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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3)화 (3/96)

3화

새벽에 떠날 때 보니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의뢰인의 자리까지 와서 서로 나이를 공개하며 형님 동생 했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차를 주차해 둔 공터까지 내려왔을 때는 인원수도 바뀌어 밤새 다섯 명인 줄 알았던 일행이 넷으로 줄어들어 있었고, 그때부터 무섬증이 일어 경계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그 경각심이 의뢰인을 살렸다.

방심하고 있을 때마다 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단다. 천만다행히도 주소를 알려 줄 차례가 오면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에 있는 것이 죽은 사람이라는 자각이 든다고.

『크크. 이 새끼 다 들리면서 모르는 척이네. 그깟 허접한 부적 품고 있다고 네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

아, 미치겠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만 마치면 알바를 그만둬야 할 듯싶다. 알바 보수도 상당한 데다, 위험에 처한 타인을 돕는다는 취지도 좋지만 이런 상황이 거듭되니 조금씩 버거워졌다.

머리를 풀어 헤쳤는지, 피를 흘리는지,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섭진 않았다. 그러나 바닥을 치는 상상력도 연거푸 자극당하다 보니까 점차 심력이 닳는 느낌이 들었다.

사고방식이 남다른 고용주는 즐기면서 돈을 벌라고 권했지만, 맘씨 좋은 신령님도 아니고 악의에 찌든 흉신을 상대하면서 뭘 어떻게 즐기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좋은 귀신이라면 이런 사달도 일으키지 않았겠지만.

무엇보다 고용주가 내게 닥친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는 점이 수상쩍었다. 흔한 잡귀라더니 당장 해결해 주지 못할 이유가 뭔데.

충성심을 증명하면 귀신을 떼 주겠다는 개소리만 매일같이 듣고 있었다.

무슨 충성심. 진짜 미친놈인가?

고맙게도 고용주가 흥신소를 통해 윤상현의 사주는 알아봐 주었다. 나는 처음 계획대로 그 사주를 들고 조만간 첫 번째 무속인을 찾아가 볼 작정이었다.

“엇. 저기 사람이 빠졌는데?”

나하고는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벌떡 일어섰다. 그가 팔을 뻗어 가리킨 곳은 저수지 한가운데, 수면에 낀 물안개 말고는 물결도 없이 잔잔하기만 한 장소였다.

‘치사한 귀신 새끼가, 나한텐 안 통하니까 상관도 없는 사람을 건드리네!’

투명 인간을 구해야 한다며 법석을 떠는 쪽으로 달려가며 이를 갈았다.

“가라앉기 전에 빨리 건져 내야지!”

부력이 있는 낚시 조끼를 믿었는지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저수지로 점프할 태세였다. 아무래도 잘 홀리는 체질인가 보다.

“정신 차리세요!”

양어깨를 내리눌러 자리에 앉게 했다. 이래도 정신을 못 차릴 땐 한 대 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사람 패고 다니면 아빠한테 내가 맞아 죽는다.

“인마, 너 미쳤냐? 물에 빠지긴 누가 빠졌다고 그래!”

“아이고. 헛것을 본 모양이네. 학생이 준 부적이 안 듣나 보다.”

멀쩡한 일행들이 다가와 아저씨와 나를 둘러쌌다.

“아? 아…, 아니야. 몸에 지니라고 한 걸 내가 아끼느라 가방에 넣어 뒀거든.”

“아니 그걸 왜 가방에다 넣었어!”

제정신이 돌아온 중년 남자가 중간 지점에 두고 다 함께 사용하는 돗자리 위의 짐 가방을 눈짓했다. 저쪽에다 부적을 모셔 뒀다고.

“일부러 점집 찾아가는 거 아니라면 이런 물건 구하기가 어렵잖아. 우리 애 올해 수능 보는데 운 좋아지라고 가져다주려고 그랬지.”

아니, 아저씨! 이거 수능 시험 같은 데 쓰는 부적 아니라고! 부적이 무슨 만능열쇠인 줄로 아세요?

문외한이던 나도 부적의 종류는 쓰임새에 따라 나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는데,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이 학생 아니면 큰일 날 뻔했잖어!”

“아이고, 학생, 바로 달려와 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내가 오늘 물귀신이 될 뻔했네.”

서창경은 나더러 넌 도대체 아는 게 뭐가 있냐고 구박을 일삼을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부적에 대한 상식이 없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상식이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와, 나 이렇게 생생한 체험은 처음이다. 분명 저기서 어떤 남자가 살려 달라고 외쳤단 말이야?”

“아저씨, 지금은 괜찮으세요?”

후아, 후아,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남은 부적을 한 장 더 건네며 물었다.

“응. 이제는 괜찮지. ……엇, 나 또 주는 거야? 고마워. 나 멀쩡해. 이제 저수지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도 안 보여.”

“물에 뜬 야광찌는 전부 몇 개로 보이세요?”

“어디 보자. ……다섯 개 아냐?”

안 멀쩡하시네.

숨겨서 뿌리던 소금을 꺼내어 대놓고 정수리에서부터 뿌려 줬다.

“이거 우리 오늘은 여기서 접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학생, 나도 그 소금 좀 쳐 줘.”

“그거랑 비슷한 효과인 거지? 장례식에 다녀올 때 뿌리는 거 말이야.”

나머지 두 사람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소금을 요구했다. ‘영력이 있는 서창경이 해 줘야 좀 더 효험이 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내 나름은 정성껏 소금을 쳐 줬다.

‘제발 무탈하게들 돌아가세요.’

“나 붕어 두어 마리만 잡고 돌아가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가요. 아는 형님 말이 이런 데 오면 분위기 탓에 잠깐씩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아직 거래가 끝나지 않았기에 나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아무렴, 같이 내려가야지. 어른이 돼서 학생 혼자 두고 우리끼리만 어떻게 가.”

나는 아저씨들이 더 걱정돼서 하는 얘긴데요.

헤어지기 전에 세 사람의 연락처를 전부 받아 챙길 작정이었다.

내가 태연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인지 일행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혹시 모를 다음 점프에 신속히 대비하고자 나는 홀렸던 아저씨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 학생, 너무 붙어 앉으면 고기가 안 와.”

“어쩌라고요.”

베테랑 낚시꾼 아저씨는 짜증스러운 낯으로 눈치를 줬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물귀신이 되는 것보다야 낫지.

“지금은 야광찌가 몇 개예요?”

틈틈이 불빛의 숫자를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네 개라니까. ……어, 어엇, 우리 원래 네 개였잖아?”

그제야 줄곧 숫자를 잘못 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저씨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을 했다.

“괜찮아요. 제 눈에도 내내 다섯 개였다가 방금 하나 줄어들었거든요.”

실재한 물건의 개수가 얼마인지 자각하고 셌는지, 자각 없이 셌는지의 차이일 뿐이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데.”

“졸업했어요.”

“그럼 갓 졸업한 거지?”

“예.”

“어린 사람이 담력이 보통이 아니네. 무섭지 않아? 왜 그렇게 태연해?”

“아는 형님 말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서 그렇다는데요. 영력도 없는 주제에 아는 게 많아지고 귀신도 보이고 하면 저도 달라질 거랍니다.”

그 전에 이 업계에서 발을 빼야지.

영력이 없다는 건 무기가 없다는 말이었다. 빈손으로 싸워야 하는 나는 서창경처럼 이런 일을 하며 오래 버틸 자신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떡밥 그릇을 놓아둔 장소로 걸어갔다. 그릇 위의 주차 번호판을 보고 일행이 수상하게 여길까 봐 일부러 내가 앉았던 자리에 두고 넘어왔더랬다.

“뭔데. 고작 이따위 것 때문에……. 하-.”

의뢰인이 잃어버렸을 거라고 추정되는 물건, 기다란 봉처럼 생긴 야광찌를 발견하고는 낮게 탄식했다. 사람 여럿 고생시키고 목숨까지 위협한 물건이다 보니 ‘어류둥둥’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상품명을 봐도 웃기기는커녕 불편함만이 치밀었다.

교환이 성립되어 신청서와 주차 번호판, 그리고 현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편이라 이런 현상을 처음 겪었을 때에도 크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일어났나 보네, 하고 말았지.

“이만 철수할 생각인데 아직 한 마리도 못 낚으신 분?”

자칭 베테랑 낚시꾼들의 프라이드를 생각해서 내가 잡은 붕어를 나눠 주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벌써 가게?”

“우리 조금만 더 앉았다가 가자.”

낚시꾼들은 물고기가 한두 마리씩 낚이기 시작하자 아쉬워하며 좀 더 미적대고 싶어 했다.

“아는 형님 말이요, 이런 데 와서 자칫 정줄 놓고 방심하면 골로 가는 건 한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아까는 우리더러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그 아까 전에 저수지 귀신 나온 거 잊으신 분?”

“…….”

“그 귀신이 노렸던 여러분을 지금은 단념했다고 생각하세요? 왜요. 무슨 이유로?”

“…….”

단념했는지 아닌지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서창경도 아닌데 귀신 마음이 어떤지 무슨 수로 꿰뚫어 봐.

그냥 궁금해서 한번 물어봤건만 다들 퍼렇게 질려서는 바리바리 짐을 쌌다.

나는 저수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일행이 잊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세심하게 확인했다. 꼬투리 잡힐 일이 없게끔 말이다.

고작 낚시찌 하나 가지고 사람 산목숨으로 교환하려 드는 걸 보면 산수가 안 되고 양심도 없는 귀신 새끼였다. 친절한 척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다주겠다고는 했지만,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해 그걸 고맙다고 여기면 안 된다. 물건 되돌려 받고 그때부터 지옥이 열린다는 걸 알아야지.

점검이 끝나자 낚시꾼들을 앞장세우고 차를 대어 놓은 산 중턱으로 내려왔다.

연락처를 교환하며, 당분간 부적을 몸에 지닐 것과 사소한 일이라도 주변에 이상이 생기면 연락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마음 같아선 그들의 목적지까지 배웅하고 싶었지만 사는 지역이 달랐다. 나도 집에 도착하면 눈 붙일 새도 없이 씻자마자 오전 수업에 들어가야 했고.

앞차의 속도에 맞추어 후미등을 지켜보면서 운전하는데, 그 차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낚시꾼03정민수’라고 등록된 아저씨였다.

―봤지?

“뭘요.”

―길가에 서서 차 세우려는 남자 말이야. 히치하이커. 미안한데 느낌이 좀 그래서 안 태웠거든.

“잘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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