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23)화 (23/96)

23화

『날 물귀신으로 만들 속셈인 듯한데 길게는 어려울 게야. 신아들이 있어. 49재에 내가 불려 나오지 않으면 내 신아들이 수상쩍게 여기고 손을 쓰겠지? 널 찾아내고야 말 거다. 그때 보자꾸나, 이 맹랑한 아이야. 다시 뭍에 올라와 반드시 너를 데려가겠다!』

그럴싸한 협박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당신 신아들이자 제자 역시 이 기명 교환권에다 힘을 실어 준 여덟 명 중 한 사람인걸.

속박 주술을 걸 땐 제일 열심이었다던데. 앞으로 대한민국에 누가 있어 이 여덟 집합체의 영력을 뛰어넘을까. 당신은 차갑고 어두운 해저에 영원히 봉인될 거야.

“…….”

내가 겁먹은 척 연기할 새도 없이 조상희는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 순간 두 제물을 집어삼킨 파도가 봉분 근처까지 들이닥쳤다. 푹 젖은 운동화를 내려다보며 이제 내 차례인가 싶어 심장이 쫄깃해졌다.

고용주가 시키는 업무는 대개 이처럼 범죄의 영역에 한 발을 걸치는 일이었다. 나라마다 법이 다르듯이 대한민국의 법 또한 하늘의 율령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선악의 개념마저 차이가 있다고.

그러니 인간이 만든 법률을 조금쯤 위반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선업 포인트 쌓아 둔 것도 제법 되잖아.

“나 바다에 쓰레기 버린 적 없어요. 용서해 줘.”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파도도 뒷걸음질 치듯 저만치 물러갔다.

휴-. 다행이다. 대자연에게 물어본 결과, 나 정도는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라는 거네? 나는 죽지 않을 당위성을 가졌다는 거…………가 아니구나!

조금 전의 움직임은 강력한 추진력을 위한 일시 후진이었다. ‘너 이 새끼 각오해라!’ 하고 말하는 것처럼 층층이 쌓여 가는 물결에 기가 질렸다.

신장은 저걸 버텨 낼 수 있을까.

신장 역시 위험을 감지했는지 봉분 주변으로 둥그렇게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물에 잠기라고 만든 봉분이니 해일에 삼켜져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문제는 나였다.

방해되지 않도록 퉁기듯 결계 원 바깥으로 빠져나와 그때부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파도가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멍 때리며 서 있다간 ‘썰물 때인데 급물살에 휩쓸려 물귀신 된 강 모 씨’라고 신문 기사에 날 사망 각이었다.

현재 윤 의원과 조상희의 시신은 별장에 놓여 있었다. 잠을 자다가 고요히, 평온하게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일 터이다. 그들의 혼백이 강제로 끄집어내져 갯벌로 끌려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나는 사정이 달랐다. 내 시신이 평온한 자태로 숙소에 놓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서 두 물귀신처럼 육신이 물고기에게 뜯겨 훼손된 상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죽을 땐 곱게 죽고 싶은 내 바람에 어긋나는 결말이었다.

내가 죽더라도 혼백만은 건져 내줄 인간이 있긴 했다. 누구겠어. 개놈이지. 그러나 개놈에게 건져지는 건 구원이 아니다.

한 번은 저주의 대상이 예상보다 강력했던 탓에 날린 살이 내게로 되돌아왔다. 그때 서창경은 피를 토하며 고꾸라지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너 같은 액받이가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 야. 나한테는 피해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겠어.」

내 걱정은커녕 저는 무탈하다고 안심하기만 했다.

그랬던 고용주라면 죽은 내게서도 이용 가치를 찾아낼 거였다. 그런 식으로 건져 내지면 내 운명이 바다 밑에 묶인 물귀신의 운명보다 낫다고 단언하기가 어려웠다. 역시 죽어도 곱게 눈 감지 못하는 상태.

상황이 급박해지니 썩은 동아줄인 서창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내 혼백을 실험체 삼아 할 짓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면서 이런 식으론 죽기 싫다고 열렬히 갈망했다. 다시금 생각이 정렬되며 정신을 차렸다.

가만. 나 한 사람을 벌하려고 파도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여기까지 밀려든다고? 한낱 잡귀조차 새벽닭이 울면 물러나는데, 바다가 썰물 때에 해일을 일으켜 해안을 덮친단 말이지? 고작 티끌만 한 존재인 강지헌 씨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척으로 따라붙던 파도 소리가 훅 멀어졌다. 실재와 환상이 뒤섞였다.

아, 내가 또 홀렸던 거구나. 저 썰어 죽일 토지신 새끼!

맞서 싸울 것처럼 욕설을 퍼부었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다리는 더욱 가열하게 움직였다. 대자연이나 이 섬의 주인이나 나 따위가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골목길에선 뭔 줄도 모르고 무작정 쫓겼어도 귀안을 틔운 지금은 옆에서 달리는 그것이 곁눈질로 보였다. 아깐 그림자더니 지금은 하얀 소복을 입은 더벅머리 인간형의 모습이었고, 또한 키가 심각하게 후리후리했기에 인간이라고 착각하기 어렵기도 했다. 다시 보니 삼 미터까지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컸다.

저 기다란 다리로 날 따라잡지 못할 리가 없는데 뒤처질 듯 말 듯이 엇비슷한 속도로 쫓아왔다. 몰이를 하는 것처럼 날 가지고 노는 것이다. 제 영역인 마른 땅에 가까워질수록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며 기꺼워했다.

저건 정말로 흉신이 다 된 모양이네.

참담한 심정에 이를 가는데 음성 지원된 다정한 문장 한 줄이 뇌리에 둥실 떴다.

「너 기운 없으면 나 부르러 달려오지도 못할 거잖아.」

숙소에 있는 남자를 이 순간에 불러서 어떡하자는 건가 싶다가도 방상시의 능력에 터무니없는 기대를 걸어 봤다.

수화기를 통한 원격 퇴마 지원까지 될지 누가 알아?

즐겨찾기 목록 제일 위에 있는 번호를 눌렀다. 단박에 연결됐다.

―지헌아, 나 왼쪽.

“속도 좀 줄여. 무슨 모래밭을 뛰는 애가 나보다 더 빨라?”

수화기 너머 목소리 뒤로 실제 목소리가 이어졌다. 환상종 흉신 새끼에게 또 홀리는 건 아닌지 반신반의하면서 옆을 돌아봤다. 부두 위 길쭉한 그림자에 흠칫했다가 낯익은 훤칠한 실루엣에 긴가민가하며 속도를 줄였다.

와. 아까 낮에 골목에서 헤맬 때도 적시에 나타나 주더니 저 아저씨 타이밍 무엇?

갯벌 한복판을 달린다고 여겼는데 생각보다 부두는 지척이었다. 선착장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돌고 있었던 거다.

“진짜…… 진짜 선배님이세요? 엇, 위험하니까 절대 이름은 입 밖으로 내지 마시고요.”

정체를 묻고는 얼른 주의를 줬다. 내가 이혜준의 정확한 얼굴을 모르다 보니 확신이 들지 않아 경계심이 치솟으면서도 그가 해코지를 당할까 봐 염려스러웠다.

“강지헌 완전 미신 신봉자라니까. 이름 아니면 뭘로 날 증명할까. 우리 눈인사 한번 할래?”

이혜준이 나만큼이나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을 거면서 저 인간은 체력도 노동력만큼이나 쓸모없는 듯했다.

방상시 눈깔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곁눈질로 지척에 있는 하얀 소복이 계속 잡히긴 했다. 토지신이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저기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건 산 사람이 아닐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내가 멈추는 순간 덤벼들 줄 알았던 토지신이 머뭇거렸다.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그 모습에 고무돼 방상시 눈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 갔다.

“사람들은 어떡하고 나오셨어요?”

“의심도 많은 녀석이 다른 애들 걱정은 엄청 해 주네. 다들 무사할 거야. 내가 현관 앞에 눈알 한쪽 뽑아 두고 왔어.”

“진짜?”

“…….”

잠시 후 푸흐,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시발, 지금 장난칠 때예요? 나는 무서워서 돌아 버릴 지경인데!”

“강지헌은 말본새가 어쩜 저리도 곱상하고 예의 바를까. 동방예의지국의 귀감이네.”

“미쳤어요?”

한술 더 뜨는 천연함에 바짝 열이 올랐다. 한편으론 저 겁대가리 없는 만사태평에다 내 안위를 맡긴 채 묻어가고프기도 했다.

“왜 또 달리고 있었어? 이번엔 어떤 광견이 널 쫓아왔는데?”

역시 안 보이나 봐.

예민한 사람은 귀기에 휘말리면 헛것―실체 없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던데 제 말마따나 이 계통으론 영 둔감한 모양이다.

“아마도 낮이랑 똑같은 거?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귀신이요.”

골목길에선 귀안을 틔우지 않았기에 이놈이 그놈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놈이 이놈일 가능성이 컸다.

“어느 방향이야. 가리켜 봐.”

“이쪽.”

그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귀신이 붙으니 쳐다보지 말라고 뜯어말렸을 테지만 방상시 눈깔의 행운을 믿었다.

고개를 완전히 돌리지는 못하고 검지를 아랫배에다 바짝 붙인 채 주뼛주뼛 수신호를 보냈다. 달빛이 밝긴 해도 잘 보일까 염려했는데, 다행히 이혜준의 시선이 토지신에게 가 닿았다.

“…….”

“…….”

그러나 내심 기대했던 드라마틱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토지신이 비명을 내지르며 사라지거나 하는, 악귀 퇴치 같은 거 말이다.

실망인데. 이러면 윤상현 회충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더라도 박멸은 어렵다는 얘기잖아.

“사람 몸 바깥으로 나온 귀신은 처치하지 못하는 거예요?”

“보여야 뭘 하든가 말든가 하지.”

그러게?

이혜준이 대자연을 능가하는 신도 아니고 만능일 수가 없는 건데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

“…….”

“강지, 잡아 줄 테니까 이리로 올라와.”

부두 위에 선 이혜준이 말했다.

백 미터쯤 전방에 계단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뛰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게 따라올 텐데, 라고 생각하자 신발 밑창이 갯벌에 달라붙은 양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선배님…… 제가 한번 긴장이 풀려 버리니까 더는 못 걷겠어요. 다시 달릴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데 선배님이 내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자존심을 내던지고 나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되지. 있어 봐. 계단이 어디에 있더라?”

순순히 대꾸한 이혜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냥 뛰어내려요. 선배님 키보다 더 낮아. 이 미터도 안 되는 높이거든요?”

“응, 근데 나 무서워서 못 뛰어내리겠어.”

“…….”

와아-. 뭐래 지금? 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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