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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62)화 (62/96)

62화

“…….”

순식간에 얌전해진 돌칼 정령이 등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먼저 내린 이혜준이 뒷문을 열어젖히며 놈에게 말했다.

“서로 필요해서 돕는 처지에 주제넘게 굴지 맙시다. 할 얘기, 하지 말아야 얘기 구분 좀 하시라고요, 예?”

그새 학습했는지 내가 그에게 선을 그을 때마다 사용하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이혜준이었다. 나는 이 싸가지 없는 말투로 여태 수많은 진상을 퇴치해 왔다.

그다음에 나온 이혜준의 대사는 옥타브가 훅 높아졌다.

“강지야~ 너도 이만~ 내려야지~~?”

발음 하나하나가 간지럽고 울렁울렁 파도를 탔다.

내가 호빵이하고 대화할 때 이런댔지.

역지사지로 당해 보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도 이처럼 재수 없어 보일까 싶어 앞으로 호빵이에게 말을 건넬 땐 음정에 주의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이혜준의 옆에 섰다. 그가 짐칸에서 물건을 꺼내어 차례차례 내게 넘겨줬다.

“이 티셔츠는 오늘 밤 잘 때 입어.”

“…….”

뭐라는 거야. 나는 친동생 놈 옷도 찝찝해서 안 입는데.

표정을 숨기지 못해 거부감이 드러나고 말았다.

“강력한 부적이 되지 않을까?”

“지금 사심 없이 하시는 말씀?”

“…….”

대답 없이 떼구루루 눈을 굴린 이혜준이 전공 책과 노트를 내가 든 짐 위로 쌓아 올렸다. 내 품에 그의 물건이 잔뜩 들어 안겼다.

“비번 눌러야 하니까 잠시만 짐 나눠 들어 줘요.”

“내가 할 줄 알아.”

문장의 어감이 이상했다.

뭘 하신다고요?

“……?”

앞서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이 건물 안전 번호를 알려 줘야 하는지 갈등했다. 누굴 적으로 두고 우리가 팀을 이뤘는지 떠오르자 망설임은 사라졌지만.

“네 혜준 선배는 이런 장치 해제 전문가니까 넌 그저 모르는 척하면 돼.”

“뭔데. 도어 록 해킹범이요? 전문 도둑놈이세요?”

“구체적으론 해킹을 방지하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지. 범인을 잡으려면 범행 방식부터 면밀히 파악해야 하잖아.”

이혜준이 제 휴대전화의 키패드를 몇 차례 누르자, 건드리지도 않은 입구 유리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경고음도 울리지 않아 건물 경비를 담당하는 보안 업체에 연락이 갈 리도 없었다.

위험한 분이신 줄은 알았지만, 이런 분야로도 위험 분자인 줄은 내가 미처 몰라봤네!

“언제 알아냈어요?”

“어제 아침. 너하고 만나기 전에 이 앞에 잠시 들렀어.”

아침잠이 많지 않다며 굳이 이 동네까지 오겠다고 설친 이유가 이거였던 모양이다. 완전 계획범죄였다.

“아무 문이나 다 열 수 있는 거예요?”

“아니. 이 건물처럼 네트워크로 원거리 통제하는 곳만. 어머님 댁은 신호가 잡히지 않아서 열지 못하니까 걱정하지 마.”

“꼭 시도해 본 것처럼 말씀하시네?”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이혜준이 정색하고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당신 발로 귀신을 밟아 터뜨려 죽였단 말을 들었을 때도 멀쩡하던 안색에 핏기가 가셨다.

이야-, 이혜준, 이렇게 겁먹은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아냐, 진짜 절대 아니야! 이 건물은 특수한 경우라서 어쩔 수 없이 손을 쓴 거라고!”

“알았다고요.”

“미리 말해 두는데 난 내 방식으로 개천사 부모 사업체도 건드릴 거야. 이 건물 유지비며 자식 장난질에 드는 돈도 전부 그쪽에서 흘러나온다며. 개천사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게끔 그 사람들부터 주저앉혀야지.”

윤상현을 제거하고자 윤 의원 가문을 뒤흔든 수법과 비슷한 발상이다.

별안간 수장이 사라진 윤씨 집안도 난리가 났다. 윤 의원의 정무 비서 역할을 하던 그 집 장남이 수장이 되고 아버지의 뒤를 이을 줄로 예상했지만,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모양이다. 후계와 재산 문제로 저희 집안 인간들끼리 다투느라 바깥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노부인도 섬에서 지나치듯 만난 강지헌의 존재를 떠올리며 연락할 겨를이 없어 보였고.

별안간 진실을 말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 저 할 말이 있는데요. 호령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말이에요.”

“강지헌, 호령도에서 그런 사건은 일어난 적이 없어.”

“…….”

아. 이 선배 역시 알아챘었구나.

내가 직접 그에게 윤 의원과 조상희의 사망과 관련한 실마리를 주긴 했다.

“범죄는 저지르지 마요. 나 도우려다 선배까지 천벌을 받으면 어떡해요.”

“천벌 받을 사람들은 따로 있지. 어쨌거나 그게 강지헌은 아냐. 무고한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니고 자기방어를 했을 뿐인걸. 그땐 그 방법밖에 없었잖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무슨 이유로 개천사 같은 놈에게 ‘죽여 주세요.’ 하고 얌전히 네 목을 내어 주려 해. 그러면 반항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대처했다며 하늘이 상을 내려 줄 것 같아? 그딴 거 받고 싶어?”

차라리 천벌이 낫지.

“아뇨. 그래도 선배님 방식은 너무 위험해요. 어떡하든 증거가 남잖아요.”

반면에 서창경은 인간의 법률로는 단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을 벌이니까 덜미를 잡힐 가능성도 없었다. 물증도 없을뿐더러 남의 돈을 갈취하고 손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라 사기죄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무신은 무신으로 상대해야 너는 안심이 되는 거지? 그러려고 챤 씨를 빌려 왔잖아. 일단 그렇게 1:1 동점 스코어로 만들어 놓고, 개천사가 가지지 못하는 무기도 준비하자.”

이혜준이 귀마개를 해 주는 것처럼 양손으로 내 귀를 하나씩 감쌌다. 쏴쏴 하고 모래바람 같은 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태도는 기도를 드리듯 진지하고 경건했다. 기도문의 내용은 ‘그것들이 들리지 않도록’일 것이다. 있으면 있는 거지. 강지헌에겐 들리지 않기를.

“그 무기가 선배라는 거예요?”

“응. 그래야 우리 팀에 승산이 있어. 내가 끼어든 이상 이건 지기가 더 어려운 게임이거든. 개천사 따위가 감히 이혜준 님의 운빨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혜준 선배 꼭 자아 비대증 환자 같아요.”

날 안심시키려는 의도는 읽혔지만 서창경을 만나 보지도 못한 주제에 자신감이 지나쳤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면 겸손한 거라고.”

“뭣 땜에 간이 이렇게나 퉁퉁 부어 있을까. 세경 믿고 그래요? 선배, 재벌 4세쯤 되나?”

한 고장의 왕으로 군림하던 6선 의원마저 쓰러뜨린 서창경에게 상대방의 물질적 풍요는 위협이 되지 않을 텐데.

“거기 외가야. 나는 직계도 아니고, 그저 세경 거래처의 사람이라고 보면 돼. 하성조 씨는 회장님 직속 보좌관인데, 소속 부서의 국내 정보 유입 속도가 정부 쪽보다 빨라서 비상 연락망으로 소개한 거야. 이혜준 어디에 있는지 금세 찾아내 줄 수 있어.”

“그럼 세경 경영지원실의 정보력을 빌리는 거예요?”

“그것도 필요 없어. 내가 만든 방어 기술과 알고리즘 서비스를 구입하는 고객님보다야 내 실력이 더 나아야지. 또, 그쪽은 네 비밀을 털어놓을 만큼 안전한 관계도 아니거든. 현재로선 개천사의 수작에 현혹되지 않을 존재가 나하고 챤 씨밖에 없어. 하 비서님도, 공숙선도 믿지 마. 너 챤 씨인지 공숙선인지 구분하는 거지?”

“……예.”

아무래도 이혜준이 창업했다는 곳은 꽃집이 아니고 IT 계열 회사인 듯했다.

거긴 인간이 게을러도 되는 직종인가? 결코 아닐 텐데?

“귀는 이쯤 하면 됐고, 이제 눈 하자.”

이혜준이 귓바퀴에 대고 있던 손바닥을 떼어 냈다. 사심이 있다는 놀림이 신경 쓰여서인지 내가 불쾌하게 여길 만한 손장난은 치지 않았다.

“나 정말 너 혼자 여기 들여보내기 싫다.”

눈을 감기 직전 마주친 이혜준은 그의 말마따나 싫어서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러다 이 형님 울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 내가 되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나 지금까지 이 건물 안에서 귀신 본 적 한 번도 없어. 아직 귀안 안 트였어. 안심해도 돼요.”

“그래. 있으면 있는 거지, 강지헌이랑 무슨 상관이람.”

감은 눈 위로 따듯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잠긴 것처럼 들렸다.

부디 그것이 보이지 않도록.

∞ ∞ ∞

이후 2주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혜준과 공숙선이 바래다주고 데리러 왔다. 오나가나 운전대는 내가 잡는 탓에 귀빈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밤을 새워 일한다는 핑계로 이혜준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눈을 붙였고, 공숙선도 그런 이혜준에게 끌려다니느라 내내 골골거렸다. 공 교수는 학교에다 아예 퇴직 신청서를 냈다고 한다. 나 때문에 대한민국 북춤의 한 일파에 파란이 이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맥이 끊기면 어떡한다지?

혹시 일인 전승인지 물어봤더니, 군무라서 창시자인 스승님께 배운 제자들이 수백 명에 이른단다. 그건 참 다행한 일이었다.

「나 여태 성질 죽여 가며 꼬장꼬장한 내 스승 밑에서 할 만큼 했어. 남 좋은 일은 그만-, 이제부턴 나를 위해 살겠다!」

공숙선이 사이비 종교 창시를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아저씨가 남 좋은 일을 하셨다고요? 언제? 몇 날 몇 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출사표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헛꿈일 테니.

한편, 최근 고용주는 취미 생활할 겨를도 없을 만큼 바쁜지 연구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칼을 벼리다가 어느 날 불쑥 찾아올 예감이 들었기에 메신저 연락 한번 없다는 사실에 도리어 경계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 쪽에서 일부러 그를 찾을 마음은 없었지만.

대신에 서창경의 양친에게선 번갈아 가며 연락이 왔다. 줄곧 무시하다가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 한번 통화했더니 다짜고짜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있으면 어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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