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22)화 (22/96)

22화

살아 있는 고용주와 대화할 때보다 백만 배는 더 친절해진 목소리로 안내했다. 죽은 사람 피부 미용에 진심인 것처럼.

『야, 너 되게 좋은 거 가지고 있다?』

『품에 든 거, 그거 뭔데?』

역시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 목전에 있으니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나 역시 못 들은 척 술병을 기울여 내가 넘어오느라 흐트러진 경계를 다시 그어 수선했다.

보통 술이 아니란 말이다. 너희에겐 염산보다 더한 위험 물질이 아닐까?

『히엑.』

술 방울이 튀자 그제야 두 혼백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화를 불러서 좋을 것이 없기에 내 간덩이는 소심하게 쪼그라들었다. 해쓱해진 얼굴을 들어 “그러게 제가 비키라고 했잖아요.”라고 변명하듯 웅얼거렸다.

“두 분 자리를 대신할 제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려고 이렇게 모셨습니다. 첫 번째 제물은 이 섬 토지신의 비호를 받고, 두 번째는 뒤에 용왕이 버티고 있어요. 자, 사양하지 마시고 하나씩 골라 보세요.”

각각 윤호중과 조상희라고 적힌 봉투 두 개를 내밀어 보였다. 잡귀들이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희가 넘보지 못할 등급의 신령이 거론되니 겁을 집어먹은 거다.

그래서 더더욱 군침 도는 냄새가 났던 거잖아. 사양하지 마시라니까.

“어머니, 아버지, 기억나세요?”

실종사한 지 2년이 넘었다는 존재에게 이지가 남았는지 떠보았다. 귀신마다 상태가 다 다른데 이들은 죽은 육신과 영혼이 나란히 음지 중의 음지에 묶여 있던 존재이기에 기대치는 낮았다. 사람들이 무덤 자리 명당으로 괜히 양지바른 곳을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

『…….』

“가족분들이 내일 여러분을 데리러 오실 거예요. 이만 집으로 돌아가셔야죠?”

『…….』

『…….』

“이쪽도 준비를 많이 해 와서 맞붙을 만해요. 덕이 높은 도사님들이 영력을 모았거든요. 이제 남은 건 뭍에 오르겠다는 당신들 의지뿐이야. 자, 어서 골라들 봐요.”

『뭐 하러. 가까이에 네가 있는데.』

『캬악. 이놈은 내 거야!』

“……!”

각오하고 있었기에 달려드는 귀신들을 보며 기겁하긴 해도 졸도까지 가진 않았다. 이것들은 늘 이러니까. 더 탐스러운 먹이가 있다는데도 가까이에 있는 먹이에부터 먼저 손을 뻗었다.

기껏 선택지를 줬는데 거부했다, 이거지.

두 놈 중 더 세 보이는 쪽에 조상희를 넘기려고 했건만 흉흉한 기세가 막상막하였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봉투 앞에 붙은 부적이 보이게끔 하나씩 앞으로 내밀었다. 위잉-. 연노랑 빛이 은은히 점멸했다. QR코드를 스캔하듯이 담당이 지정됐다.

“조상희는 류은재 씨 몫, 윤호중은 채건영 씨 몫.”

나무토막처럼 움직임을 멈춘 그들에게 암시를 깔았다. 이 순간만큼은 파도 소리도 바닷바람 소리도 의식 저편으로 날아갔다. 호흡이 조절되지 않았다. 거칠게 내뿜어지는 내 숨소리만이 귀에 그득 들어찼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덜덜거리는 손으로 반투명한 10cc 약병 두 개를 꺼냈다. 용기에 담긴 액체는 고용주가 본가 소유인 상급 종합 병원에서 검진한 두 제물의 혈액을 빼돌린 결과물이었다.

마개를 열고 성수라도 되는 것처럼 축성한 피를 뿌렸다. 피를 먹였다. 전신으로 먹잇감의 피 맛을 익힌 자들이 그르륵그르륵 굶주린 짐승의 소리를 냈다. 둘이 동시에 고개가 슥 돌아갔다. 멀리 윤 의원 일가의 별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자, 다녀오십시오.”

제물들을 향해 살을 날렸다.

『…….』

『…….』

내 사령이 된 두 귀신이 나는 듯 달리며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시발 무서워.

그래도 한때 사람 소릴 듣던 존재들인데 이런 취급을 하면서도 내가 곱게 죽을 수 있을까.

이런 행위가 정말로 포인트를 쌓는 공덕이라고?

자식을 잃고 사체도 찾지 못한 가족을 돕는 일이라고 그랬다. 원혼을 달래서 좋은 곳으로 보내 주자고.

고용주 성격에 동정심이 우러나 벌인 일은 아니겠지만 결과만 따지자면 타자를 위한 봉사 활동이긴 했다.

그러면 된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로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당장은 주술이 실패해서 살기가 내게로 되돌아오지 않기만을 빌 뿐이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어서 나도 서둘렀다. 해변으로 내려가기 전 돌아본 펜션에서는 왁자지껄한 소음이 끊이지 않고 새어 나왔다. 방상시도 지켜 줄 테고, 산 사람의 생기가 저처럼 충만한 장소엔 귀신이 틈을 엿보기 어려울 터였다. 분위기를 띄운다며 괴담이나 늘어놓지 않길 바랐다.

이런 날에 눈치 없이 귀신 얘기를 꺼내고 귀신을 부르는 놈이 있다면 주둥아리를 후려갈겨 버리라고 조장들에게 언질은 해 두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호령도는 간조를 맞아 해안선이 완연히 바뀌어 있었다. 너르게 드러난 모래밭을 바다 방향으로 삼백 미터쯤 달리다가 해수와 닿기 직전에 멈췄다. 백중 보름달이 환해 달리 불빛을 빌리지 않아도 묫자리 만들기에 지장이 없었다.

우선 깃대부터 꽂았다. 신장대라고도 불리는 이 먼지떨이 같은 막대기는 신장을 부르는 무구였다. 신장은 신령 중에서도 무력을 맡는 장수신이다. 잡귀나 달라붙는 내게 그런 대단한 수호신이 있을 리는 없고 고용주가 빌린 신장을 내가 또 잠깐 빌리는 형식이었다. 재임대와 임시 양도의 어딘가쯤이 되겠다.

윤 의원은 토지신이 지켜 주고, 무당은 용신이 지켜 준다. 그들의 영역인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선 내겐 수호신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인간 강지헌을 지켜 줄 수호신이 아니고 이 의식의 완성을 지켜보아 줄 존재가.

내 목숨도 소중하니까 날 보호할 호신부를 만들어 달랬더니 “너는 죽든가 말든가.”라며 고용주는 코웃음을 쳤다. 역시 개놈! 고용인 안전 보험의 개념을 몰랐다.

곧 축축한 모래 위에 꽂힌 신장대가 스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깃대에 달려 가로수처럼 늘어진 수십 장의 종잇조각도 세차게 움직였다. 해풍 탓이 아니었다. 신장급의 영이 강림했다는 증거.

시발 무서워.

현장을 한 번씩 뛸 때마다 백 번은 더 내뱉는 대사가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말이 씨가 되는 건 알아서 입 밖으로는 다른 내용을 꺼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나는 이런 거 하나도 겁나지 않거든?”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서는 기척을 느끼자 정신 착란이 일어날 것처럼 덜덜 떨렸지만 태연한 척 읊었다. 내리깐 눈에 옛 시대 장군이 걸치는 갑옷과 군화가 스쳤다. 접때는 발목 없는 것도 빌려 오더니 이번엔 제대로 붙은 걸 신장대에 불러들인 듯했다.

부적 두 장에다 불을 붙인 후, 피를 담았던 용기며 수표며 갖가지 잡동사니가 든 봉투 속으로 던져 넣었다. 조상희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서 째는 듯한 방울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멎었다. 그를 누르려고 어렵게 모은 힘인데 무당이 쓰던 요령 하나 불태우지 못할까.

타들어 가는 봉투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고용주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개놈 서창경: [만신의 명도가 깨졌어]

명도란 무속인이 신단 위에 두는 거울이다. 조상희의 생명과도 같은 그 청동 거울이 부서졌다고 한다. 죽은 것이다. 오늘 밤 날린 살은 내게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고용주의 저주 굿이 성공했다.

나: [여긴 아직]

짧게 답장을 보냈다.

잿더미를 섞이지 않게 끌어모아 봉분 두 개를 만들고, 이름과 사주가 적힌 종이 식신 패를 함께 파묻었다. 이것이 앞서 말한 기명 교환권이었고, 당연하게도 인형의 이름은 류은재와 채건영.

뒷골이 곤두서는 느낌에 고개를 길게 빼어 두리번거렸다.

왔구나.

사령들이 제 몫의 제물을 끌고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육신과 분리된 두 제물은 주술 탓에 속수무책으로 딸려 왔다. 넝마가 된 짐짝처럼 너덜너덜해 보였다. 그들 주변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따라붙으며 사령의 앞길을 막아서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삼 미터에 육박하는 커다란 그림자는 이 섬의 주인이며 윤 의원의 조상신처럼 보였다. 섬 안동네 골목길에서 나를 가지고 놀았던―그랬다고 짐작되는― 타락한 토지신, 악귀로 전락한 신령이었다.

무당의 혼백이 물과 가까워지자 이번엔 용신이 나섰다. 조상희를 수호하는 신령이다. 두 물귀신이 나를 지나쳐 바닷속으로 제물을 끌고 들어가려다가 주춤했다. 입수를 거부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더 나아가질 못했다.

간조의 해변에 때아닌 물결이 일었다. 해일을 일으키듯 바닷물이 거세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뭔데? 네가 품은 용신이라고 지금 편들어 주는 거야? 똥오줌 못 가리겠어? 그러고도 네가 대자연이라고?

“죽어 마땅한 자들이야! 천벌을 받을 만큼 죄를 지어 왔다고! 당신도 대신이잖아. 왜 인간에게 해코지만 하는 조상희의 악신을 두둔하는데. 판단이 서지 않는 거면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 하늘에 대고 물어보란 말이야! 비켜-!”

나는 용신을 비호하는 바다를 향해 바락바락 악을 썼다. 윤 의원 일가에 대한 증오가 나 따위는 견주기도 어려운 큰 신에게 대거리하게 했다.

『…….』

업에 따라 과보가 결정되는 인과 앞에서 주춤한 대자연이 서서히 기세를 줄였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신이라지만 대해와 한낱 작은 섬의 주인은 격이 다른 존재였다.

넓고 웅대한 자연은 제 새끼, 제 후손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해서 손에 피 묻히는 걸 거들며 악귀가 된 한낱 조상신과는 달라야 했다. 그래야 마땅했다.

사령들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바다가 길을 터 주었다.

살려 달라고, 자긴 아무 죄가 없다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는 윤 의원과는 다르게 조상희의 눈빛은 사태를 짐작했는지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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