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서창경의 신분은 진짜였다. 내가 드나들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였고, 구마를 해 준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허구한 날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중에서도 이대로 방치하면 내가 험한 꼴로 뒈질 거라느니, 가족들도 너 때문에 영향을 받아 위험해질 거라느니 하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귀신에 씌었으니까 떼어 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듣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서창경이 말하면 마치 저주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무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를 가르치고 내 몸에 붙은 걸 떼 주려고 애쓰는 서창경이 고맙다가도, 그가 입만 열면 확 짜증이 치밀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욕을 처먹는 작자였다.
좀 곱게, 친절하게 도와주면 안 되나?
사람들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그는 나 말고도 여러 군데에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주로 실종된 영혼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는 일을 했다. 가족이 원하면 천도재도 지내 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서.
인성 나쁘고 하나도 안 착해 보이는 인간이 그러고 산다는 것이 내겐 좀 의외이긴 했다.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나서서 전부 해결해 주고 싶지만 일단 내 본업이 심각하게 바빠.」
「어…… 그렇죠?」
수면 부족으로 눈 밑이 시커먼 수련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가 먼 지방에서 오는 의뢰는 접수할 엄두도 내지 못하지.」
「그렇겠네.」
「나 대신에 사령을 움직여 왔는데 한계가 있더라고. 너무 멀어지면 원격 조종이 어려워. 그래서 제가 알아서 잘 돌아다닐, 숨 쉬는 꼭두각시를 조종하고 싶어졌거든?」
그냥 조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서창경은 사람 기분 나쁘게 표현하는 데 훌륭한 재능이 있었다.
“학생, 혼자야?”
서창경의 조수 노릇을 하러 온 산길에서 남자 셋을 따라잡았다. 밑에 주차된 차량을 보고 선객이 와 있을 줄은 알았다. 속으로 혀를 찼지만 불만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방해자라는 생각보다는 내 주변에 있다가 이들에게 액이 옮을까 봐 그 점이 우려되었다.
“예, 저는 혼자 왔어요.”
“여기 낚시 금지인 거 몰라? 이 저수지에 사람 여럿 빠져 죽었다잖아.”
일행 중 한 사람이 손전등으로 철조망에 박힌 ‘출입금지’ 푯말을 비추었다.
“그러는 아저씨들은요.”
“우린 뭐 잘 낚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지. 여기가 은근히 밤낚시 명당자리거든. 전국적으로 유명해.”
“저도 붕어 잘 잡힌다는 소문 듣고 왔어요.”
적당히 둘러대며 무리에 합류했다.
얼기설기 엮어 놓은 철조망 울타리의 커다랗게 뜯긴 구멍을 통해 다 함께 낚시터 안으로 진입했다. 골짜기를 틀어막아 만든 저수지의 수면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살풍경스러웠다.
낚시꾼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길이 협소해 차량 진입이 어려운 장소이기에 다들 작은 접이식 의자를 들고 왔고, 얼마 되지 않는 짐을 푸는 것도 금방이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차례대로 접근했다.
“이거 뭐야. 부적 아니야? 어린 친구가 뭘 이런 걸 가지고 다녀.”
“제가 밤낚시는 좋아하는데 겁이 많아서 아는 형님에게 부탁했어요. 특별한 기능은 없고 그냥 액 쫓는 평범한 거예요.”
별거 아닌 양 설명하며 의자 주변으로 슬쩍슬쩍 소금을 흘렸다.
부적을 남발하는 고용주의 취향 덕택에 넉넉히 받아 챙겨 와서 다행이었다. 물론 여기서 아는 형님이란 고용주를 말했다.
“아는 형님이 무당이야?”
“아뇨. 무당은 아닌데 그 형님이 무신 쪽으로 공부를 심도 있게 해서 이런저런 부적을 쓸 줄 알거든요. 효험이 믿기지 않더라도 제 성의를 봐서 오늘 밤은 가지고 계셔 주세요.”
“액을 쫓는 부적이라니 고기가 아주 많이 잡히겠는걸?”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발전돼?
미신 안 믿는다며 거부할까 봐 염려했건만 낚시꾼들은 알아서 엉뚱한 방향으로 넘겨짚어 주기까지 했다.
“근데 그 형님이 주의를 주더라고요. 이 장소를 떠나실 때는 아저씨들이 가져온 물건을 남김없이 전부 챙겨 가시라고요. 꼭!”
이 일의 의뢰인은 그 뒷정리를 못해서 귀신이 자꾸만 연락을 해 왔다. 놓고 간 물건을 돌려주러 갈 테니까 주소 좀 불러 달라고.
내가 의뢰인의 놓고 간 물건을 대신 찾아 주고자 이 산골짜기까지 파견된 건 아니었다. 의뢰인조차 자기가 뭘 잃어버렸는지를 몰랐다. 터보 라이터를 잃어버렸다고 하더니만 어제 자동차 시트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알았다 한들 사람이 여럿 빠져 죽었다는 수심 깊은 저수지 밑바닥을 뒤질 생각은 없었다.
「강지헌, 네가 아직은 배가 부른 모양이네. 너 그렇게 절실함 없이 굴다간 붙은 거 영영 못 떼어 낸다. 그 전에 생기가 빨려서 죽을 테지만.」
서창경은 내가 저수지의 밑바닥을 개처럼 기어 다닐 날이 있을 거라고 또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 댔다. 그때에 가서는 나도 저처럼 귀신을 보게 될 거라고도 했다.
공포 영화를 봐도 무덤덤하고,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분장을 봐도 시시하기만 한 나는 그 예고가 무섭지도 않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당시에는.
‘부적 넘겨주고 소금도 쳤으니 그럭저럭 예방은 됐으려나…….’
저 일반인 일행을 위해서 내가 뭘 더 해 줘야 할지 곰곰이 짚어 봤다. 나 역시 영감이 제로에 가까운 일반인이지만 믿는 구석―알바 고용주―이 있기에 내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귀신이 붙어 있는데 또 달라붙지는 않을 테고.
혹여 달라붙더라도 귀신이 하나둘 추가되는 것이 현재의 내 상태에서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싶었다.
낚시 의자에 걸터앉아 수면 위로 발광하는 야광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아늑한 불빛이 저수지의 스산한 분위기를 중화해 주는 듯했다. 포근해지는 느낌은 마음에 들지만 일하러 왔으니까 졸지는 말자고 새삼 눈을 부릅떴다.
야광찌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은 넷.
어느 사이 죽은 사람이 합류해 있었다. 둘러본다고 해서 비전문가인 내가 그 존재를 잡아챌 수 있을 리 만무했기에 얌전히 고용주가 시킨 일이나 했다.
무신과 관련한 의뢰에 경험이 풍부한 서창경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상황을 내다봤다. 지금까지 세 건의 알바를 진행하면서 그가 지시한 매뉴얼을 따른 덕분인지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직 뭐가 뭔지 이 업계를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귀신에게도 행동 패턴이란 것이 있단다. 이게 산 사람의 상식과는 다르니까 나한테 익숙하다고 해서 덥석 받아들이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고.
한마디로 귀신의 언어를 믿고 함부로 따르지 말라는 거다. 진실된 귀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럼 조상신이 로또 번호 알려 준다는 얘긴 다 뭐야? 예외로 조상신이 하는 말은 믿어도 된다는 건가?’
뒤늦게 의문이 떠올랐지만 답변을 해 줄 서창경은 이 자리에 없었다.
바닥에다 떡밥 그릇을 내려놓은 뒤 그 안에다 가져온 물건을 넣고 뚜껑을 활짝 열어 두었다. 물건은 제목에 ‘교환 신청서’라고 쓰고 서창경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 한 장과 서창경의 자동차에 있던 주차 번호판, 그리고 오만 원권 지폐 두 장이었다.
‘이 물건의 주인은 서창경이다!’라고 광고하다 못해 그의 연락처까지 적힌 거래품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위험한 짓거리 같았다. 심지어 의뢰인 대신에 저를 찾아오라며 여비까지 넣어 주었다.
「그거 네가 차에 싣고 내 앞으로 데려올래?」
여비를 챙긴 경위는 나더러 직접 저수지 귀신을 모셔 오라는 고용주의 제안에 내가 미쳤느냐고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싫지!
아무리 내 눈에 귀신이 보이지 않고 내 상상력이 부족하다 해도 누구처럼 자진해서 귀신을 불러들이고 싶진 않았다. 그 인간은 신령을 다룰 자신이 있으니까 이런 먹잇감 대타 방식을 택한 것이겠지만.
목적은 사령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했다. 센 놈일수록 유용하다고.
서창경은 무속인처럼 귀신을 모시지 않고, 제 아래로 사령을 거느렸다. 식신을 다루는 음양사와 비슷한 맥락인가 싶었다. 이쪽은 풍수지리나 천문을 읽을 줄 모른다는 점이 달랐지만, 한국의 무신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네 이름을 쓰지, 왜.』
“……!”
누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지척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와 흠칫했다. 낚시꾼 일행 중 한 명의 음성이었다. 내 기억이 조작됐거나 이놈이 산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다. 어쨌거나 둘 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떡밥이 마음에 안 드네. 네 이름을 쓰지-.』
다시 한번 조르는 듯한 말투가 들렸다.
“…….”
『너는 이름이 뭐야? 이름 어떻게 돼?』
“…….”
중요한 점은 내가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가까이에 먹이가 있는데 굳이 물가를 떠나 멀리 있는 먹이부터 찾으러 가진 않을 거라고 고용주가 놀리는 투로 설명해 주었다. 우선 가까운 먹이부터 잡아먹고…….
‘뭍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물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이내 호기심을 접었다.
떡밥 그릇 위로 웅크려 앉은 그림자가 실재하는지 착시 현상인지 집중해서 확인하려 들지도 않았고, 놈의 씨부렁거림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건 고용주와 죽은 자 사이의 계약이며 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의뢰인은 몹시 억울해하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말을 시켜서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낚시터에서 사교성을 발휘한 것도 죄냐고 말이다.
어떡하다 보니 통성명하는 분위기가 되어 괜히 까칠한 사람이라고 오해받을까 봐 이름과 사는 지역, 직업 등을 알려 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