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16)화 (16/96)

16화

“진짜 아파서 그래요. 사람들한테 우는 꼴 보이기도 쪽팔리고.”

“올라갈 땐 나하고 같이 가면 되지. 박양우 기절시켜서 너 우는 모습 못 보게 해 줄게.”

“푸흐흐흐.”

이번엔 내 입에서 끅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혜준은 생각보다 상냥한 성품이긴 해도 다정함의 방식이 엽기적이라 감동하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터졌다.

“강지헌은 앞으로도 이렇게 솔직히 굴었으면 좋겠다.”

“약한 소리 들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내가 계속 징징거리면 선배님 짜증만 치솟을걸요?”

“안 그래. 뭐든 다 받아 줄 테니까 숨기지만 마.”

진심이야?

“선배님은 원래도 겁나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 섞고 보니까 예상보다 더 이상한 사람 같아요. 내 볼일이 끝난 후에는 어지간하면 상종 안 하고 싶어요.”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굴어 줬더니 그가 뒤통수를 쳤다.

“어, 그래? 내일 돌아가는 길에 운전은 강지헌이 하자? 내 전용 운전기사가 생겼으니까 지금부턴 따로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다 그치? 현대판 수발 노비 시스템은 참 합리적인 제도 같아.”

“…….”

없는 시스템 창조해 내지 마라.

인성 테스트 결과, 앞으로도 숨길 일은 끝까지 숨기는 편이 낫겠다는 결과만을 얻었다.

“작정하고 감추면, 내가 널 제대로 도울 방도가 없잖아. 협력을 원한다면 네가 가진 패를 전부 내보여야지. 우리 서로 정직하게 지내자?”

이혜준이 여전히 내 휴대폰을 주물럭거리며 도덕군자 같은 소릴 지껄였다. 자기는 함부로 남의 연락처 목록이나 뒤적이는 주제에.

“뭐 하세요. 다 봤으면 어서 돌려주세요.”

“그래서, 뒤에서 강지헌을 조종하는 무당 씨는 누구라고?”

연락처에서 내게 소금을 주고 부적을 써 준 무속인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창경한테 관심이 있었구나?

그러잖아도 이혜준을 데려가 보이고 싶었던 나는 반색했다.

그의 방상시 눈깔이 신령의 힘을 약화시키며, 굿판에 모여든 상복 차림의 혼백들 역시 보이지 않게 해 줬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쯤 되니 이혜준이 지닌 다른 능력도 궁금해질 수밖에.

단순히 몸에 깃든 신령을 떼어 내는 데에만 그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만신 조상희의 힘이 꺾이면 고용주 역시 가능한 작업이니까. 고용주 혼자서도 해결할 등급의 사안에 굳이 친하지도 않은 학교 선배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혜준에게 맡기면 나는 또 눈물을 줄줄 흘리며 형편없는 꼴을 당해야 하잖아. 고통은 또 어떻고.

떨어져 나갔던 잡귀가 틈을 재다가 인간의 심신이 약해졌다 싶으면 도로 달라붙는 경우를 왕왕 목격해 왔다. 그래서 윤상현을 떼어 낸 이후의 뒷수습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무엇보다 나는 윤상현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지 않았다. 나와 주변 사람들을 그만큼 괴롭혀 놓고선 저는 편하게 극락정토에 들겠다고? 어림없는 소리였다.

혼백을 달래 주고 자시고 천도재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소멸시켜 버리고 싶다 하면, 그러니까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여 버리고 싶다고 한다면, 옳은 말만 조잘대는 이 남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악독한 성질머리에 질려서 손을 뗄지도 몰랐다.

실험 정신이 충만한 고용주는 되레 날 부추기며 어디 한번 해 보자며 덤벼들 것 같고.

“무당 씨? 우리 사장님 말씀이세요? 직업 무속인도 아니고 점도 못 치고 그냥 덕이 높은 분인데 무상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해 주고 있어요. 실종된 사람 찾거나 구마 같은 거. 되게 착한 아저씨예요.”

만나면 금세 들통이 나겠지만 그전까진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고자 서창경을 미화했다. 그가 타인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인물인 양.

처음 한동안은 나도 그런 착각 속에서 살았지.

서창경의 본성은 이타심과 거리가 있었다. 그는 무속인처럼 신내림을 받아 신을 모시는 행위는 거부하면서도, 신령의 힘은 탐을 내어 빌려서 사용했다. 그 장난질의 여파가 저에게 돌아올까 봐 방비책으로 의뢰인을 도우며 공덕을 쌓아 두려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는 나보다도 훨씬 더 불순한 의도로 선업 포인트를 적립하는 인간이란 얘기다.

“몇 살인데?”

“나보다 여덟 살쯤 많았나?”

“생각보다 젊잖아.”

“이쪽 업계에선 나이하고 실력은 아무 상관 없거든요?”

“넌 인격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 인간은 어린애한테 왜 이런 위험한 불장난을 시키는 거야. 제 취미 생활에 무슨 이유로 널 끌어들여?”

아니, 아직 나쁜 소린 하나도 안 꺼냈는데 왜 이리 부정적이시죠? 보기보다 다혈질이신가?

타인의 일에 무심하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을 듯하던 이혜준이 색안경부터 꼈다. 서창경의 본색을 알고 나면 다 뒤집어엎을 기세여서 염려스러웠다.

차라리 둘이 만나게 하지 말까?

아니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할 거야.

“저 어린애 아닙니다. 전역한 아저씨예요.”

“너 군대 가기 전에 만났을 테고, 그 인간이 네 상태 알아보고 먼저 집적거렸을 거잖아.”

“족집게 도사 납셨네. 귀신 붙은 거 알아보고도 방치한 인간보다는 백배 천배 감사한 은인이니까 정의로운 히어로 흉내 그만둬 주실래요? 물론 선배님이 내키지 않으시면 저를 도울 이유가 없죠. 그걸로 시비 걸 생각은 없는데, 제 앞에서 서창경 씨 욕은 하지 마세요.”

‘내 고용주 욕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이런 주의는 아니지만 이혜준에게서 고용주의 악담을 들으니 아니꼬웠다. 저는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도망 다니는 내 뒤꽁무니를 지켜보며 즐겼다는 주제에 무슨 입바른 소리야.

어쨌거나 당장은 고용주와 내가 한편이고, 이혜준은 경계선 바깥에 있는 인물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

“…….”

이혜준은 고요하게 화내는 스타일인지 침묵이 길어졌다. 을의 처지임을 망각한 채 한껏 빈정거린 나는 뒤늦게 약간 후회했다. 고용주와 지지 않고 대거리하는 습관이 들어서 순간 눈에 뵈는 게 없었나 보다.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춰 줄 걸 그랬나.

내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싶어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데, 이혜준이 학습 능력 없는 인간처럼 또 어깨동무를 하더니 앞쪽으로 넘어온 손으로 내 얼굴을 건드렸다. 볼이 쥐어뜯기 듯 쭉쭉 늘어났다. 감정이 실린 손길은 꽤 아팠다.

“아, 그만하세……요오…….”

짜증을 내며 올라갔던 언성이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 탓이었다.

‘개놈 서창경’.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니고 내 손가락으로 직접 입력한 내용.

아, 시발. 고용주라고 바꿔 놓는 걸 깜빡했네.

“방금 네가 뭐라고 씨불이셨죠? 서창경 씨 욕은 하지 마세요?”

“…….”

“네 은인이자 좋은 아저씨라는 서창경 씨를 ‘개놈’이라고 부를 정도면 내 이름은 어떻게 저장할 작정이었는지 기대가 되는데?”

방상시 눈깔.

“존경하는 이혜준 선배님?”

“퍽이나. 씹새끼 이혜준이 아니라?”

“에이, 설마요. 아하하.”

한때 ‘씹새끼 서창경’이라고 저장해 둔 전적도 있기에 속으로 찔끔했다. 고용주와 대판 싸우고 난 후였을 것이다.

‘학교 선배님을 씹새끼라고 부를 정도로 제가 무례하지 않습니다!’라고 우기려다가 과거에 한 짓도 떠오르고 ‘개놈’의 증거에 부딪혀 모든 항변을 단념한 채 어설프게 웃고 말았다.

야. 넘어가, 그냥 넘어가.

“강지는 개새끼도 은인으로 모시면서 착하다고 올려쳐 주고 이렇게 순진해 빠져서 사회생활 잘하려나 몰라. 형이 걱정이 커.”

저를 형이라고 자처하며 알아서 친한 척하고, 내 걱정도 해 준다니 가까워지려는 계획은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휘둘리는 듯한 기분에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 몰라 슬슬 불안해지기도 했다.

도대체 이런 인간은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하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게 이십 대 후반의 서창경은 상대하기 어려운 어른이었다. 게다가 무신의 세계는 생소해서 처음엔 그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야만 하는 줄로 알았다.

굴욕적인 관계에 이게 아니다 싶어 조금씩 대든 건 그의 밑에서 일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대부분 서창경이 내 자존심을 깔아뭉갰지만 때론 내가 이겨 먹기도 했다. 어느새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서창경이 만만해졌다. 그가 부리는 귀신은 무서웠지만.

고용주와의 경험을 토대로 상대가 나이 지긋한 어른일지라도 필요하면 눌러 왔다. 이번 작업에 동원한 여덟 명의 도사들이 그러했다. 어르신들이 개인플레이에만 익숙하셔서 이번 단체 경기에선 내가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해 드려야 할 것 같더라고.

이혜준 역시 그들처럼 다룰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기 겨루기고 뭐고 자꾸만 박자가 엇나가 헛발을 디디는 기분이 들었다. 충돌하지 않으니 싸움도 성립되지 않았다.

“일단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 드리고요. 서창경 씨가 성격이 조금 까칠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개놈은…… 다투고 열 받아서 잠깐 이름 바꿔 둔 것뿐이에요. 원래는 천사 서창경 님이라고 저장해 두거든요?”

이미지가 개새끼로 굳어 버리면 고용주를 만나길 거부할까 봐 창작 소설을 쓰며 우겼다.

개놈 아냐! 그분은 천사님이세요!

“무슨 천사. 개천사?”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가 물었다.

큽-.

순간 저승사자처럼 음산한 서창경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발을 헛디뎠다. 이혜준이 넘어질 듯 비실거리는 내 몸을 부축해 줬다.

“웃겨?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시발 저리 꺼져요, 좀!”

“우리 강지는 말본새도 천사처럼 예쁘구나? 너는 씨이발천사.”

“크크큽.”

아이 시……발.

그 길로 나는 저항할 기운을 잃은 채 낄낄거리며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상극의 인간과 엮인 듯한 무력감이 드는 건 꼭 내 안의 회충 탓만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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