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아냐. 너 그럼 또 입에도 안 댈 거잖아. 처음에 어떡하는지 시범만 보여 줘. 나 눈썰미 괜찮은 편이라 요리도 금방 따라 할 거야.”
“그렇게 재능에 자신 있으면 진작 요리를 배워 보지 그랬어요.”
“주워 먹기에 바빠서 그게 참 어렵지. 요리란 자기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인 것 같아.”
“…….”
한심한 답변이지만, 이혜준의 먹성을 알고 난 지금은 쉽게 납득했다. 우리 집 둘째도 똑같거든. 김밥 싸고 썰면서 지가 처먹는 게 절반 이상이야.
강이헌은 하다 하다 어린 사촌 동생의 분유까지 몰래 퍼먹던 새끼였다. 퍼먹은 놈은 태연한데, 내가 자괴감을 느끼고…….
이혜준 역시 같은 인외 종족─짐승─처럼 보였다. 오늘만 해도 강이헌과 경쟁하듯 과일을 쓸어 먹는 그를 보며 이 선배의 위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던 참이었다.
강이헌은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하고 가사 노동으로 종일 움직이기라도 하지, 이 인간은 어째서? 뭐 한다고?
동생 놈처럼 내 몫까지 탐내지는 않아서 밥 먹다가 열 받을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나부터 챙겨 주는 편이지. 뭘 못 먹여서 난리였다. 그 이유를 떠올리자 혼자 어색해져서는 침대에서 반걸음 물러섰다.
그 작은 기척에도 이혜준이 두 눈을 스르르 굴려 옆을 쳐다봤다.
“의자 찾으러 가?”
“아뇨. 그냥 서 있을게요. 꿈틀이 두 구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나름 재밌어요.”
“그렇게 봐 준다니 고맙다. 있잖아. 내가 마음만은 직접 둘러보면서 의자를 찾아 주고 싶은데…….”
“기력이 달려서 힘드시죠?”
“그렇지. 강지 이젠 나를 정말 잘 알아! 감동해 버렸잖아.”
창피하라고 비꼰 소리에 이혜준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데, 공숙선 본체가 버럭 하며 훈훈하게 감도는 공기를 깼다.
“야, 니들 지금 연애질해? 살벌한 새끼들끼리 잘 만났다, 진짜!”
“개소리하는 본체는 필요 없으니까 부품 나오라고 해.”
발을 들어 어제 내가 걷어찬 부위를 지그시 눌러 줬다. 공숙선은 정강이뼈 모서리에 닿은 것만으로도 흠칫해 스위치를 전환했다.
“강지는 쓰레기 참 잘 다루는구나? 완전 멋있다!”
옆에서 응원하는지 놀리는지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말로 해서는 들을 상대가 아니라고 한들 때려서 말 잘 듣게 하는 게 뭐가 멋있어.
나는 물리력을 행사하고 기분이 나아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 데나 멋있음 갖다 붙이지 마세요. 내가 선배님더러 ‘방구석 좀비처럼 멋있다!’고 하면 기분 좋겠어요?”
“그거 우리 일족에겐 최고의 찬사인데?”
“……?”
허. 말을 말자.
포기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피식하고 만다.
“근데 돌칼은 돌칼 정령 분신이라며. 자기 집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나한테 줘도 괜찮은 거예요? 주술이 끝나고 도로 돌려주면 문제없는 건가? 다시 돌칼 안으로 들어갈 순 있는 거예요?”
결혼 예물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귀한 걸 준다니까 부담스러웠다. 돌칼에 묻어온 정령이라니, 그 돌칼은 챤 발름 요팟이 머무는 곳이라는 얘기잖아.
“실물은 과테말라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보냈어. 네가 예물로 받을 돌칼을 육안으로 보려면 그 부적을 사용해야 할 거야. 섬에서 나한테 건네줬던 거 있잖아. 눈두덩에다 비비라던 부적.”
돌칼은 소라게의 집인 소라와 같다고 여겼는데, 이혜준이 의미가 다르다고 설명해 줬다.
“아.”
귀안을 틔워야만 볼 수 있다니 내게 줄 예물 또한 실물 껍데기가 아닌 귀의 영역에 속한 물건이라는 거다. 그 부적을 사용하더라도 이혜준의 눈에는 영영 보이지 않을 거라는 뜻이고.
“그러니까 챤 씨는 이미 그 유물에서 나와 우리 집에서 산 지 여러 해가 흘렀고, 지금은 거처를 공숙선 씨의 몸으로 옮겨 갔다는 얘기지. 돌칼을 예물로 내놓는다고 해서 챤 씨가 머물 곳이 사라지진 않아. 그건 네 소유물로 지니면 돼. 산 사람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낼 때 사용하던 도구라서 피를 흠뻑 머금었지만 정화한 후라 너한테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야.”
“가축을 잡는 칼이 아니라 오직 왕들의 심장만을 적출했던 도구다. 그 정도 등급은 돼야지 널 지킬 수가 있어. 서창경 그자가 선한 의도로 널 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방심해선 안 돼.”
이혜준과 챤 발름이 차례로 설명했다. 이 고대의 왕은 혼사굿 횟수만 채우고자 마구잡이로 골라잡은 귀신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내 문제에 소홀히 대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만만한 후보라 생각한 공숙선을 포기하면서 내심 아까운 마음이 들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당사자이면서도 너무 안일했다.
“서창경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면 언제든 날 해치겠죠. 내가 다치거나 아프면 오히려 반기는 인성인 것을요. 그 인간은 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을 거예요.”
고용주는 ‘널 좋아하니까 구해 주겠다.’라는 방식으론 날 대하지 않았다. 누구처럼 강지헌이 웃었으면 좋겠고, 강지헌이 마음 편하게 지내길 바라는 호의도 없었다. 가끔 고용주는 내가 죽길 바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고대 무기를 들고 개천사와 싸우란 말은 아니야. 살상 무기라면 돌멩이보다 우수한 성능의 무기가 현대 사회에 얼마든지 널려 있잖아. 그저 호신용으로만 지니고 있어. 그의 주술이 통하지 않게끔 말이야.”
이혜준이 말했다.
“돌칼 정령이 그렇게 세요?”
“더 강력한 정령도 있지만, 돌칼에는 개천사가 결코 이기지 못할 염이 실려 있거든. 기껏 다른 사람의 생기나 빨아 가며 힘을 구하는 기생충은 제 피와 심장을 제단에 바친 왕의 신념을 꺾지 못해.”
그랬다. 서창경은 타인을 이용은 해도 본인이 다치고 손해 보는 자기희생은 하지 못할 위인이니까.
의지와 절실함의 문제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를 유희 상대로 껄떡거리는 공숙선 본체 역시 감당하기가 어려운 신념이고, 그래서 그가 이 싸움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위험하니까 너 이제 개천사가 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동안 널 어떻게 속여 왔는지는 몰라도 원혼을 달래서 천도해 줬던 거 아니래.”
이혜준이 말했다.
“예? 그럴 리가요.”
선업 포인트에 누구보다 진심인 인간인데.
“이번에 섬에서 건져 낸 두 혼령도 무사하지 못했다. 서창경이 천도재를 지내 주는 척하며 잡아먹었지.”
챤 발름이 뒤이어 설명했다.
“……!”
서창경 그 사이코가 진짜로 미쳤나? 먹을 게 없어서 물귀신을 먹어?
이건 선업 포인트를 모으는 정도로 수습될 일이 아니었다. 함께 엮인 나마저 천벌 감이다. 고용주의 의도는 불순하지만 결과적으론 도움이 간절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 믿어 왔는데. 모르고 저지른 짓이라고 변명하면 하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까.
손끝이 싸늘하게 굳었다.
“에어컨 바람이 차네. 하 비서님이 이불도 주문해 주셨나 모르겠다. 왜 이리 몸이 떨리지. 지헌아, 나 손 좀 잡아 줘.”
반쯤 몸을 일으킨 이혜준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넋 놓고 있다가 그대로 이끌려 갔다.
호들갑과는 다르게 그의 손은 따듯하기만 했다. 커다란 온기가 얼음장 같은 내 손을 감싸고 녹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진정되면서 서서히 이성도 돌아왔다.
“선배님, 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뭘 해야 할까요. 서창경부터 죽일까?”
나도 따라 죽고? 그 인간은 죽어서도 흉신이 될 게 뻔한데 그다음은 어떡해야 하지요?
“개천사를 말려야 할 테지만 너더러 맞서 싸우라고는 안 해. 그를 상대할 선수들은 따로 대기하고 있어.”
그러면서 멀찍이서 뒹구는 공숙선을 눈짓했다. 분명 ‘선수들’이라고 했지.
“선배님도요?”
“나야 당연히 참가해야지. 난 천운이 따르는 인간이라서 어떤 대응을 하든지 간에 개천사 레이더망에 걸릴 일이 없잖아. 무슨 걱정이야, 지헌아.”
증거 있어? 아, 몇 개 있었지. 그래도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난 이혜준 씨가 겁이 없는 게 더 겁난다고.
“나 안심시키려고 말 지어내는 거 아니겠죠?”
“돌아가서 확인해 보면 알잖아. 개천사는 우리 셋이 이처럼 모여서 강지헌 탈출 계획을 세우는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할걸. 나하고 함께라는 사실은 헤아릴 테니 그걸로 트집 잡을 순 있어. 그래도 넘겨짚는 수작에 걸려들면 안 돼. 개천사가 내뱉는 말은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자.”
“…….”
불신에 찌들어 서창경이 무슨 소릴 하든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겼다. 속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정작 가장 믿지 말아야 부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어디에서도 선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운 악랄한 인물인 것을. 어떻게 그 괴란한 취미 활동의 끝에는 타인을 위하는 결말이 묻어 있다고, 그런 멍청한 믿음을 품어 왔는지.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 준비해서 빠져나오면 돼.”
내 후회를 읽은 것처럼 이혜준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기운을 불어넣어 주듯 내 손을 감싸 쥔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한순간 그의 행운을 나누어 받는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뭐 할까요? 내 일이잖아.”
“너는 일단 눈을 정상으로 돌리는 게 먼저인 듯하다.”
“눈? 내 눈이 뭐요. 시력 좋은데.”
“개천사가 너 귀신 보는 눈으로 만들려고 트레이닝 중이래. 최근에 헛것이 자주 보이고 쉽게 홀렸지. 호령도의 골목길에서처럼 말이야.”
이혜준의 대사는 의심스러워하던 몇 가지 일을 떠올리게끔 했다.
골목길을 걸어갈 때 뒤에서 누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서창경이 매일같이 보여 주는 윤 의원과 조상희의 사망 순간, 무엇이 보이느냐며 매번 확인하던 질문, 부적을 사용하지도 않았건만 육안으로 들어왔던 부둣가의 흰 소복 무리, 그들이 만들어 내던 소란스러움까지.
확인을 위해 고개를 돌리자, 공숙선이 안대를 한 채로도 제대로 보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보고 안 들으려면 어떡해야 해요? 아예 귀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돼?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