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진겸은 품에 있는 인형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었다. 확실히 부드러웠다.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던 수혁이 옥상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안겨 준 거였다.
“보자마자 네가 생각나더라고. 똑같이 생겼지?”
“……어디가요?”
이 동글동글한 인형이랑 자기랑 뭐가 닮았는지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하지만 닮은 거라곤 하얗다는 것밖에 없었다.
“하얗지, 부드럽지. 그리고.”
수혁의 뜨거운 손이 진겸의 차가운 볼에 닿았다. 에어컨이 틀어진 시원한 곳에서 있던 진겸의 몸은 차가웠지만, 무더운 열기를 가득 머금은 옥상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혁의 체온은 높았다.
“이렇게 쭉 늘어나는 것도 닮았어.”
양쪽으로 늘어나는 볼과 다르게 진겸의 미간은 점차 모여들었다.
‘왜 나만 보면 볼을 만지는 거야?’
원범은 머리를 만지고, 수혁은 볼을 만지고.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진우는 머리도 쓰다듬고 볼도 만지고 다 한다.
‘만지고 싶게 생기긴 했지.’
외모를 생각하면 손이 갈 수밖에 없긴 했다.
혼자서 이상한 오해를 한 진겸이 미간에 힘을 풀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우리 사흘이나 못 봤잖아.”
“…….”
“이럴 땐 보고 싶었다고 해 줘라, 좀. 사흘 동안 밤새고 너 보겠다고 제일 빠른 비행기로 예약해서 왔는데. 이 정도 포상은 줄 수 있잖아.”
수혁이 생각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며칠 동안 안 보이니 궁금해서 진우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보고 싶은 거랑은 달랐던 것 같다.
그냥 매일같이 찾아올 것처럼 굴던 사람이 안 오니 궁금한 정도?
진겸이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하자 수혁이 볼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폈다.
“얼굴이 한 손에 다 들어오겠는데?”
손바닥을 뺨에 붙이곤 빙글빙글 돌렸다. 그 때문에 진겸의 얼굴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지금 안고 있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려는데 수혁이 너무 기분 좋게 웃고 있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항상 서글서글하게 웃더니 지금은 애처럼 너무 해맑았다. 이런 얼굴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해가 떠 있는 방향으로 수혁이 서 있어서 자신은 그의 그림자 방향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 아련한 느낌도 들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예요?”
“왜? 만지는 거 싫어? 그럴 땐 내가 어떻게 하랬지?”
진겸이 살포시 콧잔등을 찌푸렸다.
‘진우한테도 이러는 거 아니야?’
제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수혁이 자신을 만지는 빈도수가 너무 잦았다.
“……아니! 이사님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왜 이렇게 저를 만져요?”
수혁의 해맑던 웃음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 변화에 진겸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탁 이사가 널 이렇게 만졌어?”
방금까지 부드러웠다는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서늘한 목소리였다.
“……그건 아니고요.”
“그럼? 어떻게 만졌는데?”
“그냥 머리 쓰다듬는 게 다였어요…….”
진겸은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수혁과 마주할 때 시선을 피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건만 지금은 조금 무서웠다.
진겸이 제 품에 있는 인형을 꽉 안자 수혁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겁먹은 게 빤히 보였다. 속으로 짜증을 삭이고는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아직도 눈을 아래로 내리깐 진겸은 인형을 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새하얀 손가락이 털에 파묻히자 그것조차 예뻤다.
크게 움직인 것도 아니고 몇 밀리미터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여워 보일 줄이야.
“진겸아.”
“……네.”
“나 봐 봐.”
멈칫거리며 느리게 올라오는 속눈썹을 빤히 보며 기다렸더니, 옅은 갈색 눈동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 무서운 건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벌써 이러면 안 되지.’
수혁은 아직 진겸의 뺨에 붙이고 있던 손바닥을 꾹 눌렀다. 붕어처럼 툭 튀어나온 빨간 입술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이제 어떡하냐.”
“왜요?”
“그러게. 왜일까?”
그걸 자기한테 물으면 어쩌냐는 듯한 시선에 수혁이 픽 웃었다.
“이러다가 진짜 진심이 될 것 같아서.”
“뭐가요?”
“뭐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모르라고 하는 소리야.”
수혁이 히죽 웃으며 다시 볼을 옆으로 쭉 늘렸다가 놓았다. 하도 주물럭거렸더니 뺨이 붉어졌다.
“귀여운 짓 좀 적당히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안 이랬지.”
“……제가 귀여운 짓을 했다고요?”
“어. 지금도 그렇게 보면 콱! 깨물고 싶잖아.”
순간 코앞으로 다가온 수혁의 얼굴에 진겸이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지, 이 반응? 내 얼굴이 도망칠 정도는 아닌데.”
“놀라서…….”
“그래. 좋은 반응이야. 나 말고 딴 새끼들이 이러면 지금처럼 해. 피하기 어려우면 뒷일 생각하지 말고 때려. 뒤처리는 알아서 해 줄게.”
진겸은 주춤거렸던 몸을 바르게 폈다. 원범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친구라서 그런가, 생각도 비슷한 모양이다.
“퇴근하고 뭐 해?”
“집에 가죠.”
“같이 가도 돼?”
“……우리 집을요?”
“응. 나 탁 이사 집에 얹혀살고 있었는데 쫓겨났어. 요새 계속 호텔에서 지내느라 호텔 밥만 먹었더니 질리고…… 혼자 있으려니 낯설고 무서워.”
수혁은 불쌍해 보이려고 일부러 어깨를 아래로 늘어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출장 가서도 혼자 있었더니 너무 외로웠어. 한식이 먹고 싶은데, 바빠서 룸서비스만 시켰더니 죄다 양식이더라고. 너무 느끼했어.”
“…….”
진겸이 넘어올 것 같지 않자 수혁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하아. 혼자서 먹는 밥 맛없는데…… 오늘은 그냥 굶어야 하나.”
한탄하듯 허공에 대고 말하면서도 진겸을 힐끗 살폈다.
진겸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혼자 먹는 밥이 맛없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진겸 또한 진우와 같이 먹을 때와 아닐 때, 확실히 먹는 양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게다가 굶는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예전에 수혁이, 자신은 친구가 없다고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진우한테 물어볼까요?”
진우와 같이 사는데 혼자서 결정할 순 없었다.
진겸은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한 거였지만 수혁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입꼬리도 아래로 내려간 게 너무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같이 가자고 하기엔 진우가 마음에 걸렸다.
출근하고부터는 점심을 계속 밖에서 먹어서 저녁만큼은 집에서 먹자고 약속했기에 외식도 안 했다. 물론 며칠 전에 치킨을 먹긴 했다만.
무엇보다 진우가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듯했다. 그래 봐야 원범과 수혁에게 한 행동으로 파악한 거지만 말이다.
진겸이 결심한 건지 눈에 힘을 주고 수혁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물어볼게요!”
“…….”
수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여기가 한계인가 보다. 더 밀어붙였다간 진겸이 난감해할 것 같아서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진우는 단호했다.
“안 돼.”
예상하였던 터라 놀랍지도 않았다.
“그건 뭐야?”
선 이사를 만나러 옥상 정원에 갔다 온 진겸의 품에 새하얀 인형을 안겨 있었다.
“이거? 북극여우래.”
“……그게?”
진우는 제 머릿속에 있는 북극여우 이미지를 떠올려 봤다가 이내 지웠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아무튼. 난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거 별로야. ……형도 그건 좋아하지 않았어.”
“…….”
“거기는…… 우리 집이잖아.”
우리 집.
그 말을 하는 진우를 보고 있던 진겸의 눈썹이 아래로 내려갔다. 거절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라는 말이 진우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표정과 목소리로 확 와닿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큰 의미일 줄은 몰랐다. 무작정 조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진겸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진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수혁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진 않았다.
“알겠어. 대신 내일 점심은 이사님이랑 먹어도 돼?”
진우의 얼굴에 불만이 그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못마땅한 모양이다. 뾰로통해져 앞으로 나온 입술에 진겸이 웃으며 진우의 옆으로 가까이 붙었다.
“선물도 받았는데 그것도 안 돼?”
“인형 안 좋아하잖아.”
“아닌데? 좋은데.”
손가락이 완전히 파묻힐 정도로 털이 긴 건 아니지만 문지르면 보들보들해서 계속 만지게 된다.
진겸이 만져 보라며 내밀었지만,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 인형을 준 사람이 선 이사라는 점에서 이미 진우의 눈 밖에 났다.
“나랑 닮았대. 진짜 닮았어?”
인형을 들어 얼굴 옆에 붙인 진겸을 보는 진우의 표정이 언제 뾰로통했냐는 듯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아니. 형이 더 귀여워.”
“…….”
“왜?”
“너도 참…….”
중증이다 싶었다.
진우가 백진겸을 아낀다는 건 활자로도 느꼈던 바다.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진우는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가끔 생수병 뚜껑을 못 열고 끙끙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알고 와서는 말없이 열어 준다.
무거운 걸 들라 치면 다른 일을 하던 중에도 다가와 가져가고, 요즘 둘이 같이 출퇴근을 하다 보니 청소, 빨래 같은 것들도 전부 진우가 하고 있다. 자신이 하려고 해도 쉬라며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전에는 진우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무서운 거야.’
처음에는 진우의 행동을 고치겠다고 결심해 놓고 지금 자신이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전보다 눈치는 안 봐서 그건 뿌듯했다.
“나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궁금하게.”
“아니. 우리 진우 멋지다고.”
“그 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말 맞는데! 나 이사님한테 메시지 보낸다? 내일 점심 같이 먹자고.”
진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제 눈앞에 있는 게 나았다. 방금처럼 단둘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일은 두 번 다신 없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