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72)화 (72/96)

72화

돼 가는 꼴을 보아하니 공숙선이 당장 달려와 수습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집 앞에서 언제까지 그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이사회에 참석해야 하기에 입단속 시킬 고용인들도 일단 병원으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운전기사가 모는 승용차에 고용인 셋을 태워 먼저 보냈다. 남편에게 관이 도착한 사정을 설명하려면 듣는 귀가 없어야 했다.

임원주도 그의 차로 향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몸을 숙이기 전, 굳게 닫힌 대문을 돌아보는데 어쩐지 이 집에는 두 번 다시 발길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척에 해결사도 있고 해결 방법도 간단해서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짜.”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창경과 공숙선, 무신을 다루는 두 사람이 한결같이 강조해 온 말―대가(제물)가 중요하다.―을 어긴 적이 없었다. 손해에 가까운 대가를 치렀다고 여기기에 이 이상 억울하게 희생하며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그토록 떨치려고 애쓰던 귀신을 집 안으로 들이다니 눈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내가 지금껏 바친 제물이 얼마냐고!’

『하지만 네가 몸소 치른 대가는 아니잖아?』

피식거림과 함께였다.

뭐?

『희생한 놈은 따로 있을 텐데?』

끼이이익-.

출발하고 얼마 못 가 차를 세우고 말았다. 환청의 내용보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서창경의 음성이었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느낌에 되돌아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어머니에게 늘 높임말을 쓰던 장남이다. 정말로 서창경이라면 저리 무례하게 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사이드미러에 높다란 담장과 철제 대문이 비쳤다. 그리고 대문 앞에는 인영이 하나 어른거렸다. 상황이 상황이라서인지 언뜻 이 집에서 나고 자란 큰아들처럼도 보였다.

이상하게 관이 도착했을 때와 같은 거부감은 일지 않았다.

그저 ‘마침내 우리 애가 집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객사해서 줄곧 바깥에 머물던 자식이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가엾은 아이였다.

기다려, 창경아. 엄마가 곧 지헌이하고 함께 네 장례를 치러 줄게. 엄마는 너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 거야.

『어머니.』

마지막 기억보다 훨씬 앳된 아들의 목소리가 임원주를 불러 세웠다.

“……!”

『어머니, 저를 두고 어디에 가세요. 어서 집으로 돌아오세요.』

“……음?”

하하. 하하하.

한순간 멈칫했던 임원주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마음을 허물어뜨리려 연출한 어린 목소리가 오히려 그를 현실로 돌려주었다. 냉철한 이성이 저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했다.

아들 서창경이 아니다.

생전에 서창경은 귀신을 상대할 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일러 주었다. 귀신에게 인간의 법률과 상식과 도덕이 통할 거라고 믿으면 오산이며,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무슨 수단이든지 사용한다고 했다. 인간만을 위하는 귀신이란 건 꿈같은 이야기이고, 그 정도 격을 갖추었다면 이미 귀신이라고 불리지도 않는다고.

「피를 이은 조상신조차 제사상을 요구하잖아요, 어머니. 아무 이유 없이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란 없어요. 거짓과 속임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 간사함에 넘어가선 안 됩니다. 특히나 감정에 호소하는 말에는 귀 기울이지 마세요.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홀려 버리는 거예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임원주는 한순간이나마 감정적이 되어 흉신의 벌어진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려 했던 상황을 깨닫고 아찔해졌다. 저건 그저 서창경의 기억과 경험을 꿰고 있는 귀신일 뿐인데 말이다.

“공숙선 새끼, 감히 날 물 먹이려고 저걸 내 집에다 들여놓아? 귀신 볼 줄 아는 인물이 세상에 너 혼자뿐인 줄 알지. 어디 두고 보자고.”

임원주가 이를 갈며 다시 차를 몰았다.

그는 공숙선이 저승혼사굿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어떤 명단을 들고 있었다. 그 명단에는 공숙선처럼 신령을 모시는 건 아니지만 비등한 도력을 지닌 후보자의 이름이 일곱이나 더 나열돼 있었다.

<제4-2장>
그날, 공숙선

임원주가 설욕을 다짐하는 그 시각, 공숙선은 바로 그 일곱 후보자와 한창 작업 중에 있었다. 다들 떳떳한 입장은 아니어서 자기소개는커녕 모자와 마스크 행색으로 노출을 피했지만 어렵지 않게 서로의 신분을 짐작했다. 한때 하나의 목표를 두고 뭉친 전적이 있으므로.

사실 뭉쳤다고는 해도 이처럼 한자리에 모인 행사는 처음이었다. 당시엔 강지헌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힘을 보탰을 뿐이니까.

‘이야-,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공숙선의 곁에는 연신 염불을 웅얼거리는 노인이 있었다. 하는 행동만 봐도 몸담은 곳이 어디인지는 빤했다. 이 승려는 티브이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 유명 인사였다.

‘아이고, 혜관 스님. 차별 없이 모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더니만 뒤에선 저주 굿도 도와주시는 엑소시스트셨네요? 조상희하고 똑같은 짓을 하고 살아오셨네? 크크큭.’

전 같았으면 노리던 먹잇감의 등장에 그도, 몸주도, 기뻐서 침을 꼴깍꼴깍 삼켰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젠 굳이 이들을 제물로 삼지 않아도 공숙선은 충분히 강해졌으니까. 여덟이서 함께 달려들었던 상대, 만신 조상희보다도 더.

그 능력은 혼자서도 이 소극장 건물의 귀기를 잠재울 정도였지만 수반되는 노동량이 문제였다. 온 사방팔방에 붙은 벽보(부적) 떼기라니, 팔다리를 혹사하고 허리가 나갈 각오를 해야 했다.

‘빌어먹을! 내가 싸지른 걸 내 손으로 치우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처럼 도배해 놓진 않았을 텐데! 건물을 통째로 불 싸질렀으면 좋겠네.’

혼자만 고생하기는 싫어서 너도 거들어야 한다며 물귀신 작전으로 이혜준까지 끌어들였다. 한 사람이 이 많은 부적을 제거하려면 족히 몇 주는 걸릴 거라고 징징댔다.

그사이에 댁의 강지헌이 뒈지면 노동력을 보태지 않은 네 책임이라며 부담도 팍팍 떠안겼다.

꿀 피부 유지·관리를 핑계로 신생아보다 더 잠을 처자는 이혜준이 말했다.

「보시다시피 내가 허약해서 몸 쓰는 일은 자신이 없고요. 대신에 같이 작업할 시급 알바를 구해 드릴게요.」

그렇게 해서 모집된 일곱이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건물 관리 업체도 물린 마당에 민간인을 이 작업에 투입할 리 없다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호령도 팀을 그대로 다시 꾸려서 데려올 줄이야.

개개인의 신상을 비밀리에 부치는 것이 지난 계약의 요체였다. 공숙선도 마찬가지였고, 이 중에서 고작 수고비를 탐내어 물귀신의 자리를 맞바꾸는 데에 힘을 보탠 인물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각자의 사회적 명성과 인망을 고려하면 거들어서는 안 될 주술이기도 했다.

그런데 강지헌이 미끼 귀신 윤상현을 달고 나타나서는 “네까짓 실력으론 이거 하나도 못 떼어 낼걸?” ―이러는 게 아닌가! 그 시발 새끼가!

물론 더 정중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도발은 도발이었다. 공숙선만 해도 약이 바짝 올랐더랬다.

다들 대놓고 ‘나는 무당 일을 합니다.’라고 밝힐 입장은 아니었다. 정체를 숨기면 숨겼지 이름값을 드높이고자 하는 공명심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접해 온 만신 조상희의 힘이 너무너무 궁금했고, 호승심 역시 자극당하고 말았다.

사정을 듣고 정의감에 타올라 나선 인물도 있다고 들었다.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왕처럼 군림하던 시골 양반 가문 윤 의원 일가의 패악이 오죽했어야지.

만신 조상희가 삿된 곳에 휘두르던 힘을 거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한 몫 했다.

‘뭔 개소리야. 힘이 있으면 그런 데에나 써먹어야지. 얻다 써? 아까운 힘을 왜 거둬들인다는 거야?’

공숙선은 그게 방향을 잘못짚은 정의감이라고 생각했다.

귀신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추구하며 온 세상이 귀신 천지이길 바라는 공숙선은 구마나 천도 따위에 힘을 보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 붙이고 잘 지내 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귀신을 떼어 내는 데 급급한 강지헌의 행태도 매정하게만 보였다. 아예 신령을 몸에 받아들여 사이좋게 공생하는 사람도 수두룩하건만 별거 아닌 잡귀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판타지 소설에도 유령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끼고 승승장구한다는 주인공이 제법 있지 않나? 신령과 계약하고 몸을 대 주면 인생 쉽게 살 수 있는데도 싫단다.

하여간에 강지헌, 어린놈이 사고가 꽉 틀어 막혀서는. 쯧쯧.

첫 만남에서 연륜으로도 찍어 눌리지 않았을 때 공숙선은 강지헌을 두고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착각했다. 전역 전 휴가를 나온 애송이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수장 노릇을 해 오던 공숙선을 상대로 한 치의 기세도 밀리지 않았던 거다.

강지헌은 공숙선의 사회적 지위나 나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태도로 협상에 임했고, 결국엔 호령도 공작에서 통솔권을 가져갔다. 나머지 법사나 도인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강지헌의 통제와 지시를 따른다는 조건으로 합류했을 거였다.

그러나 이후 담력은커녕 힘없는 잡귀 상대로도 벌벌 떠는 하찮은 모양새를 보고는 헛웃음만 나오고 말았다.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귀신에게 잡아먹히느냐 마느냐인 공숙선은 놈을 제물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서창경 역시 그가 기른 개니 인형이니 하며 공숙선이 강지헌을 우습게 보도록 줄곧 부추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먹잇감의 주먹맛을 본 후에는 다시 바짝 경계하게 됐지만.

아무 감정의 동요 없이 흥분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살벌한 새끼였다. 그 새끼는 사람 패려고 태권도를 배운 것이 틀림없었다.

서창경의 부모도 그 영상을 본 뒤엔 말 잘 듣고 공포에 질려 사는 줄 알았던 제물이 초식 동물이 아닌 육식과였다며 의외라는 감상을 전했다.

어쨌거나 호령도 건은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고자 사람을 해쳤던 모순 탓에 성공하고서도 떳떳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정의 구현 차원이든 뭐든 간에 생명이 붙은 사람 둘을 날려 버린 거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 것!’이 계약 조항이었을 텐데 무슨 수로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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