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70)화 (70/96)

70화

반복되는 이 장면은 서창경이 만든 환영일 뿐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임원주가 매일같이 확인하는 CCTV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자식 같지도 않은 귀신이 보여 주는 꿈보다는 본인의 눈을 더욱 신뢰했다.

그간 건물 안팎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동태를 살펴 왔다. 때때로 소극장 옆 공원을 방문하는 행인이 호기심으로 기웃거리긴 했지만 지금껏 정문 부근에서 사람이 저토록 오래 머문 적은 드물었다.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드나들던 강지헌이 바깥에서 길게 시간을 보낸 날은 공숙선을 불러 세우더니 그를 걷어차고 땅바닥을 구르게 한 어느 날 밤뿐이었다.

뒤늦게 그 장면을 찾아보고는 계획이 들통 나서 강지헌이 분노한 줄로만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들킨 건 아니었다. 그 사고는 그저 귀신 부리는 능력만 믿고 설치는 작자가 낡아 빠진 종을 들고 나대다가 매를 버는 빌미를 제공한 우발적인 일이었다.

강지헌은 손속이 과감했다. 익숙한 듯 사람을 치는 데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공숙선도 깡패 새끼라며 욕을 퍼부었고, 임원주는 여태 강지헌에게서 받아 온 은근한 위압감이 그 숨겨진 폭력성 탓인가도 싶었다.

서창경이 그의 조수에게 얻어맞으며 지냈다는 얘긴 들어 보지 못했지만.

터주의 영역이 한계를 지닌 탓에 꿈에 나타난 배경도 소극장 건물로 제한됐다는 가정을 세울 수도 있었다. 실제는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배경만 이쪽으로 끌어왔다는 가정 말이다.

그러자 정말로 강지헌에게 다른 누군가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이 싹텄다. 세뇌되어 온통 무신에만 마음이 쏠린 아이를 현실 세계에 붙잡아 둘 정도의 인물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임원주가 계획하는 주술은 유체 이탈한 영체끼리의 영혼결혼식이 아니었다. 언제든 이혼할 수 있고 서류상 부부도 가능한, 산 사람들의 결혼식과도 달랐다.

원치 않는 영혼을 강제로 끌고 와 엮어서 저승으로 보내야 할 상황인데, 진짜 연인에게 붙들린 마음이 주술에 차질을 주면 곤란했다.

윤상현을 떼어 놓는 작업을 준비할 때 만신 조상희의 힘을 제거하더라도 그 귀신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윤상현과 강지헌은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그들의 운명엔 애증이라는 염이 깃들어 서로를 놓지 못하는 접착제 역할을 했던 탓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강지헌은 제게 붙은 귀신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데에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서창경이 그 집념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강지헌은 끊임없이 죽은 윤상현을 상기했다.

그런 까닭에 만신 조상희를 제거한 후의 주술도 대비했더랬다. 호령도에 간 강지헌이 윤상현을 떼어 놓고 돌아오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됐지만.

예상보다는 두 사람 사이를 이어 온 연분의 끈이 강력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물에게 만나는 사람이나 조력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공숙선은 자긴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뗐다. 강지헌이 마음을 줄 대상이 생기면 큰일 난다고,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 서둘러 저승혼사굿을 치러야 한다며 정 사람이 구해지지 않으면 저가 희생하겠다는 말도 했다.

‘공숙선’과 ‘희생’이라니 위화감이 들 수밖에.

남 잘되는 꼴이 보기 싫다며 몸주를 모시면서도 일절 신점을 봐 주지 않았던 인간이다. 부적을 써도 꼭 저주 용도로만 그렸다. 그런 새끼가 도움을 주고 싶어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고?

제 몸주에게 먹일 제물을 구하고 싶어 안달하던 공숙선이 요즘 잠잠한 것도 영 수상쩍었다. 주체 못 하는 탐욕이 빤히 들여다보여서 다루기가 쉬웠건만, 전에 없이 여유가 깃든 태도를 보였다.

마치 모시는 신의 격이 변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은 누가 더 강하지? 둘 중에 누가 잡아먹힐까.

사람 수십을 잡아먹은 서창경의 힘과 현재 공숙선이 모시는 귀신의 힘을 저울질해 보려 했지만 평범한 인간인 임원주가 판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언에 따르면 두 번째 저승혼사굿 상대는 서창경이 제거하기 쉬운 상대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그다음 자리를 서창경이 차지할 테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력이 높은 것치고 멍청한 공숙선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저만 믿고 맡기라는 과한 자신감마저 웃음거리였다.

당시에 그가 두 번째 상대로 지원했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을 정도로 만만했다.

그러나 이제는 방심은 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공숙선이 지닌 본신의 힘을 서창경이 누를 수 있을지 염려가 서린 마음으로 재어 보게 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강지헌은 여전히 서창경의 인형이라고, 공숙선은 임원주가 바라는 답변을 딱딱 내주었지만 석연찮았다. 예전의 그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의심이 생긴 임원주는 매일같이 살펴 온 감시 카메라 영상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통장에 꽂히는 돈도 많으면서 쟤는 왜 항상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닐까.”

아르바이트 수당을 잘 쳐 줘도 저를 위해선 쓰지 않고, 선업을 쌓는다며 쓸데없는 곳에다 돈을 허비했다.

그래도 옷은 입성 좋게 입고 다니더니 얼마 전부터는 패턴이 비슷비슷해졌다. 말한 것처럼 허구한 날 똑같은 옷은 아니었지만 그 옷이 그 옷인 듯 새로운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소극장 건물 안에서 보이는 강지헌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옷차림도 단조롭기만 했다.

마치 짜깁기된 동영상처럼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는 감상이 들었다.

설마.

강지헌이 건물을 나서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임원주는 방금 떠올린 가설을 부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아이가 영상을 조작할 이유가 없었다.

수상함을 느꼈다면 귀신의 존재에 진저리친다는 애가 저리 태연히 귀신 소굴에서 지낼까. 서창경의 육친인 임원주 부부조차 겁을 내고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에서 말이다.

개강을 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었다. 강지헌은 평소처럼 가방 하나만 둘러메고 건물을 나섰다. 긴 시간 생기를 빨려 왔기에 누구보다도 진하게 제물의 표식이 새겨져 있을 존재였다. 오늘 밤이 되면 제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일단 이쪽은 됐고.

아침마다 하는 CCTV 체크를 마친 임원주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외출 준비를 했다. 별안간 병원 이사회가 소집된 탓이다.

다들 바쁜 인사들이라 이사회는 대개 서면으로 진행됐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직접 참석하라는 호출이 왔다. 얼마나 대단하고 조심스러운 안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장의 귀에조차 조직 개편 이외의 구체적인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야 이미 일가친척들로 쫙 깔아 두었고, 임원도 모두 한통속이었다. 두드러진 실수가 없는 한 선대의 인연으로부터 보장받은 병원장직은 자식에게로 이어질 테고, 복지 재단은 병원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을 터였다.

이사회가 소집돼 봤자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잠시 후 입주 고용인이 정원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1층 창문을 통해 보였다. 운전기사도 합류해서 쪽문이 아닌 차량이 드나드는 대문을 양쪽에서 열었다.

뭐지? 누가 가구라도 주문했나?

별채에서 따로 지내는 둘째 자식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운송 차량이 후진해서 들어왔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택배 기사가 화물 트럭 적재함을 활짝 열자, 그 안에는 배송물과 함께 다른 직원이 한 사람 더 타고 있었다.

트럭 안의 직원이 부피가 큰 직사각형의 누런 상자를 떠밀어 받침대로 옮겼다. 받침대가 승강기처럼 수평으로 이동하는 구조의 운반차였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온 물건이 미끄러지듯 잔디밭에 자리 잡았다.

쿵―!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실제로 진동이 전해진 건 아님에도 머릿속으로는 땅이 울리는 듯한 파동이 계속해서 번져 나갔다.

안 돼…….

저걸 집에 들여선 안 될 것 같다는 강박 관념에 숨이 차올랐다. 갈아입으려던 옷을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이봐요! 잠시만요! 김 기사님, 뭐 해요? 저 사람들 얼른 잡아!”

그러나 임원주가 현관을 채 나서기도 전에 화물 트럭은 떠나 버렸다.

“도대체 뭘 배달한 거예요? 냉장곤가.”

가전제품이라면 실외의 땅바닥에다 길게 눕혀 놓고 가 버릴 리가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병원에서 보낸 물건 같은데요? 품목에 사모님하고 원장님 성함 뒤에 귀속이라고 적혀 있는데 저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고용인이 컴퓨터로 출력한 운송장을 내밀었다.

“병원에서?”

익숙한 장소를 듣고서도 건네받는 손은 불안정하게 후들거렸다. 예감이 불길했던 탓이다.

<임원주·서광혁 귀속>

이 물건은 지금부터 두 사람에게 귀속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귀속된 물건을 되돌려 준다는 것일까.

발송인은 백결 재단이었고, 인쇄 오류가 있었는지 택배 회사 역시 백결 재단으로 돼 있었다. 재단 이름이 병원 이름과 똑같다 보니 고용인은 병원에서 발송한 물건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백결은 현 재단 이사장 조모의 호였다. 사이가 돈독했던 서광혁의 조부에게 초대 병원장직을 맡긴 인물이기도 했다.

“집 안으로 옮겨 달랬더니 그냥 휙 가 버리더라고요. 어떡할까요? 사람 불러서 안채로 들일까요?”

운전기사가 물었다.

“아니, 잠시만요. 물건 먼저 확인하죠.”

제 손이 닿는 건 꺼림칙했기에 고용인들의 손을 빌렸다. 돌려보낼 생각에 상자를 손상하지 말고 조금만 열어 보라고 시켰다.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상자가 있었다. 부적이 붙은 검은 궤짝의 귀퉁이를 보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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