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강지헌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했다. 어둠 또한 두려워하게 되어 암흑 속에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디디지를 못했다. 잠을 잘 때에조차 늘 전등을 환하게 켜 둔 채였다. 그렇게 두려움을 키워 주었다.
그 후로는 쉬웠다.
실체 없이 옥죄어 오는 공포에 잠식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리고 착실히 생기가 깎여 나가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그는 누구야. 정체가 뭐지?』
창백하고 마른 손이 강지헌의 정묘한 얼굴을 쓸었다. 성정이 거칠해진 후에는 이런 접촉조차 무심히 넘기지를 못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야 마땅하건만 오늘 밤 강지헌은 깨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드물게 평온한 얼굴이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는 원기를 모조리 빨리고 생을 마감할 운명을 지닌 제물의 표정이 아니었다.
오늘 밤은 서창경의 모습과 목소리 역시 그에게 닿지 못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내내 함께였건만 강지헌의 눈과 귀에는 서창경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이름을 부르고 고함을 질러도 강지헌을 돌아보게 할 수가 없었다.
누굴 만나고 와서 이런 상태가 돼 버렸는지는 뻔했다.
호령도에 보냈더니 그 불길한 것을 달고 와 버렸다.
함께 들어갈 순 없는 섬이었다. 섬을 지키는 터주도 강했지만, 누대에 걸쳐 윤씨 일족의 집단의식이 지배해 온 그곳은 어지간한 신령은 접근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살아 있는 윤가도, 죽은 윤가도, 똘똘 뭉쳐서 강력한 의지로 그들의 터를 수호했다.
그리고 만신 조상희가 있었다. 서창경이 그에게 기척을 들켰다간 계획이 실패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쫓겨나는 수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강지헌을 혼자 보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죽은 자를 무서워하는 것치고는 지금껏 의뢰 성공률이 백 퍼센트였으니까.
책임감이 강한 성품 탓에 제가 무섭다고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하거나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계획과 틀어져 실패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강지헌은 어떡해서든 돌파구를 찾아내 의뢰를 완수했다.
이번 호령도 건도 도인 나부랭이들이 끌어모은 힘보다는 강지헌의 책임감과 순발력, 그리고 위기 대처 능력을 더욱 믿었다.
한데 강지헌이 돌아왔을 때 그 새끼가 없었다. 그 거슬리는 잡것을 서창경 대신 누가 떼어 내 준 것이다.
어차피 서창경도 해야 할 수고여서 품을 덜었다고 반길 일이 아니었다. 먹을 거였으니까. 윤상현을 잡아먹고 힘을 키울 작정이었는데 먹이를 놓친 거다.
일차적으로 그 사실이 기분 나빴고, 더욱 불쾌하고 답답한 점은 그자가 누구인지 들여다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호령도에서부터 강지헌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그자’의 존재를 알아채긴 했는데 현재 서창경의 능력으론 그야말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감지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자’는 서창경과는 다른 차원을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런 까닭에 강지헌을 비롯해 보통 인간에게 하듯이 그들과 유사한 모습으로 접근해서 섞여들거나 약점을 파고들거나 주술을 걸거나 생기를 앗아 오는 일이 불가능했다. 서로 주파수가 어긋나 채널을 맞추지 못했고 어떤 정보도 주고받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 위치하더라도 위치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사태는 더욱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 세상은 ‘그자’가 존재하는 차원이므로 너는 사라지라는 듯이 서창경에게 핸디캡이 주어졌다.
그에게 아직은 남아 있어도 된다며, 강지헌을 데려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머물 자리를 주겠다던 세상이 너그러움을 거두고 서창경을 등졌다. 서창경에겐 ‘그자’의 이름이 들리지 않고 ‘그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강지헌을 설득하며 ‘그자’를 두고 ‘불길한 것’, ‘흉수’, ‘괴물’이라고 칭하면서도 정작 ‘그자’의 이름만은 입에 담지 못했다. 이름을 모른다는 건 ‘그자’와 ‘그자’의 주변을 건드릴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강지헌이 ‘그자’의 영향을 받아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서창경은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어떡하면 돼? 어떡하면 네가 나를 다시 돌아볼까.』
강지헌의 가슴에 상반신을 겹치며 엎드린 서창경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붉게 부푼 입술에 저의 입술을 맞대었다. 죽음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주문을 외듯 염을 실었다.
돌아와. 지헌아, 내 품으로 돌아와. 사랑해. 너 없이는 나는 떠날 수가 없어.
『하아-.』
그제야 한겨울처럼 찬 기운이 강지헌에게서 새어 나왔다. 그의 신부가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그래야지.』
귀기가 흐르는 요사스러운 얼굴에 흡족함이 어렸다.
『내내 함께할 거라고 네가 그랬어.』
“…….”
강지헌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나와 함께 머물러야 해. 내 곁에 있겠다고 네가 약속했어.』
“…….”
고갯짓이 세차게 바뀌었다.
하아-.
강지헌의 입술 사이로 입김처럼 쏟아진 새하얀 기체가 서창경의 들숨에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침실 주위를 감싼 요기가 더욱 짙어졌다.
「댁을 배제하려고 저 선배를 소개하려는 거 아니니까 억지 부리지 마요. 나는 서창경 씨하고 쭉 함께 갈 거야. 됐죠?」
∞ ∞ ∞
네가 약속했어.
「작년 추석에 만났을 때 네가 약속했잖아!」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어린애가 내게 덤벼들 듯이 외쳤다. 쌍꺼풀 없이 기다랗게 찢긴 커다란 눈이 날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애써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아이의 정체가 떠올랐다. 어린 윤상현이었다.
죽여 버릴까. 나중에 달라붙지 못하게끔 지금 제거해 버릴까.
그러나 이 시절의 윤상현은 무구했다. 죄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말은 곱게 나오지 않았다.
“야. 저리 가.”
닿을 작정은 아니었고 내게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로 어깨를 떠미는 시늉을 했다. 걸어오던 아이가 그대로 내 손을 통과했다.
“……!”
‘아. 이건 꿈이구나.’
자각과 동시에 등 뒤에서 또 다른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이잖아. 이제 봄이면 초등학생 형아가 되는데 똑똑해져야지.」
나 강지헌이었다. 어린 나와 윤상현이 기억에 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유치원생이 한 약속은 약속 아니야? 똑똑한 거랑 무슨 상관이람.」
「멍청아. 남자랑 남자는 결혼 못 한다고.」
「뭐어? 지헌이 너 남자애였어?」
그 시절의 윤상현은 나이대를 고려한다 쳐도 어리숙한 구석이 있었다.
「당연하지. 보면 몰라?」
「난 몰랐어. 몰랐단 말이야!」
「그걸 왜 몰라, 이 등신아. 엇…….」
어떡하느냐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녀석을 앞에 두고 어린 강지헌이 당황해서 쩔쩔맸다.
「우, 울지 마. 이제 멍청이라고 하지 않을게. 등신이라고도 안 해.」
「나는 너랑 결혼하려고 한국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단 말이야!」
「그래? 난 다 까먹고 있었는데.」
「우아와왕-. 이 못된 자식아!」
「아이 진짜. 윤상현 울지 마. 우는 소리 듣기 짜증 나.」
「우아아아왕-.」
「알았어. 알았다고. 너랑 결혼하면 되잖아. 시끄러우니까 그만 그쳐 제발.」
「진짜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친 윤상현이 물었다.
「어. 그치만 초등학생은 결혼 못 하니까 나중에 어른 되면 하자.」
「나중에 언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거면 너 또 잊을 거잖아!」
「아니야. 이제는 잘 새겨 뒀어. 어른 돼도 기억할게.」
「어떻게 믿어? 맹세의 뜻으로 입술에다 뽀뽀해!」
윤상현의 되바라진 요구에 어린 강지헌과 내가 동시에 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 마. 해 주지 마. 저거 귀신이야.”
아직은 귀신이 아닐 거라 여겼지만 고운 눈길을 주긴 어려웠다.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윤상현의 존재가 내키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나 침 묻는 거 더러워서 싫은데. 어른들이 내 뺨에 뽀뽀할 때마다 침 잔뜩 묻혀 대서 항상 속이 안 좋아.」
어린 강지헌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저 당시에 나는 같은 접시의 음식을 동생과 나눠 먹는 것도 질색했던 기억이 있다. 과자 역시 따로따로 주지 않으면 불결하다는 생각에 손도 대지 않았다. 지금도 약간의 결벽증이 있어, 여러 사람이 젓가락을 대는 깻잎 반찬 등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간혹 내 행동을 오해하고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깻잎을 떼어서 주는 친절한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땐 눈물을 머금고 감사히 받아먹었다.
이혜준이 내가 물었던 빨대에다 입을 댔을 때는 더러워서 항의하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침 안 묻히고 할 수 있어. 도망가지 마.」
「……묻히면 죽는다. 나 태권도 빨간 띠라고!」
어린 강지헌이 경고하면서도 윤상현이 내미는 양손을 맞잡았다. 그대로 끌어당겨져 두 입술이 꾹 부딪혔다.
「웩. 축축해!」
「원래 부부는 이러는 거야. 우리 이제 만날 뽀뽀해야 해.」
「침 묻었어, 이 거짓말쟁이야! 더러워 죽겠다고!」
어린 강지헌이 여러 차례 헛구역질을 했다. 웩. 우웩.
「야, 토하는 시늉하지 마! 더럽다고 하지 말라고!」
윤상현의 주먹이 나가고, 그 대가로 어린 강지헌에게 머리채를 잡혀 쥐어 뜯겼다. 발차기가 오가더니 두 아이가 뒤엉켜 엎치락뒤치락 싸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이 장면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임을 돌이켜 생각해 냈다. 전말을 떠올리지 못한 채로 윤상현과 싸웠다, 막내 도련님 얼굴에다 생채기를 냈다며 나만 엄청 혼났다, 분했다, 이런 단편적인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야단스럽게 맹세까지 해 놓고선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