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37)화 (37/96)

37화

“아니, 귀신 말고 사람하고 말이야.”

“뭐가 됐든 산 사람하곤 안 해요.”

“왜! 왜 안 하는데?”

“……?”

왜 지가 흥분하고 난리야? 남이사 결혼을 하든가 말든가.

도의에 어긋나서 산 사람하고는 안 된다는 이유를 밝히면, 또 너처럼 착한 애 처음 봤다느니 하는 가당찮은 칭찬 세례가 쏟아질 게 뻔했다.

그것보다는 이혜준의 집요한 반응이 신경 쓰여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하기 곤란한 일이야?”

“김재원한테 뭐 좀 물어보고 나서 대답해 드릴게요.”

똑같이 남자 친구가 없는 처지여도 김재원은 연애 세포가 죽은 나보다는 그나마 분위기를 잘 파악했다. 이 문제는 그 녀석의 조언이 필요했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땐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 편이지만 이건 이혜준에게 물어볼 사안이 아니었다.

눈치 없는 나의 센스를 탓해야지.

“친구 성격 괜찮던데? 싹싹하게 분위기 맞추는 데도 능숙하고. 나는 그런 걸 잘 못 하겠더라.”

그렇지. 김재원이 사회성 없는 누구 씨처럼 사람 수 늘어난다고 기가 빨려서 침묵시위를 하진 않지.

절친한 친구에 대한 호감 어린 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예. 그래서 걔 어딜 가든 인기 많아요.”

“어른스러워서 성질도 누를 줄 알고.”

“어, 김재원 성깔 있는 거 용케 알아보셨네요? 근데 성격 더러운 것치고는 지랄 별로 안 해서 주변 사람한테 실수 없고 두루 원만해요.”

“그러는 너는 왜 지랄하는데?”

“…….”

실수인 척 한 대 칠까?

이혜준이 자기 아빠 앞에서 내가 욕했다고 고자질한 일이 떠올라 새삼 열이 뻗쳤다. 주먹을 꾹 거머쥐자, 운전석에서 흠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다 큰 어른 새끼가 애도 아니고 거기서 일러바쳐? 나도 아빠 있거든?’

그런데 우리 집 백호 체육관 관장님은 고자질하는 나를 더 야단칠 양반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이대로 첫 번째 골목까지만 가자. 가로등은 제대로 작동하는 데야?”

그가 안전벨트 버클 위로 손바닥을 대며 풀지 못하게끔 막았다. 어이없는 걱정을 다 했다.

“그럼요. 소극장은 망해도 공원으로 통하는 길이라 구청에서 관리해 줘요.”

“환해?”

“차량 한 대가 다니는 폭인데 밝아 봤자죠. 그래도 길지 않아서 금세 공터 나와요.”

실은 낮에도 해가 들지 않아 어둑어둑한 편이었다. 건물 바깥에도 조명이 없어 공원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야 했고.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자동차는 일방통행 길로 진입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저지하기 전에 차가 멈추었다. 서창경이 부적 들고 뛰쳐나올 만큼 지척은 아니었다.

아, 간 떨려.

“조심해서 들어가.”

“예. 선배님도 운전 조심하시구요. 후진해서 차 돌리세요. 절대 이 안쪽으로 들어오면 안 돼요. 들키면 진짜 난리 나요.”

“알았으니까 그렇게 개천사 눈치 보며 쩔쩔매지 마. 너 괴롭힘 당할까 봐 걱정돼서 자꾸만 자취 재도전하고 싶어지잖아.”

“…….”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지 협박을 하려는지 모르겠는 소리에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나보다 그가 해코지를 당할까 봐 더 걱정인데.

서창경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가 다루는 눈에 보이는 않는 존재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누를 수 없는 힘이 두려웠다.

“내일 점심 같이 먹을까? 이 근방에 맛집 제법 있지?”

“오시려고요? 강 한 번씩 건널 때마다 사나흘 드러누워야 한다면서요.”

차에서 내린 후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를 놀렸다.

“내가 보던 전공 서적하고 필기 태블릿 가져올게. 시험문제랑 족보도 다 체크돼 있어. 너 이번 학기부터 원서 강독 들어가니까 공부 도울 수 있을 거야. 필요한 거 다 줄게.”

“…….”

지금 나 꼬시려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뒷감당이 되지 않아 참았다. 농담으로도 묻기가 겁이 났다.

내리뜬 눈에 각지고 넓은 어깨가 잡혔다. 살집은 없지만 뼈대가 크고 단단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귀여운 구석이 한 군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이상형에서 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보니 마음을 받아 주어도 문제구나 싶어 식은땀이 났다.

부디 내가 헛짚는 거였으면.

천성이 선하긴 해도 오지랖을 부리는 인간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내가 붙인 별명이 시크릿 아싸일까. 누구에게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라면 부담이 덜할 텐데…….

“연락 주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자동차의 전조등이 위치를 옮겨 상향으로 바뀌었다. 밝은 조명이 골목 끝까지 길게 뻗어 나가 시야가 환히 트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한 쪽팔림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에도 쫓기는 것처럼 서두르던 길이었다. 안전 가옥이 지척인 까닭에 이 부근에선 더욱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고.

이 골목길을 빠져나가 서창경의 영역에 도착하기만 하면 나는 편히 숨 쉴 수 있다는 생각이 온통 의식을 지배했다.

그러나 등 뒤로 방상시가 존재하는 오늘 밤은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내 주변 공기가 든든하다는 믿음이 있었고, 안전 가옥 안으로 허겁지겁 도망치고픈 욕구도 무디어졌다.

공터로 빠져나오자 잠시나마 누렸던 평온한 기운이 흩어졌다. 건물 앞에 세워 둔 자동차로 다가서는 키가 크고 늘씬한 인영을 발견한 탓이다. 소극장 로비로 이어지는 유리문 안쪽의 센서 등이 꺼지기 전에 드러난 얼굴은 서창경이 아니었다.

“공숙선 씨?”

골목에서 차를 빼고 있을 이혜준에게 시간을 벌어 주고자 원래라면 소 닭 보듯 지나쳤을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만신 조상희의 힘을 누르려고 도인을 모을 당시 내가 접선한 여덟 명 중 하나였다. 나머지 인물들은 “무덤에까지 비밀에 부칩시다!”라고 당부하며 입금 직후 연락을 끊었지만, 어째서인지 공숙선만은 줄기차게 이 건물을 드나들고 있었다. 나 말고 고용주에게 볼일이 있어서.

“웬일이야. 앙칼진 이 집 개가 아는 척을 다 해 주고?”

서창경이 내 소개를 어떤 식으로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날 애완용으로 뒀다곤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번견이 해야 할 행동을 보였다.

“방범 카메라에 얼굴이 찍혔을 테지만 일단은 집에 든 사람이 누군지는 확인해 봐야죠.”

유리문 쪽으로 팔을 뻗어 손가락을 팔랑팔랑 움직였다. 센서 등이 반응하며, 실제 나이보다 십여 년은 더 젊어 보이는 사십 대 무용학과 교수의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스승이 이름 높은 한국 무용 인간문화재이며, 전승자인 그 역시 무형 문화재가 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공숙선의 장기는 북과 북춤인데, 특히 북은 신들린 듯이 연주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으로 신령을 부르는 자임을 무신과 관련 없는 일반인도 은연중에 느끼는 것인가 싶었다.

“너 어디 이상한 데 들렀다 왔지. 축사 기도회에라도 다녀왔어? 뭘 건드렸기에 이렇게…… 소름이 돋아.”

얼굴을 메우던 웃음기가 사라지면서 공숙선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심각한 눈빛이었다.

올. 이혜준 선배님이랑 같이 시간만 보내도 효과가 나타나는 거야? 오늘은 방상시 눈깔을 마주 보지도 않았는데?

“뭘 건드려요.”

모르는 척 다가서자, 공숙선이 다시 한 걸음 물러나며 언성을 높였다.

“너 도대체 뭐하고 접촉하다 온 거야?”

“하하…….”

이혜준 능력 미쳤네.

나는 그의 사진을 뽑아서 지갑 속에 넣어 다니기로 결심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늘 내 옆에 붙어 다니던 놈이요. 걔 아직도 있어요?”

조상희 건으로 만난 여덟 명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가 가톨릭 성직자건 사찰의 주지건 간에 모두 한눈에 내가 달고 간 윤상현의 존재를 꿰뚫어 봤다. 친절한 마음으로 잡귀를 떨구어 주려다가 모시는 신에게 빌린 권능이 통하지 않으니 기함하던 자도 있었다.

힘을 얼마나 빌려 쓸 수 있는지가 관건이건만 그 여덟 중엔 홀로 만신 조상희를 넘어서는 이가 없었던 거다.

「이 잡귀를 내게 붙인 만신을 처단하려고 합니다. 선생님 혼자 힘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요.」

떨칠 수 없는 윤상현의 존재가 그들을 도발했다.

“……있지.”

공숙선의 시선이 내 근처가 아닌 먼 허공에 닿았다. 북채를 잡고 춤추는 자의 거짓을 즉각 간파했다.

“……!”

없어. 이미 떨어져 나갔구나.

서창경은 이 일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임을 알면서도 이혜준 때문에 비뚤어져서는 내도록 침묵했던 거다. 아니면 부리던 개를 풀어 주기가 싫었든지.

언젠가 나를 해칠지도 모르는 인간에게 은혜를 입고 묶인 대가가 이것이었다.

“그래요? 요 얼마간 몸이 홀가분해진 느낌이라 혹시 달라진 게 있는 줄 알고.”

눈치채지 못한 척 시침을 떼며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홀가분해져? ……있어 봐.”

공숙선이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스승은 노쇠했고, 살필 윗사람 없이 명령과 지시만을 일삼은 세월이 긴 그는 자기 감정을 감추는 데 능숙하지 못했다.

“왜요. 난 좀 홀가분해지면 안 되나? 우리 사장님이랑 짜고서 나한테 뭐 무서운 주술이라도 걸어 뒀나 보네.”

차 안으로 상체를 집어넣고 콘솔 박스를 뒤적이던 공숙선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읽어 내기 쉬운 반응이 고마웠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가 내게 들이댄 건 투박하고 녹슨 철제 종이었다.

뭔데. 무속인이 사용하는 요령 대신인 건가? 수상해. 이 아저씨 무교라지 않았어?

서창경이 던져 준 자료를 되새기며 경계했다.

“진짜 수상하다, 너?”

종소리가 나지 않는 종을 대여섯 번 흔들어 대던 공숙선이 내가 할 소리를 가로챘다.

“뭐가요?”

“머리가 깨질 것 같다거나 정신이 흐려지지 않아?”

아파야 하는 걸까. 눈이 맛이 가야 해?

거기까지 연기하기엔 내 연기력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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