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마음이 쏠려서 메신저 창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새 바뀐 이혜준의 프로필 사진을 발견하고는 손가락 끝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진에 닿은 손가락이 오염된 느낌이 들었다.
나: [사진 당장 내리세요. 내일 다시 찍어요.]
내 사진을 왜 지 프로필에다 올린담?
그런데 새로 찍자며 프로필 사진을 허락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나도 좀 등신 같았다.
경영이혜준선배님: [그럴까? 우리 기념으로 매일 한 장씩 찍어두자?]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볼이 발그레한 동물 이모지가 뒤이어 도착하자 식은땀마저 뻘뻘 솟아났다.
나: [선배님, 매일같이 만나려면 매일 집 바깥으로 나와야 하잖아요.]
나: [번거롭게 외출 준비를 해야 한다구요.]
나: [완전 기력 달리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나: [기력 바닥나서 이번 학기에도 휴학하면 어떡해요? 졸업하셔야죠!]
걱정해 주는 척 미친 속도의 타법으로 집구석 폐인이 집구석에만 머물게끔 부추겼다.
안 하던 짓 하지 말고 본업에 충실하세요. 아무리 친한 선후배 관계라도 날마다 얼굴 보는 건 수상쩍잖아요.
경영이혜준선배님: [너무 놀리지 마]
경영이혜준선배님: [그러잖아도 오다가 쓰레기를 하나 줍는 바람에]
경영이혜준선배님: [아니다 이 얘긴 직접 만나서 할게]
경영이혜준선배님: [나 혹시 내일 못 일어나면 모레 봐]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문자에서부터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일단은 그의 귀차니즘을 부추기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은 보였다.
나: [저는 개강하고 만나도 상관없어요.]
경영이혜준선배님: [강지 설마 나 피하는 거? 용기 있다?]
나: [하하. 아니에요. 저는 그저 선배님 무리하는 게 걱정돼서.]
생각해 보니 내일 만나긴 해야 한다. 윤상현의 부재를 확인해야 하니까.
경영이혜준선배님: [형도 네 걱정 많이 해 서로 걱정돼서 미치겠는 걸 보니 우린 천생연분이다 그치?]
므어?!
‘뭐래이시발로마’까지 적었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느닷없이 형 타령하는 것도 그렇고 일부러 저러는 걸 텐데 도발에 말려들면 지는 거잖아.
반박하는 대신에 사진 얘기로 돌아갔다.
나: [자기 전에 선배님 사진은 왜 들여다보라고 하신 거예요?]
경영이혜준선배님: [잘생겼잖아 예쁘고 잘생긴 거 감상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깐?]
야잇… 개새끼야!
나: [뭐 다른 특별효과는 없고요?]
경영이혜준선배님: [음 예전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겠지?]
이 인간을 다시 차단해야 할지 짧은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 [선배님 눈에서 노란 광선 빔 나오는 정면 사진 같은 건 없어요?]
경영이혜준선배님: [광선 안 나오는 검은색 눈동자 증명사진이라면 있는데 줄까?]
아쉽지만 그거라도.
나: [예.]
경영이혜준선배님: [나도 강지 증명사진 갖고 싶다]
나: [전 없어요.]
0.01초 만에 거짓말이 나갔다. 섭섭하다고 항의하면 ‘다음에 찍을 기회 생기면 한 장 드릴게요.’라고 변명거리까지 마련해 뒀는데 몇 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설마 이혜준, 사진 안 준다고 토라진 건 아니겠지. 아, 존나 피곤해.
남의 학과에 놀러 가서 공대생들 후배 노릇, 공대 교수님들 제자 노릇도 태연하게 해치우던 내가 같은 과 선배의 후배 노릇이 벅찼다. 공대에는 함께 사진을 찍자든지 내 사진을 달라는 남자 선배가 없긴 했다.
‘그럼 내일 새로 찍어서 드릴까요?’라고 내 무덤을 팔 뻔했는데, 다행히 그냥 후배의 포지션을 망각하기 전에 이혜준이 메시지를 보냈다.
경영이혜준선배님: [답장 늦어서 미안 옆에서 자꾸 귀찮게 방해를 하네]
우려와는 달리 내 증명사진 따위를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듯이 보였다. 집에 가다가 뭘 주웠다더니 그 때문인가 싶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
“바쁘세요?”
―조금. 쓰레길 주워 왔다고 했잖아.
“지금 누구더러 쓰레기라고 하세요!”라고 항의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 멀리서 들렸다. 남성의 목소리였다.
―스피커 모드로 바꿀게. 너도 아는 사람인데, 그곳 터주신이 들을지도 모르니까 이 사람 이름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마. 알았지?
“나더러 미신 신봉자라고 놀리더니 선배님은 더하시네. 난 이 땅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거든요?”
심심할 때마다 제를 올리는 서창경이라면 이 구역 토지신과도 교류할 테지만,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 귀신이 내 눈앞에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조건 땡큐다.
―그래그래, 앞으로도 계속 모르고 있어라.
―나야, 강지헌.
이혜준의 대답 뒤로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구시죠?”
―내 목소리도 못 알아듣고 섭섭하네.
“나하고 친하세요?”
까칠하게 말이 나갔다. ‘나 누구게?’와 같은 장난은 받아 주지 않는 내 성질머리를 모를 정도로 거리가 먼 사이라는 판단이 서서였다. 나한테는 귀신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하지, 같은 인간끼리의 친목 도모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상대가 6선 국회의원일지라도 똑같이 반응했을 거다.
―친하지. 너 소극장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나잖아.
“…….”
오, 공숙선! 과연 쓰레기!
이혜준의 단어 선택이 매우 적절했다.
“지금 선배님 댁이세요? 집에 그 사람 데리고 간 거?”
믿기지 않아서 묻고 또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였나? 이혜준이 쓰레기를 주웠다고 말했는데, 설마 처음 본 사람을 자기 집에 데려간 건 아니겠지?
선배님이 한국 전통 무용에 관심이 있어서 그 유해한 폐기물을 주운 건 아닐 테고, 둘이 함께 있는 이유가 좀처럼 짐작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저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공터에서 시간을 끈 내 노력은 헛수고가 된 모양이다.
―참 빨리도 물어본다. 나 집에 도착했는지 이제야 물어봐 주는 거야? 연애 센스가 훌륭해서 강지헌 애인한테 예쁨 많이 받겠다아-?
이혜준이 핀잔을 줬지만, 연애 고자라는 말을 하루 이틀 들어 온 것도 아니고 아무 대미지도 없었다.
“상관없어요. 연애 안 할 건데, 뭘.”
―너 아직 살날 많이 남았어. 그렇게 속단하지 마.
“…….”
습관처럼 ‘나 같은 놈하고 누가 사귀어 줘요.’라고 말하려다 말이 씨가 될까 두려워서 입을 다물었다.
보통은 ‘나 귀신 붙었어. 앞으로 두 번 더 붙을 예정이야.’ 하고 고백하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도 상대가 도망가기 마련인데, 이혜준에게는 통할 리 없는 협박이니까.
가상 여자 친구를 그대로 남겨 둘 걸 그랬다. 들키더라도 끝까지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우길 것을 괜히 사실대로 말해 버렸네.
김재원의 의견을 구하기 전, 이 선배님이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모를 때 저지른 실수였다.
―어쨌거나 이걸로 아까 답장 늦어진 거 설명된 거지? 자세한 얘긴 만나서 해 줄게.
증거를 제시하려고 굳이 공숙선을 바꿔 줬다는 말에 떠름해졌다. 현장 영상 통화를 통해 배우자가 지금 누굴 만나는 중인지, 바람을 피우는지, 감시하는 의처증 환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그딴 거 설명을 왜 해?
“내일 늦잠 주무실 것 같으면 내가 그리로 갈까요?”
이렇게 되니 공숙선이 어째서 이혜준과 어울리는지 한시라도 빨리 알아내고 싶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결이 다른 인물들이건만 어떡하다가 친분을 맺게 됐을까. 이곳 터주가 모르게 하라니 이곳에 머무는 나와도 분명 연관이 있는 거다.
―아냐. 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일찍 일어나도록 노력해 볼게.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영 미덥지 못했다.
“노력하지 말고 푹 주무세요. 내가 도착해서 깨워 줄 테니까.”
―아냐, 아냐. 나 그렇게까지 아침잠이 많진 않거든. 갈 수 있어!
굳이 오겠다며 설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 와요. 늦기만 해 봐. 가만 안 둬요. 10초 늦을 때마다 꿀밤 한 대씩 추가합니다.”
목소리를 내리깔고 장난을 치자, 이혜준은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자신 없어 하는 징징거림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10초에 한 대라니 지헌아, 그건 좀……. 너 실은 꿀밤으로 날 때려죽이고 싶었던 거야? 내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기에, 응? 우리 아까 좋게 헤어졌잖아?
어느새 그의 등신미에 단련됐는지 찌질함을 느끼는 가운데서도 약간 귀엽다고 생각했다. 신은 공평한 것도 같아서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졌다.
그래. 얼굴이 그 정도면 나사가 열다섯 개쯤 빠져야 마땅하지. 의외로 세상은 정의로웠던 거다.
“에이, 나 손가락 힘 약해서 꿀밤 때려도 하나도 안 아파요. 걱정하지 말고 경험 삼아 한번 지각해 보세요.”
웃음을 참아 내며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잠들기 전 이혜준 사진 한번 들여다보기.’
학습 당한 듯 손이 저절로 옮겨 갔다. 오늘 찍은 사진을 클릭해 재빨리 확대했다. 옆에 매미처럼 달라붙은 내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더러 자꾸만 턱을 치켜들라고 주문할 때 눈치채야 했는데. 심각하게 야릇한 구도가 민망해 다음번 사진은 증명사진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찍겠다고 결심했다.
먼저 이혜준의 기다란 눈매를 해체하듯 들여다봤다. 사진 속의, 나를 향해 비스듬히 내리뜬 눈에는 갈빛 하나 돌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가 담겨 있었다. 내게서 윤상현이 떨어져 나간 까닭에 이젠 황금색 기운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이혜준의 실물이 아닌 사진은 귀신 쫓는 효력이 없는 것인지, 방상시 안광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웃는 듯 마는 듯 치켜 올라간 입꼬리 탓에 성격이 온순해 보이진 않는다고 여겼는데, 홑꺼풀처럼 옅게 진 쌍꺼풀도 서늘하고 날카로운 인상에 한 몫 했다. 물렁물렁하게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내 기호와도 동떨어진 이미지였다.
이 선배님은 뭐 한다고 자꾸 한심한 추태만 적립하는 거지? 내 경계심을 풀어놓으려고?
잘생긴 외모에 대한 감탄이나 설렘은 일지 않았고, 김재원 말마따나 이런 미인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나한테 들이대나 궁금할 따름이었다. 내일은 추리닝을 입고 동네 백수 차림으로 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후배’의 정석을 보여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