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혜준, 이것 좀 봐! 전부 내가 잡은 거야. 조개 아직 살아 있어!”
박양우가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친구를 불렀다.
“그 통은 또 어디서 났어.”
“너희 과 애들 진짜 조개잡이에 진심이더라? 별의별 걸 다 준비해 왔어. 그중에서 젤리 먹고 남은 통을 하나 얻었지 뭐야. 손잡이가 있어서 뚜껑 닫고 들고 다니기에 딱 좋아! 여기에다 소금물을 채워서 채집과 동시에 해감을 하는 거지! 애들 지금 허리도 안 펴고 으얼얼얼 막 좀비 신음 흘려 가면서 갯벌 헤집고 있어!”
박양우가 킬킬거리며 상황을 전했다. 어린애처럼 들뜬 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도 조금 웃겼다.
뭐야, 조개 처음 잡아 봐? 아, 처음이랬지.
얼마나 캤는지 궁금해서 슬며시 눈을 떠 보았다. 홧홧거리는 안구처럼 세상이 온통 붉고 노랗게 불타오르는 색감으로 뒤덮였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시야는 멀쩡했다.
실제 내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는 건 회충……. 그 메커니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통증이 잦아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젤리 간식 통 안에는 너덧 종의 조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해감이 진행 중이라 불순물도 잔뜩 떠다녔다. 해변에 설치된 담수 시설에서 씻고 부두로 올라왔는지 박양우의 드러난 팔다리는 진흙이 묻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다.
“제법 캐셨네요.”
“예. 이 섬 주민 아주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오늘 백중이라 1년 중에서 실한 조개가 제일 많이 잡히는 날이래요. 귀신 나온다고 해서 무서운 날인 줄로만 알았더니 도움 되는 일도 있네요. 그래서 MT 날짜를 오늘로 잡은 건가?”
백중날에는 살찐 해산물이 잡힌다는 얘기가 전해지긴 했다.
“저기 근데…… 울었어요? 눈이 심각하게 새빨간데? 야, 너 군기 잡는다고 후배님 팼냐?”
친구가 우릴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혜준을 몰아세웠다.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고 제가 안구 건조증이 있어서 자주 눈이 충혈돼요.”
“에이, 눈두덩이 퉁퉁 부어오르고 코도 빨간데? 펑펑 울었나 봐요. 때린 놈이 백 퍼 잘못한 거니까 창피하다고 숨기지 마요. 내가 같이 파출소에 가 줄게요.”
친구 맞아? 이혜준을 범죄자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데?
“평소에 이혜준 선배님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향이 있나 봅니다.”
“그렇죠. 만날 돈 가져오라고 시키고 남의 정보 삥 뜯고 순 양아치 새끼예요.”
“예에…. 어쩐지…… 줄곧 멀리하고 싶더라니 내가 사람을 잘 봤네.”
박양우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는 무슨 어쩐지야. 근거 없는 루머 생산하면 너희 두 놈 다 싸잡아서 고소 들어간다. 이제 돌아가자.”
이혜준이 내 양어깨를 붙잡고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제 팔뚝을 어깨에다 턱 걸쳤다. 느닷없이 친한 척 어깨동무를 하는 자세가 어이없어서 한마디 쏘아붙이려는데, 그가 다정히 협박을 뇌까렸다.
“강지, 너 눈 괜찮은지 한 번 더 봐 줄까? 내가 너 진짜 걱정돼서.”
“…….”
뭐?
돌아보려다가 흠칫해서 동작을 멈췄다. 실낱같이 이어지는 아픔이긴 해도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조금 전과 같은 수준의 공격을 받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거머리 같은 잡귀를 떼어 낼 확률보다는 내가 이 길바닥에서 까무러칠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참자. 태권도 사범이 돼서 일반인 상대로 주먹 휘둘렀다간 교도소 직행이다. 아버지도 우리 형제더러는 차라리 얻어맞고 다니라고 하셨어.
“새끼가 사람 치고 걱정해 주는 척을 하네. 양심 있냐.”
박양우가 폭력설을 물고 늘어졌다.
“안 쳤다고 했다.”
“여자 후배님 안 울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놀러 와서 괜히 소문 이상하게 날 뻔했잖아.”
“여자 울리고 다니는 남자는 강지헌이지. 강지 너, 좋다고 고백하는 여학우들 모두 걷어찼다며.”
이혜준이 개소리를 하며 나를 대화에 끌어들였다.
“제가 다른 학교에 좋아하는 사람 있다는 거 알 만한 애들은 다 아는데 누가 고백을 하고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려요?”
내가 선택한 방식은 고백할 빈틈조차 주지 않는 원천 봉쇄였다.
“너 아직도 걔 사귀어?”
“오, 여자 친구 있었구나. 둘 중에 누가 먼저 사귀자고 고백했어요?”
이혜준과 박양우가 동시에 물었다.
“고백이요? 그런 거 없었는데. ……선배는 그 애가 누군지 아세요?”
나도 만나 본 적 없는 내 (가상) 여자 친구를 왜 아는 척이시지?
“강지, 너 신입생일 때부터 있었다는 여자 친구 얘기냐고.”
예전부터 날 지켜봐 왔다는 이혜준의 말이 내게 접근하려 지어낸 사교적 멘트가 아니었나 보다.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무시하던 후배의 (가상) 여자 친구의 존재까지 기억에 담고 있을 줄이야.
느닷없이 등장해 내 처지가 안타까운 척하는 행태가 영 수상쩍어서 이 인간의 진짜 목적이 뭔가 싶었다.
“예. 그 사람 얘긴데요.”
“흠-.”
“왜요?”
의미 모를 한숨 소리가 들려 내리깐 눈으로 옆을 흘끔 올려다봤다. 키 180이 넘는 내 어깨에 무리 없이 팔을 두르는 사람은 드문데, 가까이에 서니 새삼 이혜준이 상당한 장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키 작은 놈들이 내게 어깨동무를 시도할 때면 대롱대롱 매달려 업히는 느낌이 있어 안쓰럽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오래 사귀어 놓고 한 번도 학교에 데려온 적 없다며. 네 여자 친구 소개받았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는데 철벽 치려고 지어낸 말 아니야?”
섬에 진입하기 전 동기 차서영에게도 비슷한 소릴 듣고, 오늘 두 번째로 맞부딪치는 의심의 눈초리였다. 내가 그토록 연애 안(못) 하게 생겼나? 연애할 생각은 없지만서도 자존심은 조금 깎여 나갔다.
졸업까지 다섯 학기나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 계속 여친이 있는 척 연기할 수 있을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여자 사람 친구라도 섭외해서 연애 드라마를 한 편 찍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그것도 다 헛소문이에요. 친한 애들한텐 얼굴 보여 줬거든요? 생김새며 분위기가 닮았다는 말까지 들었다고요.”
의심을 줄이고자 이번엔 구체적인 이야기를 지어냈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가서 재울 땐 꼬박꼬박 집주인이신 우리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게 했지. 나하고 판박이라더라.
“맞아. 오래 사귄 연인들 보면 서로 얼굴이 닮아 가더라고요.”
진실을 모르는 박양우도 내 편을 들어 줬다.
“…….”
이혜준은 더 이상 염탐하듯 시비를 걸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그를 통해 이 거짓 정보가 널리 널리 퍼지길 빌었다. 이 인간, 인싸인 척하는 은근한 아싸라서 학부에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소문 퍼뜨리기가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이혜준이 학우들과 어울리지 않는 반면, 대부분의 학우는 자신이 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착각에 빠져 지냈다. ‘완전 친절한 혜준 선배님!’ 이런 말이 나돌지만, 완전 친절한 그에게 정작 밥 한 끼 얻어먹었다는 후배가 한 사람도 없는걸.
제삼자의 입장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관찰하던 나는 그 일방적인 우호 관계를 진작부터 눈치챘다.
근데 나한텐 왜 친한 척 들이대는 거야? 내가 그리도 만만해?
발칵 역정이 치밀어 이혜준의 팔을 뿌리치려는데, 그가 또 선수를 쳤다.
“강지야, 내 생각엔 딱 한 번만 더 시도해 보면 네 회충이 떨어져 나갈 것 같거든? 용기 내서 한 판 더 어때?”
“……!”
이혜준의 옆구리를 가격하려던 팔꿈치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내가 쫄아서가 아냐. 회충이 겁먹은 거라고!
∞ ∞ ∞
예정에 없던 동행이 생기는 바람에 둘러 갈까 고민한 굿판을 정통으로 맞닥뜨렸다. 그런데 시력 2.0의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던 흰 복장의 무리가 온데간데없이 증발하고 없었다.
‘너무 이상하잖아. 아까 봤던 건 착시였어?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다지?’
백중절 행사답게 부두 중앙광장은 흥성거렸지만 어리둥절할 만큼 사람 수가 줄어들어 있었다. 골목에서 벗어나자마자 먼 거리에서 바라본 굿판과는 느낌이 상이해, 대성황 축제까진 아니었고 동네잔치 분위기가 감돌았다.
모인 이들의 평균 연령대도 높아 젊은 사람은 드물었다. 정장 차림새도 제법 보였는데 지역 유지들과 윤 의원 일행인 듯싶었다.
어, 이거 혹시?
“……?”
하나, 흰옷의 인물들은 산 사람이 아니었다. 둘, 흰옷 무리가 잔뜩 몰려 있었는데 별안간 증발했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이혜준과 처음으로 시선이 마주쳤지. 많이 울었고,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에는 그들이 사라졌네?
그러면 원인은 이혜준의 눈?
속으로 어떠한 가설을 세우며 옆에 선 인간을 새삼 관찰했다. 시선이 마주칠까 봐 소심하게 광대뼈를 기준으로 그 아래쪽만을 노렸지만.
이혜준의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려는 시도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듯한 거부감이 차올랐다. 나 말고 내 회충이.
“강지야, 이런 덴 눈길도 주지 말라니까 그러네.”
이혜준이 제자리에 멈춰 선 나를 재촉했다. 고용주도 오늘 조상희가 주관하는 굿판엔 접근하지 말랬는데, 양극과 음극을 달리는 두 남자의 의견이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합의를 봤다.
그러나 내 착각 또는 환각일진 모르지만 석연찮은 변수가 생겼고, 나는 저 눈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엄벌하듯 고통을 주는 것 말고, 정말로 내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 이혜준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 살짝 설레었다.
정말로 귀신을 쫓아내는 영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