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71)화 (71/96)

71화

“어이쿠, 이거 관 아닙니까!”

“왜 이런 걸 아침부터 남의 가정집에다!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

고용인들이 펄쩍 뛰듯이 뒤로 물러섰다.

“어엇…… 배송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오늘 중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여기 이대로 내버려 둬요. 안에는 든 거 없어요. 시체 없다고.”

임원주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해 가며 말했다. 그러나 시체 얘기는 공연히 꺼냈는지 두 고용인의 표정이 더욱 미심쩍게 변했다.

아들의 시신이 집터 안으로 들어왔으므로 임원주는 서둘러 공숙선을 찾았다.

그것도 따라 들어왔을까?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서창경의 혼백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행방을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별안간 주변이 어둑해진 기분이 들었다.

방금까지는 분명 화창하게 갠 날씨였다. 정원에 내리쬐던 이른 가을의 햇살이 온데간데없이 증발한 까닭은 지나가는 구름 탓일 거였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서재에 난 창문을 통해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날씨와는 관계없이 잠식되듯 그늘져 가는 정원을 내다보는 임원주의 전신이 가늘게 경련했다.

이 집이 소극장 건물처럼 변질되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다행히 임원주 부부에겐 이런 일을 해결해 줄 수하가 있었다. 공숙선과는 금방 연락이 닿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첫 번째 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모님이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개강해서 나 좀 바쁜데?

퇴직한 걸 아는데 새끼가 누굴 속이려고. 이러니 내가 널 온전히 못 믿지.

배우자며 제 배로 낳은 자식들조차 의심의 눈길로 감시하며 사는 임원주는 공숙선이 다니던 직장에 정보원을 심어 두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같은 전공 교직원에게 종종 공숙선의 안부를 물어보는 척 상황을 살펴 왔다.

“한창 바쁘실 시간대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누가 소극장에 있던 창경이 관을 우리 집에다 가져다 놨기에요.”

―네에-? 아니, 도대체 누가 그런 위험한 짓을 한답니까? 어떤 간 큰 놈이 감히 우리 터주님의 본체를 건드리냐고.

수화기 너머에서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질문을 되돌려 받고 보니 임원주 입장에선 수화기 너머 남자 말고는 이처럼 과감하고 해괴한 짓거리를 벌일 인물이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관의 비밀을 알고, 동티가 날 염려 없이 지하실에 있던 저것을 바깥으로 들어내 옮길 능력을 지닌 인간.

공숙선 너였구나!

재물을 탐하는 자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공숙선이 원하는 바는 명확했는데, 제가 모시는 몸주에게 바칠 제물 일곱을 달라고 했다. 서창경의 저승혼사굿을 주재해 주는 대가였다.

물론 그것은 거짓 계약으로, 그즈음이면 강지헌도 죽고 이쪽의 목적도 달성했을 테니 임원주는 추호도 제 손을 더럽혀 가며 살인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서창경은 살아생전 저에겐 신벌을 대신 받아 줄 강지헌 같은 인형이 있어서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쳐 놓고선 어떻게 되었나. 직접 행동으로 나선 인형보다 주인인 그가 먼저 죽어 버렸다.

공숙선에게 보수를 지불할 무렵엔 그 인형마저 저승에 있을 테고 누굴 방패로 내세우려고 임원주 스스로 천벌 받을 짓을 할까. 굿이 끝나는 대로 서창경이 공숙선을 잡아먹으면 모든 증거가 사라지고 깨끗이 마무리될 일이었다.

무신에 관한 부분에만큼은 진지해지는 공숙선이기에 이 시점에서 성급하게 보수를 바라고 부리는 수작일 리는 없고 그의 속셈이 궁금했다. 무슨 협박을 하려고 이런 엉뚱한 짓을 저질렀는지 계산되지 않았다.

―그거 소극장 건물에서 가져온 관인 건 확실해요?

공숙선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로 시침을 뗐다.

곧장 원하는 거래를 제시해야 마땅하건만 이처럼 뜸을 들이는 태도는 단순한 그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 변한 것일까.

“겉에 부적이 붙어 있어요. 어디에 또 저런 관이 있겠어요?”

신력이 높은 공숙선이 합류하면서 기존의 부적을 바꾸고 관의 성능을 보강했다. 귀기의 발원지로부터 강력한 힘을 받은 땅과 건물은 더욱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게 됐다.

그렇게 서창경의 힘을 키워 준 일등 공신이 지금 발뺌을 하는 거였다.

―모르죠. 우리 터주님처럼 도를 넘어서 귀신 놀이를 즐기다가 비명횡사한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또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선생님, 지금 말장난 치실 때가 아니잖아요. 정원이며 집 안이며 해가 들지 않기 시작했다고요! 설마 이 집도 소극장 건물처럼 귀기에 잡아먹히는 건 아니겠죠?”

―집에 잠시 그늘이 질 수도 있는 거지 왜 답지 않게 호들갑이실까. 도대체 누가 그런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세요?

바로 너잖아, 이 개새끼야!

“장난질한 사람은 나중에 찾으시고 일단 서둘러 주세요, 공 선생님. 이러다 사달이 나겠어요.”

자근자근 성질을 누르며 부탁했다.

범인은 알았고, 이제 요구 사항을 들어주거나 타협만 하면 된다고 여기니 잠깐이나마 공포심이 가라앉았다. 다음에 튀어나온 공숙선의 대답에 혼비백산하고 말았지만.

―그렇다면 뭘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서창경 씨가 그 터를 장악하기 전에 거기서 얼른 빠져나오세요. 자칫 아드님이 새 터에 뿌리내리는 데에 밑거름이 돼 주시겠어요.

“예? 이 집을 내주라고요? 그러지 않으려고 선생님께 연락드린 거잖아요!”

이곳까지 귀기로 더럽히다니 어림없었다.

―재산보다는 사모님 목숨이 더 중요하잖아요? 일단 나오십시오. 버티고 있다간 사달이 나겠어요.

공숙선이 임원주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했다. 말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치명적인 경고였고, 약을 올리려는 기색도 없었다.

“다 방법이 있는 거지요? 생각해 둔 방도가 있으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담담하신 거지요?”

지갑과 자동차 열쇠만 챙겨 들고 허둥지둥 현관문으로 향했다. 볕 한 점 없이 그늘진 정원을 보자 발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해결 방법이야 뭐, 그게 정말 우리 터주님의 관이라면 원래 있던 자리에다 도로 옮겨다 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공숙선이 대수롭지 않게 해답을 내주었다. 본인이 저지른 짓이다 보니 했던 일을 그대로 되돌리면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물건의 정체를 숨기고 화물 택배를 이용하면 된다. 방금 받은 택배도 그런 식으로 배달돼 왔을 가능성이 컸다. 정체를 알고서도 그 저주스러운 물건에다 손을 댈 사람은 없을 테니까.

가만?

트럭 적재함 안에서 줄곧 시체가 든 관과 함께 실려 온 배달 기사를 떠올렸다. 그는 지렛대도 없이 그 무거운 관을 혼자서 밀어 내렸다. 임원주의 기억이 맞는다면 하차 과정에서 그의 동료는 도움은커녕 손 놓고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마치 건드려선 안 될 물건임을 알았던 것처럼.

방금 택배 기사로 위장하고 우리 집에 들른 놈도 너였구나, 공숙선.

팔다리가 긴 비율 좋은 체격이었던 것 같고 이런저런 정황에 짜 맞추어 보면 역시 공숙선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별채에서 지내는 자식은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남은 사용인들에게 반나절만 바깥에 나가 있자고 했다.

―아니 왜 아까운 먹이들까지 내보내시려고? 그 집에 놔두면 전부 아드님의 피가 되고 살이 될 텐데요?

여전히 통화 중이던 공숙선이 임원주가 사용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서 끼어들었다. 키우는 맹수의 점심거리를 장만해 주라는 권유처럼 예사롭게 들렸다.

그러잖아도 그는 얼마 전부터 이쪽의 정성이 부족해서 터주의 힘이 약해지고, 더불어 강지헌을 조종하는 구속력도 희미해지는 거라며 거듭 주의를 주는 중이었다. 공숙선이 혈육보다 더 서창경을 걱정하고 위하는 듯한 구도였다.

그럴수록 더더욱 모두 데리고 나가야지. 내 통제에서 벗어난 힘을 키워 주면 내가 위험해진다는 걸 배웠거든.

“안 됩니다, 선생님. 물론 우리 창경이를 위한 제물도 중요하지만 나한테는 오래 같이 지내 온 이 사람들도 정말 소중하거든요.”

그래도 공숙선의 앞에선 언제나 죽은 자식인지, 흉귀인지를 위하는 척했다.

―아이고, 이제 보니 정에 휘둘리는 분이셨구나. 몰라봬서 죄송하네요. 그렇게 초대해도 소극장 건물엔 발길도 하지 않으시기에 죽은 자식도 돌아보지 않는 박정한 분인 줄 알았답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저는 날마다 우리 창경이 생각뿐이랍니다.”

─아, 그러셨구나. 어쨌거나 두 분이 하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결국 죽은 아드님이 제 발로 거길 찾아간 것이 아닐까요? 어머님 아버님을 뵙고 싶어서?

달갑지 않은 소리였지만 상대방이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이 억지웃음을 자아내며 표정을 관리했다. 최소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굴어 둬야 공숙선을 이용하기가 편했다.

자식의 유언조차 헌신짝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그와의 약속을 지킬 리 없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끔 연기해야만 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우리 창경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마음이 아프네요. 제가 어떡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도착하시면 관을 들춰서 우리 창경이하고 인사라도 나누게끔 도와주시겠어요? 아직 날이 더워요, 선생님. 녹아내리기 전에 어서 와 주세요. 출발은 하신 거겠죠?”

냉동 장치에서 들어낸 순간부터 시신의 부패가 진행됐을 거라고 생각하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악취가 번지면 관 안에는 시체가 없다고 주변인을 속이기도 어려워진다.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지금은 어렵고요.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공숙선이 놀리듯 제 할 말만 하고 뚝 끊어 버렸다.

“뭐야, 이 새끼야? 학교도 그만둔 네가 수업은 무슨 수업! 너는 도대체가 원하는 게 뭐기에 감히 나한테 이딴 짓거릴 해!”

언제 어디서건 고상한 척하던 습관도 던져 버리고 버럭 욕설을 내질렀다.

그러나 욕설의 대상인 공숙선은 이 자리에 없었고, 귀가 더러워진 고용인들의 의심 어린 시선만이 와 닿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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