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35)화 (35/96)

35화

상대가 이혜준이라서 크게 염려는 되지 않았다. 그는 학부에 소문을 옮길 만큼 친한 사람이 없는 아웃사이더니까. 앞으로 두 번이나 더 귀신이 붙을 거라는 비밀까지 털어놓은 마당에 상상의 여자 친구쯤이야.

“너 항상 없는 여자 친구 쥐어짜 내는 데에 3초쯤 걸려.”

이혜준이 끅끅거리며 나도 몰랐던 실태를 말해 줬고, 이 남자에겐 들켜도 상관없다고 위안하며 수면으로 떠 오르려던 나는 한 번 더 침몰하고 말았다.

“이 얘긴 아무한테도 하지 마세요.”

“난 사적인 얘기 나눌 만큼 친한 사람 없다니깐.”

하이고, 자랑이십니다. 어쩜 이리도 당당한지.

한심스러운 한편, 비밀 공유 대상으로선 ‘친구 없음’이 이상적인 조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소개팅하자고 하도 귀찮게 굴어서 없는 애인을 지어냈던 거야?”

선업 포인트 쌓는 행위를 호감으로 오해받으면 서로 곤란해서이기도 했고,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자 이성에게 관심이 있는 척하기도 싫어서였다.

“그것도 그렇고……. 선배님이야말로 소개팅 엄청 들어오지 않아요?”

나보다 더할 텐데?

“전혀. 소개팅 한 번도 안 해 봤어. 애들한테 나 눈 어마어마하게 높다고, 나보다 더한 미인이 있다면 소개해 달랬더니 감감무소식이네?”

과연. 아무나 도전할 만한 소개팅 회피법은 아니었다.

“선배님이 그렇게 예쁘게 생겼어요?”

짜증을 섞어 비꼬았다.

“어, 나 예뻐. 그동안 네가 차단만 안 했어도 내 사진 잔뜩 보내 줬을 텐데 말이야. 나는 특히 눈이 끝장나게 예쁘거든.”

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나를 약 올리려는 심산이다.

분하기보다는 그의 사진에도 방상시 눈 효과가 붙어 있을까 봐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이혜준의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헤어진 애인을 그리듯 질질 짤까 봐 무서웠고, 강력한 부적이 생긴다고 여기면 또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우리 셀카 찍자!”

뜬금없는 제안에 인상을 찌푸렸다. 잔인하다, 진짜. 나 오징어 강제 인증 시킬 일 있어요?

“선배님이랑 비교당하기 싫어요.”

“네가 나보다 훨씬 더 예쁜데 왜.”

한 대 팰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찍으려면 선배님 혼자 찍어요.”

“그러지 말고 해골도 나오게 해서 기념으로 찍어 두자. 이런 예쁜 배경 흔치 않잖아.”

아, 미의식이 남달랐구나! 그렇지. 선배 몸보다는 내 몸이 더 뼈다귀에 가깝지. 해골처럼 예쁘다는 의미였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있나 해서 뒤돌아서 늘어선 인골들을 살펴봤지만 뼈다귀는 뼈다귀일 뿐이었다.

“여기 있는 거 전부 실제 사람 뼈일 거잖아요. 기념으로 삼기엔 죽은 분께 불경하지 않을까요?”

그 죽은 분들을 사령 삼아 고인 모독을 해 온 인간이 양심 없는 소릴 지껄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강지헌 역시 마음씨가 착해.”

“나 하나도 안 착하거든요? 오버하지 마세요.”

“말씨도 너무 예쁘고.”

“…….”

상식에 어긋난 미의식이 문제라는 걸 깨닫자 모든 걸 내려놓았다.

이 미친 사람한텐 못 이겨. 그냥 입을 다물자.

“조교 형이 자긴 뼈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랬어. 그 말을 듣고 났더니 그저 사람 뼈라고 여겼던 여기 인골들이 해골 친구로 보이는 거 있지. 그 뒤론 나 혼자 있어도 조용한 친구들과 독서실을 공유하는 것처럼 공부가 잘돼. 정말로 서기 3세기 코판 강 유역에 살았던 고인을 모욕할 의도는 없었어. 네가 꺼려진다면 찍지 않을게.”

인간 친구 없는 아웃사이더의 고백에 짠한 마음이 일었다.

“나한테 선배 해골 친구들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혜주니 그래쪄?

“응!”

아 뭔데, 이혜준?

손위 선배가 귀엽다는 생각이 든 스스로가 당혹스러워 문득 숨이 멎었다.

“알았어요. 같이 사진 찍어요. 근데 나는 눈 감고 찍을 거예요.”

통증 테러를 당했던 당일처럼 예민해져서 발작이 일어날 조짐은 없었지만, 카메라 화면에서조차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건 망설여졌다.

이혜준이 신이 나서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는 이제 그와의 어깨동무가 새삼스럽지도 않았고 반항심 따위 다 내려놓은 포기 상태가 됐다.

“지헌아, 형한테 기대. 뼈다귀뿐인 너하고는 달라서 형 가슴은 근육도 탄탄하고 넓어.”

이건 좀 약이 올랐지만.

“저는 장남이라서 형이란 호칭은 취급 안 하고요, 연애 놀이를 하고 싶으면 여자 친구를 사귀세요. 무기력증 환자에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어도.”

세상에는 게으른 종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지.

“선천성 기력 달림증이라고 양해를 구하면 상대방이 포용해 주지 않을까? 턱 약간만 더 들어. 그래.”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연속으로 카메라의 작동음이 울렸다.

도대체 몇 장이나 찍을 셈이야?

“천성이 게으르니 애인이 이해해 줘야 한다는 거예요? 뭐……, 세상 어딘가에는 게으른 남자를 좋아하는 별종도 있겠죠.”

그런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드물 거라 여겼지만, 이혜준의 남다른 미색을 떠올리자 확률이 제법 올라갔다. 정신 나간 얼빠라면 이런 인간이라도 모시고 살고 싶을 수도 있겠지.

“너?”

“……?”

님 돌으셨어요?

이혜준표 개그의 웃음 포인트는 본인은 매우 심각하다는 데에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자지러지는 동안 그는 웃음기 한 점 없는 음성으로 “웃지 말고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줘.”라며 나를 미치게 했다.

실컷 웃고 나서는 그가 감당하지 못할 대답을 던져 주었다.

“아뇨 난, 어려서부터 새벽 운동에 특화된 부지런한 사람이 좋아요. 내 이상형이에요.”

나야 나.

근면 성실하지 않으면 밥상 앞에 앉을 수 없었던 체육관 집 첫째 얘길 꺼냈다.

“뭐, 운동? 강지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런 정신 나간 짓 하는 인간이 취향이야? 사람이 쉴 땐 쉬어 줘야지 그런 운동 미치광이하고 어울리다간 네 아까운 청춘 다 망가져.”

이 게름뱅이 자식이 내 코앞에서 내 욕을 하는 줄도 모르지.

이혜준이 제일 잘 나온 사진이라며 딱 한 장만을 보냈다.

내 딴엔 큰 각오를 다지며 휴대폰을 손에 드는데, 액정에 김재원에게서 온 메시지가 동시에 보였다. 클릭하자 대뜸 [연애세포 1도 없는 죄 많은 강지씨가 오늘도 열일하시네요^^]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뭔데? 호빵이랑 무슨 일 있나?

영문을 몰라서 잠시 어벙하게 있다가 답장은 미루고 이혜준과의 채팅방에 들어갔다. 당사자가 휴대폰을 검찰할 기세라 방상시 눈깔이라고 대놓고 쓸 순 없어 평범하게 저장해 뒀다.

“경영 이혜준 선배님이 뭐야, 정 없게.”

역시나 옆에서 감시 감독자가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지적했다.

“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비슷비슷한 이름이 여럿 있어서 구분하려고 앞에다 전공 써 두는 거예요. 김재원은 ‘산공 김재원’이고요.”

“그럼 유시호는?”

“…….”

걔는 그냥 호빵이지.

동성의 남자애를 특별나게 귀여워한다는 사실이 찔려서 화제를 돌리려고 재빨리 사진을 들여다봤다.

“선배님…… 어, 이렇게 생기셨어요?”

어떻게 볼 때마다 달라질까.

달밤에 각인됐던 인상이 아니다. 녹아내릴 것처럼 부드러운 크림 스타일의 남자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정면은 아니지만 눈매가 완전히 드러난 얼굴은 의외로 박력 있고 날카롭게 보였다. 고전적 미남이 아니라 좀 많이 양아치 느낌이 났다.

아까 기숙사 애들이 우릴 두 번 붙잡지 못하고 고이 보내 준 이유가 그의 미모에 홀려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설마 기에 눌려서?

이분의 기가 귀신을 누를 정도로 세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산 사람에게도 통하는 줄은 몰랐다. 은근히 이혜준을 우습게 여겨 온 나는 쓸모없고 얼굴만 반반한 남자를 자체적으로 망상해 왔던 거다.

“눈 괜찮아? 오늘은 아프지 않고?”

인류 복지니 어쩌니 제 외모 자랑을 늘어놓을 줄 알았던 그가 나조차 깜빡한 사안을 일깨웠다. 이번엔 눈알이 지져지는 고통이 없었다.

“전혀. 아무래도 사진은 효험이 없나 봐요. 부적으로 쓰려고 했는데 완전 무쓸모네. 삭제해야겠다.”

“난 이거 카톡 프사로 쓸 건데? 그러지 말고 너도 해. 잘 나왔잖아.”

“미치셨어요? 이걸 어디에다가 공개한다구요?”

두 눈을 꼭 감은 채 턱을 치켜든 내 표정은 마치…… 마치, 옆 사람에게 키스를 갈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이 자식은 어째서 카메라 렌즈를 놔두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하여간에 사람 환장하게 하는 구도였다.

네 멋대로 진성 게이 커밍아웃 시키지 마!

“이거 세컨드 폰인데 번호 아는 사람 가족 포함 몇 명 안 돼. 내 카카오톡 비공개인데다 너 말고 더 추가할 사람도 없어.”

이혜준이 휴대전화를 한 대 더 꺼내어 테이블 위로 놓았다. 같은 기종 같은 색 케이스라 언뜻 구분이 가지 않았다.

“가족분들은 카톡 프사 볼 거란 얘기잖아요.”

“우리 식구는 모두 왓앱. 그런데 기력이 달려서 메신저 앱으로는 연락 잘 안 해. 나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할 말이 있어도 연락하기 귀찮아서 그냥 참고 말지.”

어련하실까.

“게으른 데다 연락도 잘 안 되고 애인 분이 엄청 좋아하시겠어요?”

아우팅의 위협이 사라지자 여유를 되찾고 비꼬는 말도 나왔다. 복수였다.

너도 내 애인이 매일같이 나한테 욕 처먹고 살겠다며, 행복하겠다고 그랬잖아!

“응. 애인이 내 게으름과 귀차니즘을 색안경 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줬으면 해. 어려운 일 아니잖아.”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치는 이혜준 때문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며 조교 형들이 놀리고 구박해도 꿋꿋했던 이유는 이 인간이 진심으로 제 나태함은 단점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인 듯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일주일에 하루 출근할 수도 있다고,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한 마인드가 읽혔다.

얼굴 믿고 저렇게 막 사나?

저런 얼굴을 가진 적이 없는 나는 저 영문 모를 관대함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