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30)화 (30/96)

30화

지리교육이 초를 쳤는지 고고학이 “아이 씨 진짜!” 하고 짜증을 냈다.

“으아, 그랬군요. 잘 들었습니당~.”

숨죽이고 있던 호빵이가 긴장을 풀며 아하하 웃었다.

나머지 청중들도 별거 아닌 이야기를 들었다는 양 의연함을 내보이려 애썼다. 이 구역에선 김재원처럼 귀신이 무섭다고 내숭을 떨면 얕잡아 보이는 모양이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었다.

“야, 유시호, 그거 아니야! 본격적인 이야긴 지금부터 시작이거든? ……친구하고 나는 딱 보자마자 쎄한 느낌이 들어서 뒷걸음질 쳤어요. 근데 유럽 애들은 그걸 몰라. 마당에 사람들이 웅성이고 등불이 밝혀져 있으니까 전통 혼례식인 줄 알더라고요? 기념이라면서 사진까지 찍었어요. 그때 안에서 정장 입은 아저씨가 한 명 걸어 나오더니 다들 술 한 잔씩 하고 가래. 처음엔 안 된다고 말리려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꼭 한 대 팰 것 같은 얼굴로 우리 쪽을 노려보니까 등신같이 쫄아서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다행히 그 아저씨가 친구하고 내가 도망간 골목 입구까지는 쫓아 나오지 않아서 우린 술을 받지 않았어요.

유럽 애들이 전통 술잔 예쁘다면서 한 잔씩 싹 받아 마시고 또 화환에 꽂힌 꽃이 싱싱해 보인다니까, 아저씨가 인심 좋게 원하는 만큼 뽑아 가래. 그러더니 애들한테 사진 한 장을 내밀면서 자기 아들인데 어떠냐고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 거예요. 술도 얻어먹고 꽃도 받았으니까 다들 립 서비스로 잘생겼다고 띄워 줬죠.

마지막에는 아저씨가 대만 전통이라며 빨간색 봉투를 두 장씩 나눠 줬어요. 짝수 맞추어야 한다고. 애들은 또 중국 영화에서 빨간색 봉투에 돈 넣어 주는 거 봤다며 좋다고 그걸 덥석덥석 받아 챙기는 거예요.”

“아! 나 그거 뭔지 알겠다. 완전 도를 넘었는데? 그 아저씨는 대만 문화 모르는 외지인 상대로 뭐 하는 짓이래.”

지리교육이 말했다.

나 역시 술을 먹이고 사진을 보이고 돈을 건네는 일련의 과정이 무얼 말하는지 감이 잡혔다. 명치를 걷어차인 듯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그니깐! 뭔가 이건 아니지 싶은 일이 연거푸 일어나니까 난 거기서 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니까? 돌아 나오는 길에 저희끼리 봉투에 돈 얼마나 들었는지 확인하는 것 같더니만 느닷없이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거야.”

“왜? 돈 안 든 빈 봉투였어?”

“아니. 봉투 하나에 대만 화폐로 백 달러 두 장씩 들어 있었어. 총 네 장이니까 한화로 만 육천 원 정도? 그리고 머리카락하고 손톱도.”

“아, 뭐야아. 찝찝하게!”

“무서운 얘기가 아니라 지저분한 얘기였어? 뭐 그딴 게 들어가 있지?”

둘러앉은 학생들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직 뒷얘기가 더 남아 있을걸? 걔들 다 죽었지?”

지리교육이 결과를 내다보는 척하며 물었다.

“예? 뭘 했다고 죽어요?”

여태 감을 잡지 못한 호빵이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거 영결이야. 영혼결혼식. 자기 자식 결혼 못 하고 죽은 거 원통해서 배우자 찾아 주는 거라고. 존나 양심 없네. 보통은 귀신끼리 이어 주는데 산 사람을 끌어들여?”

지리교육이 설명했다.

“뭐예요, 그게. 아무런 합의도 없이요?”

“건네주는 술도 마시고 제 손으로 화환에서 꽃도 뽑고 돈도 받았잖아. 주술의 조건이 성립된 거지.”

“그런 게 어딨어! 왜 상대방 의사를 묻지도 않고 조건을 제 마음대로 정해요? 그 아저씨 미쳤나 봐 진짜. 사기 범죄 아니야?”

그제야 유시호가 버럭 했다. 제가 당한 일도 아니면서 누구보다 성을 냈다.

나도 귀신의 습성을 몰랐을 땐 분통 터지는 하루하루를 보냈더랬다. 백 원짜리 동전을 줍느라 며칠씩 지각하는 등의 답답한 면을 대할 때면 제정신인가 싶기도 했다.

살아 있을 때 인간이었다고 해서 그것이 산 사람처럼 사고할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 왔다.

고고학이 남은 얘기를 마저 했다.

“그 당시엔 나도 그 아저씨의 행동이 수상쩍긴 했어도 의도가 명확하게 파악되진 않았어. 머리카락이랑 손톱 보고 놀라서 비명 지르면서 빗길을 달려 내려오다가 뿔뿔이 헤어졌고, 다음 날 버스 정류장에서 보니까 일단은 다들 무사하더라고. 근데 문제는 거기가 일반 가정집이 아니었던 거지.”

“무당집? 흉가?”

“아니, 납골당. 그 산어귀 전체가 납골당이었어요.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던 거죠. 대만 납골당은 꼭 사람 사는 집처럼 지어 놓고 한 채 한 채 기와지붕도 얹어 놨더라고. 전날 밤 찍은 사진에서는 불빛이 하나도 없이, 청등 불빛도 없이 기와집 윤곽만 어슴푸레하게 나오는 거야. 완전 소름 끼치지?”

“그럼 그 아저씨는요?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귀신이었던 거지.”

유시호의 물음에 고고학이 목소리를 쫙 깔고 베이스 톤으로 대꾸했다. 그 행동이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려 집중해서 듣던 사람들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돌아왔다.

“응, 안 무서워.”

“그러게. 하나도 안 무섭잖아. 대만 괴담도 별거 아니네.”

“귀신한테 사기당하고 놀아난 얘기라 기분만 나쁘잖아요.”

지리교육, 공대생, 또 다른 공대생 김재원이 차례로 소감을 밝혔다. 허탈한 반응 일색인 이유는 표면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허벅지를 붙이고 앉은 나와 이혜준은 아무런 반응도 돌려주지 않았다. 특히 나는 붉은 봉투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빳빳하게 표정이 굳어 있었다. 옆에서 이혜준이 조심스럽게 나를 살피는 기색을 느끼면서도 도무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있어 봐요. 아직 얘기 더 남았어. 그러곤 나흘 뒤에 화롄 공항에서 그 일행하고 재회했는데 계곡물이 불어서 절벽 위에 있는 사찰에 갇혔다가 여행 일정 다 미뤄지고 그제야 풀려났다잖아요. 그 지역 해변이 대만 태풍 시작점이고, 그쪽 계곡은 물 불어나면 수심 백 미터는 순식간에 차올라서 특히나 귀신의 달엔 기피하는 장소인데 외지인은 그걸 또 몰랐던 거죠. 게다가 일행 중에 사람이 한 명 비는 거예요.”

“죽었지?”

지리교육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단정했다.

“아이 진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석화 형은 아까부터 뭘 자꾸 죽이려고 야단이야? ……술 받아 마신 애들이 계곡에 갇힌 날 밤에 고열에 시달리긴 했지만 한 사람 빼고는 모두 다음 날 멀쩡히 일어났대요. 그 남자애는 열이 떨어지지가 않아서 얼마간 더 사찰에 머물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주지 스님이 걔더러 도대체 뭘 품에 넣어 다니느냐고 호통을 쳤대요. 알고 봤더니 글쎄 그 빨간 봉투에서 돈만 빼서 가지고 있었다잖아.”

“와, 별 거지 같은 새끼를 다 보겠네.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그렇지 그 푼돈이랑 제 목숨을 바꿔치기하면 어떡하냐? 게다가 납골당에 든 귀신은 아들이라며. 결혼 상대로는 여자를 짝지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공대 룸메는 무섬증보다는 더럽고 찜찜한 물건의 존재가 더 거슬리는지 분개했다.

“이 경우엔 특정인을 노리는 게 아니니까 아무나 한 명 숫자 채워서 저승길 동반자로 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아마 대만은 동성 결혼 합법화돼 있을걸? 성별은 상관없지 않았을까?”

지리교육과 고고학이 차례로 대꾸했다.

“죽은 사람끼리 말고, 살아 있는 특정인을 골라서 데려가는 것도 가능해요?”

김재원이 물었다.

“물론이죠. 상사병 걸려 죽은 제 자식 불쌍하다며 무당을 사주해서 생사람 잡은 사례도 여럿 있었어요. 주로 양반가에서 저보다 신분 낮은 사람 상대로요. 당시엔 재력과 권력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었으니깐.”

“불특정 다수로 그물에 걸리는 것도 겁나지만 이쪽이야말로 잘못 찍히면 끝장이겠는데요.”

“산 사람을 상사병으로 죽이고 귀신을 홀릴 만큼 예쁘고 잘생긴 죄라고 해야 하나.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손님으로 오신 세 분은 특별히 조심하셔야겠는데요? 시호야, 괜히 과 대표 미남자들 사이에 끼어서 호빵 소리 듣지 말고 우리 진영으로 돌아오렴.”

지리교육이 장난스럽게 유시호를 손짓해 불렀다.

“유시호 귀여운데 왜요. 얘한테 상사병 앓는 사람 생길 수도 있지.”

“재원 선배가 그런 소리 하면 더 놀리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서럽다 진짜!”

김재원이 유시호를 편들어 주다가 괜히 원망만 샀다.

“농담 아닌데? 강지 너도 유시호 웃기게 아니, 귀엽게 생겼다고…… 야, 너 창백하게 질렸어. 괴담 같은 거 백날 들어도 멀쩡하더니만 낯빛이 왜 그래?”

내 지원을 얻으려고 옆을 돌아보던 김재원이 놀란 얼굴을 했다.

“나 오늘 술이 안 받나 봐.”

“웃기지 마세요. 맥주 몇 모금에 네가 잘도. 뭔데 갑자기. 진짜로 겁먹은 거?”

취한 탓이라고 되지도 않는 변명을 시도해 봤지만 내 주량을 잘 아는 친구에겐 통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무당이 설치고, 내 이야기가 괴담의 소재로 웃음거리가 되는 이 불쾌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후배를 소개하겠다며 김재원을 데려다 놓은 데다 이혜준마저 막 도착한 참이어서 혼자 일어나겠다는 말을 꺼내긴 어렵겠지만.

그때 군중 속의 시크릿 아웃사이더가 제 정체성을 버리고 나서 주었다.

“지헌아, 우리 그만 일어날까? 먼저 가 볼게요.”

그리 단호한 태도도 아니었건만, 사람들은 “엇…… 벌써 가세요?”라며 아쉬운 기색을 흘리면서도 붙잡지 못했다. 이혜준의 얼굴을 쳐다보면 홀린 듯 그의 말을 잘 따르게 된다는 괴소문이 나돌았는데 그게 이런 경우 같았다.

나는 끄떡없었다. 머지않아 이 선배의 얼굴이며 눈을 당당히 마주 보게 될 테지만 성격 파악이 끝났기에 외모에 홀리긴 어려울 듯했다. 한심한 언행으로 툭하면 날 기막히게 하는 인간한테 내가 넘어갈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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