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25)화 (25/96)

25화

“몸집이 줄어든다며. 개미가 돼서 도망갔다가 다시 힘 키워서 너 따라다니면 어떡하려고.”

“그치만…… 어, 그래도…….”

커다래진 소복에 휘감겨 꿈틀거리는 그것은 개미가 아니라 새끼 돼지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어디야?”

“여기 드러누웠어요.”

손가락으로 바로 앞바닥을 가리켰다.

“이제 내가 어떡하면 돼?”

“누, 누, 눈을…… 마주치면 되지 않나?”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긴가민가했다.

“이거 눈 어디 달려 있는데? 머리는 어느 방향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이혜준이 토지신의 머리통을 푹 밟았다.

퍽-.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알면서 밟은 건 아닐 거고, 그에겐 감각조차 전해지지 않을 행동일 테지만 그렇게 이 섬의 주인을 골로 보냈다.

그는 갔습니다.

얼떨떨하고도 당혹스러운 결말이었다.

“바, 방금 선배님이 밟아 죽인 것 같은데요?”

휴대폰의 플래시 기능을 켰다. 원래도 습한 갯벌이 그 부분만 흥건하게 젖어 들어 있었다. 핏빛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흉신의 자취를 건드리며 굳이 성분을 확인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잠깐 사이 그 흔적마저 말끔히 자취를 감추었다.

거름조차 되지 못하는 죽음이라 다행이었고, 내세 따윈 없는 완전한 소멸이길 빌었다.

‘부디 안녕하지 말길.’

저주 기도를 올리며 이럴 때라도 내가 마음을 곱게 써야 하는 건 아닌지 잠시간 갈등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고 역시 일이 잘 마무리됐다는 후련함밖에 들지 않았다.

“귀신이 사람한테 밟혀 죽는다는 얘긴 들어 본 적 없는데?”

응. 내 기준 이혜준 씨 너는 사람 아니에요.

“저두요.”

“강지헌 몸에 든 회충도 뽑아내서 밟으면 되겠네.”

“그렇겠죠?”

탈진해서 영혼 없이 대꾸하다가 “그럼 당장 해. 네 회충도 이 자리에서 끝내 버리자.”라는 제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에-? 아, 싫어요! 저 오늘 하루 새에 무서운 일 너무 많이 겪어서 정신력이 고갈됐단 말이에요. 그 얘긴 기력 충전된 다음에 다시 해요.”

내 진심인지, 내 안의 기생충에게 조종당하는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부감이 치솟고 당장은 뻗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눈을 감은 채 질질 짜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여정은 상상만으로도 고단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하는 수가 없지. 기운 없으면 업어 줄까?”

미쳤냐, 나를 어떻게 보고 그딴 소릴 지껄이냐고 대거릴 하려다가 아까 지랄 떤 것이 떠올라 이번에는 얌전히 성질을 죽였다. 사실 싸울 기력도 없었다.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요, 선배님.”

건재함을 과시하듯 앞장섰다. 걷다 보니 평소보다 하체의 움직임이 묵직하긴 했다. 점점 갯벌에 발이 끌렸다.

“너 걸을 때마다 뾱뾱 귀여운 소리 나.”

“운동화가 젖어서 그래요.”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어?”

파도가 나를 덮쳤지. 대자연이 살려 준 걸 보면 날 용서한 건가?

그러나 너 역시 잘한 건 없다고 일깨워 준 기분은 들었다. 내가 아닌 고용주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지옥으로 데려갔을 거라는 싸한 기분 말이다.

돌아가면 서창경더러 착하게 살라고 해야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지만.

“들어가진 않고 물가까지 갔다가 실수로 빠졌어요.”

“뭐 하러 수백 미터 갯벌을 가로질러서 바다까지 나갔느냐고 물어도 얘기 안 해 줄 거지?”

내 목숨을 건져 주신 은인인데 그 정도는 뭐.

“2년 전에 이 섬에 놀러 왔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있는데 머리카락 한 올 건져 내질 못했대요. 넋 건지기 굿도 실패했고요. 천도재를 올리고 싶다며 가족들이 고용주에게 의뢰해서, 백중날을 노려 의식을 치른 겁니다. 결과는 내일 나올 거예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싫어서 그 물귀신들이 우리랑 같은 숙소에 묵었던 손님이라거나, 그들이 오늘 펜션으로 찾아왔다는 얘기 등은 쏙 뺐다.

“네 말마따나 너희 개천사와 씨이발천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좋은 일 해 주는 이타적인 콤비였나 보네?”

빠진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했는지 전혀 감동하지 않는 어투였다.

“놀리지 마세요. 실은요, 오늘 밤 치렀던 의식은 내 사사로운 감정도 상당 부분 개입된 거예요. 날 위한 일이기도 했거든요. 내 몸에 붙은 거 떼 놓으려는 준비 과정이었어요.”

“그건 칭찬하고 싶네. 난 또 강지헌이 앞으로의 인생을 포기한 줄로 알았지.”

칭찬받을 일인가 싶다가도, 줄곧 그와 시선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내 행동을 떠올리곤 회충과 더불어 살기로 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 선배님한테 부탁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걸 어떡해. 아프지 않고 쪽팔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단이 있는데 굳이 고난을 자처할 필요가 있을까.

“갈 길이 멀긴 한데 하는 데까지 노력은 해 볼 거예요. 어쨌거나 선배님 오늘은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나 도움을 주실 줄 알았더라면 진작 제 얘길 털어놓을 걸 그랬어요.”

줄곧 마음속으로 쓰레기라고 부른 게 미안해서 인사에 진정성을 담았다.

“그럼 전용 머슴 부리는 새경은 이걸로 된 거지?”

“에이, 진짜 왜 이러세요. 학교 오실 때마다 밥 사고 술 살게요. 제가 진짜 잘할게요, 선배님.”

어떡하든 금전으로 퉁 치려고 매달렸다.

이제 누구 하수인 노릇은 그만하고 싶지만, 내 쪽이 너무 절실하다 보니 뭐라도 해 주긴 해야 할 것 같았다.

“혜준이 형.”

“형이라고 부르면 노비 문서 찢어 주시려고요?”

“오, 머슴이 아니고 노비로 뛸 작정이었어? 그것도 대환영이지.”

“노비는 무슨! 다른 걸로 잘해 드릴 테니까 제발 제 인권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한 치도 양보 없는 협상을 하며 부두로 올라왔다. 그제야 새벽까지 영업 중인 횟집의 불빛이며 소음 등이 감각 기관으로 스며들었다.

열 칸 남짓한 계단을 디디고 넘어왔을 뿐인데 이곳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이세계에서 인간계로, 공기의 흐름마저 바뀐 듯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 선배님 곁에 있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세상이 색을 바꾸고, 여긴 안전하다며 날 착각하게 해.’

그러나 이곳은 나처럼 썩은 인간이 안도하며 머물 만한 장소가 아니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나는 곧 서창경이 기다리는 음지로 돌아가야만 하니까.

“뭐 좀 먹을래? 초콜릿 음료 사 줄까?”

편의점 앞을 지날 때 이혜준이 물었다.

누가 누구 음료 셔틀인지 모르겠네.

“이런 날은 아무것도 안 먹혀요.”

“그럼 평소에 잘 먹는 음식은 뭔데?”

“없어요. 몸에 귀신 붙은 거 알게 된 후로는 식욕이란 식욕은 다 떨어졌어.”

편했다. 이런 내용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대상이 생기다니. 그게 내가 그토록 피해 다니던 사람이라니 신기하기도 했고.

“나는 고봉밥 먹이면서 부리는 스타일인데 큰일이네. 강지헌 무슨 수로 살찌우지?”

“뭘 얼마나 가열하게 부리시려고 그래요. 일꾼으로 쓰게? 집에서 농작물 재배라도 하세요? 제 팔뚝 좀 보세요. 일 잘하게 생겼나.”

몸 쓰는 건 자신 있다고 사실대로 고하며 제 무덤을 파진 않았다. 불쌍하게 보이면 소처럼 부리는 대신에 적당히 심부름이나 시키겠지, 하는 계산속도 있었고.

“나는 기력이 달려서 농사는 못 지어.”

그런데 이 인간은 늘 나보다 한술 더 떴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기력 달린다는 소리가 입에 붙었다.

“왜요. 신체 나이가 한 130세쯤 되세요?”

“그럴지도 몰라. 어려서부터 영 기력이 없었거든.”

“그러면서 날 업어 주시겠다고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응. 그건 또 하고 싶다는 의욕이 솟구치네.”

“나 쪽팔리게 만들 수 있어서?”

“아냐. 강지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러지. 예전엔 네가 이런 일을 하면서 돌아다닌다는 사실도 몰랐고, 심적으로도 이처럼 힘들어하는 줄 알아채지 못했거든. 좀 더 일찍,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미안.”

별안간 사과를 들을 줄은 몰라서 얼떨떨했다. 오늘 유난히 다정했던 이유가 죄책감 때문이었다니.

“……내가 이렇게 된 게 선배님 탓도 아닌데요, 뭘.”

“어쨌거나 악의는 없으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마. 너한테 해코지할 생각 전혀 안 해. 믿어 줄래?”

“어…… 예, 그럴게요.”

뜻밖의 속죄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진 나는 그만 이혜준의 술수에 휘말리고 말았다.

“보름달이 참 밝다. 어서 소원 빌어, 강지야.”

“한가위도 아닌데 무슨 소원을……!”

무심결에 돌아본 밤하늘에는 보름달 대신 그 달을 가로막고 선 방상시가 있었다. 가면처럼 하얀 얼굴에서 호박색 눈이 후벼 파듯이 시신경을 긁었다.

“……!”

이번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갔다.

뭐 이 새끼야, 네가 악의가 없고 해코지를 안 해?

∞ ∞ ∞

그날 밤 나는 간조를 틈타 육지로 나왔다. 결코 내 의지가 아니었건만 이 여행을 주최해 놓고선 학우들을 버린 배신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썼고, 정작 날 납치한 범인은 ‘친절한 이혜준 선배님’이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지켰다.

다음 날 윤 의원의 사망 기사가 대서특필 됐다. 그러나 같은 별장에서 한날한시에 눈을 감은 어느 무속인의 죽음은 조용히 묻혔다. 그는 정치가의 거처에 있어서는 안 될 직종을 가진 인물이므로.

학우들이 전해 준 또 한 가지 이야기는 그들이 호령도를 떠나올 때 목격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에 시신 두 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앞서 정치인의 사망보다 훨씬 많은 목격자를 뒀지만, 이 사건 역시 단 한 줄의 내용도 기사에 오르지 않았다. 내 고용주의 자원봉사 방식이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어둠 속에서 움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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