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진작부터 머리에 새겨 뒀지만 물때를 다시 확인했다. 간조 시간은 멀었어도 물은 이미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대문을 나서기 직전 부적을 꺼내 눈두덩을 훔치듯 문질렀다. 곧 자글거리는 느낌이 안구로 스며들었다. 긴장으로 팽팽히 심장이 조이는 이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귀안을 틔우면 그때부터 나의 세계 안으로 무엇이 들어올지 아니까.
세상에는 귀신을 볼 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고 그들 중 얼마간은 진짜배기였다. 그런 사람을 조수로 쓰면 될 텐데 고용주는 굳이 부적과 무구를 낭비해 가며 영력도 없는 나를 부렸다. 동류끼리 어울리면 작업이 더 쉬워질 것을 말이다.
당신들하고는 다르게 나처럼 내 몸에 씐 귀신도 안 보이는 평범한 인간은 놀라자빠진다고요.
……아악, 시발! 간 떨어질 뻔했네.
고개를 들자마자 지척에서 마주친 두 쌍의 눈에 혼이 빠져나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진으로 접해 본 얼굴인지 유심히 살폈다. 호명부가 와야 할 귀신을 제대로 불러들였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한때 인간이었던 이들은 백골화까진 아니어도 무언가에 뜯어 먹힌 듯 군데군데 앙상히 뼈가 드러나 있었다.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게 너덜너덜해진 옷에는 조개껍데기와 해초도 성기게 달라붙어 있었고.
무엇보다 생장이 멈추어 자랄 리 없는 손톱과 머리카락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평온히 눈을 감지 못했고, 현재 머무는 자리에도 문젯거리가 도사린다는 의미였다. 기다랗게 늘어진 먹색의 머리카락이 김이나 미역 뭉텅이처럼 보였다.
고용주의 지시로 계곡에 갔다가 마주친 시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급류에 휩쓸려 죽은 사람이 물에 떠 오르지 않는 사건이었다.
계곡물이 흐르는 속도가 완만해지고 물이 맑아진 후에도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여서 보이지 않으면 그곳에 없는 거라고 봤다. 경찰도 아래쪽 강으로 떠내려갔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고.
일반적인 시신이라면 그렇다는 거다.
강바닥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수색은 실패했다. 굿도 해 봤는데, 무속인이 그 강에는 죽은 사람의 넋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의뢰인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고, 그 염원이 내 고용주에게 닿았다.
「무속인이 없다고 했으면 없는 것도 같은데…….」
점을 칠 줄 모르고 점괘 풀이도 하지 못하는 고용주는 의심하면서도 나를 파견했다.
계곡 아랫마을에는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가 하나 전해졌다. 계곡에는 혼자 가지 말 것.
급류에 휩쓸린 사람은 계곡 안전 요원이었는데, 산에서 내려가다가 먼저 퇴근한 동료의 연락을 받고 행락객이 놓고 간 물건을 가지러 다시 계곡으로 향했다. 동료들 말로는 물이 불어났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없을 거라고 판단했단다.
마을에는 구조 자격증을 가진 전문 요원이 없어 네 명의 안전 요원은 모두 외지인이었다.
이 고장 출신인 무속인은 뭔가를 알기는 알았는지 「나는 팀 단위로만 작업을 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절대 안 가.」 하면서 발을 뺐다. 그래서 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투입되었지.
계곡으로 올라가기 전에 마을 구멍가게에 들러 생수를 구입했다. 가게 앞에서 물을 마시는 나를 주인 할머니가 한참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내 뒤쪽을.
「그건 내가 못 떼어 줘.」
「괜찮습니다.」
「……. ……혼자로 보이는데 이 외진 마을은 어떻게 찾아왔어.」
할머니는 귀신 붙은 사연을 묻는 대신에 마을을 방문한 이유를 물었다.
「위의 계곡에 볼일이 있어서요.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안전 요원분의 시신이 여태 발견되지 않았잖아요. 가족들의 의뢰에 따라서 넋을 건지러 왔습니다.」
토박이 주민에다 무신에 관련된 분처럼 보였기에 의뢰 내용을 술술 불었다.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서 가면 작업이 수월해지니까.
「거기는 혼자 올라가면 안 돼.」
「혼자 있을 때만 나온다던데요.」
「그놈 믿고 가는 거면 아서라. 그거는 수호신이 아니야. 학생 보호해 주려고 붙은 놈이 아니라고.」
윤상현 얘기였다.
「압니다. 제가 위험할 때는 한 번도 안 나타나더라고요.」
「옛말에 ‘시원찮은 귀신이 사람 잡아간다.’는 말이 있어. 그른 소리가 아니더라. 그 변변찮은 놈이 저부터 살자고 먼저 내빼는 모양이고만. 그래, 그런 부실한 놈이니까 산 사람한테 붙어서 생기를 빨아 대는 게지.」
「…….」
맨날 내 입으로 해 대는 욕을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서 들으니까 기분이 새로웠다. 입술을 꾹 깨물고 웃음을 참고 있으려니, 할머니가 줄 게 있으니까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종이 두 장으로 한복 저고리와 바지를 접었다. 완성 후에 접합부를 꿰맞추니 풀칠을 하지 않았는데도 단단히 붙어, 머리와 손발이 없는 사람 형상이 되었다.
‘이분도 고용주하고 비슷한 방식을 쓰시는구나.’
그때 내 가방 안에는 짚으로 엮어 만든 주술 인형이 있었다.
「기억해 두렴. 이름은 조쌍례다. ‘조쌍례야, 조쌍례야, 여기 김 아무개가 왔다. ○○○은 이제 집에 돌려보내 주어.’」
이름까지 있는 백 년도 더 된 물귀신이었다.
계곡으로 올라가면서 이건 사령으로 만들기가 어렵겠다고 고용주에게 전했다. 예상보다 센 놈이라는 말이다. 이 고장 무속인이 일하기 싫어서─그 물귀신이 무서워서─ 넋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다는 얘기도 했고.
「내가 감당 못 해요.」
―그래, 안전 요원이나 무사히 데려와. 장례는 치르게 해 줘야지.
고용주는 아쉬워하면서도 자기 깜냥을 알아 조쌍례 씨를 포기했다.
자갈 하나하나 잔고기의 움직임 하나까지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이었다. 수변에 서서 종이 인형과 짚 인형 중에서 어떤 것을 사용할지 궁리했다.
원래는 깊은 물과 접한 바위 같은 곳에서 인형을 집어 던지고 튈까 했는데, 생각보다 연세가 있는 조쌍례 씨에게는 정중히 예의를 갖춰야 할 성싶었다. 내가 살아서 내려가려면.
「조쌍례야, 조쌍례야, 여기 김 아무개가 왔다. 신은호는 이제 집에 돌려보내 주어.」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종이 인형을 물에 띄웠다.
「집에 가야 해. 돌려보내 주세요.」
신기라곤 없는 내 보잘것없는 염도 함께 띄워 보냈다.
잠시 후 물가에 선 내 눈에 멀리 깊은 곳에서부터 검은 물체가 서서히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 머리였다. 안전 요원인가 했는데, 물살에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머리카락이 매우 길었다.
‘아니, 바쁘실 텐데……. 굳이 안 나오셔도 되는데…….’
그 줄기 진 미역 같은 머리카락이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목격한 뒤로 나는 해조류 요리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오늘 이 바다 물귀신들의 김·미역 헤어스타일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거든.
움직임이 느린 듯 보였음에도 조쌍례 씨는 어느새 물가까지 다가와 있었다. 삼베 한복을 입은 그는 키가 140쯤 돼 보일 정도로 체구가 작았지만,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니었다.
『…….』
조상례 씨가 내 손에 든 짚 인형을 가리켰다.
「이것도 드려야 합니까. 왜요.」
『한 명 더.』
「……!」
뭐? 한 사람 더 있었어?
짚 인형을 건네자 그제야 신은호의 시신이 물 위로 떠 올랐다.
시신 한 구를 물 가장자리에서 제법 떨어진 편평한 장소에 눕힌 후에야 경찰에 연락했다. 그리고 다시 떠오를 두 번째의, 이름 모를 시신을 기다렸는데 한참이 걸려도 감감무소식인 거다.
「이러기 있어요? 계약했잖아-!」
『…….』
경찰차와 헬리콥터가 도착했을 때도 계곡물은 아무런 반응 없이 잠잠하기만 했다.
귀신에게 사기를 당하기는 또 처음이라 어이가 없고 정신이 멍했지만, 도와주신 할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가는 건 잊지 않았다. 이번엔 할머니와 닮은 얼굴을 한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다가 나를 맞았다.
「아……. 엄마가 학생 목숨을 구해 주고 싶으셨나 보다. 이 마을 서낭당을 모셨는데, 신목인 당산나무가 베이고 나서는 무녀 일을 그만뒀거든요. 꽤 오래전 일이에요.」
자초지종을 들은 아주머니가 가리킨 점방의 벽에는 사진이 든, 크기가 제각각인 액자가 대여섯 개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중에는 할머니의 사진도 있었다. 가족들의 영정사진을 걸어 두는 자리처럼 보였다.
「그 계곡에 혼자 가서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학생밖에 없을 거예요.」
「…….」
두 번째 짚 인형은 내 몫이었던 거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라고는 여겼는데, 미역 뭉텅이에서 그날 일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차라리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는 좀비였다면 잠깐 불쾌해지고 말 텐데, 넋 건지기도 실패하고 천도재도 불가능해 처치가 곤란한 물귀신 앞에선 담대해지기가 어려웠다.
이혜준 당신한테나 실체가 없지. 너에겐 손에 잡히지 않는 거짓 세상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여기야말로 내가 발 디딘 진짜 현실이라고.
생생하게 의식을 욱죄는 공포가 비정상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먹잇감을 쳐다보듯 날 대하는 저 탐욕스러운 존재들을 마주하고서 ‘제물을 드릴까요?’라는 말을 꺼냈다간 나부터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을까.
윤상현, 이 찌질이 잡귀는 이럴 때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 비겁한 등신 새끼는 숙주인 강지헌 씨가 위험에 처할 땐 도리어 제가 겁먹고 기척을 죽이더라?」
그 할머니의 보는 눈이 정확했는지 언젠가 고용주가 놀리듯 일러 줬다.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듯 귀안을 틔운 지금 내 곁엔 윤상현의 자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만만한 가정집의 욕실 거울 속 같은 데나 나타나지.
마른침을 삼키며 낮에 그어 둔 경계선을 넘었다. 뿌려 놓은 술과 함께 증발했던 선이 이제는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주술이 이지러졌고,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대문 바깥 구석에 감춰 둔 술병을 찾았다. 쪼그리고 앉으면 달려들까 싶어서 어색한 자세로 무릎을 낮춘 채 눈치껏 술병을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어……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닿으면 피부 상하니까 두 분 조금씩만 뒤로 물러나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