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뭐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부적 구분도 못 하는 애를 데리고 와서 여태 가르치고 챙겨 준 건 사실이라 나도 받은 것이 아예 없다고 잡아떼긴 어려웠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내가 몸으로 때운 것보다는 그에게 받은 것이 더 많은 듯도 했다.
내 어머니의 심장 수술을 앞두고 서창경은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종합 병원으로 어머니를 이송하는 등, 여러 면에서 편의를 봐준 적도 있었다. 잔정 없는 그의 성품을 고려하면 몹시 의외로웠던 일이다.
그러니까 미운 정 때문에라도 당신하고 나는 같은 편이라고 이렇게 묶어 두는 거잖아.
“댁을 배제하려고 저 선배를 소개하려는 거 아니니까 억지 부리지 마요. 나는 서창경 씨하고 쭉 함께 갈 거야. 됐죠?”
양다리를 의심하는 애인에게 둘러대는 기분이 이럴까. 날 끊임없이 시험하며 신경질적으로 바가지 긁는 남자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더욱이 서창경과 같은 반半무격巫覡인 주술사와 연을 이어 갈 각오를 한다는 말은 평생 귀신과 더불어 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란 인간과 잘 어울리는 삶이었다.
강지헌이 뭐가 어떠냐는, 너 평범하게 일상생활 할 수 있다는 이혜준의 달콤한 말에 잠시 눈이 멀었던 거다. 서창경의 곁에 머무는 강지헌이 가장 강지헌다운 것을.
―그래도 만나지 않을 거다. 내 앞에 그 불길한 거 데려오지 마, 너. 진짜 느낌 더럽다.
수화기 너머 한결 누그러진 음성이 대꾸했다.
고용주는 불러들인 신령의 힘을 빌려 일을 처리하기에 귀신을 쫓는 방상시의 능력을 기피할 만도 했다. 나와는 입장이 다르니까.
“나는 어떡할 건지 좀 더 고민해 볼게요.”
단순히 윤상현을 몰아내는 일이라면 내일부터 거칠 것이 없어질 서창경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저 음습한 성격에 쥐고 흔들 내 약점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함정 없이 날 놓아줄지는 의문이지만.
결국 내가 배신할까 고용주가 의심하는 만큼 나 역시도 그를 완전히는 믿지 못하는 관계였다.
―강지헌 머리 조금 컸다고 더럽게 말 안 듣네. 됐다. 밤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오늘도 당직 아닌가 봐?”
야근으로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더니 연차가 올랐다고 요샌 이르게 퇴근하는 날이 잦았다.
통화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양 서창경에게 찍힌 ‘불길한 것’이 나를 불러 세웠다.
“강지, 여자 친구?”
“예? 어…… 아뇨?”
참. 나 (가상) 여친이 있었지.
연애 세포가 전멸하다 보니 자꾸만 깜빡깜빡한다.
“그러면 네 무당한테서 온 연락?”
“무당 아니라니까요. 신경 끄세요.”
“너한테 시키는 짓 보면 영락없이 무당인데 뭘. 너 또 소금 뿌리고 왔지?”
“…….”
하, 진짜. 선배님이나 돗자리 깔아!
마당 어귀에 선 나는 내 전속 무당 서창경 대신에 울컥했다.
앞날이 창창한 고용주가 신병에 걸리지 않으려 기를 쓰는 걸 어찌 알고 저렇듯 거슬리는 소리만 골라서 지껄일까. 어서 소개팅 날짜를 잡아서 이 인간들을 연결시켜 줘야지 안 되겠다. ……볼만하겠어.
파탄이 예고된 만남임을 알면서도 뚜쟁이 혼자 들떴다.
“잡아먹지 않을 테니까 이리 가까이 와서 얘기해.”
“됐어요. 나 할 일 많아. 그 방엔 사람 없어요?”
나는 모자도 눌러쓰지 않은 이혜준에게 겁도 없이 다가갈 만큼 간덩이가 붓지 않았다. 문득 저 남자가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하면 고통 없이 그를 마주 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있어. 박양우 낮잠 자.”
“그럼 편히 주무시게끔 창문 닫고 에어컨 켜 주세요. 바닷바람이라 공기가 엄청 습하네요.”
어서 안으로 꺼지라는 말을 곱게 포장했다.
“에어컨은 아까부터 켜 뒀지. 추워서 창문 연 거야.”
“이야, 지구를 사랑하는 진실된 에너지 절약왕이시네요?”
“나는 에너지라는 말만 들어도 기가 쭉 빨리더라. 기력이 달려서 왕 노릇도 못 하겠고 이 행성까지 사랑하는 건 더더욱 무리야. 진정으로 지구를 위하는 길은 인류 멸종뿐인데 팬데믹 전염병도 실패한 프로젝트를 내가 성사시킬 수 있을까. 지구 사랑은 바퀴벌레 목숨보다 더 질긴 인간 생명력과의 전쟁이고, 계획 단계부터 의욕 상실에 귀찮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면 이미 진 거잖아? 이 행성을 사랑하는 건 이토록 어렵다, 강지야. 아무 데나 지구 사랑을 갖다 붙이면 안 돼.”
“…….”
이 무슨 사차원 개소리. 미친놈인가? 끝까지 들어 준 내가 등신이다.
못 들은 척 등을 돌리고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멀찌가니 이동했다. 한번 쓴맛을 본 윤상현이 겁을 집어먹은 탓인지 거리가 좁혀지자 경기가 일어날 낌새가 보였다. 아깐 무슨 정신으로 이혜준과 어깨동무까지 하고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웃느라 정신이 나가서 끌려오다시피 한 거지만.
심장이 벌렁벌렁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저 남자가 불길한 존재라는 서창경의 경고는 둘째 치고라도 내 건강에 좋지 않다.
“선배님, 저는 내일 따로 돌아갈 거예요.”
“아, 왜. 이제 미친 소리 안 할게. 용서해 줘.”
왜 저리 쉽게 사과를 하지? 미친 소리를 계속할 거라는 반증인가?
“그게 아니라 그새 또 선배님이 무서워져서요.”
비밀을 나눈 사이이기에 니 눈깔이 무섭다고 떳떳하게 밝혔다.
“하-. 네 회충 진짜.”
이혜준의 입에서 어이없어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짜 뭐. 게다가 내 회충 아니거든요?”
왜 얘가 내 자식인 것처럼 말하지? 내 소유 아니거든?
고통을 공유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편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네 거 아니면, 그럼 그놈이 지금 누구 몸에 붙어서 기생하는데?”
“……. 시발 개소리 짜증 나.”
혼잣말을 하는 척 다 들리게끔 욕설을 웅얼거렸다. 짐작대로 이혜준은 이 정도 도발로 노발대발 역정을 내는 인물이 아니었다. 어떤 타격감도 없었다.
“내가 살다 살다 저리 말 예쁘게 하는 천사는 또 처음 보네. 착하기도 하지. 하도 개를 불러 대서 너는 동네 개들한테도 인기 많겠다?”
“…….”
순간 ‘개천사와 씨이발천사’가 떠올라 얼른 고개를 수그렸다. 시시껄렁한 개그에 자꾸만 발작하는 내 헤픈 웃음 코드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강지야 나 뭐 거들어 줄까?”
이혜준이 같은 질문을 지치지도 않고 반복했다. 바비큐 준비가 아니라 오늘 밤 일어날 거래에 저도 간섭하고 싶다는 뜻이다.
선배님은 내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않는 것이 돕는 거예요. 너 땜에 기껏 불러들인 손님들이 도망갈까 봐 겁난다고.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마라.
“지금은 됐고, 나중에 애들 고기나 구워 주세요.”
무더위에 불판 앞에서 고생 좀 해 주시죠.
“고기 구워 본 적 없는데? 나 요리 하나도 못 해. 쌀 씻는 법도 몰라.”
너 해산물 조달하는 대신에 다른 노동 할 거라며! 무능한 주제에 뭐가 저리도 당당해?
‘시발 개소리 짜증 나’를 저지른 김에 오비 등급의 하늘 같은 선배님께 조금 더 기어올라 보기로 했다.
“뭐? 혜준이 요리가 안 돼? 완전 무쓸모 인간이었구나?”
이럴 땐 쓰레기를 대하듯 경멸 어린 눈빛도 얹어서 보내야 하건만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어 효과가 반감된 점이 아쉬웠다.
“나는 얼굴로 인류에 복지를 베푸는 성자인데 그깟 요리 좀 못 하면 어때서.”
“……!”
므어?!
저기요. 제가 방금 무슨 소릴 들은 거죠?
이번엔 웃으라고 지껄인 소리 같은데 대미지가 너무 커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여태 살면서 얼굴 부심 부리는 놈을 수없이 접해 왔지만, 그들은 대부분 ‘울 엄마가 허락한 절대 미남’이었다. 이단정 씨도 장남 강지헌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치켜세웠다. 둘째 아들놈이 물어보면 또 걔가 세계 최고 미남이라고 띄워 줬고. 이것이 우리 같은 일반인이 웃자고 하는 농담.
그런데 진짜 잘생긴 놈이 저런 소릴 지껄이니까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기는커녕 되레 심하게 재수가 없을 뿐이었다.
실은 이혜준의 전체 얼굴이 구석구석 떠오르진 않았다. 특히 눈 주변은. 그럼에도 0.001초쯤 쳐다본 외모가 과히 충격적이었던 건 확실했다. 얼굴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도 놀랍도록 잘생겼다는 사실만은 뇌리에 새겨졌다.
동시에 통증 테러를 당하는 바람에 감탄은 곧 불호로 바뀌었지만.
∞ ∞ ∞
저녁 식사 시간, 채집 대신 다른 노동을 맡을 거라던 이혜준 선배님께선 끝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신 채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12첩 반상을 받으셨다. 나를 비롯한 마당쇠들은 마당에 피운 숯불에다 56인분의 고기와 해산물을 굽느라 비 오듯 땀을 흘렸고.
나는 시종일관 속으로 뭐 저런 뻔뻔하고 쓸모없는 새끼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완전 재수 없어! 네가 얼굴만 반반하면 다야?
…………다였다. 진짜 전부였다.
“저는 이혜준 선배님이 저한테 옥장판 사기를 쳐도 용서해 드릴 것 같아요.”
“당연하지! 전 혜준 선배님이 어떤 종교를 권하시든 믿겠습니다!”
“캠퍼스가 넓으면 미남 비율도 올라갈 줄 알았는데 저주받은 우리 학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고요.”
“그치. 넓은데 못생긴 남자애 비율만 더 늘어나지. 캠퍼스 크기 다 쓸모없다.”
“한국대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 미남이 경영학부에 존재했다는 전설만이 아련하게 캠퍼스를 맴돌았죠.”
“맞아. 그런데 오늘 그 전설이 티끌만큼도 과장이 아님이 증명됐습니다. 저 이번 학기엔 혜준 선배님이랑 같이 졸업반 전공 필수 들을 거예요! 얘들아 나 말리지 마라.”
“야. 너 이제 1학년이다. 정신 차려!”
긴장 탓에 입맛이 사라져 저녁밥을 먹는 대신에 씻고 왔더니, 초저녁부터 술이 됐는지 저마다 눈이 풀려서는 남신 이혜준 경배대회를 개최하는 중이었다. 이혜준과 친하지도 않은 내가 쪽팔려서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더불어 본인이 언급한 얼굴 복지가 무엇인지도 실감이 났다. 상석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콧구멍으로 숨만 들이쉬고 내쉬어도 우러름을 받는, 돌쇠나 마당쇠와는 차별되는 그 무엇…….
말로만 듣던 예쁜 쓰레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