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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58)화 (58/96)

58화

“숙선은 강력한 힘을 원하고, 나는 재생을 원하니 합의는 어렵지 않았어. 서로 만족한 상태지. 숙선의 몸이 잘 닦여 있어서 지내기에 좋아. 아주 안락해. 대신관이나 가질 법한 이런 그릇은 흔치 않거든.”

새로운 회충은 새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저 몸을 장악하고 돌려주지 않으려 든다면 공숙선은 어떻게 되는지 걱정스러웠다.

“맞아. 재질로 따지자면 그 아저씬 한국형 신관이지.”

“제물을 갈구하는 성향까지 비슷해서 위화감도 들지 않아.”

서창경이 본인이 부정 타지 않으려고 나를 액막이로 세운다든지 저 대신 움직일 사령을 부리며 몸 밖 세력을 키우는 반면, 공숙선은 제물로 몸주의 힘을 키우는 데에 주력했다. 저 귀신도 후자인가 보다.

“어. 그래요. 둘이 잘 만났네. 잘 사귀어 봐.”

제발 너희끼리만 붙어 놀면서 산 사람한테는 해 끼치지 말아라.

정화됐다고 해서 성격이 천사처럼 변모하는 건 아닌지, 말을 섞어 보니 선한 느낌은 와닿지 않았다.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유령이 맞나?

“그러려고 했는데 이혜준은 나더러 그릇도 못 되는 너하고 붙어먹으라고 하네?”

“……?”

무슨 경우인가 싶어 나도 어리둥절했다.

그 형님 나 좀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왜 다른 놈하고 붙어먹으라지?

“네 두 번째 혼사의 상대가 돼 주라던데.”

“아!”

나도 은근히 공숙선을 영결 후보자로 찍어 놓고 있던 터라 경탄하고 말았다. 이혜준과 마음이 통한 듯해서 흐뭇했다.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는 자는 원래 후보인 공숙선 본체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괜찮네. 공숙선 씨가 두 개로 갈라졌으니 두 번째는 당신이랑 하고, 세 번째는 공숙선 본체랑 하면 되겠어.”

단시일 내에 일생의 혼사 운을 세 번 다 소진하고 자유를 얻는다는 계획이 떠올랐다. 심지어 서창경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다.

완벽하다!

“누구 맘대로. 숙선과 나는 한 몸이다.”

“그래도 영혼은 두 개잖아. 영혼결혼식이니까 몸은 필요 없지.”

“나더러 여기서 빠져나오라고?”

말귀를 못 알아들었는지 영 탐탁잖은 기색이다.

“아니,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동 변환 비슷한 기능 있잖아, 왜.”

“…….”

이 귀신이 살던 동네에선 그런 현상이 없었나 보다.

“한국엔 여러 신을 한꺼번에 모시는 신관이 있거든. 공숙선 씨가 그쪽 전문가니까 나보다는 더 잘 알 거야.”

몸에 깃든 신령이 바뀔 때마다 음성 변환까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애기 동자 목소리였다가, 노인의 목소리였다가.

“…….”

멍하게 뜬 눈을 보니 제대로 알아들은 기색이 아니었다.

“해 줄 거지?”

“숙선이 네 몸을 탐내긴 하지만 그건 널 속박하고픈 서창경의 의지에 비하면 먼지보다 더 가벼운 욕심이지. 위험을 무릅써 가며 서창경과 맞설 만한 가치가 너에게 있을까.”

공숙선 본체를 엄청 위해 주는 새 몸주였다.

“본체가 여기까지 이혜준 선배님을 따라온 걸 보면 이쪽 편에 선 거잖아. 안 그래? 그냥 당신들 둘이서 차례대로 한 번씩만 나하고 협력해 주면 안 될까?”

“어둠의 신에게 지지 않으려면 산 제물을 바쳐야만 해.”

“…….”

뜬금없이 뭐래는 거야. 이놈도 제정신이 아니네.

산 제물이라니, 산 채로 닭과 돼지의 피를 뽑던 고용주의 모습이 연상돼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그는 제힘을 과신하고 대가성 거래에 환장해서는 한계를 몰랐다. 그러다 언젠가 호되게 경을 치지.

“과연 숙선이 널 위해서 제 피와 심장을 제단에 바치려 할까.”

“뭐? 내가 아니고 공숙선 씨가 희생하는 거?”

계산이 왜 그렇게 되지?

“널 신부로 맞는 지참금이지.”

“시발, 내가 왜 신부 역할인데?”

윤상현 때도 신부로 찍혀 사주단자를 받은 게 떠올라 순간적으로 욱했다.

“그럼 네 피와 심장을 내놓겠어?”

“…….”

아니요. 아닙니다. 다 나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꺼내 주면 어떡해요.

“쯧. 인형 같은 대체품도 널렸는데 굳이 산 사람을 제물로 쓰려고 하네. 댁은 인신 공양하던 데서 왔어? 어디 출신인데.”

“떼오띠-와깐.”

“…….”

생각지도 못한 낯선 지명에 정신이 멍해졌다. 대신관이란 표현을 듣고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성, 이런 장소는 아닐 줄 알았다만.

“‘신들의 도시’쯤 되는 의미야. 멸망 후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지. 그는 메소아메리카에 있는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흑요석 돌칼에 묻어온 정령이고, 생전엔 한 도시 국가의 왕이었어. 이름은 챤 발름 요팟.”

맞다. 유령이 아니고 정령이랬지. 표현이 유해진 덕분인지 악령이 아닐까 의심하던 경계도가 한 단계 낮아졌다.

내 등 뒤에서 이혜준의 음성이 다가오자, 돌칼 정령이 나직하게 불만을 읊조리며 안대를 다시 찼다. 저 정령은 이혜준과 눈을 마주치면 기껏 들어간 공숙선의 몸에서 튕겨져 나올까 봐 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마야 문명 근방이었구나. 테오티우아칸.”

배운 외래어 표기대로 내뱉어 보고는 원주민과의 발음과 억양 차이에 머쓱해졌다.

“넌 혼인 예물로 챤 씨에게서 그 흑요석 돌칼을 받을 거야. 그의 분신이자 생명이며 피와 심장이지.”

이혜준이 앞서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가 터를 밟아 주니 이 구역이 안전지대가 된 듯한 안도감에 나도 경계심을 버리고 뒤따랐다. 집주인이 침대에 걸터앉자, 돌칼 정령이 구시렁거리며 구석으로 굴러갔다. 하룻밤 사이 서로 끈끈한 동지애가 싹튼 관계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강지, 너도 여기에 앉아.”

이혜준이 옆자리 시트를 툭툭 쳤다.

“됐어요. 저 외출복 차림으론 침대 위로 안 올라가요.”

“와, 외출복이었구나?”

과장되게 놀란 척이다. 이혜준의 눈길이 내가 고심해서 고른 ‘그냥 후배 패션’을 위아래로 길게 훑었다.

“눈깔 쑤셔지기 전에 그만두세요.”

“어, 응. 그나저나 우리 강지 어쩜 이렇게 예쁘고 순수한 낱말만 쏙쏙 뽑아서 표현하는지, 뇌에 뭐가 들어찼는지 몰라.”

“조용히 해요. ……푸흐흐흐흐.”

목소리를 깔고 위협할 작정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 방문한 집, 처음 보는 침대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을 대고 드러눕는 이혜준을 보자 웃음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인간이 아까 우리 집에선 어떻게 견뎠대?

남자 셋이서 뒹굴 만큼 공간이 넉넉했기에 골격이 큰 이혜준과 공숙선일지라도 몸이 맞닿을 일은 없었다.

“쓰레기 묻은 침대에 앉기 싫으면 둘러보고 의자 하나 가져와. 어딘가에 스툴 같은 거라도 있겠지.”

“아오, 내가 왜 쓰레기냐고! 자꾸 그렇게 불러 댈 거야?”

구석에 얌전히 처박혀 있던 공숙선이 안대를 한 채 벌떡 일어나 앉았다. 목소리는 똑같았지만 저건 공숙선 본체라는 느낌이 왔다.

이혜준도 알아챘는지 공숙선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나만 쳐다봤다.

“챤 씨 말로는 저 쓰레기는 살성을 타고나서 재활용도 안 된다더라. 우리 계획에서 배제하는 편이 더 안전하대. 계약을 해도 이쪽저쪽 오가며 이중 삼중으로 중첩할 거고 약속을 해도 지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너도 괜한 기대 갖지 마.”

“그럼 쓰고 버리기에 더 좋잖아요?”

혼사 운 횟수만 채우면 볼일이 끝나는 나한텐 꼭 필요한 인재상인데?

“뭔데, 강지? 너 방금 완전 쓰레기 같았다. 역시 비정한 남자의 모습이 찰떡같이 어울리네!”

“함부로 감탄하지 마세요. 공숙선 씨 아니면 고용주밖에 없으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고용주한테 걸리면 조금 곤란해지거든요.”

조금이 아냐. 평생 그 인간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가 있다고.

“왜. 그 남자가 너 좋아해서?”

“……. ……아니거든요. 저 인간이 그래요?”

속으로 이를 갈며 안대를 한 공숙선을 째려봤다. 확 밟아 버릴까.

“서창경이 강지헌 죽여서라도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아니긴! 그쪽 집안사람들도 다 안다고.”

공숙선이 쓸데없는 소리까지 지껄이며 이죽거렸다.

“공숙선 씨, 우리 사장님은 언제부터 그런 상태였어요? 나는 그 소릴 오늘 처음 들었단 말이죠. 평소엔 아무런 조짐도 없었잖아?”

“조짐이 없었기는, 지가 여태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던 거지. 서창경은 강지헌 모르는 채로 진행하는 편이 일이 쉽다더니 그대로 두지 않고 어제는 무슨 이유로 고백했대?”

나도 그 점이 궁금하지. 시침을 떼고 있다가 갑자기 왜 급발진이냐고.

“어제 아니고 오늘 일어나서.”

“어젯밤엔 뭐 하고? 너 들어가자마자 나 만난 걸로 개천사가 화내지 않았어?”

이혜준이 중간에 끼어들어 물었다.

“화를 내긴 냈죠. 그러니까 오늘 새벽에. 어젯밤은 지하실에 있었는지 서창경이 안 보이더라고요.”

“……안 보여? 밤에는 개천사가 나타나지 않았단 말이지.”

이혜준의 유심한 시선이 한참 내게 닿았다가 천장으로 향했다.

뭔데. 뭐가 저리 심각해?

시선을 따라가 보니 층고가 우리 집 두 배는 될 듯한 높이에 매립 조명등과 냉방장치가 설치된 게 다였다. 이혜준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그림처럼 누워 그 썰렁한 공간을 올려다봤다. 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선배님,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아, 응. 이거 중요한 일인데, 위에 옥상 테라스에서 바비큐도 할 수 있대. 좀 이따가 고기 구워 먹을까?”

붙어 있다 보면 서로 영향을 받아 길들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내 쪽이 먼저 길들여졌나 보다. 개소리를 듣고서도 어쩐지 살심이 치솟지 않았다.

이런 감정을 ‘포기’라든지 ‘마음을 내려놓다.’라고 부르는 거겠지?

“그래요. 내가 구워 드릴게요.”

소소하게 몸으로 때우며 은혜나 갚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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