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61)화 (61/96)

61화

“멋있어?”

지랄 났네. 정신병이 멋있을 건 또 뭐야.

“아니요. 그보단 너무 당혹스럽죠.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멋있기는커녕 선배님은 나한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어 보여요.

그러나 하고픈 말은 입속에서 씹었다. 내 썩어들어 가는 표정을 읽은 이혜준이 웃었다.

“그래그래. 강지 네가 2인분으로 멋있는데 나까지 멋있을 필요는 없지.”

“나 안 그런 거 본인이 더 잘 알고요. 선배님하고 세트로도 엮지 마세요.”

당장 차단 각을 세웠다.

“네 동기들이 강지헌을 산공에 빼앗겼다며 울분을 터뜨리는 이유 모르겠어? 멋진 너하고 친해지고 싶은 거잖아. 관심 없으면 다른 과 애들하고 어울리든 말든 신경 안 쓰지. 너 시크하고 대범하고 선배나 교수 대할 때 존경심 하나도 보이지 않는 주제에 ‘님’ 자는 꼭 붙이는 것도 멋져.”

비행기를 태우는지 빈정거리는지 모를 내용이었다.

“지금 엿 멕이는 거예요?”

“아니야. 혜준이 형이라고 부르기 싫으면 ‘님’ 자라도 떼 달라고. 우리 이제 제법 친해졌잖아? 너한테 절친 같은 친밀감 느낀다고 했던 거 빈말 아니거든. 나 친구 없어서 강지헌이 제일로 친하단 말이야.”

호칭 그게 뭐 별거라고 이처럼 매달리듯 말하는 걸까. 도움을 받는 주제에 그동안 내가 너무 빳빳하게 굴었나 싶어 반성했다.

“알았어요. 이참에 말도 놓을게?”

“그래라.”

장난삼아 한번 기어올라 봤더니 예상대로 되레 기꺼워한다. 곧 개학이고, 학교에서의 이혜준 곁에는 늘 학부생들이 바글거리는데 함부로 반말을 쓰긴 어렵지.

“또 백만 송이 장미 어쩌고 하는 테러 저지르면 도로 ‘선배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그거 강지헌 멘탈 강화 훈련의 일환인데?”

“비위 강화 훈련이 아니고요?”

어림도 없는 소릴 지껄이는 이혜준을 쭉 째려봐 줬다.

“선배님, 혜준 선배, 이거 감사합니다. 잘 쓰고 돌려 드릴게요. 나 일단 이 집에다 보관해 둬도 돼요? 학교 갈 때 가져가서 사물함에 넣어 두게.”

이혜준의 이름이 적힌 물건을 서창경의 연구실로 들고 갔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듯했다.

“돌려주지 않아도 돼. 태블릿도 예전에 사용하던 거라 구형이긴 한데 너 필요하면 계속 써. 터치펜도 같이 있었지?”

“예.”

대답은 잘했지만 당연히 돌려줄 작정이었다.

“그리고 개천사가 보면 기분 나쁘도록 내 물건 전부 가져가자. 내 옷도 몇 벌 내줄게.”

이혜준이 나와 같은 이유로 정반대의 행동을 권했다.

뭐라는 거야? 서창경 눈에 띄지 않게 해야지!

“내 목숨은 소중하거든요?”

“괜찮아. 개천사 머리엔 내 이름 입력되지 않는다고 했잖아. 부적 차원에서 하나라도 더 가져다 놓자, 응?”

이혜준이 노트 위에 적힌 제 이름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이런 물건도 부적이 되나 의심이 들어야 마땅하건만 능력자의 이름이라니 또 귀가 솔깃해지고 말았다.

불완전한 인간은 이처럼 미신을 마음에서 내려놓지를 못하고…….

“그 건물에도 부적 많은데? 귀신 침입 못 해요. 아, 아니다. 그런 거 아니랬지.”

뒤늦게 서창경의 연구소도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귀기에 뒤덮여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 부적들이 귀신 쫓는 용도가 아니었음을.

“……. ……지헌아, 나는 귀신이 아니라 개천사 힘을 누르려는 시험을 해 보려고 해. 원랜 너 이 집에 붙들어 두고 거긴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널 통해서 뭘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진짜 미안.”

이혜준이 할 말을 고르듯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차피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사과하지 마세요. 나 뭐 하면 되는데? 선배 물건만 가져다 두면 돼요?”

“응. 이외엔 별거 없어. 쓰레기 말론 개천사 바빠서 오늘 밤 거기 들르지 못할 수도 있다니까 마음 편히 평소처럼 지내. 내가 아침에 일찍 데리러 갈게.”

“미쳤어요? 서창경하고 마주치면 어떡하려고!”

놀라서 앉은 채로 펄쩍 뛸 뻔했다.

“난 개천사하고는 절대 안 만나. 못 만난다니까.”

나는 ‘절대’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불확실한 느낌을 받는데, 역시나 꺼졌던 의심도 다시 피어오르려 했다.

“용무가 있으면 선배 대신에 공숙선 씨를 보내면 되잖아요. 자주 출입하니까 의심이 덜 할 거 아냐.”

“어, 그래. 쓰레기도 같이 갈 거야. 운전시켜야지.”

이 인간 혹시 자기랑 조금 가까워진 사람은 모두 운전해 줄 몸빵으로 보는 거 아니야?

“공 교수님 귀하신 몸인데? 저래 봬도 인간문화재 후보예요.”

공숙선마저 제 시중꾼으로 전락시키는 만행이 어처구니없었다.

누군지 몰라서 그러나? 공연 준비도 하고, 제자도 가르치고, 틈틈이 샤머니즘에도 힘쓰고, 바쁜 인물인데요. 선배 졸졸 따라다닐 시간 없을걸.

전통 무용과 음악에 대해 모르는 나도 공숙선이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했다. 이혜준은 한국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무용 관두고 무슨 종교 종단을 창시할 거라고 하던데? 챤 씨의 힘을 북이나 두드리는 데 사용하기가 아깝대. 나더러 건물 지을 동산 하나 사 주고 투자 좀 해 달라더라.”

“완전 미친 사람이네, 저거.”

“그니깐. 내 운전기사로 취직시키려고.”

종교와 북춤 얘기를 하다 말고 기승전운전기사로 널을 뛴 이유를 모르겠다.

“사이비 종교 교주 후보한테 운전 맡기면 교통사고 나요. 제정신이 아닐 거잖아. 그냥 운전은 선배가 하세요.”

“강지 어째서 쓰레기 편들어? 부품 갈아 끼운 후에 저 자식이 나보다 더 좋아진 거야?”

“선배까지 미친 소리 씨불이지 말고.”

“넵.”

∞ ∞ ∞

결국 저녁 식사마저 정성껏 챙겨 먹고 밤늦게 셋이서 집을 나섰다. 이혜준이 바래다준다며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이게 어디가 어떻게 바래다주는 모양새인지는 모르겠다만.

“챤 씨가 그 건물에 귀기가 얼마만큼이나 서렸는지 눈으로 한번 확인해 보고 싶대.”

조수석을 차지한 이혜준이 짐칸으로 몰아넣은 돌칼 정령 핑계를 댔다.

파티션 너머 돌칼 정령은 이혜준과 눈이 마주치면 안 된다며 맨 뒤쪽 3인승 시트에서 돌아누워 있었다.

자의로 공숙선에게서 벗어나는 건 문제 되지 않지만, 이혜준에 의해 강제로 신령이 축출되면 다신 저 그릇 안에 깃들지 못하게 된단다. 공숙선이 모시던 원래 몸주도 그래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돌칼 정령은 돌칼을 박물관으로 보낸 후 스며들 그릇 없이 이혜준의 집에 얽매여 지내 온 터라 영매 체질인 공숙선을 매우 귀히 여겼다. 살아 있는 신이 돼서 신도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살고 싶다는 공숙선의 광기조차 두둔할 정도로.

「하긴 그렇겠다. 이왕 대신관의 그릇으로 태어났는데 한 번쯤은 나처럼 최고 지위에 올라 봐야지. 오다 보니 이 도시 국가엔 인구가 아주 많더구나. 이 지역은 왕을 시장으로 부른다고? 좋아. 전쟁을 일으켜 그 제물부터 확보하자.」

환장하겠네. 저쯤 되면 돌칼 정령과 공숙선 본체는 붙여 놓으면 큰일 칠 조합이 아닌지.

「선배, 저거 정화된 귀신 맞는 거죠?」

부정적인 기운이 제거된 상태가 저 정도라면 이전엔 어떤 놈이었다는 거지? 아무리 봐도 악귀가 맞는데?

「그럼-. 네가 걱정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야.」

「뭘 믿고 그리 장담하세요?」

「챤 씨의 방어력이 뛰어나서 여태 내 눈을 피해 다녔을까. 시선 마주칠 기회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거잖아. 그의 힘을 거두고 말고는 내가 하기 나름이지. 그러다 보니 뒤에서 쓰레기가 윤활한 사이비 종교 사업을 위해서 이혜준부터 처치하자고 챤 씨를 설득하는 모양이더라? 보면 볼수록 진짜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같아.」

이혜준이 태연한 얼굴로 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숙선은 저주 전문가이기에 이건 이것대로 걱정스러운 전개였다.

저 ‘위험물’을 혼인 후보에서 거르고 났더니, 그 외의 쓸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돌칼 정령도 공숙선을 두고 확신의 배신자 상이라고 보장했고, 앞으로 그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짧은 골목을 지나 소극장 건물 앞까지 가서 차를 댔다.

“개천사가 튀어나오진 않을 테니까 염려하지 마. 오늘은 여기에 없대.”

이혜준은 여느 때처럼 걱정 근심 없이 한만했으며,

“어둠의 신에게 지지 않으려면 산 제물을 바쳐야만 해.”

또 개소릴 늘어놓는 것으로 봐서는 돌칼 정령 역시 건물 주인과 마주칠 우려는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결론: 서창경, 오늘 당직인가 보네.

만남이 잦다 보니 고용주는 공숙선과 근무 일정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근무하는 병원의 건물이 지척에 있었고 내 육안으로도 들어와 나만이 혼자 긴장감을 떨치지 못했다.

서창경이 저기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때? 여기도 귀신 집이야?”

짐칸 유리창을 통해 건물을 살피는 돌칼 정령에게 물었다.

“그의 본거지이자 어둠의 근원이다. 평범한 인간이 이런 귀기 가득한 장소에서 하룻밤이라도 머물렀다간 제정신이 아니게 될 거야.”

“시발, 나 여기서 살거든요? 재수 없는 소리 그만둬 줄래?”

괜히 물어봤단 후회가 들었다. 오늘 밤부터 무서워서 어떻게 잠들어.

퍼뜩 본가 생각이 났다.

“우리 집도 이래? 우리 식구들 사는 데 말이야.”

“내가 그곳에는 가 보지 않았으니 모르지. 하지만 이 건물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건 다행이네.”

“이 건물에 감도는 사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을 네가 네 생기로 꾸준하게 제공해 주는 덕분이지.”

나도 모르는 새에 건전지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한다.

그럼 내가 어떡했어야 하는데. 지금도 봐. 다 알지만서도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하잖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의연한 척하려 했지만 허물어진 정신은 저 사소한 야유조차 받아들이질 못했다.

명치 부근이 쓰려서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내 옆을 휙 지나치며 날아간 물건이 돌칼 정령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주워 와요.”

이혜준이었다. 다짜고짜 물건을 집어 던진 것치고는 상냥한 말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