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10)화 (10/96)

10화

조상희―철연네―는 풍어제 분야의 국가 무형 문화재 보유자였다. 겉보기로는 어부들의 삶이 윤택해지도록 빌어 주고,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화해시키며 상처를 보듬어 주는 선한 인물이었다. 예술적 경지에 오른 굿판으로 미국과 호주에서 무대 공연을 펼치기도 했으며, 다큐멘터리도 여러 편 찍었고, 하여간에 매우 잘나갔다.

그런 특출난 인물이 이 호령도 인근 출신일 때 뒤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윤 의원 집안의 도구로 쓰이게 되는 거였다. 조상희의 실제 전문 분야는 정·재계 인사를 상대로 한 저주 굿이었다.

마침 호령도에 관련한 의뢰가 들어왔고, 백중이 코앞이고, 제물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등, 때와 시가 적절히 들어맞았기에 우리는 조상희부터 제거하기로 계획했다. 그게 이 잡귀와의 이별을 위한 첫 단계 같으니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윤상현의 이름을 불러 봤더니 역효과가 일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를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이것들의 홈그라운드 버프 탓인지 어깨를 짓누르는 강도가 평소보다 더했다.

귀안을 틔우지 않아 추측만 할 뿐이지만 ‘이것’ 혹은 ‘이것들’이 내 편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이 정도 거리를 질주한다고 해서 호흡이 가빠질 리가 없는데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감각이 소실된 것처럼 팔다리의 움직임이 뇌로 전해지지가 않았다.

나 지금 달리는 거 맞지? 올 때도 길이 이렇게 멀었었나? 이 모퉁이만 돌면 이제…….

“……!”

그러나 여러 굽이로 구부러진 골목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달리고 또 달려도 제자리 뛰기를 하는 듯한 막막함에 사로잡혔다.

이건 환각이야. 강지헌, 정신 차려!

동시에 바로 옆 귓전에서 똑같은 대사가 울렸다.

“강지헌, 정신 차려!”

엄준하게 꾸짖는 목소리가 채찍처럼 내 전신을 후려갈겼다.

“엇……!”

정신이 번쩍 들면서 시야가 환기됐다. 나는 ‘ㅏ’ 자 형태 길목에서 부둣가로 이르는 짧은 샛길을 지나쳐 직진하는 중이었고, 그 탓에 대여섯 걸음 되돌아 나와야 했다.

미친. 이런 식으로 홀린 듯이 같은 장소를 맴돌았나 보다.

뒤늦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딜 그리 다급하게 뛰어가던 중이었어?”

남자의 말투가 나긋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혜준 선배님, 여긴 어떻게…… 어, 제가 잠시 넋을 놓고 있었는데 이름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어깨 너머, 골목 바깥 햇살 가득한 세상에 시선을 두며 일단 인사부터 했다. 볼캡을 깊이 눌러쓴 그와 눈이 마주칠 염려는 없었지만, 나는 예전부터 이 남자를 똑바로 마주 보기가 꺼림칙했다. 마주 볼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적도 없지만.

“난 부른 적 없는데? 쟤가 왜 저러지, 하고 눈으로 좇다 보니까 네가 달리길 멈추고 되돌아 나오더라?”

“…….”

뭔데? 그럼 그 목소리마저 환청이었나?

“혹시 할머님 댁이 어딘지 잊은 거야?”

“아니요. 거긴 다녀왔습니다. 나가는 길을 찾아서 헤매고 있었어요.”

그토록 피해 다녔던 인물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신기함과 동시에 새삼스러운 경계심이 끓어올랐다.

“나가자.”

그가 내 어깨 위로 얹듯이 손을 뻗었다. 공간은 좁고, 팔은 쓸데없이 기다래서 몸이 닿을 것만 같았다. 눈치채이지 않도록 조심히 어깨를 움츠리는데, 이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골목 안 깊숙한 곳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설마, 이 선배님 눈에는 보이는 거야?

“왜 그러시는데요?”

“음? 아니, 너 혹시 미친개한테 쫓겨 다닌 건 아닌가 하고 확인해 봤어.”

쫓겼다는 얘긴 꺼내지도 않았는데 뭔 개소리야.

“…….”

낯을 굳히며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시답지 않은 소리에 불퉁하던 마음은 이내 풀렸다. 엄호하듯이 뒤따르는 발소리가 한껏 곤두선 신경을 가라앉혀 준 덕택이었다.

아주 긴 시간 만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조우한 듯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저승에 한 발을 걸쳤다가 이승으로 되돌아온 안도감과도 비슷했다.

탁 트인 부두로 나서자 멀리 부둣가에서 징이며 북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굿판이 열린 것처럼 보였고, 대성황 속에서 진행 중인지 인파가 수백 명은 모여 있었다. 특히 하얀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우글거렸다. 농악대 비슷한 건가 싶었다.

상대적으로 이 부근은 한산했다.

「행여 조상희하고 눈 마주칠 생각은 하지 마라. 그날은 사람 눈이 아닐 테니까.」

고용주의 충고를 떠올리며, 저 굿판을 어떻게 피해 숙소까지 갈지 동선을 그려 봤다. 안동네로 다시 들어가기엔 겁이 났고, 갯벌로 내려가 멀리 둘러 갈지 빠른 속도로 위험 구역을 돌파할지 갈등했다.

“마셔. 박양우 올 때까지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자.”

이혜준이 작은 생수병을 내밀었다. 개인적으로는 말도 섞어 본 적 없던 나를 제 일행처럼 몰고 가면서.

같이 돌아갈 것도 아닌데 기다리긴 뭘 기다려.

“친구분 말씀이세요?”

“응. 갯벌 와 본 건 처음이라며 조개 캐고 싶다고 하도 징징대기에 잠깐 내려보냈어.”

“두 분 함께 가시지. 왜.”

“나는 해산물 조달 말고 다른 일 하려고. 너도 그렇잖아?”

“어, 뭐, 그렇죠. ……물 잘 마실게요.”

요리며 잡일을 담당하고 싶은가 보다고 여기며 어색하게 대꾸했다. 목이 심하게 타서 받은 물은 고맙게 마시기로 했다. 뺑뺑이 달리기로 오늘 하루치 운동량은 다 채운 것 같았다. 심력이 닳은 것이 더 걱정이었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는데 야단났네.

오늘 밤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기에 잠들어서도 안 되고 어떡하든 상태를 회복해 둬야만 했다.

“강지, 너 머리에 이거 뭔데? 머릿니야? 와, 나 이렇게 커다란 이는 처음 본다. 움직임이 없는 걸 봐선 머릿니 알인가?”

고개를 젖혀 물을 마시는데 한 뼘 위 높이에서 내려다보던 이혜준이 더러운 소릴 지껄였다.

“이거 소금인데요.”

“친척 어른들이 너 재수 없다고 뿌린 거? 그런 거라면 뭐.”

납득한다는 말투에 어이가 사라졌다.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그냥 실수로 쏟은 거거든요?”

물병을 쥐지 않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 내자, 이혜준이 지저분한 걸 피하듯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엇, 가지 마. 강지, 삐친 거야? 그러면 머릿니 대신에 눈이라고 해 줄게. 어깨 위로 비듬처럼 흰 눈이 떨어져 내리네.”

이 새끼가 지금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내 성질을 툭툭 건드리는 거였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지금 그걸 개그라고 치신 거예요?”

등신처럼 나란히 흐흐거리는 대신에 정색하고 지갑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어 내밀었다. 나는 그의 팬클럽이 아니다.

“뭔데?”

“생숫값이요.”

“와, 너 성격 좋다고 소문 자자하던데 원래는 이런 녀석이었어?”

“무슨 헛소문이 떠돌든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선배님이 생수 한 병 대가로 저한테 무례하게 구시는 거 싫습니다. 하지 마시라고요.”

정신을 환기시켜 준 데에 큰 고마움을 느꼈지만, 본인은 모르는 듯하니 그 부분에 대한 대가는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면 수상쩍은 내용이니까.

부러 강경한 태도로 나갔는데 예상이 빗나가 아무 소득이 없었다. 이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어째서 강지헌 후배님은 전부터 나하고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들까?”

“부끄러워서요.”

뜬금없이 허를 찌르는 질문에 새빨간 거짓말로 화답했다.

“수줍음을 타는 성품인가 보네. 흠. 나 뭐 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우리 눈인사 한 번만 할까?”

세 살배기 어린애 달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짓이야?

지폐를 내밀며 내리깐 시야에 상체를 숙이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이혜준의 동작이 잡혔다.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쳤다. 역시 내 시선 처리 때문에 도발하고 약을 올렸던 거다. 홧김에 고개를 돌려 저를 마주 보길 원해서.

애초부터 지독한 거부함이 들던 인물이다. 다른 동기들이 이 선배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야단인 와중에도 나는 접근조차 거리꼈다.

“싫은데요.”

“널 돕고 싶어서 그래.”

“뭘 도와요.”

“일단 네 상태가 어떤지 확인을 해 봐야 뭘 어떻게 도울지 견적이 나오겠지?”

“선배님 혹시 뭐…… 이상한 거 보이세요?”

“아니, 전혀.”

“아.”

명확한 부정에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마음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우리 눈인사 한 번만 해 보자. 그러면 내가 무례하게 군 거 사과하고 네 돈도 받을게, 응?”

“……. ……사과는 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돈만 받으세요.”

까짓것. 눈 한 번 마주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해 주기로 했다. 나도 딱히 예의 바른 후배로 행세하진 않았으니까 사과까지 바라진 않았다.

“그래. 그럴게.”

뻗대지 않고 요구를 받아 주는 태도에 경계심이 조금 더 옅어졌다.

“…….”

피하고 싶은 본능을 누르며 주춤주춤 고개를 들었다.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선 이혜준이 미동도 없이 가만히 내 시선이 와 닿기를 기다려 주었다.

남신 소릴 듣던 선배이다 보니 예상대로 외모는 발군이었다. 연애 생각할 여유가 없는 나는 이 인간이 잘생긴 거하고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여기면서도 순수하게 감탄하고 말았다.

다만, 미모에 비해 인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에 눈길을 줬다가 바라본 입매가 웃는 듯 마는 듯 비틀어져 있었는데, 마치 날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다분히 내 감정이 깔린 감상일 테지만.

시선의 이동을 묵묵히 지켜보던 이혜준이 효과의 극대를 노리듯이 검지를 들어 모자의 챙을 훅 치켜올렸다. 그늘에 가려졌던 기다란 눈매가 드러나며 유난히 밝은 황갈색 홍채 안의 새카만 동공과 마주한 순간, 그것이 나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으아앗-.”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