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57)화 (57/96)

57화

어떻게 봐도 주변 상황이 이혜준 수월하게 일 처리 하라고 등을 떠밀어 주는 형세였다. 그의 기막힌 운빨을 다시금 실감하며, 얼굴보다는 이쪽을 더 부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서 더 움직이면 의심받을 테니까 내일 또 오자. 내일은 직접 부적을 만져 볼게.”

“하루 만에 또 와 주시게요? 선배님 시간 정말 괜찮겠어요?”

부적이며 정화며 괜히 재촉해서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해졌다.

“집 가깝잖아. 큰길 하나 건너서 금방인데 뭘. 걸어서 15분도 걸리지 않을걸?”

“네?”

약 먹었니? 너희 동네 어딘지 까먹었어? 한참 더 가야 해요. 강물도 건너야 해.

“나더러 나와 살라며. 요 앞에 자췻집 구해 놨어. 가자.”

“예?”

“네가 그랬잖아. ‘나 선배님 집에 얹혀살게 얼른 자취하세요!’라고. 바로 하루 전 일인데도 기억 안 나?”

지금까지 들어 본 괴담 중에서 최고 수위였다. 이 선배님 도대체 뭐야. 농담이라도 너무 무섭잖아.

“아니, 그때는……. 그러니까 그땐 제가 어려서 암것도 몰랐어요. 인제 하루치 나이를 먹었으니까 말 바꾸면 안 될까요?”

“강지헌 양심 없는 소릴 참 귀엽게도 하네. 오래 머물 거 아니니까 부담 가지지 않아도 돼. 여기 일 해결될 때까지만 있자. 응?”

농담을 왜 이리 살벌하게 지껄이시지?

∞ ∞ ∞

이혜준이 내비에 주소를 입력할 때부터 설마 했다. 지도에 위치가 뜨자, 어디에 붙은 건물인지 짐작도 갔다. 아파트며 고층 빌딩을 찾아보기 어려운 옆 동네 주택가에 열 쌍둥이처럼 똑같은 형태의 타운하우스가 단지를 이룬 구역이 있었다.

한쪽 면이 길쭉한 ㄱ자 형태의 2층 건물은 필로티 구조로 아래층 전체가 공터였다. 주차된 다섯 대의 차량 중에서 화물차 한 대만이 이사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말 나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행동력 뭐예요. 이게 게으른 인간이 할 짓이에요?”

나는 이 인간의 본분을 잊은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도대체 왜! 돌았냐고 진짜.

“일일이 내 손을 거치진 않았지. 집 계약이며 가구 구입이며 대신 해 주는 분들이 계셔. 원래는 학교 근방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쓰레기 얘길 듣고선 너희 집이 우선이겠다 싶어서 이쪽에다 숙소를 구했어. 임시야, 임시.”

내 눈빛이 점점 사나워지자 이혜준이 눈치를 보듯 어물어물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집이 그렇게 불편했어요? 엄마가 사진 찍자고 귀찮게 해서 같이 지내기 싫어?”

“계약은 오전 중에 마쳤어. 어머님 댁에 가기 전에. 다녀와서도 따로 자췻집 구하길 잘했다 싶은데? 조금만 더 있었다간 내 정체성이 탄로 날 뻔했잖아. 나 연기 잘했지.”

보통 이 정도 규모를 자췻집이라고 부르나?

미관에만 힘쓰느라 쓸데없이 대지를 잡아먹으며 지어진 건물은 우리 집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그럼에도 이혜준이 집세를 나누고자 타인과 이 ‘자췻집’을 공유하진 않을 듯했다.

자기 관리도 안 되는 게름뱅이 혼자 살기엔 지나친 크기였다.

“잘하시던데 왜. 친자식들보다 더 예쁨 받았잖아요?”

그분께선 나가 사는 당신 장남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이혜준한테만 내일도 꼭 놀러 오라며, 잔칫상을 차려 놓겠으니 꼭 오라며,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셨다.

아버지한테 모조리 일러바쳐야지.

“과연 폐인 같은 내 모습을 봐도 똑같이 대해 주실까? 나 진짜 오래는 못 앉아 있겠더라. 허리 아파서 죽는 줄 알았잖어. 빨리 올라가서 드러눕자.”

자기 입으로 폐인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했다. 이혜준의 입에서 드러눕자는 말이 나오니 농담 같지가 않았다.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그저 저게 인간인가 싶었다.

층계를 사이에 두고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설치된 두 개의 현관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주차된 차량을 보고 예상한 대로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도 요란했다. 가구는 거의 없고 면적이 넓어서 열 명이 넘어가는 장정이 서성거려도 비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구조는 바깥에서 보던 대로 한 면이 두 배 이상 길쭉한 긴네모꼴이었다. 매끈한 사각 상자 모양을 지향하느라 발코니도 트지 않은, 창문도 열리지 않고 멋으로만 달아 둔, 생활의 편의보다는 디자인의 통일을 강조한 예쁜 쓰레기 집이었다. 건축 미술에 문외한인 내 눈엔 마치 무역 컨테이너처럼 보였다.

문 닫은 소극장 건물을 개조해서 지내는 내가 주거인의 편의를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이런 것도 사람 사는 주택이라고?’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오셨습니까.”

용도를 모를 강당 같은 공간을 지나 거실에 이르자,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일어서서 우릴 맞았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중년 남자는 내가 예상한 이사 대행업체 직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바쁘신데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하 비서님. 여기 강지헌 씨에게 명함 한 장만 주시겠어요?”

소개해 줄 참인지 이혜준이 내 어깨를 양손으로 짚고 제 앞으로 당겨 세웠다.

집 계약이며 가구 구입까지 해 줬다는 인물이 비서라고 한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직종이었다.

도대체 무슨 회사를 차렸기에 비서까지 뒀는지 궁금해졌다. 이혜준이 설명해 준다고 했을 때 얌전히 귀담아들을 것을, 난 또 개소리가 튀어나오는 줄 알고 화제를 차단했더랬다.

하성조라는 사람과 악수 없이 인사만 주고받았다. 내겐 명함이 없다는 얘길 할까 했는데, 저쪽은 바라지도 않는 듯해서 잠자코 나만 받아 챙겼다.

흘끔 들여다본 하성조의 소속은 <세경 SDS 경영지원실>로 돼 있었다.

“……?”

명함에 찍힌 세경 그룹 로고가 강렬한 까닭에 이름만 같은 다른 회사라고 넘겨짚기도 어려웠다.

“지헌아, 여기 하 비서님이 내 비상 연락망이야. 네 번호 드려도 될까?”

내 비상 연락망으론 김재원의 번호를 가져간 이혜준이 물었다. 같은 학부 소속이지만 서로 겹치는 친구나 지인이 없다 보니 이런 어색한 상황도 발생했다. 미리 얘기가 되었는지 하성조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명함에 찍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내 번호를 남겼다.

“하 비서님, 우리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정리 끝난 방이 있을까요?”

이혜준이 물었다.

“예. 안쪽 공간은 정리를 마무리했으니 바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중문 닫으시면 소음도 차단될 테고요. 공숙선 씨도 안으로 모셨습니다.”

하성조의 대답에 아직 공숙선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조바심이 일었다. 그가 여전히 고용주와 한배를 탄 동료가 아닌지 의심쩍었으니까.

나는 공숙선한테 들키지 않게 자릴 피해야 하나?

“…….”

“괜찮아. 네가 아는 그 사람과는 다를 거라고 했잖아.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어. 하 비서님하고 얘기 나누고 나 금방 따라갈게?”

눈이 마주치자, 내 걱정을 읽은 이혜준이 말했다. 내 어깨를 돌려세우며 가야 할 방향까지 잡아 주었다.

내가 들으면 안 될 내용이라는 눈치는 있어 하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시 거실처럼 대형 라운지 소파만 덩그러니 놓인 공간이 나타났다. 방문이 전부 열려 있어 사람을 찾는 건 쉬웠다.

너른 방 한가운데에 놓인 킹사이즈 침대 위에 공숙선이 안대를 한 채 누워 있었다. 줄곧 붙잡혀 있었다면서 어제와는 다른 옷차림새였다. 인질도 잘 먹이고 잘 입히는 이혜준.

침실 입구에 서서 공숙선을 가만히 주시했다. 안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가 인간의 접근을 모를 리가 없었다.

「부정적인 기운이 말끔히 제거된 상태라서 산 사람을 저주하거나 해악을 끼치지 못해. 네가 생각하는 악귀하고는 달라.」

서양 귀신이면 뱀파이어 같은 건가?

부족한 상상력으로 핼러윈을 연상해서 떠올린 것들은 죄다 몬스터 종류였다. 그러자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다.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몬스터는 두렵지 않으니까.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거지? 볼일이 있으면 들어오든지.”

공숙선이 여전한 자세로 언짢음을 내비쳤다. 목소리가 그의 것 그대로였다.

회충 교환한 거 맞나?

“…….”

묵묵히 시간을 끌었다. 결국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일어나 앉은 공숙선이 안대를 벗어 버리고 나를 노려봤다.

생각보다 멀쩡하지는 않았다. 짓무른 눈 주변 피부가 벌겋게 두드러져 있었다. 우느라 살갗이 문드러진 것처럼 보였고, 나 역시 이 모 씨에게 같은 방식으로 공격당해 본 경험 탓에 감정 이입에 들어설 뻔했다.

귀신 붙은 사람을 소중히 좀 다뤄 주세요, 이혜준 개새끼야.

그의 인질 대우가 훌륭하다는 소견을 정정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생긴다면, 이혜준에게 귀신을 떼어 달라는 부탁은 삼가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너는 혈색이 왜 그 모양이야. 어디 죽을 병에라도 걸렸어?”

공숙선 안의 귀신이 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내 피부색이 건강미 넘치는 복숭앗빛은 아닌데 이미 죽은 자식한테 이런 핀잔을 듣는 건 웃겼다.

네 죽은 피부 세포나 관리 잘하세요.

“남이사.”

그러고 또 한참 침묵이 이어졌다. 이 귀신은 공숙선과는 다르게 날 향한 경계심이 강했다.

이혜준이 자기 집에 득실거리는 귀신들을 뭐라고 불렀더라? 유령이랬나? 것보단 좀 더 인간 친화적인 호칭이었던 것 같은데.

“영혼이 옮겨 붙기 전에 있던 그 몸 주인의 의식은 완전히 날아간 거야? 공숙선 거기 있어?”

“있다.”

“당신, 그 몸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건 아니겠지?”

공숙선은 귀신이 깃들기 쉬운 타고난 영매 체질이었다. 본격적인 몸주를 모시기 전엔 북을 칠 때마다 온갖 허주 후보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고 한다.

가만. 저게 들어갔다면 원래 있던 공숙선의 몸주는 어떻게 됐다는 거지? 옛 회충이 떨어져 나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뒤로 새로운 회충인 저놈에게 잡아먹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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