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38)화 (38/96)

38화

“아무 설명도 없이 이런 짓 하지 마세요. 무섭잖아.”

팔에 무게를 실어 팔씨름을 하듯이 종을 든 그의 팔뚝을 아래로 찍어 내렸다. 북채를 쥐는 팔은 근육에 뒤덮여 단단했지만 어렵지 않게 힘으로 눌렀다. 맞닿은 맨 살갗이 불쾌했다. 상대방은 정반대의 감흥을 얻은 듯해도.

“야. 니가 먼저 건드려 주니까 은근히 설레네. 너 혹시 알비노야? 밤에 보니까 피부에 색소가 없는 게 더 두드러진다. 너처럼 뽀얗고 비율 좋은 미인은 우리 과에도 드물어.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 예쁜 몸은 어떻게 만든 거야? 무슨 운동해?”

이런 새끼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걱정스러웠다.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은 전공이고 우수한 여성 무용가도 수두룩할 텐데 하필이면 왜 이런 파렴치한 아저씨에게 학장 자릴 내줬을까. 국보급 문화재인 제 스승의 백으로?

“그 종,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려 주면 내가 하는 운동 말씀드릴게요. 가톨릭에서처럼 구마 의식 같은 데에 쓰는 거예요?”

더러워진 기분을 감추며 조건을 내걸었다.

“알잖아. 나는 구마에는 흥미가 없어. 마귀는 불러들이는 게 제맛이지, 인정머리 없이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이 새끼가 서창경과 죽이 척척 맞아 어울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동조해 주기 싫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종은 혼을 부리는 물건인데 너처럼 귀신한테 홀려 본 애들, 기가 약해서 홀리기 쉬운 애들한테 특히 잘 먹혀. 다이센 고분 유적에서 출토된 걸 빼돌린 거야. 인형 놀이 좋아하는 너희 주인님도 탐내는 보물이라고. ……그런데 왜 통하지 않을까.”

“태권도 해요.”

뒤늦은 답변을 심드렁하게 내뱉으며 공숙선의 복부에다 주먹을 꽂았다. 그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만 쩍 벌리며 무너져 내렸다.

‘이 새끼도 매일 훈련하고 몸 쓴다는데 평범한 사람은 아닌 거잖아요. 아버지, 하마터면 나 방금 영혼 털릴 뻔했다고! 자기방어 차원에서 어쩔 수가 없다고요.’

이 자리에 없는 중곡동 백호 체육관 관장님께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태권도 사범이 일반인을 팬 이유로는 부족한 감이 있긴 했다. 고소당해 경찰서에 가서 영혼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를 꺼내면 누가 믿어 줄까.

“한 번만 더 그 종 들이대면 그땐 북채 잡는 네 손목뼈를 부숴 버릴 거야.”

“이 개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교수님, 그 개새끼한테 공들여서 관리한 얼굴 한번 뭉개져 보실래요?”

자동차 바퀴 옆에 반쯤 드러누운 공숙선의 눈앞으로 운동화 밑창을 들이밀었다. 이 새끼가 계속해서 무고한 강아지를 욕하면 이대로 밟아 버릴 작정이었다.

“힉!”

아랫배를 움켜쥐었던 그의 양손이 허겁지겁 얼굴로 옮겨 갔다.

“공숙선 씨 잃을 거 많은 분이시잖아요. 조신하게 사셔야죠.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섯.”

“으악!”

정강이뼈를 노려 걷어차자, 그가 발딱 일어섰다. 무용을 해서인지 중심을 잡는 몸놀림이 예사가 아니다.

거봐 멀쩡하잖아. 엄살 맞지.

“나한테 하는 짓을 보아하니 그동안 범죄 행위에 이용해 온 유물 같은데, 설마 이걸로 본인 학생들 조종하고 추행해 왔던 아니겠죠?”

“아니야, 아니야! 그런 적 없어!”

인간 샌드백의 인생을 걸어온 나와는 달리 폭력에 노출돼 본 적 없는 육체는 쉽게 굴복했다. 물론 그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저 위험스러워 보이는 종을 빼앗아서 고용주한테 맡겨 둘까 하다가, 고용주의 손에 들어가면 더욱 위험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근심에 사로잡혔다.

어휴, 유유상종 것들!

그렇다고 저걸 내 소유로 두고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오다가 주웠는데요.’ 하며 박물관 관장직도 겸한다는 이혜준의 부친에게 처분을 맡겨 볼까?

종을 압수하기 전에 이런 불길한 물건도 받아 주느냐며 물어보기로 했다. 당장 내일 이혜준을 만나기로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어서 방상시와 눈을 마주하고 윤상현의 부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혜준이 이 구역을 빠져나가고도 남을 시간을 계산해서 공숙선을 보내 줬다. 저 추물과 늘 기력이 달려서 허덕이는 연약한 선배님을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 ∞ ∞

얕보던 상대에게 느닷없이 당한 주먹질과 발길질은 공숙선의 사고 체계를 진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액받이로 키우던 개가 최근 들어 목줄을 끊어 내려 시도한다는 얘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계약할 당시엔 제가 부탁하는 처지라서인지 그럭저럭 예의를 갖추더니, 대거리하며 이를 드러내자 사나운 기백이 그대로 전해졌다. 강지헌의 주먹은 여태 토기가 치밀 정도로 매섭고도 묵직했다. 호흡할 때마다 아랫배가 통증으로 징징 울렸다.

“네까짓 게 감히……. 결국 제물로 바쳐질 새끼가 주제넘게…….”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던 공숙선의 눈에 골목 초입 좁은 길을 가로막고 선 자동차 한 대가 들어왔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여기가 무슨 주차장인 줄 아나. 길 한가운데다 버젓이 차를 세워 놓고 뭔 지랄이야?”

요란스럽게 경적을 울려 주의를 줬다. 뒤로 공터를 두고 있으니 그가 양보해서 후진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다.

“야! 당장 차 빼지 못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시비를 걸듯이 외쳤다.

제발 걸려들어라.

서창경의 개에겐 손을 대기가 어렵지만 해코지할 타깃이라면 세상 어디에든 널려 있었다.

공숙선은 남을 해치고 싶어 하는 살의 기운을 타고났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사찰에서 수행도 해 보고 북춤도 배웠으나 살기는 눌러지지 않았다. 북을 치며 신을 부르니 신령이 내렸고, 억눌러 왔던 저주의 재능을 깨우쳤을 뿐이다.

여태까지는 소소하게 경쟁자들 상대로 살을 날리거나 저의 뜻에 반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데에 그쳤지만, 만신 조상희를 처단하는 의뢰를 이행하며 새로운 스케일에 눈을 떴다.

「뒤탈 없이 원하는 만큼 제물을 조달할 방법이 있어. 당신 신령이 강해지면 당신도 제2의 조상희가 될 수 있다는 거 알지?」

서창경과 그의 부모가 손을 내밀었다.

조상희의 피 맛을 본 공숙선의 몸주신은 이제 시시한 제물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작업에 참여한 나머지 일곱의 목숨을 넘겨받는다는 조건으로 그들과 손을 맞잡았다. 하나씩 제거하며 주신께 제물로 바칠 작정이었다. 마침내는 서창경과 그의 개까지 포함해서.

힘이 있는데 나라고 살아 있는 신이 되지 못할 건 또 뭐야. 우선 저 시건방진 새끼부터 신에 대한 복종을 가르쳐 줘야지.

상대편 운전석 문이 열리는 걸 보며 공숙선도 종을 챙겨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굳이 주 종목인 북이 아니더라도 음파를 만들어 내는 모든 물건이 주술 도구가 됐다. 특히나 이 종은 몸주와 파장이 잘 맞아 북채를 쥐는 것처럼 능숙하게 다루었다.

‘거슬리는 것들은 모조리 짓이겨 버릴 테다!’

그의 마음인지, 유물에 깃든 염이 속삭였는지 공숙선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무렴 어떤가. 살기를 펼칠 기회는 언제라도 반갑다.

“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자신감에 고양되던 기분도 잠시, 드물게 훤칠한 체격이 눈에 들어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직전에 주술이 통하지 않아 물리적 공격을 당했던 돌발 사고가 뇌리를 스쳤다.

강지헌 그놈은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일까.

무신이 스며들 틈새가 없는 인간이 존재한다고 한다. 영혼에 갈라짐이 없고 눈 어두운 그자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무신으로 말미암은 요행에는 일말의 기대조차 없어, 귀가 약점을 파고들기도 어렵다고 들었다.

하지만 공숙선이 알기로 강지헌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서창경이 기른 개는 귀가 두려운 까닭에 홀로 서지도 못하는 겁쟁이였다. 주인에게 예속되고 의존했다.

또한, 한순간이나마 제 몸을 신령의 몫으로 내어 주는 일도 저어한다고 들었다. 무당이 될 그릇도 되지 못하니 제물로나 써야지.

귀신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다 보니 머릿속이 귀신뿐인 애처로운 아이였다. 서쪽에서 불길한 손이 찾아든다는 점괘가 나오면 그날은 온종일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쪼개어지고 금이 간 영혼에는 공포와 불신이 그득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이 종소리에 혼백이 뒤흔들리고도 남아야 하건만 강지헌은 아예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수상쩍게 굴었다. 바로 저 남자처럼.

파지직― 치지지지직―.

종에서 날 리가 없는, 찢기는 듯한 파열음이 사냥감을 향해 쏘아졌다. 영력이 있는 자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머, 멈춰! 거기 섯! 꿇어!”

그러나 명령은 먹히질 않았고, 저벅저벅 일정한 발걸음 소리만이 다가왔다. 당혹감에 사로잡힌 공숙선이 파동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날려 버리고 종을 쥔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댔다.

오늘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먼저 공격에 나섰음에도 어째서인지 그는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왜 도망가는지 공숙선도 이유를 몰랐다. 그저 피해야 한다고, 저 남자는 위험하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몸주를 불렀지만 그의 신령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어쨌는지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마치 저보다 강한 귀신 앞에선 숙주인 강지헌을 버리고 도망치는 윤상현처럼.

“어디 개 훈련 시켜요?”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이건만 찢어발겨 죽이겠다는 위협이라도 들은 것처럼 공숙선은 파들파들 떨었다. 몸주신을 처음 들일 때조차 느껴 보지 못한, 전신을 짓누르는 기세에 압도당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오, 오지 마세요…….”

“멈춰. 거기 서. 꿇어, 라니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을 길바닥에 꿇어앉히는 건 너무하잖아요? 다른 사람 괴롭히는 놀이가 재미있나 보네.”

뒤돌아서 도망치는 걸음이 점차 느려지고 힘을 잃었다. 휘청휘청 멈춰 선 공숙선의 무릎이 저절로 구부러졌다. 그가 종을 흔들어 조종하던 장난감의 반응을 그 자신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손에 쥔 물건 이리 줘 보세요.”

등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으…… 안 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