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이혜준을 똑바로 쳐다볼 일이 없으니 잘난 외모에 현혹될 가능성도 없는 내겐 그의 존재가 노동력에 하자가 있는 몸뚱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얘들아, 왜 곧 졸업하실 혜준 선배님만 봐. 앞으로 너희랑 함께 오래오래 학교 다닐 강지도 여기 있잖아.”
그때 불쑥 핵인싸 설정우가 지나가는 나를 끌어들였다.
이 새끼가 술 대신 환각제를 흡입했나. 얻다 대고 나하고 이혜준 선배를 비교해? 목적이 뭔데? 설정우 이 자식은 내가 공개적으로 돌팔매질 당하는 꼴을 보고 싶은 건가.
나는 눈이 아름답다든지, 코가 잘났다든지, 입이 예쁘다 같은 칭찬을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눈 크기도 보통, 속눈썹 길이도 보통, 콧대 역시 오뚝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목조목 뜯어보면 두드러지게 잘난 구석 하나 없는 외모.
대신에 눈코입이 붙어 있을 자리에 정연히 붙어 있고, 피부색이 유난히 흰 편이었다. 살결이 희면 열 허물 가린다는 차별성 짙은 속담이 우연찮게 맞아떨어져 깨끗하고 단정하게 생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끔 미남자가 한 명도 없는 데선 이런 나도 잘생겼다고 올려침을 받긴 해도, 경영 대표 미남이 있는 이 자리에선 그딴 헛소릴 지껄이면 안 되는 거잖아, 설정우야? 왜 가만있는 나를 수치사시키려 하지?
눈길이 쏠리는 바람에 이혜준이 낀 중앙의 무리에서 멀리 떨어진 방구석으로 피신하려던 작전은 물 건너갔다. 예전에 그러했듯이 그가 머무는 장소에는 사람들이 신기해서라도 몰려들었다. 몰려든 인파를 보고 호기심에 사람이 점점 더 불어나고.
원숭이 구경 생각나네.
“그렇게 아무 이름이나 집어넣을 거면 차라리 설정우 네 이름을 대 보시지 왜?”
설정우 옆에 자리를 잡으며 비꼬았다.
너도 공개 처형을 당해 보자.
“아잉, 나도 내 주제는 안다고. 내 얼굴을 들이밀 스테이지는 아니잖아.”
설정우가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머리를 대고 드러누웠다. 교태를 부리듯 제 머리통을 내 다리 위에다 부비부비 굴렸다. 친동생 놈에게도 당해 본 적 없는 애교(?) 테러를 당하니 놀랍도록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 새끼가 뭐 하자는 거지?
“야. 존 말로 할 때 대굴빡 치워라.”
휴대폰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시늉을 하자 설정우가 놀란 숨을 들이켜며 후다닥 일어나 앉았다.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학부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애랑 어떻게 같이 다니니. 강지 쟤는 우리 학부생 아냐. 우리한텐 밥값 계산만 해 주고 정작 자기 밥은 공학관에 가서 먹는 녀석이라고. 공대생인 줄 아는지 소개팅도 그쪽으로 더 많이 들어온다더라.”
4학년이 된 한 입학 동기가 오래전에도 그랬듯이 어처구니없어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주로 밥 먹던 데는 공대 식당이 아니고 기식이었거든요? 말은 똑바로 하자.”
“맞다. 너랑 어울려 다니던 고등학교 동문이 기숙사에서 지낸댔지. 걔는 무슨 과야?”
설정우가 아는 척하며 끼어들었다.
“산공.”
“역시 공대였구나. 군대 갔어?”
“어.”
“제대 언젠데?”
“다음 주.”
“오. 그럼 이번에 너하고 나란히 복학하겠네?”
“어.”
“걔 좀 생겼더라. 이름 뭐랬지?”
“김재원.”
핵인싸의 허접쓰레기 정보 데이터는 이런 식으로 축적되는구나!
비밀도 아닌 내용이기에 꼬박꼬박 대꾸를 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탄복했다. 이래서 이놈, 학부에 모르는 사람이 없구나 하고.
이젠 각자의 전공에 전념해야 할 학년이라 신입생 때처럼 김재원과 함께 시간표를 짜고 교양 강의를 맞추어 듣긴 어려웠다. 공학도로 오해받는 일도 드물어질 테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따로 무리 지어 노는 우리 학부보다는 그쪽에서 노는 편이 나한테는 더 재미있긴 했다. 선후배 관계가 끈끈한 만큼 진상 출현 빈도도 높았지만, 공인 진상 퇴치사인 내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오빠 좀 생긴 거 아니고 연예인 뺨치게 잘생기셨던데. 지헌 선배님하고 같이 동아리 공연하는 영상 올라온 거 봤거든요.”
오늘 처음 만난, 소개받았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후배가 말했다.
“나도 봤어, 그거. 둘이 진짜 미소년미 뿜어! 노래 부르다가 중간에 갑자기 춤추면서 무대 찢을 때 완전 멋있거든? 애들 비명 지르면서 다 넘어가. 댄스의 완성 역시 얼굴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지.”
“오, 검색 뭐 하면 돼?”
“이제 내려갔어. 칫. 그 선배님 SNS 하니까 찾아가 봐.”
“그리하면 너희는 산공 2X학번이라고 소개된 누군가의 사진도 덩달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어째서인가 그 과 행사 뒤풀이 자리마다 끼어 계시지.”
“맞아. 그분은 군대 휴가 나와서도 공대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놀던데?”
“지헌 선배님 복수 전공하세요?”
“공대로 전과하시려나 보다.”
오늘 처음 만난 또 다른 후배들이 버르장머리 없는 기색으로 날 압박했다.
“말로만 들었던 SNS의 폐해가 이 정도라니. 김재원더러 당장 계정 삭제하라고 해야지 안 되겠네.”
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치자 녀석들은 당장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꼬리를 말았지만.
“김재원 선배님 여친 있어요?”
“예, 있어요.”
김재원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학교에 (가상) 여자 친구를 두고 있었다. 차이점은 연애 포기자인 나와는 다르게 그는 상시 남자 친구 모집 중이라는 것.
김재원과는 연애관과 연애 대상에 대한 비밀을 공유했다. 심지어 우린 좋아하는 동성 취향마저 비슷해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래서 ‘둘이 사귀어라!’라는 응원 메시지를 백만 개 받더라도 서로 아무 느낌이 없는 무미건조한 관계를 이어 올 수 있었다.
“강지 너 동아리 활동도 해? 어딘데?”
“안 한다. 가입한 데 없어. 후배님들이 얘기하는 건 아마 기숙사 동아리 공연 영상일걸? 김재원 거기 소속이거든. 아니다. 상품 걸고 하는 장기자랑 대회였나?”
설정우의 질문에 보충 설명을 곁들여 대답했다. 얼떨결에 잠깐 무대에 오른 거라 어떤 계기로 남의 동아리 일에 끼어들었는지 나도 헷갈렸다.
“동아리 이름 뭔데요? 기숙사 동아리 공연도 축제 때 하는 거예요?”
“알아서 뭐 하시게요.”
“왜요! 응원하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요!”
“전혀 안 괜찮은데요?”
“강지 선배 철벽 방어 전문가란 얘긴 들었지만 너무하시잖아요. 친구분 철벽까지 대신 치진 말죠? 그 친구분은 연예인처럼 팬덤의 사랑과 관심을 원할 수도 있는 건데!”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받고 싶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아닌 사람도 있는 거죠. 김재원은 연예인 체질 아니어서 애인도 아닌 그냥 여자 사람들이 자기한테 관심 가지는 거 귀찮아해요.”
“유튜브에 얼굴을 공개하면서 관심이 귀찮다고요?”
“그거 본인이 올린 거 아니에요. 그 동영상만 해도 김재원이 업로더 고발할 거라고 해서 내린 건데요. 후배님들아, 예비역 아저씨한테 신경 끄고 너희끼리 재미나게 노세요. 어떤 환상도 품지 맙시다. 그 인간은 그저 1등 상품 노리고 지랄 발광한 것뿐이니까요.”
원망 섞인 부르짖음을 하나하나 차단하며 더는 들뜨지 못하게끔 상품에 혹해 쪽팔린 짓을 한 과거까지 밝혔다. 평소의 김재원이라면 돈 주고 하나 구입하고 말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는데, 그날은 오늘의 조개잡이들처럼 분위기에 휩쓸린 모양이었다.
“1등은 뭐 줬는데? 자동차?”
설정우가 물었다. 이 자식은 아까부터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고 제정신이 아니더니만 역시 취했나 보다. 설마 자동차를 줄까.
“학부생 기숙사에 그런 재력이 있을 리가. 그러게, 뭐였더라? 나도 궁금해지네.”
내 몫으로 넘어온 상품이 아니어서 뭘 받았는지 가물가물했다.
“다리미요. 무선 스팀다리미. 기숙사 출신 오비 중에 다리미 회사 사장님이 계신데 재고 잔뜩 보내 주셔서 내리 그것만 준대요.”
별안간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등 뒤로 양손을 짚은 채 고개를 젖히니 노아의 방주 유시호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오, 호빵이! 저녁밥 먹고 얼굴이 더 빵빵해졌네?
나도 모르게 표정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유시호 후배님도 기숙사?”
“예.”
“오, 야단났네?”
아이고, 내 친구 김재원아, 큰일 났구나. 기막힌 시련이 닥쳐 버렸네?
말했지만 김재원과 나는 남자 보는 취향이 비슷했다. 자신과 정반대 타입인 동글동글하고 푸근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힘들이지 않고 주변에 형성된 경계심을 흐물흐물 녹이는 호빵이. 이 녀석이 팔면 사기 옥장판 열 개라도 구입할 텐데. 사이비 종교를 권해도 믿어 주는 척할 텐데.
“예? 뭐가 야단나요?”
“잠깐 딴 사람 생각했어요. 유시호 후배님에겐 기숙사 놀러 갈 때마다 치킨 사 줘야겠다고 결심했고.”
원래 사 주기로 했던 치킨으로 호빵이의 관심을 돌렸다.
“와,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아니, 이 얼굴을 착각할 리가 없는데. 생각보다 안 무섭고 다정한 분이셨네요.”
다른 그룹으로 가는 도중이었는지 주사위 보드게임 상자를 들고 있던 유시호가 내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무슨 소리?”
“저 사실 이 학교 들어오기 전부터 지헌 선배님 알았어요.”
“동문이에요?”
우리 학교에 이런 귀여운 애가 있었나?
“아뇨. 저 작년에 의대 쪽 캠퍼스에서 알바 했거든요. 암 병원 3층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요. 거기 근무하는 쌤이랑 몇 번 오셨죠?”
“아…….”
휴가 나왔을 때 고용주랑 있는 걸 본 모양이다.
근데 얘는 도대체 뭘 목격했기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인격자인 날 무섭고 매정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걸까.
서창경은 장래에 그가 물려받을 병원을 놔두고 출신 학교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수련했다. 그는 제 직장을 몹시 사랑했는데 그곳엔 죽은 사람이 바글거렸기 때문에. 직업이 의사였지만 사람 살리는 일보다는 그 반대쪽으로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 인간이 아무 까닭 없이 개놈 타이틀을 얻은 게 아닌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