 이상.
빌라 밖으로 나오자 느긋한 봄볕이 눈부시다. 주차해놓은 곳으로 가려는데 놀이터에 서 있는 혼령이 눈에 들어왔다.
“…….”
죽은 아이들은 대부분 쉽게 사라진다. 어른들처럼 세상에 남긴 것도, 미련도 많지 않아 악령이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세상에 남아 떠도는 경우는 대부분 사고나 학대로 죽은 아이들이다.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 두려움과 충격에 사로잡힌 영혼, 혹은 너무 어린 나이에 짊어질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마음이 흐트러져버린 아이들이다.
다른 경우도 아니고 어린아이니만큼, 돕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죽은 이들의 일에 상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서두르지 않으면 차에 두고 온 고기가 녹아버릴 것이다.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삶이 먼저임을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인생을 잃고 만다.
나는 산 지 얼마 안 된 중고차에 시동을 걸었다. 드드드드 하는 한심한 소리가 한참이나 나다 겨우 출발한다. 망할, 역시 그냥 오토바이를 사는 게 좋았는데. 혀를 차는 사이 차창 밖으로 풍경과 함께 아이의 혼령이 멀어져갔다.
“도연 오빠는?”
“오늘은 바빠서 안 된대. 다음에 보자.”
짐을 받아든 소영의 입이 삐죽 나왔다.
“항상 다음에라고 하지만 온 적 없잖아.”
“정말 바빠서 그래.”
“3인분으로 준비했는데…….”
거실에는 샤브샤브용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나 있었다. 육수를 끓이기 위한 휴대용 버너 주변에는 온갖 야채와 떡, 색을 입혀 만든 알록달록한 수제비에 각종 소스까지 즐비하다. 저녁 시간은 아직 2시간이나 남아 있는데 성급하기도 했다. 아마 기대를 많이 한 것이겠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도연 오빠, 나 싫어하는 거 아냐?”
“뭐? 아냐.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냥.”
풀죽은 얼굴로 돌아선 소영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스럭거리며 마트에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식탁에는 앞 접시가 세 개 준비되어 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은수저까지 나와 있었다.
소영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떠오르거나, 아예 잊으리라 생각했는데 후자인 모양이다. 아팠다는 것은 알지만 무슨 병이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일이 해결된 후 학교 친구들 몇이 찾아왔지만,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도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영은 도연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분명한 호감을 가지고,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따로 연락을 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소영이에게 물었다.
“소영아.”
“응?”
“너 도연이가 좋니?”
팩을 뜯어 얇은 고기를 접시에 옮기는 손이 멈칫한다. 소영이의 맑은 눈동자를 나는 뚫어져라 응시했다.
“응.”
어디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영이는 아무렇지 않은 걸 봐서 내 귀에만 들리는 모양이다.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갑자기 소영이 혀를 낼름하고는 킬킬 웃는다.
“아오 간지러워.”
그리고는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몸서리를 치는 시늉을 했다.
“표정이 왜 그래? 되게 놀랐나 보네. 왜, 내가 도연 오빠가 남자로 좋다고 할까 봐?”
“어…… 뭐.”
“좋긴 한데 그런 건 아냐.”
“그럼?”
“음…… 도연 오빠는 말이지.”
뭔가 딱 맞는 어휘를 찾고 싶다는 얼굴로 소영은 말을 잠시 끊었다. 소영이가 침묵하자 내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 단단히 묶인 매듭이 점점 더 복잡하게 꼬인다.
“잘해주고 싶게 만들어.”
“잘해주고 싶어?”
“응.”
부드럽게 웃는 얼굴은 내 동생이지만 아름답다. 모나리자 같다고 할까.
“뭐라 그러지, 상냥하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어져. 되게 딱부러져 보이잖아. 그런데 실은 외강내유라고 해야 하나. 가능하면 맛있는 걸 먹여주고 좋아하는 걸 해주고, 웃겨주고 싶어져.”
“그게 연애감정하고 뭐가 달라?”
“다르지.”
소영은 칼을 쥐지 않은 왼쪽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연애 감정 같이 두근두근-하고 같이 있고 싶다!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뭐랄까. 온화한 기분? 엄마 같은 마음?”
“엄마?”
목소리가 뒤집혀 나온다. 한참 어린 꼬맹이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
“모성애라는 거야, 바보야. 오빤 얼굴이나 다 멀쩡한데 가끔 꼰대같이 구는 통에 그런 소리 듣기엔 좀 부족하지.”
“모성애라고.”
“도연 오빠는 분명히 나보다 연상인데도 왠지 동생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알 것 같긴 하지만. 모성애라고?
“어쨌든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건 아니야. 별걱정을 다 한다.”
“중혁이한테는 안 그러잖아 너.”
“아 그 오빠는 양아치니까 그렇지!”
눈을 흘긴 소영이 쟁반에 정돈된 음식을 담아 거실로 나갔다. 나는 텅 빈 고기 팩을 집어 들었다. 핏물이 고여 있었다. 살짝 기울이자 꽤 많은 양이 한쪽으로 고여 하얀 플라스틱을 물들인다.
“후…….”
보이지는 않지만 이 대화로 긴장해 흘린 내 정신적 출혈도 만만치 않으리라.
한밤중의 전화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공포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심야에 울리는 전화벨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경우가 없다. 대부분 비보나 경고를 예감한다. 예고되지 않은 전화를 싫어하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여서, 나도 동생도 항상 자기 전에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맞춰놓는다. 혹시라도 전화소리에 다른 사람이 깨지 않도록.
머리맡에서 윙윙대는 핸드폰의 진동소리, 어둠 속에서 연하게 빛나는 글자는 ‘김도연’이라고 쓰여 있다. 순식간에 잠이 밀려나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왜?”
-여보세요.
급한 마음에 인사 순서가 뒤바뀌었다. 바뀐 순서를 재배열 시키지 못하고 전화기 너머 상대가 머뭇거린다.
“어, 여보세요.”
-잤어?
“응, 아냐. 이제 자려고 했어. 무슨 일이야?”
-……아, 저기.
“응.”
-괜찮나 하고.
무슨 소린가 싶어 전화기를 떼고 새삼 들여다본다. 김도연, 발신인 확인은 그가 맞다.
“아무 일 없지?”
-응.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끝에 불안이 묻어있다.
“괜찮아?”
-그래. 끊을게.
“잠깐만……!”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전화가 갑자기 툭 끊어졌다. 나는 정적 속에 남겨졌다. 핸드폰 너머로는 통신 두절음 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옷을 갈아입는 무슨 일인지 열두 가지 가설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차피 이래서야 다시 잠을 자기도 글렀고 그에게 가야 했다. 언젠가 그를 혼자 남겨두었던 적이 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좌초된 배처럼 책상 밑에 숨어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그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빌라 앞에 도착해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는다. 봄이라지만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얇은 재킷 사이로 바람이 훅훅 들어왔다. 나는 어둑한 빌라를 올려보았다. 도연의 집이 있는 3층 창문의 불은 꺼져 있었다. 자고 있는 걸까. 확실히 통화상으로는 급한 느낌은 아니었다. 차에 기대 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습관적으로 스티커를 문지르며 고민하다가 문자를 넣어봤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빌라 근처야.’
답을 기다리며 잠시 멍하니 있는데 놀이터가 눈에 들어온다. 낮의 어린아이 혼령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은 듯 자세도 그대로다. 붉은 체크무늬의 멜빵치마, 얼룩진 더러운 블라우스, 헝클어진 머리는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푹 숙이고 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돌렸고 그 순간 핸드폰이 웅웅 하며 반가운 진동을 전한다.
‘올라와.’
몸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인다.
“괜찮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관 바로 앞에 도연이 서 있었다. 살짝 헝클어진 머리나 옷차림으로 봐선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그냥 자지 왜 왔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렇게 끊었는데 어떻게 다시 자.”
의도하지 않았지만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걱정되는데, 어떻게 다시 자란 말이야…… 도연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가 곧 머쓱하게 말했다.
“별거 아닌데. 미안해.”
“아냐, 진짜 괜찮은 거야?”
나는 한숨을 쉬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냥, 꿈을 꿔서."
미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쁜 꿈?”
“어.”
말하기 싫다는 듯 도연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어리둥절하다 그를 보니 맞잡은 손을 비틀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나까지 긴장이 된다. 그리고 보니 아직 새벽이다. 한밤중의 그는 편안한 차림이다. 얇은 티에 헐렁한 바지는 입고 벗기도 쉬워 보인다.
들어가도 돼? 자고 가도 될까?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온다. 밑져야 본전인데 물어나 볼까?
“들어와.”
고민하던 것이 바보 같을 정도로 단번에 도연이 한발 물러섰다.
“그래.”
그때 하필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영이었다. 이 새벽에 어디에 갔느냐는 전화에 아쉬운 마음으로 도연을 보자 그는 묘한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했다.
“잠도 깼으니까, 괜찮아. 난.”
빌라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찼다. 봄의 공기는 때로는 차고 때로는 따뜻해지며 조금씩 여름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아직은 더 즐기고 싶은 이 짧은 한 때…… 나는 재킷에 손을 꼽고 빌라 계단을 내려간다.
도연의 악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부터 잠이 들면 세 번 중 한번은 악몽이었다. 하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되었든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무척 서툴러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라고 해놓고는. 때문에 많은 것들을 짐작해야 한다.
이번에는 무슨 꿈이었을까. 전화를 한 것을 보면 아마도 나에 대한 것이리라. 그의 꿈속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등장했던 걸까. 무슨 꿈이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던 걸까.
때로 도연은 굉장히 불안해했다. 그 불안은 변덕으로 표현된다. 깜짝 놀랄 정도로 다정했다가 한순간 매정할 정도로 싸늘하게 군다. 그러다 다시 다가오고, 그리고 또 밀어내고……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혼자 있고 싶어 한다. 가끔 억지로 다가와 곁을 차지하면 질색을 하면서도 기뻐할 때가 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독을 즐긴다는 말은 진정한 외로움을 아는 사람에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인가.
‘잘해주고 싶게 만들어.’
소영의 말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본질에 가까웠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른 색이 덧발라져 있다. 그렇게 덧칠된 색의 감정들은 복잡하면서도 의외로 단순한 형태를 띤다.
차 문을 열다 나는 다시 놀이터를 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죽은 이는 어떨까. 그들도 외로워한다. 외롭고, 외로워서 더욱 살아있는 이들에게 매달린다.
집에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그녀는 부쩍 밤에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한다. 돌아가 누우면 네 시간 정도는 더 잘 수 있다. 이불 속은 아직 따뜻할 것이다. 망설임, 합리화, 해야 할 일들에 대한 피로감과 일상의 바쁨.
어린아이는 세상에 쉽게 남지 않는다.
"이름이 뭐니?"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닥을 응시한 채 몸을 조금씩 좌우로 흔들 뿐이다. 나를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한밤중의 놀이터는 적막이라는 단어가 두꺼운 커튼처럼 내려 있었다. 그 묵직하고 쓸쓸한 분위기는 밤의 학교와 비슷하다.
“내 말 들리니?”
다시 한 번 말을 걸자 움직이던 것이 멈췄다. 아이에게서는 악취가 심하게 났다. 이런 냄새는 보통 악령들이 풍기는데, 질이 좋지 않다고 한 도연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아이는 악령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약했다. 많아 봐야 이제 10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다.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다. 낮에는 흉터였던 것이 밤이 되자 새로 생긴 상처처럼 벌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터진 곳에서 피가 흐른다. 가느다란 팔과 목덜미에는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이토록 심하게 다칠 만한 사고가 뭐가 있을까?
“오빠 보여?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지 않을래.”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지만 아이는 한사코 눈을 맞춰주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저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아이의 턱이 툭 떨어지더니 엄청난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쇳소리가 섞인 비명에 나도 모르게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귀를 막아도 찢어지는 비명 소리는 파고든다. 이것은 실제로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만, 괜찮아!”
진정시키려 손을 뻗자 소리를 지르던 아이는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고양이처럼 놀이터 밖의 풀숲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잠시 멍멍한 귀를 감싸 쥐었다. 한동안 이명이 계속될 것 같다.
기다려 봐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실패인 건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손바닥에는 모래가 잔뜩 붙어 있다. 식은땀이 목덜미에 축축하다. 바지에 문질러 모래를 털어내자 습기가 천 너머로 느껴졌다.
“후우.”
빠르게 뛰던 심장은 곧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도연의 전화를 받고 와 조금 감성적이 된 모양이었다.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이미 관여하기로 했으니 단순한 변덕으로 끝낼 수는 없다.
“……소리만 좀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놀라는 건 딱 질색이다.
다음날 수업이 끝나고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경이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중 불쾌한 일을 겪어 약간 짜증이 났지만, 다행히 그 자리에 어제의 아이가 돌아와 있는 것을 보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도연은 6시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시간은 충분했다.
“안녕.”
그네에 앉아 모르는 척 인사를 건네 본다.
“거기에 계속 서 있는 거 심심하지 않아?”
“오빠하고 얘기 안 할래?”
다가가면 도망칠 것 같아 거리를 두고 말을 걸었지만 반응이 없다. 오히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등을 돌릴 뿐이다. 온몸을 떠는 것을 보면 내게 겁을 먹는 것 같다. 이쪽도 무섭긴 마찬가지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네, 벤치 등에 앉아 말을 걸었고, 아이는 여전히 상대해주지 않았다. 전처럼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 유일한 진척이라면 진척이었다.
무척 겁이 많은 혼령이었다. 자신이 죽은 것을 모르고 있거나 죽음을 인식한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쉽게 마음을 열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몰라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지만 최근 한 달 간 이 근처에 사고나 사건으로 죽은 여자아이는 없었다. 물론 아주 가끔은 먼 곳까지 떠내려오는 혼령이 있기도 하다.
“우산 가지고 가. 비 온대.”
아침에 소영이 조그만 3단 우산 하나를 건네줬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건물을 나오자 도로가 온통 젖어 까맣게 변해 있었다. 풀 내음 나는 비가 안개처럼 축축하게 내려앉는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를 향해 걸었다. 모퉁이를 돌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간다. 왁자하게 떠드는 남자아이들 몇은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개의치 않고 노는 아이들에게서는 특유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돌로 된 블록 사이로 벌써 파릇파릇하게 풀이 올라온다. 익숙한 길을 지나 놀이터로 가자 비가 내린 탓인지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짙은 갈색으로 변한 모래사장 위에는 예의 그 혼령이 혼자 동그랗게 서 있을 뿐이다. 젖은 그네에서 올라오는 쇠 냄새에 왠지 익숙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조용한 오후, 젖은 공기는 주변의 소리를 몇 배나 쉽게 전달한다. 그럼에도 이곳은 부드러운 침묵만이 이어질 뿐이다. 누군가 분무기로 뿌리는 것처럼 따뜻하고 상냥한 비.
가만히 다가가자 아이의 몸이 다시 움찔하고 떨린다. 나는 우산을 살짝 들어 아이에게 씌워주었다. 혼령은 젖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때로 비논리적일 때가 있다. 비논리를 따르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나와 같은 상황인 사람이?
아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우산을 빌려줄 뿐이다. 오늘은 이것으로 괜찮지 않을까. 나쁘지 않은 분위기다. 조금 후에 다시 말을 걸어 보면…….
“으르릉……멍!”
갑자기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비쩍 마르고 누런 개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상체를 낮추고 귀를 바짝 눕힌 개가 이를 하얗게 드러낸다. 꼬리를 다리 사이로 바짝 말고도 개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짖어댔다.
“쉿!”
그 자리에서 발을 굴러봤지만 개는 나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등의 털을 삐죽삐죽하게 세운 개가 다시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짖었다. 명백히 아이의 혼령을 대상으로 한 위협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혼령은 겁먹은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주춤주춤 물러난다. 도망치면 쫒는 것이 개다. 한층 격렬하게 짖던 개가 무는 시늉을 하며 아이의 다리로 달려들었다. 허공을 딱, 하고 부딪히는 잇소리가 난다.
“안 돼!”
말리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이는 다시 예의 그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 버렸다.
“무슨 짓이야!”
화가 나 소리를 지르자 개는 나에게도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꼬리를 만 채 침을 튀기며 짖어댔다.
“왜 이러는 거야?”
화가 난 개는 뒷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먼저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개의 흥분은 계속 이어졌다. 겁이 난다기보다 의아했다.
“새끼가 있어서 그래.”
조용한 목소리, 돌아보니 도연이 서 있었다.
“저쪽 나무 아래에 새끼를 낳아놨어. 저 애가 오가며 매일 보이니까 싫었겠지. 개들은 사람보다 훨씬 민감하니까…….”
그리고 보니 마른 개는 젖이 불어 늘어져 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에 퉁퉁 불은 젖을 보니 갑자기 화를 낸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우산을 치웠다. 이쪽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자 개는 주춤주춤 물러나며 이를 드러내다가 이내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일찍 왔네.”
“응.”
왠지 부끄러운 광경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매일 왔어?”
“그렇지는 않아.”
“들르지 않고.”
“내가 멋대로 시작한 일이니까…….”
폐가 될까 봐, 하고 말하자 도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저녁에는 갈 곳이 있어서 잠시 옷을 갈아입으러 왔다고 했다. 우산을 가져가질 않아서, 하고 말하는 도연의 머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이마에 붙은 머리를 떼어줬다. 내 손에 닿자 그가 조금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학원은 어때?”
“재밌어. 나 말고는 다 어린 애들이라 그렇지…….”
도연은 요즘 그림을 배우러 다닌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 일단은 무엇이든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실내에서 하는 조용하고, 사적인 것들이다.
“학원으로 바로 갈 거야?”
“응.”
도연이 다시 나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큰길로 나왔다. 대중교통을 싫어하는 것은 여전해서,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만 다닌다.
큰 아파트 단지가 있어 좋은 것은 대부분의 것들이 주변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도연은 슬쩍 손을 들어 보이고는 나를 남겨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버스의 도착 유무보다는 그의 뒷모습에 더 흥미가 있다. 헤어질 때 도연은 뒤돌아보는 일이 없다. 길이 갈라서고 나면 그대로 자신의 갈 길을 곧게 간다. 혹시라도 돌아볼까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것도 어울린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가 돌아보게 되었을 때, 눈을 맞추게 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모퉁이를 돌아 도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5분 정도가 지나서 버스가 도착했다.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매번 복권을 긁는 것과 같다. 희박한 확률로 당첨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꽝이다.
운전석 근처에 앉은 아주머니의 등에 목만 겨우 보이는 남자가 겹쳐 있다. 투명해 버스 뒤가 비치는 남자의 머리는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드러난 두피는 시뻘겋게 짓물러 있다. 남자는 끊임없이 뭐라고 중얼거린다.
‘두고 봐. 가만두지 않겠어.’
대략 이런 내용이다. 피곤한 듯 어깨를 움츠린 아주머니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런 종류의 혼령은 눈이 마주치면 따라붙는다. 나는 뒤쪽 문으로 가 손잡이를 잡고 선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내릴 수 있도록.
다음날이 되자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쳤다. 달라진 것은 공기와 분위기로, 한번 적셔놓은 땅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풀과 꽃이 자라났다. 오늘은 학교 수업이 취소되어 시간이 많이 났다. 친구들이 유흥과 스터디 등을 권해 잠시 흔들렸지만 어렵게 거절했다.
날이 좋아서인지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모래성을 쌓고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아이들 사이로 낡고 허름한 옷의 혼령이 모르는 척 섞인다. 나는 도연의 빌라 앞 계단에 앉았다. 아직은 내가 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 무리의 대장격인 남자아이 하나가 다른 놀이를 제안했다. 편을 가르고 게임의 방법을 설명하는데, 지금까지처럼 어설프게 하는 놀이가 아니라서인지 혼령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누가 누군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섞이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결국 한 발 물러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한다.
서로 쫓고 쫓기던 아이들에게서 거품처럼 웃음이 끊이지 않고 피어오른다. 까르륵, 숨넘어가는 즐거운 비명들. 게임을 처음 제안한 아이가 밧줄로 얼기설기 이어진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앗……!”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구름다리에 올라간 아이 혼령이 남자아이의 발목을 잡는다. 설마, 하는 사이 발이 미끄러진 아이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모래 먼지가 일어나고, 놀던 아이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으앙---!”
터진 것처럼 울음소리가 커다랗게 놀이터를 울렸다. 달려가 보니 바닥에 떨어진 남자아이의 얼굴에 피가 맺혀있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중심을 잡지 못한 추락이라 상처가 생긴 것 같았다.
“다른데 아픈 곳은 없어? 집이 어디니?”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놀던 무리 중 한 명이 집을 안다며 다친 친구를 데려갔다.
여자아이 혼령은 이제 그네 위에 올라있다. 손잡이를 꼭 붙들고, 발판에 올라타 있다. 있는 힘을 다해 타려고 용을 쓰지만 그네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대답 없이 아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네에서 내려왔다. 나를 피해 풀숲으로 가던 혼령이 움찔 놀라 멈춰 선다.
“으르르릉…….”
하얗게 이를 드러낸 개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기어 나온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눈이 시퍼렇게 번들거린다.
“아…….”
들개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달랠 수도 없고, 위협하면 더 흥분할 뿐이다. 으르렁거리던 개가 다시 혼령에게 덤벼들었다. 꺄악 하는 소리를 내며 피한 아이 혼령의 다리에 딱, 하고 이가 부딪힌다. 물린 것은 아닌데도 아이는 정말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게 벌린 입이 점점 커진다. 자신의 머리보다 크게, 몸보다도 크게. 아이의 몸은 이제 머리에 달린 작은 부속물처럼 보였다. 독기를 품은 혼령은 이가 드러난 거대해진 입으로 개를 삼키려는 듯 감쌌다. 마른 개는 꼬리를 말고 뒷다리를 떨면서도 버티고 서 계속해서 짖어댔다. 눈이 매울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머리를 때렸다.
“그만둬! 그만해!”
온몸의 피가 식어버릴 것 같은 광경이다. 왜 도망치지 않는 거지? 저러다가는 정말 악령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개의 목숨도 위험할지 모른다.
“낑…… 낑…….”
누런 개의 뒤에서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작고 동그란 강아지 두 마리가 풀숲에서 나와 제 어미의 다리 사이를 파고든다. 새끼를 낳았다고 하더니, 혼령이 가려던 방향이 둥지였던 것이다. 어미 개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줄줄 흘리면서도 한사코 버티고 있었다. 물러설 곳은 없는 결사적인 반항이었다. 통통하고 연한 색의 새끼들은 혼령이 보이지 않는지 제 어미의 젖을 물기 위해 서로를 밀치며 낑낑거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잦아든다. 소리를 지르던 아이의 혼령은 강아지를 보고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거대하게 부풀었던 머리가 바람이 빠지듯 서서히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얌전해진 아이는 한참 동안 강아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뺨을 가리고 반대편 숲으로 달아나버렸다.
어미 개는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쌕쌕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미안해, 많이 놀랐겠구나.”
개는 금방이라도 탈진할 것처럼 비틀거렸다. 헐떡이는 갈비뼈가 얇아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툭 부러질 것처럼 앙상했다.
나는 아파트 편의점으로 달려가 작은 소시지와 물, 훈제 계란을 샀다. 그리고 놀이터 한쪽, 풀숲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음식을 뜯어 풀어놓았다. 잠깐 사이였지만 혹시 이미 멀리 가버린 것은 아닐까, 안전하지 못하다고 장소를 옮기지는 않았을까 불안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기다리자, 강아지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앞뒤를 다퉈가며 튀어 나왔다. 그리고는 제 어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음식을 킁킁거리며 검사하기 시작했다. 어미 개는 잔뜩 경계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 옆을 지켰다. 먹어준다면 좋겠는데, 저렇게 많이 말랐으니…….
30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머뭇머뭇 다가온 어미 개가 긴 소시지를 입에 물었다. 입 양 옆으로 빠져나온 살색 덩어리를 녀석은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그 옆에서 어린 강아지들이 제 어미의 입가를 마구 핥아댔다. 나도 줘, 나도 줘, 하듯이. 두 마리의 짧고 포동포동한 꼬리가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린다.
어디선가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서 있는 나무 옆에 아이의 혼령이 숨어 있었다. 여전히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웃음소리는 그곳에서부터 난 것이 분명하다. 아이는 많이 진정된 것 같았다. 악취도 조금 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내가 며칠을 걸려도 못한 일을 강아지가 해낸 것이다.
그 일이 있고 삼일 정도 나는 놀이터에 가지 못했다. 동생의 정기검진과 함께 과의 총MT 일정이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이의 혼령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도연하고도 3일간이나 만나지 못했다. 신경질이 나 실수를 연발하는 후배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집행부일은 앞으로 모두 손을 떼기로 했다. 애초에 선배의 억지로 시작한 일이었다.
“야 네가 그래도 후배들한테 제일 인기도 많고…….”
“됐어요. 이제 진짜 안 할 거예요. 나 처음부터 알바다 뭐다 바빠서 못한다고 했었는데 억지로…….”
“아 알았어, 알았어! 짜식이 안 그러더니. 너 변했어 임마!”
“사람은 다 변해요.”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한다며 질색을 한다. 나는 하하 웃고는 얼른 학교를 빠져 나왔다. 시간은 이제 5시, 잘만하면 학원에서 돌아오는 도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며칠간 문자나 전화 통화만 한 것이 다여서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갑자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항상 받을 수 있도록 주머니에 넣어놨기 때문에 몸이 같이 떨린다. 재빨리 꺼내보니 ‘김도연’ 글자가 반갑게 찍혀 있었다.
“여보세요!”
“……깜짝이야.”
여전히 조그맣게 속삭이는 목소리. 몇 번을 해도 전화 너머 그는 음성을 높일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작게 속삭여도 나는 그의 목소리만큼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지금, 학교?”
“응. 나왔어.”
“그럼 지금 집으로 올 수 있어?”
“안 그래도 가는 중이야. 무슨 일 있어?”
“……동네에 사건이 좀 생겼어. 네가 알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사건?”
“와보면 알 거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는 나를 집 근처의 시장으로 이끌었다. 재래시장이 길게 이어진 그곳은 다른 때보다 더 북적였다.
“학원이 이쪽이라 창가에 앉으면 길이 다 보여. 오늘따라 시끄러워서 잠깐 내다봤더니 경찰차가 몇 대나 와 있었어.”
도연을 따라 골목 근처로 가자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여 있었다. 싸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앞치마를 두른 음식점 주인부터, 막 장보기를 끝낸 주부까지, 시장의 사람들은 다 이 골목으로 모인 것 같았다.
사람뿐이 아니었다. 검고, 비열한 얼굴을 한 혼령들이 인파에 섞여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의 그림자처럼 새까만 혼령들은 저마다 눈을 굴리고 낄낄대며 웃어댔다. 살아있는 이들의 불행을 구경하러 온 것들이다. 대부분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몇 대의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더해 혼잡의 극치였다.
“무슨 일이야?”
내가 묻자 도연은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와와- 하는 소란이 일었다. 웬 남자 하나가 수갑을 차고 경찰의 손에 끌려 나오고 있었다. 모자를 푹 쓴 남자는 낡은 군청색 점퍼에 카키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인파 속의 누군가가 ‘에이 못난 놈!’ 하고 외치자 그것을 기점으로 마치 신호탄처럼 사방에서 욕설이 퍼부어졌다.
“천하의 몹쓸 놈 같으니! 그 어린 것한테, 그래!”
“너 같은 놈은 자식새끼 가질 자격도 없어!”
“에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남자는 고개를 최대한 숙여 점퍼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양옆에 팔을 잡은 경찰이 그를 경찰차 뒤에 태웠다. 차 안에서도 그는 고개를 들 줄 몰랐다.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졌다. 이번 것은 조금 더 슬프고, 비명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잘 보기 위해 발꿈치를 들고 안쪽을 살폈다. 골목 끝, 벽에 바로 난 문에 사람들이 바쁘게 드나들고 있었다. 작은 문은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굴 같은 느낌의 방에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을 경찰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허리를 한껏 굽혀야 하는 좁은 문 사이로 들것 하나가 나왔다. 하얀 천이 씌워진 들것은 남자 둘이 들고 있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가벼워 보였다. 천은 아주 조금 올라와 있었다. 그 얇고 낯선 봉긋함이 의미하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내 주변 사람들의 한탄소리가 그 가벼움의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고, 가여운 것!”
“저 어린 것을 그냥…… 쯧쯧쯧.”
“저게 다 지 애미가 없으니까 저렇게 된 거지 뭐. 그래 인간 같지도 않은 말종이랑 살게 두고 나갔으니…….”
“굶어죽었다고?”
“맞아 죽었다던데?”
“둘 다지 뭐…….”
앰뷸런스에 실리는 들것 위로 수많은 혼령들이 길게 고개를 빼고 얼굴을 들이댄다. 그들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생의 비극을 만끽하고 있었다. 불행을 먹는 하이에나 같은 이들. 살아있으나 죽었으나 악한 자는 악하고, 망가진 마음은 망가진 채다.
뒤에서 누군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도연이었다.
“……이름은 한혜연. 9살이래.”
“저 사람은 그럼…….”
싫은 예감에 말을 꿀꺽 삼키게 된다. 입맛이 쓰다.
“친아버지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엄마가 가출한 다음부터 딸을 때렸대. 온 시장에 소문이 자자한 술꾼에, 망나니였다고 학원에서 말하는 걸 들었어.”
“…….”
“가둬둔 채 굶기고, 걸핏하면 때렸대. 매일같이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며칠 전부터 조용했던 모양이야. 동네 사람들한테는 엄마가 딸을 찾아갔다고 둘러댔고. 그런데 아무래도, 비가 오고 날이 따뜻해지니까…… 냄새가 숨길 수 없게 돼서…… 결국 누가 신고를 했나 봐.”
“……시체는 어디에 있었대?”
“옷장 안에 있었다고 하는 것 같아.”
“…….”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둘 다 저 시체의 주인이 놀이터의 작은 악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핸드폰으로 들것과 경찰차에 탄 남자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꺼낸 핸드폰이 연신 찰칵거리는 소리를 터트린다. 혼령들의 낄낄거림과 쉬지 않고 울리는 싸이렌과 함께 뒤섞여 머리를 찔러온다.
“그만 가자.”
도연이 손을 잡아 이끈다. 나는 그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남자를 싫어하는 것 같았어.”
골목을 벗어나 더 이상 싸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왔을 때, 도연이 말했다.
“애들을 데리러 온 엄마가 놀이터에 있으면 그 옆에 붙어 서 있을 때가 많아. 아빠가 오면 눈에 띄게 피했어.”
“보고 있었어?”
관심 없어 보였는데 어느새…….
“네가 그 애를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도연이 무심하게 말하고 지나갔다. 그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두통이 거짓말처럼 가신다. 나는 서둘러 그를 따라가 손을 잡았다. 손가락을 사이사이 얽고 꽉 쥐자 도연이 흘깃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 손을 빼내거나 내치지 않았다.
놀이터에는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와 만삭이 가까운 임산부가 아이들과 볕을 쬐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도연의 말대로 아이의 혼령은 그들의 곁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조용히 서 있었다.
새삼스레 비쩍 마른 팔과 다리, 온몸의 상처와 멍이 아프게 들어온다. 그래, 언제나 좋지 않은 예감은 들어맞는 법이다.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남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아빠란 사람이 애를 죽을 때까지 때린 거예요? 그래서 저 난리구나. 보러 안 가길 잘했네.”
“그렇다더라고. 태교 생각하면 안 가는 게 맞지. 나는 가슴이 떨려서 가보지도 못했는데, 같은 동 사는 엄마가 보고 전화해서 알려주더라고요.”
“아유…… 애 엄마는?”
“진즉에 도망 갔대지 뭐. 아니 엄마가 돼가지고 지만 살겠다고 애를 버려놓고 가? 그럼 어떻게 될지 빠안히 보이는데. 쯧쯧쯧.”
“애 죽은 거는 알고나 있을까요?”
“모르지. 경찰이 알아서 연락을 하든가. 숨어 있느라고 모를 수도 있겠네, 그치? 에이 복 없는 년.”
“누구, 엄마?”
“엄마나 애나 둘 다.”
한숨을 포옥 쉬며 나누는 대화를 장본인이 옆에 있다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가만히 바닥을 내려 보고 있던 혼령이 갑자기 유모차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유모차 안의 아기에게 가느다란 손을 뻗었다.
말릴 새도 없이 꾹, 누르는 동작과 함께 유모차 안에서 자지러지는 울음이 터졌다. 뭔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아이가 울자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어머 애가 왜 이래? 괜찮아, 괜찮아.”
왜 그러니? 응? 왜 그래. 아무리 달래 봐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아기를 따라 엄마의 얼굴도 울상이 된다.
나는 다가가 손으로 뭔가를 쫓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여기 벌레가 많아요.”
“벌레?”
“벌이나 거미도 그렇고, 무는 벌레가 많아요.”
“그래요? 뭐에 쏘였나 정말. 왜 이렇게 울지.”
“그만 들어가자. 시원한 데 가서 좀 자세히 보면 되겠지.”
벌레란 소리에 다른 한 명이 귀가를 권했다. 유모차를 밀고 두 사람이 사라지자 도연이 아이의 혼령을 가리켰다.
“저 봐.”
멀찌감치 떨어져 선 아이의 손끝이 시커멓게 변해 있다. 사람의 몸에 해를 입히면, 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영혼에도 손상을 입는다. 살아있을 때 하는 행동은 대부분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죽은 후에는 직접적으로 혼령의 모습에 변화를 일으킨다. 더 이상 가릴 겉모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짓은 하면 안 돼.”
더 불행해질 뿐이야. 그러나 나는 정말 말문이 막힌다. 내가 이 아이에게 무슨 조언을, 무슨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악취의 정체는 악령이어서가 아니었다. 아마도 아직 자신의 몸에 대해 미련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혜연아.”
이름을 부르자 눈에 띄게 움찔한다. 그리고 까맣게 변한 손가락을 입에 물고 발을 구른다. 한발자국 다가가자 깜짝 놀라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더러운 치마가 공기 속으로 팔랑거린다. 그리고는 지워지듯 사라졌다. 숨어버린 것이다.
“…….”
나는 씁쓸한 좌절감을 느낀다.
“어쩌면,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해?”
“가장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어른 손에 죽은 아이야. 낯선 남자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며칠이 지났어도 아이는 내게 마음을 여는 기색이 없다. 이 모든 것이 헛된 자기만족일 뿐이었을까.
“그래도 넌 말을 걸어 줬잖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거야.”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걸. 그 정도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야.”
나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벤치에 앉았다. 도연이 옆에 따라 앉았다.
“시장 사람들은.”
그리고 담담히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아이가 맞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가둬진 채 굶주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모두 바라보고만 있었어. 이렇게 될 때까지. 모두가 목격자인 동시에 가해자인거야.”
“…….”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민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바람이 불어 여린 빛을 가진 나무가 흔들린다. 부드러운 민들 레씨앗이 동그랗게 공기 속을 떠다닌다. 놀이터 모래 위로 앉을 듯 말듯 스치며 흐른다.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벌이 한 마리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깨끗하게 칠해진 정글짐과 녹 하나 없이 손질된 그네. 아파트 아이들도, 주민들도 아파트 내의 큰 놀이터보다 작고 외진 이곳을 더 좋아해 즐겨 찾는다. 누가 관리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 이곳은 아름아름 입소문으로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도연의 손길이 여기저기 닿아있는 놀이터.
“그 애가 여기 와 있는 이유를 알겠어.”
도연이 내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날 밤 동생이 먼저 뉴스를 보았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가능하면 어두운 이야기는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나의 과보호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퍼트린다.
“도연 오빠네 집 근처 맞지?”
“맞아.”
“세상 참 험해졌어.”
“……사람은 예전부터 그랬지 뭐. 새삼스럽게 요즘 들어 그런 거겠어.”
“네거티브한 소리를 다 하네.”
과일을 깎아온 소영이 TV를 틀었다. 어딘가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과 정치인들의 비리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온다. 교통사고와 무너진 건물 밑에 깔린 사람들의 현장 영상이 화면을 메운다.
“다른데 틀어봐.”
“지금 시간은 볼 거 없어.”
“뉴스 말고 아무거나.”
결국 화면은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개그프로그램에 멈춘다.
“무슨 일 있었어, 오늘?”
사과를 건네주며 소영이 물었다. 하얗고 깨끗한 속살을 베어 물자 시원한 단맛이 느껴진다. 일상에서 느끼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애를 봤어.”
“그 애?”
“아까 말한, 도연이네 집 근처에서…….”
아, 하고 대답한 소영이 잠시 숨을 고른다. 아직 동생은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적응하는 중이다. 거짓말 같은, 믿기 힘든 일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도 있어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은 생활이기에 최대한 나는 내 개인적인 짐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꺼내 그 짐을 나누려 했다.
“어떤 모습이야?”
나는 최대한 순화하고 돌려 설명했다. 우연히 발견했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안됐네.”
“그래.”
정말이다. 가여운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야.”
“뭐가?”
“그렇게 불쌍하게 죽는 아이들. 납치되거나 나쁜 사람들 손에 들어가고, 팔리고, 하루 20시간 가까이 노동을 하고…… 인터넷에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아.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을 거야. 모르는 곳에서는 더 하겠지.”
사과를 한입 크기로 자르며 소영이 덧붙인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도 큰 복이야. 우리는 행운아인 거지.”
남의 불행 앞에 자신의 행운을 재는 습관은 없다. 소영의 말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원망했던 동생이 어느새 어른스러운 얼굴을 한다.
“하루 종일 위로만 받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배는 부르지만 나는 소영이 깎아준 사과를 모두 먹었다.
다음 날 동물병원에 들러 개 사료와 캔을 샀다. 여자아이는 강아지를 보고 좋아했었다. 배곯은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그 애가 다시 웃을 수 있게 한다면, 모두 좋은 일일 것이다. 도연에게 전화를 하자 학원이 일찍 끝나게 되었다며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이 혼령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걱정이 되었지만 어제의 일도 있어 숨어버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나무그늘 밑에서 이쪽을 가만히 지켜볼 때가 있었다.
나는 도연이 오기 전에 강아지들을 먼저 불러내려고 마음먹었다. 강아지들이 나오면, 아마 아이도 나올 것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아무래도 경계가 심한 어미는 음식을 내려놔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이쪽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나는 가져온 일회용 은박그릇에 사료와 캔을 섞었다. 그리고 둥지 근처에 살짝 내려놓았다. 놀이터를 가로질러 벤치에 앉은 뒤 조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15분 가까이 지났을 무렵에도 개는 나오지 않았다. 다른 곳에 간 것일까? 강아지들은 아직 어려 어미를 따라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음식 냄새가 나면 쉽게 나오던 어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살그머니 다가갔다. 그릇을 둔 근처로 가자 조금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지러운 발자국, 밟혀 누워있는 잡초와 뜯어진 나뭇가지들의 흔적.
“설마.”
급한 마음에 덤불을 넘어가자 둥지가 있던 바위 근처가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길고 두꺼운 막대기가 잔뜩 흙이 묻은 채 팽개쳐져 있었다. 끝에는 피처럼 보이는 붉은 흔적이 남아있다. 입구가 파여진 것으로 보아 그것으로 굴을 마구 헤집어 놓은 것 같았다.
“누가 이런……!”
뭔가 발밑에 부드러운 감촉이 밟힌다. 싫은 예감에 나는 망설이며 아래를 보았다. 작고, 어린 주검이다. 검고 촉촉했던 코는 뒤집어쓴 흙으로 빛을 잃었다. 축 늘어진 몸은 공기가 빠져나간 것처럼 얇게 변해 있었다.
손에 든 강아지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 가늘게 떠진 눈이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날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어떤 생명의 징후도 없는 몸은 부드러운 인형처럼 손안에서 늘어질 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주변을 둘러봐도 짐작될 만한 것이 없었다. 어미 개는 어디로 가버린 거지? 그토록 제 자식을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죽은 강아지를 안고 풀숲을 나오자 언제 돌아왔는지 미끄럼틀 앞에 희미하게 여자아이 혼령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팔에 얼굴을 묻고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혜연아!”
깜짝 놀란 혼령이 달아나려 몸을 틀었다. 나는 급하게 죽은 강아지를 내밀며 다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는 봤지? 엄마하고 다른 한 마리는 어디 갔어?”
멈칫한 아이는 그림자에 숨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목구비가 분명치 않은 얼굴 여기저기에 멍 자국과 붓기가 선명하다. 겁먹은 얼굴로 아이는 손을 들어 놀이터 밖을 가리켰다.
‘으아아아아앙!’
울음을 터트린 아이는 강아지, 강아지 하고 외쳤다. 강아지가, 살려줘요, 죽어요, 아파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아이의 공포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나는 혼령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달렸다. 누군가 이곳에 와 도연이 가꾸고 보살핀 곳에서, 폭력에 시달리다 죽은 아이의 앞에서, 아직 어린 생명을 빼앗았다.
“으르릉…… 멍! 멍멍!”
정신없이 뛰는데 사납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누렇고 볼품없는 암캐 하나가 악다구니를 쓰며 고등학생 몇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개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낄낄 웃으며 저희들끼리 농담을 지껄이고 있었다. 누군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이 손에 들고 있는 강아지를 찍고 있는 것이다.
“간지 나게 메탈독 어떠냐, 어?”
“병신아, 그럼 더 잘 그렸어야지. 이리 줘봐.”
한 명이 들고 있던 매직으로 강아지의 얼굴에 낙서를 했다. 강아지는 연신 낑낑거리고 있었지만 반항은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이미 옅은 몸 여기저기에 함부로 그려 넣은 검은 낙서와 글씨로 어린 몸은 엉망이었다.
“씨발 이거 반응 졸라 쩔겠는데?”
“귀걸이도 더 해줘야지. 잘 잡아봐.”
자지러지게 웃던 남학생 한 명이 손에 스테이플러를 들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쳐져 있는 강아지의 귀를 잡아당겼다.
“이 새끼들!”
스테이플러를 들고 있는 녀석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자 놀란 무리들이 순간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며 덤벼들었다.
“너 뭐야, 씨발!”
와락 덤빈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고, 비틀거리는 무릎을 걷어찼다. 빠악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진다. 며칠간 속에서 부글거리던 것이 터져 나온다. 울화, 분노, 풀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에 내 안의 무언가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맨살을 때리는 감각은 소름끼치는 동시에 지독한 불쾌감을 가져온다. 코피를 흘리며 물러서는 녀석에게 다가가 배를 후려쳐주자 켁 하는 신음이 터져 나온다.
“이 새끼 뭐야!”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듯 팔을 잡아끌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비디오를 들고 있던 녀석이 주먹질을 해댔다. 코끝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잡힌 팔을 풀고 앞의 놈에게 달려들었다. 바닥을 구르고, 엎어진 녀석을 후려갈기자 왁왁 대던 놈들이 내게 발길질을 해댔다. 그러나 몸에 와 닿는 충격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그동안 받았던 내 스트레스들, 참아왔던 여러 가지 불만을 주먹에 실어 퍼부어댔다.
“미친놈, 미친놈아!”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은 놈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달아났다. 그 와중에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던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꼬리를 말고는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몸을 일으켜 강아지를 집자 내 손길에 움찔 몸을 떤다. 겁먹은 녀석이 오줌을 줄줄 싸기 시작했다. 팔을 타고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나는 얼얼한 코를 문질러 닦았다. 옷에 피가 묻어난다. 피를 묻혀 가면 동생이 잔소리를 할 텐데. 솟구친 아드레날린으로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걱정이 든다.
“가만히 있어 봐.”
강아지의 얇은 만두피 같은 귀에 스테이플러가 몇 개 박혀 있다. 날카로운 심이 보드라운 피부를 파고들어 빼기가 쉽지 않다. 피가 맺힌 그것을 만지자 강아지가 죽는다고 깨갱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미 개는 연신 짖으면서도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나는 겨우겨우 박혀있던 심을 제거했다. 호오, 하고 불어주자 개는 포동포동한 앞발로 내 얼굴을 밀어낸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 녀석이…… 엄마한테 가라, 그래.”
강아지를 내려놓자 녀석이 비척 대며 도망을 쳤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하고 다시 바닥에 웅크려 앉는다. 단숨에 달려온 어미가 제 새끼의 냄새를 킁킁대며 맡고는 핥기 시작했다. 이 가난한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아무런 이유도 맥락도 없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다른 한 마리가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강아지는 바닥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낑낑대는 울음은 애처로워 저도 모르게 품에 안고 싶게 만든다.
“엄마가 옆에 있잖아. 이제 괜찮아.”
말해줘도 알아들을 리 없다. 어미 개는 강아지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무사한지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앞발을 들어 강아지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바싹 마른 앞발이 몸을 통과한다.
“……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나는 바닥에 앉은 채 눈을 비볐다. 너무 오랜만의 싸움 탓일까, 아까 맞은 눈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어미 개의 목에서 쇳소리 같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강아지의 목덜미를 물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몇 번이고 입질을 한다. 노력은 매번 무산된다. 어미 개는 강아지에게 닿지도 못하고 매번 몸을 통과한다.
바스락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내가 온 방향에서 도연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양손에는 축 늘어진 개가 한 마리 안겨 있었다. 바싹 마른 뱃가죽에 젖만 잔뜩 불어 있는 누런 몸뚱이. 혀를 빼문 목에는 줄이 묶여 있었다. 길게 늘어진 줄의 끝은 도연의 발치까지 이어져 있다.
“……오는데 나무에 걸려 있어서.”
말끝을 흐린 그가 조용한 눈으로 강아지와 나를 바라보았다.
“이름은 뭐로 지을까?”
“아직도 못 정했어?”
“그렇게 중요한 걸 어떻게 단번에 정해.”
“똘비 어때?”
“기각.”
“밍키는?”
“얘 남자애거든?”
“인절미. 노랗잖아.”
“……말을 말자. 도연 오빠, 오빤 뭐가 좋을 것 같아요?”
장난을 치고 싶어 죽겠는지 연신 입질을 해대는 강아지에게 연고를 발라주며 소영이 물었다. 강아지를 가만히 보고 있던 도연이 깜짝 놀란다.
“나?”
“응. 이름 뭐가 좋을 것 같아요?”
“난 상관없는데…… 내 강아지도 아니고.”
“왜 아니에요. 오빠들이 구해왔으니까 우리 강아지지.”
“넌 왜 끼냐?”
“결국 내가 밥 주고 똥 치우고 할 거 아냐!”
“그, 그래.”
왁 쏘아붙인 동생이 다시 도연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 마당이 있으니까 여기서 키우기로 하구요. 그래도 우리 셋이 다 주인이니까 오빠도 이름 한 표 넣어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도연은 소영의 재촉에 마지못해 응,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눈썹을 모으고,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했다. 한동안 끙끙대던 도연이 살그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봄에 데려왔으니까……봄이 어때?”
“좋아요!”
“찬성.”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두 손이 번쩍 올라간다. 연고를 다 발라주고 놓아주자 강아지는 동그랗게 부른 배를 바닥에 끌면서 마당으로 내려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곧 뜰에 피어난 팬지를 입에 물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적응이 빠르네.”
“소영이가 매일 끌어안고 자거든. 배가 불러서 그렇지 뭘.”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도연이 내 콧잔등을 살짝 건드렸다.
“아야!”
“아직도 많이 부었네.”
“괜찮아.”
“나중에…….”
“응.”
“지금은 너무 어리니까…… 강아지 산책 할 수 있게 되면, 우리 집에 데리고 와.”
“집에?”
“응. 놀이터에.”
햇살이 마루에 가득 들어온다. 눈이 부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해를 역광으로 받은 도연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혜연이가 많이 걱정해.”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
“잘 있다고 했는데도, 보고 싶은 모양이야.”
“…… 그래?”
팬지꽃을 떨어트린 강아지가 몸을 낮추고는 엉덩이를 하늘로 잔뜩 쳐들었다. 깔깔 웃으며 소영이 ‘봄이야’ 하고 부르자 빨갛고 작은 혀가 낼름 거린다. 강아지도 웃는구나.
“같이 가자.”
“응?”
“우리 강아지니까, 산책도 같이 가야지.”
“그래.”
“사료하고 화장실, 밥그릇 같은 것도 필요하니까, 네가 좋아하는 마트도 가고.”
도연이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팬지꽃이 만발한 꽃밭에 누런 개가 엎드려 꼬박꼬박 졸고 있다. 사이사이 편안한 표정으로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어디선가 민들레씨가 날라 와 강아지의 부드러운 털에 살짝 내려앉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