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29)화 (29/96)

29화

“자연 과학 계통의 지리 배우는 학도 아니고 민속학 계통 지리 학도였어요? 길흉화복 점치면서 묏자리나 집터 공부하는 사람 말이에요.”

풍수지리가를 지리에 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빗대어 비꼬았다. 그러나 눈치 없는 지리교육은 내 말에 굴하지 않고 도리어 뻐기듯 대꾸했다.

“내가 전문적으로 터를 볼 줄은 모르지만 얼마간 신기는 가지고 있거든요?”

하이고, 점점!

“진짜예요. 이 자식 눈엔 귀신이 보이다 보니까 기숙사도 귀신 나오는 구관은 신청하지 못하고 신관에서만 지낸다니까요. 왜, 구관에서 옛날에 누가 자살했다는 얘기 떠돌잖아요.”

이번엔 공대생 룸메이트가 거들었다.

“그건 그저 학교 기숙사마다 하나씩 있는 괴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해 줘요, 제발. 이번 학기 룸메 아직 도착 안 해서 당분간 나 혼자 자야 한다고!”

오십 년을 바라보는 낡은 건물에서 오늘 밤부터 지내게 될 김재원이 더럭 낯을 구겼다.

“이야-, 대한민국 군인 참 믿음직스럽네? 전역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혼자 못 주무신다고 징징거리지?”

“아무렴, 군인은 합숙이 기본이지! 오늘 밤은 귀신과 정답게 마주 보고 누워서 잘 거예요. 꺄아아-.”

“구관에 사는 귀신은 주로 몇 호실에 등판한다고 했더라?”

룸메이트 형들이 낄낄거리며 김재원을 놀려 대자 호빵이가 동아줄을 내려 줬다. 반쯤은 썩은 동아줄이었지만.

“재원 선배, 오늘은 그냥 여기서 마시다가 뻗으세요. 이 호실엔 부적 붙여 둬서 귀신 못 들어오니까 안심하고 자고 가요.”

뭐라고?!

“지리 선배님, 부적도 직접 쓰세요?”

지리교육에게 물었다.

“그럼요. 그 정돈 기본이죠. 독학으로 익혔어요. 요즘 인터넷에는 부적 제작법이 사용처별로 잘 올라와 있거든요. 직접 쓰고 영력만 불어넣으면 이 정도 너비의 공간은 문제없이 커버 칠 수 있어요.”

어이가 없어서 넋이 빠진 내 눈길을 감명받은 눈빛으로 착각한 지리교육이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한순간 서창경을 마주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개놈도 처음엔 이런 식으로 미친 취미 활동의 스타트를 끊었으려나.

“무속인의 길로 나가시려고요?”

“에이, 아무나 무당 하나요. 그냥 취미죠, 취미.”

“위험할 텐데…….”

이 짓에 맛 들이면 제 명에 못 죽는다고.

“취미로 조금씩 손대는 건 괜찮아요.”

“괜찮다고 누가 그래요?”

“잘 모르는 사람은 지레 겁먹을 수도 있는데, 이건 진짜 천벌 받을 만큼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별문제 없어요. 내 능력을 악귀에 시달리는 분들이나 억울하게 죽은 혼백을 돕는 데에 사용하는 거잖아요. 이런 소재는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잖아요, 왜. 고통받는 영가를 정토나 천상에 나도록 기원해 준다는데 하늘이 노할 리가 있겠어요?”

오, 여기 개놈 2세 납셨네!

엑소시스트 놀이를 하고 싶지만 본인은 조금도 피해를 입기가 싫고, 마침 좋은 일을 한다는 구실까지 댈 수 있어 안심이라는 거다. 돕고 싶어서 부적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부적 쓰고 주문 외우며 놀고 싶어서 도울 만한 존재를 물색하는, 거꾸로 된 인과였다.

그래도 서창경처럼 한 번씩 의뢰를 맡을 때마다 제 돈을 수천, 수억 원씩 퍼부어 가며 돈지랄하는 스케일은 아닐 테고, 무슨 큰일이야 벌일까 싶었다.

“유시호 후배님, 이 구역 멤버들 사상이 무척 위험스러워 보이는데 김재원 따라 구관으로 옮겨 가 사는 건 어때요?”

“그래. 내가 룸메더러 방 바꿔 달라고 할게. 시호야, 우리 같이 살면 날마다 야식으로 치킨 시켜 먹자?”

장난식으로 도망치라는 신호를 보내자 김재원이 지원 사격을 해 주었다.

“예, 좋아요!”

호빵이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환호했다. 그 모습에 힘입어 나도 녀석을 처음 본 후 줄곧 마음속에 담아 둔 희망 사항을 꺼내 보았다.

“유시호야, 겨울 되면 매일같이 나랑 편의점에 가서 호빵도 사 먹자-?”

호빵이가 호빵 먹는 거 구경하고 싶다.

“뭐라고요? 안 그래도 햄스터 볼때기라고 놀림 받아서 슬퍼 죽겠는데 강지 형까지 이러기예요?”

나의 제안은 치킨과는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호빵이는 제 오동통한 뺨을 호빵으로 비유하지 말아 달라며 충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서러워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더욱 웃길 뿐이고.

“시호 쟤는 기가 약해서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해요. 귀신 무서워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란히 화를 당할 상이지.”

지리교육이 호빵이의 관상까지 들먹이며 재수 없는 소릴 지껄였다.

갓 스무 살 된 애한테 화는 무슨 화? 시발, 술상 엎어 버릴까?

“나한테는 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대책도 없지만, 유시호 먼저 도망가라고 내가 귀신 발목은 붙들어 주고 있을게?”

착한 척 오지는 김재원이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너그러이 받아쳐 주었다. 애초에 욕심부릴 상대가 아니니 호빵이를 사이에 두고 헛된 줄다리기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헤헤. 고맙습니다! 근데 귀신은 발이 없다던데 발목은 달려 있나요?”

유시호가 무서울 정도로 천연하게 물었다.

누군가가 ‘히이이익’ 비명을 질러 올렸고, 죽은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쪼그라드는 나도 순간 소름이 끼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가장 기가 센 인간 쪽으로.

물론 지리교육은 아니었다.

“이 방 분위기가 왜 이리 우중충해요. 괴담만 계속 늘어놓을 거면 강지헌하고 나는 다른 데로 놀러 가고.”

웬일로 이혜준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다가앉은 만큼 내게로 거리를 좁힌 그가 허벅지를 맞붙여 왔다. 따듯한 체온과 일부러 그러는 듯 톡톡, 톡톡, 다리를 건드리는 마찰이 서서히 소름을 가라앉혀 주었다.

‘귀신이 뭐가 무서워서.’라며 지리교육과 합세해 잘난 척을 할 줄 알았더니만.

“에이, 여름밤 기숙사에선 괴담이 최고죠.”

“안 최고예요.”

룸메이트 중 한 명인 고고학인지 미술학인지가 나서서 이혜준을 회유하려 들었지만 단호히 차단당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내가 아껴 뒀던 얘기 딱 하나만 더 한 뒤에 이 분위기 접으면 안 돼요? 살면서 겪은 제일 으스스한 경험이었단 말이에요. 얘기하고 싶어요, 네? 녜에-? 녱-?”

고고학은 자기 얘길 꺼내고 싶어서 괴담을 찬양했던 거다. 새끼가 홍홍 콧소리까지 내며 귀여운 척 애교를 떨자, 다들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나는 살심마저 끓어올랐고.

“역겨운데 그냥 허락해 주죠?”

“그러게. 저 얼굴이 꿈에 나올까 봐 더 겁나네. 귀염귀염 2단계로 돌입하기 전에 얼른 하라고 합시다.”

사람들이 이혜준에게 양해를 구했고, 이혜준이 내게 물어 왔다. 그 때문에 마치 내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 보스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강지, 어떡할까?”

“하세요. 대신에 짧게.”

뜯어말려도 결국은 털어놓을 기세라서 얼른 듣고 치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저 자식이 괴담을 늘어놓을 동안 난 딴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실상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무서운 얘기를 들어 본 기억은 없었다. 나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은 단순히 문자를 읽거나 이야기를 들어서는 공포심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하체 없이 빠르게 달려드는 꼴을 현장에서 직접 겪고 나면 비로소 ‘아, 팔꿈치로 기어 온다는 얘기가 이 얘기였구나. 더럽게 무섭네.’ 하고 깨닫게 된다.

“대만 여행 가서 있었던 일이에요.”

고고학의 입에서 남의 나라 얘기가 나오자 더욱 만만한 심정이 됐다. 고용주와 내가 의뢰받을 일 없는 사건일 테니까.

“한국에 백중 같은 귀신의 날이 있다면, 대만에는 귀신의 달이 있대요. 지옥으로 통하는 귀문이 열리는 음력 7월에는 이사나 결혼도 자제하고, 물가에도 가지 않는다더라구요. 한밤중에 거울을 보거나 휘파람 부는 것도 안 되고, 누가 이름 부를 때 뒤돌아보는 것도 안 되고, 담벼락에 기대는 것도 안 되고.”

“미친! 그걸 한 달씩이나 지켜야 한다고?”

“그러니깐 귀신의 달은 현지인이 돌아다니길 꺼리는 비수기라서 우린 싼값에 여행하기에 좋았지. ……친구하고 내가 간 곳은 광산이 폐쇄되면서 한참 동안 버려졌다가 영화랑 애니 덕에 관광지로 되살아난 산동네였어요. 예약한 싸구려 도미토리에서는 무료 야간 투어 서비스도 제공했죠.”

고고학이 룸메이트와 손님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가며 이야기를 풀었다.

“귀신의 달이라며. 해 지고 막 돌아다녀도 돼?”

“외지인이 그런 걸 알 게 뭐야. 나도 현지에 가서야 그 기간에는 야간 운전도 삼간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 동네는 밤에 둘러봐야 경치가 진가를 발휘하고, 또 관광업자는 손님을 끌어들여야 하니까 생긴 야간 투어였던 거예요. 근데 하필이면 그날 저녁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거 있죠. 계약에 날이 궂으면 투어 취소라고 돼 있었거든요?”

“그래도 너는 나갔지 싶어.”

끼어든 공대 룸메의 눈빛이 ‘평소에도 말 더럽게 안 듣는 새끼’라고 말했다.

“당연하지. 야경 구경하려고 숙박비 지불한 건데. ……그날은 비가 와서인지 찻집이며 기념품 가게며 상점들이 생각보다 일찌감치 문을 닫더라고요. 저녁 여덟 시도 안 됐는데 금세 인적이 뜸해지니까 으스스해져서 친구랑 나는 밝은 데로만 다녔어요. 다들 같은 생각인지 홍등 거리였나? 빨간 등불이 쭉 늘어선 거리로 가니까 그나마 관광객이 몰려 있더라고요. 중국말은 못 알아들으니까 영어 쓰는 무리를 따라갔죠. 그쪽은 여섯 명. 우린 두 명. 인원이 늘어나니깐 용기가 생겨서 골목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마당이 보이게끔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대문 양쪽으로 청등이 하나씩 매달려 있는 거예요. 홍등 거리에 있는 등불이랑 똑같은 모양새였지만 빛이 푸르스름하니까 어쩐지 기묘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 없는 빈집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초상집이었겠네.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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