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68)화 (68/96)

68화

<제4-1장>
그날, 임원주

아들 서창경이 비명횡사한 후 임원주의 꿈자리는 늘 뒤숭숭했다. 자식이 어떡하다가 제 명을 갉아먹었는지는 그도 잘 알았다.

처음엔 미신이라 업신여겼던 저주 굿이란 것이 제대로 먹혀들어서 신통하기만 했다. 그러다 점차 눈에 거슬리던 자들이 차례차례 고꾸라지는 과정에서 얻는 희열에 중독되어 갔다.

저주 굿을 하고 살을 날리지만 서창경이 저는 결코 무당이 아니며 무당이 될 생각도 없다기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드러내놓고 벌이는 일도 아니니 자식의 앞날에 지장이 있을 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기만 해서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며 자금을 댔다.

소원하면 이루어 주는 존재, 그는 임원주 부부의 종교였다.

그처럼 듬직하던 서창경이 까닭 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부터였다. 식욕이 없어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고, 편식이 생기며 특히 육류는 입에 대지도 못했다. 대신에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며 영하의 찬 날씨에도 냉수만을 찾았다.

불길한 예감대로, 수차례 검진을 해 보아도 좀처럼 몸이 쇠약해져 가는 원인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창경아, 이거 혹시…… 그 병 증세가 아니니. 신병이라고 부르는 그거 말이야.」

세간에 나도는 풍문대로 귀신을 모시면 낫는 건가 해서 기대도 품어 보았다.

귀신을 몸에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무속을 직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었다. 신내림을 받고서도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평생 숨기고 살면 되지 않을까.

이대로라면 자식의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데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거부감을 가지는 건 잘 알지만 일단은 네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니. 비밀리에 거들어 줄 신어미를 찾아보자, 응?」

「어머니, 신병을 말씀하는 거라면 잘못 짚으셨어요. 제 몸을 노리는 신령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저는 아무래도……. 하아-. 어머니, 이런 사고에 대비해서 일찌감치 액막이를 해 줄 꼭두각시를 세워 두었잖아요. 그런데 왜. 어째서 제게 직접 불행이 닥쳤을까요.」

그제야 임원주는 죽음에 이르는 그 저주의 원인을 짐작했다. 아들의 영력을 누를 만큼 큰 귀신이 찾아들 징조가 아니었던 거다.

그것은 신벌이었다.

서창경은 절망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는 부모보다 한결 빨리 냉정을 찾았다. 빠르게 체념을 끝내고, 빠르게 다음 단계를 밟았다.

서창경은 그가 죽고 나서 임원주 부부가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이 일러 주었다. 우선 장례를 치르면 안 된다고 했고, ‘그날’까진 제 육신이 썩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병원 장례식장과 연계된 시신 냉장 보관소를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서창경은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를 틀 터를 달라고 했다. 떠도는 잡귀가 될 순 없으니 터의 주인으로서 힘을 키우겠노라고.

명당으로 이름난 산을 하나 구해 주면 되겠느냐 물었더니,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강지헌이 산 생활을 하고자 산에 들어올 리 없고, 의심을 사기 쉽다고 우려했다.

「무슨 의심 말이니? 너를 잘 따르고 의리가 있는 아이니 조금만 죄책감을 자극해도 산에 들어가 삼년상도 치러 줄 텐데.」

「제 부모가 죽은 것도 아닌데 삼년상은 무슨. 그것보다 제 저승길에는 외롭지 않게 지헌일 데려가야겠어요, 어머니. 반드시요. 그러자면 누구보다 그 녀석에게만은 제 상태가 알려져선 안 돼요.」

외롭지 않게 해 달라는 유언을 듣자마자 자식이 불쌍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서른하나. 이대로 눈을 감기엔 안타까운 나이였다. 보내더라도 꼭 짝은 지어서 장례를 치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내 새끼 가는 길이 외로우면 안 되지. 어떡할까. 의료 사고를 위장해서 그 아이 숨을 거둬들이면 너희 둘이 함께 떠날 수 있는 거니? 걔 제대하면 바로 건강 검진을 받자고 해?」

큰 수술이 필요한 병명이라도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강지헌이 액받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아들이 신벌을 받았다고 믿었기에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다.

죽어도 강지헌 네가 죽었어야지.

「그건 나중 일이고요. 우선은 지헌이하고 영결식을 치른 놈부터 떼어 내야 해요. 저 혼자 힘으론 어려워서 거들어 줄 인물을 모집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들의 조수가 귀신 달라붙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이질적인 느낌이 들더라니.

어색할 정도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그런 시선치고는 제 눈앞에 둔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주변의 돌아가는 정황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서창경이 시키는 일은 곧잘 해냈다.

어디 가라고 하면 가고, 무덤을 파라고 하면 파고, 한겨울에 저수지에 들어가라고 하면 뛰어들고.

일상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몰아붙여도 겉보기로는 망가짐 하나 없이 멀쩡했다.

서창경은 제 조수를 두고 인형이라고 불렀다. 제 명령만 듣게끔 길들인 꼭두각시 인형이라며 자랑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그 어떤 장난감에도 그처럼 애착을 보이며 아낀 적이 없었다.

임원주도 하얗고 곱상하게 생긴 애가 무기질적인 매력이 있어서 제법 예뻐해 줬건만 그 마음이나 정성이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인정 욕구가 없는 인간처럼 칭찬을 해 줘도 기뻐하지 않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기미도 없었다.

강지헌의 모친이 입원할 일이 생겨 신경을 써 주니 그제야 겨우 이런 사람들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듯이 임원주 부부에게 눈길을 줬다. 돕는 건 이쪽인데 관심을 구걸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무심하고 고고한 아이가 서창경의 노예가 돼 부림을 받았다.

「내 인형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만으로 충분하니까 다른 건 가르치지 않았어요.」

서창경이 말했다.

그의 예견대로 전역하고 돌아온 제물을 소극장 건물에 묶어 두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세뇌가 완성된 강지헌은 귀신이 무섭다며 다른 데서는 지내지 못했다. 날이 저물면 어김없이 서창경의 영역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워낙에 음기가 강한 장소라 임원주 부부는 몸을 사려 그 건물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그 안에서의 서창경의 귀기는 해를 잡아먹을 정도로 짙었다. 창문이 있어 봤자 무용지물이었고 대낮에도 실내가 어둑어둑했다.

토지신이 되겠다기에 터를 수호하는 영험한 신령을 기대했건만, 죽은 서창경의 혼백은 임원주 부부가 바라던 신성성을 지니지 않았다. ‘신’보다는 ‘귀’에 더 가까웠고, 희생 삼을 제물도 필요로 했다.

임원주 부부는 이런 종교를 원한 건 아니었다고 당혹해하면서도 인신을 공양했다.

워낙에 특별한 신기를 지녔던 자식이라 죽고 나서도 꿈에 나타나 이것저것 도움 되는 계시를 내릴 줄로 알았다.

그러나 전달되는 메시지는 매우 단편적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말뿐이었다. 굶어 죽은 것도 아니면서 아귀처럼 몇 날 며칠을 허기가 졌다는 소리만을 반복했다.

신벌을 받아 죽은 탓일까. 신령함 대신에 잡스러운 기운만이 들어찬 것처럼 보였다.

임원주는 꿈자리가 하도 사나워 더 이상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음식을 장만해 제를 지내라고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더니, 그곳의 터주는 음식은 받지 않고 사람만 먹어 치웠다.

그때 들어갔던 무속인 일행 다섯은 무사히 나온 듯싶더니만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렸다. 한꺼번에 뒈져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로써 서창경을 도와 지하실과 주술을 설계한 자들이 사라지고 그의 죽음은 온전히 그들 부부만의 비밀이 됐다. 다른 자식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서창경은 또 굶주림을 호소했다. 다시 사람을 넣어 줘야 할 때가 왔다.

이번엔 건물 안에 남겨진 음식과 제기를 치운다는 명목으로 영세 유품 정리 업체 직원 셋을 고용해 먹이로 던져 줬다. 건물 안에서 죽는 것도 아니고 살해 장면 같은 실질적인 증거도 없다 보니 제물을 대 주었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서창경의 식욕은 대단했다. 들여보내는 족족 생기를 빨아 사람을 시들게 했다. 제물에 표식을 새긴 후 내보냈다가 줄기차게 불러들였다.

「꿈에서 누가 자꾸만 내 이름을 불러요.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들거든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한참 걷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그 건물 앞인 거예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려요. 어서 들어오라고 해요.」

선심을 베푸는 척하며 입원시킨 제물들의 입에선 한결같은 증언이 나왔다.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꾼다고.

외출한 적도 없는 환자의 맨발은 어딜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발바닥이 지저분했다. 그리곤 얼마 못 가 꼬챙이처럼 말라비틀어져 숨을 거두었다.

중간에 무속인을 두면 자식이 살아 있던 시절처럼 재미를 볼 줄 알았건만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 매개체로 세워도 거듭 실망만을 안겼다. 하나같이 소문보다 영력이 약했던 모양인지 서창경과 소통하질 못했다. 그 쓸모없는 것들은 먹이로나 던져 줬다.

자식이 죽었다고 밝히긴 어려우니 그 터에 자리 잡은 신령이라고만 일러뒀다.

그러자 한 무당이 “저런 건 신령이 아니고 흉신이라고 합니다. 모시면 큰일 납니다. 도움은커녕 되레 화를 불러들여요.”라며 임원주 부부를 말렸다. 개중에 조금 나아 보여서 곁에 두고 써먹으려고 했더니 듣기 싫은 소리나 지껄이는 거다.

‘설마 우리 창경이가 제 부모도 몰라보고 잡아먹는 귀신일까!’

그런 임원주의 마음을 알아준 듯 그 무당도 여지없이 쓰러졌다.

나중에 강지헌이 데려온 공숙선을 만나고서야 자식이 원했던 건 소통보다는 제물이었다는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단시간에 힘을 키우고자 보통 사람이든 무속인이든 가리지 않고 잡식했던 거다.

그렇게 키운 힘으로 서창경은 강지헌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지헌은 신령을 보는 눈도 없고 영성을 감지하는 능력도 보통 사람보다 못했기에 무리수를 둬야 했다고.

처음 감시 카메라에 강지헌이 혼잣말하는 장면이 잡혔을 때는 쟤가 실성한 것이 아닌가 여겼다. 누가 옆에 계속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연기치고는 표정이 너무도 생생했던 거다. 그러다 공숙선이 가세하면서 셋이 대화가 이루어졌다.

「어떻게 된 거죠? 저 아이에게도 신기가 생긴 건가요? 쟤 눈에 우리 창경이가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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