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안구가 지져지는 고통을 느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역시 그러네. 예전부터 몸에 회충 키우는 인간들이 날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더라고.”
제 예상이 맞아떨어져 흡족해하는 기색이 읽혔다.
회충? 윤상현 말하는 거?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서!”
달군 듯이 홧홧한 눈에서 줄기줄기 눈물이 새어 흘렀다. 얻어터지는 데 익숙해서 고통을 잘 참는 편인데도 이건 진짜 너무너무 아팠다.
두 눈을 꾹 감은 채 대각선으로 멘 슬링 백을 열어 뒤적이는데, 이혜준이 내 손에서 지폐를 거둬 가며 축축한 물건을 쥐여 줬다. 돈을 받겠다는 약속은 지켜졌지만 예기치 못한 통증 탓에 이혜준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낮아진 상태였다. 뭘 받았는지 몰라 의심하며 망설이는 내게 그가 권했다.
“거짓말 아니었어. 안 보이는 거 맞거든. 그거 깨끗한 물티슈니까 써.”
“그런데 왜 이상한 소릴 해요?”
“이상한 소리 뭐? 회충? 설명해 줄 테니까 우선 눈물부터 닦아. 너 우는 거 보니까 좀…… 기분이 그래.”
“왜요.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세요?”
“아니, 왜.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뭐 하러.”
날 울린 놈이 뻔뻔스레 대꾸했다.
“…….”
시신경이 지져지는 감각이지만 눈두덩 위로 물티슈를 가져다 댄다고 해서 열기가 가라앉진 않았다. 이 고통의 근원이 피부나 육신이 아니라는 얘기.
“나한테서 멀찍이 떨어지면 점차 나아질 테니까 무리해서 눈 뜨려고 하지 마.”
“그럼 어서 가요.”
꺼져!
“…….”
노랗고 벌겋게 번지는 눈앞에서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나직하게 터지더니 그가 놀리듯 물었다.
“나 진짜 가? 강지헌 씨, 내가 하는 이야기 들을 필요 없겠어요?”
“…….”
어, 아니네. 통증의 원인은 듣고 보내야 하는구나.
내가 가라고 해 놓고 도로 붙들긴 면목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뒤에 올 말을 기다렸다.
“강지헌 너한테 귀신 붙어 있는 건 알지?”
“……!”
과연! 윤상현의 낌새를 알아챈 거였다.
어째 기시감이 든다고 여겼더니 고용주도 처음 내게 접근할 때 이 수법을 썼더랬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냐고, 너 귀신 붙은 거 안다며 나를 돕는 데 조건을 내걸었지.
그는 옛 생각으로 침잠한 내 반응을 물음에 대한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너 휴학하기 전에도 느낌 되게 쎄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 보이거든.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
이혜준이 예전에도 이것의 존재를 알았다고 말한다.
이상하네. 고용주 조언 듣기 시작하면서 착실히 선업 포인트도 쌓아 가고 나 더 나아진 거 아닌가? 얘기가 다른데?
“이런 건 오래 붙어 있을수록 산 사람 생기를 빨고 나쁜 영향 끼치는 게 당연하잖아요. 선배님은 보는 대신에 느낌으로 아시는 거예요?”
육감만 좋은 것도 신기로 쳐 주는지 모르겠다.
“그냥 보면 알아. 너처럼 이유 없이 눈에 띄게 날 피하는 사람들이 있어. 완전 표시 나게 도망 다니거든. 나 시력 좋아서 백 미터 밖에서도 네가 튀는 거 다 보이더라.”
헉, 몰랐다. 나는 내가 뛰어난 연기파라서 피해 다닌다는 사실 자체를 이 인간이 눈치채지 못하는 줄 알았지.
“그, 그래요?”
당황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그가 피식거렸다.
“늘 거리끼지 않았어? 네가 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네 속에 든 회충이 피하길 원했던 걸 거야. 강지헌 씨 의지가 아니고 그거한테 조종당해 왔다는 거지.”
선배는 멀끔한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머릿니, 비듬, 회충 이딴 소릴 잘도 끄집어냈다. 이 잡귀는 그런 소릴 들어도 싼 존재였지만.
하지만 좆밥 귀신 주제에 윤상현이 내 의식을 조종했다는 얘긴 믿기지가 않았다. 내 몸은 내 건데, 그것만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가 않지.
“그래서요. 선배님이 날 뭘 어떻게 돕겠다고요.”
끙끙 앓는 소리를 삼켜 가며 가까스로 물었다.
이제는 통증이 시신경을 타고 흘러들어 뇌수까지 휘젓는 듯했다. 귀신이 들러붙었나 점검 한번 했다고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울 일인가 싶어 이혜준의 해괴한 눈알이 괜스레 원망스러워졌다.
착시였나 싶을 정도로 밝은 홍채였다. 황금색의, 전설의 방상시가 가졌다는 금안처럼.
나자인 방상시는 악귀라도 쫓아 주지, 이 인간은 왜 여기서 후배를 괴롭히고 있는지 모르겠다.
“강지,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야?”
“뭔 줄 알고 부탁을 해요? 별로 도움 될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아프기만 하잖아.
약해진 심신으로 제게 고분고분해지길 바란 모양이지만 나는 그따위 술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 업계는 온통 사기꾼 천지니까. 실력도 없으면서 어려운 용어 써 가며 아는 척만 오지게 하던 무속인과 도인만도 한 트럭이었다.
“후배님에게 좋은 기운을 나눠 드리려고요.”
미친. 나 진짜 사기꾼 새끼한테 걸려든 거 아냐?
“옥장판 안 사요.”
싸늘히 받아쳤다.
“강지야, 너 유머 감각이 형편없구나?”
아파서 펑펑 우는 사람더러 뭐라는 거야. 지금 개그 칠 때냐고.
“…….”
그래도 대거리는 하지 않고 성질을 내리눌렀다. 제 눈깔의 섬뜩한 특성도 있거니와, 서로 약점 잡힌 상황에서 여기저기 입방아질을 하진 않을 테지만 이 선배와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것도 없었다. 안전 이별해야지.
“이리 심하게 울 줄 알았으면 손수건을 챙겨 올 걸 그랬어.”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이혜준이 눈두덩에 댄 내 손가락을 비집어 새 물티슈를 넣어 줬다. 그사이 요령 좋은 손가락이 미지근해지고 흠뻑 젖은 물티슈를 빼 갔다.
그거 내 쓰레긴데 네가 왜 가져가?
“손수건 챙기는 사람은 여태 한 명밖에 못 봤는데요.”
내 고용주.
나한텐 안 빌려주고, 자기 여자 친구 손 닦을 때만 건넸다. 나 같아도 찝찝해서 친하지 않은 인간에겐 일회용 물티슈를 던져 주고 말 텐데, 이 선배는 보기보다 인류애가 넘치나 보다.
“이제는 나 포함해서 두 명이겠다. 나 평소엔 손수건 가지고 다니거든.”
그래서. 어쩌라고?
“당장은 없잖아요?”
“그러게. 없는 주제에 내가 주책없이 나댔네.”
“…….”
머저리 같은 대꾸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딴 게 내 웃음 포인트인가 싶어 자존심에 금도 갔다.
가시를 세우던 내가 누그러진 걸 눈치챈 이혜준이 본론을 꺼냈다.
“기운 나눠 주겠다는 얘긴 농담 아니었어. 네 회충은 너한테 오래 붙어 있었던 집착충인지 효과가 미미한데, 어지간한 잡귀는 고통에 겨워하며 단박에 떨어져 나가거든. 계속해서 자극하면 네 회충도 결국엔 항복하지 않을까?”
자기 눈을 줄기차게 마주 보라는 소린데, 정말로 축귀 능력이 있는지 진실 여부는 불투명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 준 경험 있느냐는 질문엔 당연히 있다고 대답할 테지.
재회 후 느닷없이 손을 내미는, 친하지도 않은 이혜준을 믿어 줘야 할 의리가 내겐 없었다. 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도 서먹한 관계였다.
“그전에 내가 아파서 뒈질 것 같은데요?”
“네가 아니라 회충이 아픈 거래도.”
동정심이 결여된 음성이 약 올리듯 말을 이었다.
“강지헌, 온종일 귀신 생각만 떠올리면 귀신한테서 벗어날 수가 없어.”
“…….”
하도 뻔한 소리라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과도 무관한 이야기였고.
내가 어디 그런 데에 관심이 있어서 자의로 귀신을 불러들인 줄 아나. 원한 적 없거든?
“너는 무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정반대되는? 음기가 아예 없는? 그런 사람하고 어울려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 도움 안 되는 무당 같은 거 찾아가지 마.”
이혜준이 고용주가 날 영입할 때 했던 말과는 상극의 의견을 냈다.
「너한테는 나처럼 기가 세고 영력이 강한 전문가가 필요해.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대신 보아 주고 어떤 식으로 액을 막아야 하는지 가르쳐 줄게. 달라붙은 그것한테 잠식돼서 잡아먹히지 않게끔 내가 곁에서 도와줄 거야.」
오컬트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대사였다. 그렇게 스무 살의 내게 서창경이 이 기이한 업계의 일자리를 알선했다.
고용주는 도움을 주는 주인공치고는 사람 불쾌하게 하는 데에 도가 텄고 성격도 엄청나게 가칠가칠했다. 특히나 내겐 자비가 없었다.
그사이 내 성질도 만만찮게 더러워져서 만났다 하면 서로 생채기를 내며 물어뜯는 고용 관계로 변했다. 나에게 서창경은 떠올리면 반갑기는커녕 인상만 구겨지는 존재가 되었다.
대조적으로, 이혜준의 이름만 등장해도 생기가 감돌던 학부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이혜준이 보이면 겨울날 온기를 찾듯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순전히 외모 때문이겠지만.
두 인물이 내세우는 주장이며 내뿜는 기운이 어쩌면 이토록 상이할까. 넌 평생을 남들이 꺼리는 험한 일에 매달리며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서창경과 이런 나라도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이혜준.
솔직히 후자가 내놓는 달콤한 인생관이 더 솔깃하긴 했다. 이런 개고생을 찾아서 하지 않더라도 내가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이 달콤한 꼬드김을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서창경에겐 티격태격하며 함께 쌓아 온 시간과 미운 정이라도 있지.
“무속인 안 찾아가요.”
“강지야, 거짓말하면 안 되지. 너는 네 전용 무당까지 뒷배로 두고서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
어떻게 알았지?
“가방에 든 노란색 뭉치 전부 부적이지? 게다가 초상집에 다녀오는 길도 아닐 텐데 네 몸에다 소금은 왜 뿌렸을까.”
그러고 보니 눈을 감은 채 휴지를 찾느라 앞 사람에게 가방을 활짝 열어 보인 상태였다.
“어…….”
당황해서 대꾸할 말을 찾는데, 때마침 구원자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