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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7)화 (7/96)

7화

버스가 섬으로 통하는 도로로 진입하고서 서행하자, 핵인싸 설정우와 자리를 맞바꾸어 맨 앞좌석에서 대기하던 나는 마이크를 켜고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2X 학번 강지헌입니다.”

“까아아.”

“으억, 목소리 어떡해.”

의미 모를 까마귀 소리도 들리고,

“지헌 선배님 왜 이제야 제 앞에 나타나셨어요?”

의미 모를 질문도 튀어나왔다.

줄곧 같은 버스를 타고 내려왔으면서 무슨 헛소리야?

“조용히 안 하시면 군대 축구 얘기를 꺼내겠습니다.”

군대 축구 효과는 여기서도 직방이어서, 창문을 통해 바다가 갈라지는 광경을 지켜보느라 여념이 없던 사람들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앞쪽을 돌아봤다.

“잠깐 안전 수칙만 말씀드릴게요. 호령도에는 지금부터 내일 출발 전까지 두 차례의 간조가 일어날 예정입니다. 낮 시간대 썰물하고 밤 시간대 썰물이 있는데, 섬의 치안이 좋은 편이 아니라 야간 갯벌 체험은 금지하겠습니다. 밤중에 펜션 바깥으로 나가시면 곤란해요.”

“그런 게 어딨어요! 밤새도록 조개를 캐야지 백 킬로그램 채집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구요!”

“에이, 사람이 수십 명인데 무슨 치안 걱정을 해요.”

“그러게. 우리끼리 뭉쳐 다니면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이왕 온 거 뽕을 뽑고 가야죠!”

인간들이 갯벌 어패류의 씨를 말릴 기세로 대들었다. 내 눈엔 역시 이 지구 행성을 살릴 길은 인류 멸종밖에 없음을 알려 주는 산 증인들처럼 보였다.

“오늘은 백중날 지방 행사가 있어서 섬 주민이 아닌 외부인도 상당수 들어갑니다.”

일부러 이날에 맞추어 온 내가 설득했다.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나 말고도 들어올 무리가 있었다. 그들에게 볼일이 있어서 내가 이 섬에 온 거고.

“백중이 뭐지? 닭고기 먹고 몸보신해야 할 어감인데?”

“유시호야, 몸보신하는 날은 복날이고. 저 녀석 혹시 백숙이랑 중복 합성해서 자기만의 백중을 만들어 낸 거 아냐?”

노아의 방주 유시호가 또 한 건 터뜨리자 나보다 학번이 높은 선배가 면박을 줬다.

올해 신입생인 유시호는 전체적으로 외형이 동글동글하고 여태 젖살이 남아 있는 남자애였다. 호빵 같은 얼굴만 쳐다봐도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다.

자식, 귀엽네.

“유시호 후배님,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가면 내가 치킨 사 줄 테니까 한밤중에는 돌아다니지 맙시다.”

“넵! 선배님 말씀 잘 듣고 얌전히 놀게요. 치킨 꼭 사 주세요!”

유시호가 치킨 한 마리에 홀랑 넘어왔다. 휴학하기 전에도 새내기를 맞았고, 그땐 졸졸 따라다니는 한 살 아래 녀석들이 성가시기만 했는데 이젠 1학년 애기들이 몹시 예뻐 보였다. 나이 든 증거인가 보다.

“응, 접수.”

내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지원과 원성이 쏟아졌다.

“저도요, 저도 얌전히 지낼게요!”

“선배, 저도 치킨 잘 먹어요!”

“지헌이 형, 우리 늙은 후배들도 잊지 말고 챙겨 줘!”

다행히도 내 정신 상태가 그렇게까지 삭은 건 아닌지 한 살 아래 놈들은 여전히 징그러웠다.

“실종, 사망 사고 없이 이 인원수 그대로 돌아간다면 기쁜 마음으로 한턱 쏘겠습니다. 안전 수칙이라고 말하면 재깍 알아들으실 줄 알았는데요. 조개잡이가 자기 안위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이 여럿 계시는 것처럼 보여서 보충 설명 드릴게요.”

삽시간에 들뜬 공기가 가라앉았다. 그제야 유시호에게 내건 ‘무사히’라는 조건이 농담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백중날은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귀신의 날입니다.”

대외적으론 부처를 공양하는 날로 알려졌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석가모니가 아닌 잡귀를 뜻했다.

“지방마다 치르는 의식이 다른데 이 호령도에선 해신제를 지내요. 죽은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찾아오니까. 즉, 이 지역 대표 귀신은 물귀신인 거지. 물귀신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밑에서 다릴 잡아당긴대요.”

“물속에 살아서 음기가 제일 세다던데.”

“자기가 죽은 자리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야만 그 자릴 벗어날 수 있어서 끈질기고 악질인 귀신이라고 들었어요.”

괴담의 단골 주역답게 여기저기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래요. 다들 잘 아시네. 누구 오늘 밤 찾아올 물귀신이랑 자리 교대해 주고 싶은 사람?”

“…….”

“…….”

“…….”

흉가 체험하듯 이번 기회에 우리 학부 괴담 전설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얼간이가 아무도 없어 내심 안도했다.

“오늘은 귀신 드는 날이니까 함부로 이상한 걸 소환하거나 그걸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또, 수상쩍은 상황에서 자기 이름을 알려 주시면 안 됩니다. 유시호 후배님, 나처럼 생긴 사람이 한밤중에 뜬금없이 이름 물어볼 땐 어떡해야 한다고?”

“예! ‘내 이름은 강지헌이에요.’라고 예쁘게 대답해 줍니다!”

동그란 얼굴이 또박또박 내 이름을 팔았다.

저 자식이 죽으려고. 날 그렇게 보내고 싶냐.

사람들의 웃음 행렬에 어울려 주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유시호 후배님이 날 제거하고 싶나 보네. 나도 귀신 만나면 니 이름 댈 거니까 각오해라. ……아, 그리고 이 자리에 안 계신 학우님들에게도 밤에는 절대 바깥으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꼭 전해 주세요.”

예상대로 이 자리에 없는 사람 중에서 이혜준의 이름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고, 그에게 말을 붙여 볼 기회가 생겼다고 여겼는지 사람들의 얼굴에 은근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그 선배는 예전에 경영대 남신이라고 불렸다. 휴학 중인 동안에도 그 유명세는 시들지 않은 모양이다.

∞ ∞ ∞

단 한 번의 썰물 찬스에 마음이 급해진 일행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전투복으로 무장하고 아직 물이 덜 빠진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멋을 포기한 실용적인 차림새가 대부분으로, 그들은 현지인 어부 무리처럼도 보였다.

뭘 저렇게까지 열심일까.

“망태기, 통발, 목욕탕 의자까진 이해하겠는데 오리발은 왜 가져왔지? 저거 신으면 갯벌에 안 빠진대?”

설정우가 허겁지겁 사라지는 사람들을 앞마당에서 배웅하며 헛웃음을 쳤다. 거름망 없이 누구든 무엇이든 잘 받아들이는 핵인싸라도 포용해 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나 보다.

“모르지. 창의적으로 별의별 걸 다 준비해 왔네. 일단 짐부터 안으로 옮기자. 기사님도 어서 주차하고 쉬셔야지.”

펜션 바깥 도로에 세워진 버스의 짐칸을 가리켰다. 제비뽑기로 짐꾼에 발탁된 후배 세 명이 한창 물건을 내리는 참이었다.

“정우 선배, 아이스박스에 든 건 뭐예요?”

“어. 고기하고 소시지하고 채소. 해산물은 우리 애들 노동력만 믿고 생략했는데 새우는 사 올 걸 그랬나?”

“여기 갯벌에선 새우 안 나와요?”

“잡히긴 하는데 시중에서 보는 왕새우하고는 생김새가 조금 달라. 집게에 물리면 엄청 아프고 피도 나거든. 그거 노리려면 두꺼운 장갑을 껴야 할 텐데.”

후배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지헌이 형은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전에도 이 섬에 와 봤어요?”

“어. 이 동네 우리 아버지 고향. 나 짐만 옮기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잠깐 들러서 인사 드리고 올게?”

자주 찾는 사이처럼, 조부모와 친밀하게 교류하는 척 양해를 구했다. 필요한 물건을 받으러 오늘 들르겠다고 연락은 해 둔 상태였다.

“뭐? 야,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여긴 우리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너 얼른 가 봐. 어르신들이 눈 빠지게 손주 기다리시겠다.”

“맞아. 지헌이 형은 오늘 밤에 할머니 댁에서 자야 하는 거 아녜요?”

“혹시 형이 말한 물주가 형네 할머니 할아버지셨어요?”

어서 가 보라는 재촉과 질문이 연이어졌다.

“고작 하룻밤 여정인데 잠을 왜 자. 나 밤새도록 놀 거니까 함부로 내쫓지 마라. 그리고 물주는 너희지. 회비 냈잖아.”

비용을 대 줄 사람이 따로 있으니 빈손으로 와도 된다고 했건만, 십시일반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며 저희끼리 회비를 걷었다. 인원이 오십 명이 넘어가다 보니 만 원의 회비로도 단체 숙소며 교통비가 해결됐다. 따로 자동차를 가져온 사람들도 예외 없이 전부 냈고. 하긴 부담이 큰 금액은 아니니까.

덕분에 보탤 경비가 보잘것없어진 고용주는 황당해했다.

「나, 너 놀러 보내는 거 아니니까 방심하다가 일 그르치지 마. 술은 입에도 대지 말고! 일 년에 딱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인데다 나보단 너한테 더 중요한 일이란 말이다. 정신 바짝 차려!」

언제는 귀기를 누를 만큼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놀다가 오라더니, 예상을 웃도는 인원수에 너무 심하게 놀까 봐 짜증 난 것 같았다.

“히히. 살면서 물주 한번 돼 보고 싶었는데 소원 풀었네. 형, 오늘은 저를 물주라고 불러 주세용-!”

“오냐. 우리 규진이 다음 학기 내도록 내가 물주님으로 모실게? 맛있는 거 많이 사 줘.”

“예? 학기 내도록? 나 당장 물주 포기 각서 씁니다. 인제 안 나댈게. 잊어 줘요, 형!”

시시덕거리며 짐칸을 비우는 도중 검은색 밴 한 대가 버스 앞으로 꺾어 들어와 정차했다.

“엇, 이혜준 선배님이다!”

“선배님, 주차장 못 찾으셨어요?”

약속이나 한 듯 나 빼고 모두가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갔다.

아이고. 황제 폐하 납셨네.

즉석에서 결성된 팬클럽을 외면하며 라면 상자 두 개와 과자 상자를 포개어 들고 펜션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스스로 여기기에도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에게 쫓기듯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도망쳐야 해. 잡히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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