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줄곧 외길이었고, 밤눈이 탁월한 편임에도 나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겁을 주기 싫어서 직접적으로 ‘그런 사람은 없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분 안 돼서 그 비슷한 남자가 또 길가에 서 있는 거야. 설마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 하하. 우리가 잘못 본 걸 거야, 그치? 하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정해진 답을 원하는 거다. 일단은 바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럼요. 원래 이런 산길 위에선 똑같이 생긴 사람을 종종 만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서울 안 간다고, 당분간 서울에는 갈 일이 없다는 내용 위주로 대화를 나누시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네요.”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당신들이 잘못 본 것도 아니라는 암시도 해 줬다.
귓구멍 썩은 귀신 새끼가 아니라면 번지수 잘못 골랐다는 걸 알고 떨어져 나가겠지.
―뒤, 뒤에 차 타라고 할까?
뒤차 = 내가 탄 차.
어이가 없으려니 울화가 치밀기보다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걸 두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하지, 아마?
“하하. 아무리 무서워도 저는 팔아먹지 마시고요.”
―아니, 학생은 혼자서라도 충분히 귀신을 상대할 것 같아서 그러지. 세잖아?
“저 안 셉니다. 그냥 밤낚시 하러 온 사람이지 무당 아니고, 영력 같은 거 하나도 없거든요.”
내 몸에 붙은 귀신도 해결하지 못하는 주제에 지금 다른 귀신을 만나러 다닐 땐가 싶어서 자괴감마저 드는 중이었다.
얼마 후 앞차에서 또 연락이 왔다. 신기하게도 목적지를 아랫지방으로 말했더니 그 남자가 길가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어쩐지 차 안을 짓누르던 공기도 가벼워진 듯하다고.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인적이 드문 시골 밤길에 앞차가 아니면 이 차겠지. 영적으로 둔감한 편이라 공기가 무겁고 가볍고 이런 건 느끼지 못했지만, 창문을 반쯤 내렸다.
“이 시발 새끼가 여비까지 받아 처먹고서 계약 위반을 하네? 누가 남의 차에 무임승차하랬어. 당장 내려라. 네 돈을 차비로 쓰든지, 그 돈도 아까우면 걸어서 서창경을 찾아가, 새끼야!”
톨게이트 통행료로 가지고 있던 현금 중에서 동전 몇 개를 창문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무언가가 바뀌길 바랐지만, 역시나 공기가 무거워지고 가벼워지고 같은 변화는 느낄 수가 없었다.
‘저 아저씨들이 나보다 영감이 더 뛰어난가 보다, 야.’
혼자 생쇼를 한 것에 머쓱해하며 창문을 다시 닫았다.
∞ ∞ ∞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에도 저수지 귀신은 서울에 도착하지 않았다.
‘진짜로 걸어서 오려나, 이 새끼. 설마 차비가 아까워서? 혹은 내 욕설에 삐쳐서?’
많이 상대해 본 건 아니지만 이토록 쪼잔하고 속 좁고 답답한 귀신은 처음이라 내심 당혹스러웠다.
고용주가 왜 이렇게 늦어지느냐고, 이번 의뢰는 실패한 것이 아니냐고 닦달했지만, 나는 심증을 감추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사령으로 삼으면 알게 될 일, 미리부터 잔소리 폭풍에 시달리기는 싫었다.
의뢰인만 안전하면 목적을 달성한 거지.
“실패는 무슨. 김창진 씨한텐 이제 연락 안 온다면서요.”
의뢰는 성공해서 두 번 다시 잃어버린 물건을 미끼로 찾아오겠다는 협박 전화는 없었다.
저수지 귀신이 주차 번호판을 들고 서창경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쯤이나 지난 후였다. 시간이 지체된 사유는 논두렁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을 줍느라고.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정신 나간 귀신 아냐? 100원쯤은 그냥 포기해도 되는 금액이잖아요. 그게 뭐라고 며칠씩이나 찾아 헤매? 아이큐가 30인가.”
“그러니까 귀신이지. 지능 문제가 아니거든. 너는 또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주술이 너한테로 옮겨 가면 어떡하려고 함부로 네 돈을 건네. 너야말로 제정신이야? 상식이 있어 없어. 너는 도대체가 아는 게 뭐가 있냐?”
뭐? 그런 식으로 동전을 던지는 것도 주술이랑 연관이 있다고?
‘에라잇, 먹고 떨어져라!’ 하는 심정으로 던진 동전에 그런 무시무시한 의미가 포함돼 있을 줄은 몰랐지.
다시 한번 기이한 업계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서창경이 말하는 상식에는 좀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그냥 이대로 계속 모르고 살았으면 했다.
나는 음양사 체질이 아닌지 귀신 부리는 능력 따위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는 내가 조수로서 이 방면에 소양을 쌓길 바랐지만, 나는 무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도 되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됐고.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어서 윤상현 일이나 해결해 줘요.”
“일이나 제대로 하고 뻔뻔스럽게 굴어. 너는 복종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예의 없이 내게 먼저 요구하지 마.”
지랄.
이 새끼도 제정신이 아니어서 맨날 사령 놀이나 하다 보니, 숨이 붙어 있는 사람 역시 꼭두각시 인형으로 취급해도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첫 번째 무속인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 ∞ ∞
무더위가 사그라지면서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처음 맞이한 방학은 ‘서창경 씨와 함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기에 친구들과 만날 시간을 내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날도 많아서 외박에 관대한 부모님마저 너 뭐 하고 다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고교 동창이자 같은 성향이라 친해진 김재원은 외국에 머물다가 개강에 맞추어 귀국했기에 그나마 가장 친한 친구를 방치했다는 비난은 면할 수 있었다.
“강지 너 오전에 물리학 실험 수업 안 들어왔더라? 선배님들이 하는 얘기 못 들었어? 그거 이론이랑 실험을 병행해야 하는 교양 필수라서 둘 중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학점 인정 안 된다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김재원과 기숙사 식당에서 마주 보고 앉아 점심을 먹는데, 지나가던 산업공학과 녀석이 아는 척을 해 왔다.
그러나 나는 경영학 전공. 물리 과목을 필수로 수강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가끔씩 이 친구처럼 내가 공대생이 아닌지 헷갈리는 때가 있긴 했다.
“그래, 우리 강지도 수강 정정 기간 지나기 전에 얼른 신청하자? 실험할 때 강지가 옆에 없으니까 내가 너무 외롭더라. 너 물리 들어야 해.”
같은 산공 김재원이 동기의 착각을 오히려 부추겼다.
“그럴까?”
팔랑귀처럼 넘어가는 시늉을 했지만, 이번 학기에 이 이상의 수강 신청은 무리였다. 수업 일수를 맞출 수 있을지 염려될 정도로 아르바이트가 더 바빠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태 서창경과 함께 일한다는 건 내가 귀신을 떼어 내는 데에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첫 번째 무속인과 다시 만난 그곳에서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윤상현은 잡귀였지만, 아주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잡귀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는 결국 도움을 구하고자 서창경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야, 어제 경영학과 난리 났단 얘기 들었냐? 미남 한 명 등장했다고 멀리 있는 우리 공대 캠퍼스까지 들썩거려. 신영 선배하고 김민지는 경영 남신 구경하러 정문 경영관까지 내려갔다 왔다더라.”
산공 녀석은 식판을 든 채 테이블 옆에 서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어제는 그 경영 남신이라는 선배와 함께 듣는 수업이 없어서 마주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영대 건물 복도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긴 했다. 대부분 내 동기 여학생들이었고, 다른 반 학생들도 함께였다.
그 선배가 강의실을 이동할 때마다 달려가서 얼굴을 보고 오는 거다. 한 번 다녀온 애들도 계속해서 갔다.
새로 개발한 놀이인가 보다. 원숭이 구경, 뭐 이런 건가.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 선배가 3학년으로 복학한 사실을 비롯해 오늘 무슨 무슨 수업을 듣고, 어떤 식으로 옷을 입었고, 가방 색깔은 어떻고, 등등의 알고 싶지 않은 온갖 잡다한 정보를 섭렵하고 말았다.
사생활 보호는 괜찮은지 우려될 정도였다.
그런 걱정과는 별개로 전역한 선배들을 수두룩하니 보아 왔기에 큰 기대감은 없었다. 그 나이 되면 다 아저씨지. 나는 귀여운 타입이 취향이라.
“언제 적 남신이야. 새내기도 아니고 군대에서 얼굴 다 삭아서 돌아왔을 텐데.”
“아니래. 소문이 사실이었대!”
“어, 그러냐.”
김재원과 나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산공 녀석은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생긴 놈들은 라이벌이 등장해도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야.”
“친구야, 너도 그만하면 잘생겼어. 우리 남의 학부 미남자는 신경 쓰지 말자. 건물 너무 떨어져 있어서 그 사람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얼굴 볼 일도 없을 거야.”
경영대 학생이 산공대 학생에 빙의해서 산공 녀석을 위로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캠퍼스의 극과 극을 가로지르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1학기 교양 과목은 모조리 공대에서 수강한 전적이 있다. 김재원을 비롯한 고등학교 동문이 공대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네 말이 맞네. 우리 산공엔 김재원도 있고 강지 너도 있고 나도 있지. 산공의 미래가 밝다. 한 명만 더 모아서 우리 4대 천왕 만들까?”
켁-.
하필 이 타이밍에 물을 마시던 김재원이 사레가 들려 한동안 고통에 겨워했다. 위로의 효과가 지나쳐서 하지 말아야 할 소리마저 내뱉게 만들어 버렸지만 큰 웃음을 줬으니 그걸로 된 거지, 뭘.
점심을 먹고는 기숙사로 올라갔다. 2인실에는 김재원의 룸메이트이자 내 고교 동문 선배가 아침에 기어들어 와 숙취로 곯아떨어져 있었다. 혼절 상태라 밥 먹자고 깨워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이 선배처럼 학생회며 동아리며 소속된 그룹이 여러 개면 개강 파티를 수차례나 뛰어야 한다.
김재원은 책을 읽었고, 나는 김재원의 침대를 차지하고 모자란 잠을 채웠다. 학교에는 쉬러 온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업만 듣는 것이 이토록 편할 줄은 몰랐다. 몸도 정신도 편안함 그 자체였다.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는 말만 듣고 자라서 정말로 공부가 엄청난 시련인 줄 알았지.
어제는 지방에 있는 어느 흉가에 다녀오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오컬트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심령 스폿이라고 한다.
내가 흉가 체험에 뛰어든 건 당연히 아니고 서창경의 지시로 넋을 건지러 간 거였다. 흉가 체험은 의뢰인의 애인이 했는데, 그의 직업이 BJ였다. 인터넷 방송 촬영을 하러 갔다가 흉신과 맞닥뜨린 후 혼비백산해서 뛰쳐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