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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73)화 (73/96)

73화

어떤 협박을 듣고서 지방에 머무는 대부분이 꼭두새벽부터 헐레벌떡 납셨는지, 공숙선도 이들의 약점이 궁금했다. 이 일곱 사람을 정확히 찾아낸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강지헌이 계약을 위반하며 그때의 정보를 풀었을 리는 없다.

이혜준이 귀신 한정 유리 멘탈인 강지헌을 찔러 정보를 얻어 냈을 가능성도 적었다. 그는 강지헌이 이 건물 터주의 정체를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이기에 이 멤버들을 비롯해 호령도 일을 되새길 만한 어떤 일에도 침묵했으니까.

잘 숨겨 온 까닭에 오늘 아침만 해도 핵심을 모르는 강지헌은 그저 서창경이 마련해 준 거처를 떠나는구나, 라는 선에서 조심하며 집을 나섰다.

부적 제거 시급 알바에 동원된 일곱 인물과 공숙선은 골목 바깥의 승합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강지헌이 외출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소극장 건물로 접근했다. 차림새는 건물 담당 청소 업체에서 제공해 준 작업복 유니폼으로 통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극적이던 일곱은 건물 전체를 장악한 귀기를 확인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누구 하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도 없었건만 일곱은 음산한 기운의 발원지를 알아채고 지하실로 몰려갔다.

주술의 진원인 이 장소가 강지헌에게 일러둔 것처럼 별거 없는 공간일 수는 없었다.

‘너 시체하고 같이 살고 있다.’라고 하면 그놈의 멘탈이 나갈 터이기에 신단이고 위패고 다 지어낸 말이었다. 강지헌도 긴가민가하는 눈치였지만 어차피 지하로는 내려오지 못할 테니 아무 말이나 둘러대도 상관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서창경의 개 노릇을 해 오느라 습관처럼 제 주인이 금지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주인을 미덥잖아 하면서도 주인이 심어 준 공포에는 소홀하지 않게 반응했다.

공숙선 역시 얼마 전까지 몸주를 모시던 입장이기에 비밀리에 신단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몸주를 갈아탄 신명갈이를 한 셈이지만 새로 깃든 서양 귀신은 대한민국 무신계 물정을 몰라서인지 이 몸의 주인이 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신보다는 계약 파트너에 더 가까웠고, 신단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며 공숙선을 들볶는 일도 없었다.

대조적으로 전 몸주는 끊임없이 공양을 요구하던 귀신이라 아침저녁으로 바지런히 음식과 꽃으로 신단을 채워야 했다. 무당집 같은 분위기는 취향이 아니어서 절간처럼 꾸며 두고 제를 올렸더랬다. 조용하고 엄숙하며 신성함이 깃든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지하실은 어떻게 봐도 종교 의식을 치르는 장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실이라면 또 모를까.

꺾은 계단을 내려가자, 여덟을 환영하듯 두꺼운 철제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평소엔 잠겨 있는데 먼저 건물에 들어와 있던 이혜준이 열어 둔 모양이다.

가장 먼저 대형 산업용 발전기 두 대가 그들을 맞았다. 일부러 입구를 좁히며 장승처럼 세워 둔 장치였다.

공숙선에 앞서 지하실을 관리했던 무속인은 풍수도 읽을 줄 알아 이처럼 내부의 토주를 수호하듯 발전기를 배치했다고 한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요란하진 않아도 냉장고 소음보다는 시끄러워서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다.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스산하게 지하를 맴돌았다.

일행은 조바심을 내며 컨테이너 규모의 두 기계 사이를 일렬로 지나쳤다. 행동은 신중했지만 이 방면의 대가들답게 들어가기 싫고 앞장서기 무섭다고 빼는 사람은 없었다.

극장으로 이용하던 너른 지하실의 용도는 이제 딱 한 가지, 시체 보관이 전부였다. 바닥에 깔린 굵고 기다란 전선들은 대부분 중앙에 놓인 냉동 장치로 몰려 있었다. 나머지 전선은 냉동 장치에서 뿜어지는 열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여러 대의 실외기와 연결된 상태였고.

천장 곳곳에 사각지대 없이 돔형의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실시간 확인은 물론이거니와 정상적인 녹화 기능도 상실한 지 좀 됐다. 서창경의 본가로 넘어가는 자료는 모조리 조작된 영상이었다.

덕분에 카메라를 의식할 필요 없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다.

똑같은 시급 알바인 척하며 무리에 섞여들었던 공숙선이 돌발 행동을 했다. 불쑥 튀어 나가 냉동 기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관의 뚜껑을 힘껏 밀어젖혔다.

“어. 어엇!”

“이, 이보세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렇게 함부로 손대지 마시고!”

모두의 기함 속에서도 공숙선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짠! 여러분, 이것이 바로 내 작품입니다아~.’

솜씨를 발휘해 정성껏 관리해 왔는데 자랑할 관중이 없어서 그간 아쉬웠더랬다.

“아니! 누가 이런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해 놓았을까요.”

‘나야 나!’

속내를 감춘 공숙선이 혀를 차며 깊이 탄식했다.

첫머리를 풀어 주자, 경계심에 움츠러들었던 나머지 일곱도 주춤주춤 관 앞으로 다가섰다.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워진 까닭은 관 안에 든 핏기 없는 안색의 젊은 남자 탓만은 아니었다. 부패를 막고자 얼려 놓아 생장할 리 없는 시신의 손톱이 갈퀴처럼 기다랗게 자라나 있어서였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손톱은 길이가 20센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그 섬뜩한 모양새와 관 주변으로 내뿜어지는 사특한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이상 신호였다.

“도대체 이 청년에게 얼마나 깊은 원한이 있기에 영면에도 들지 못하게끔 이런 끔찍한 술법을 걸어 두었을까요.”

키가 큰 중년 여성이 시신의 상태를 살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무고한 사람을 저주에 악용했다고 넘겨짚은 거다.

‘서창경 스스로 이곳에다 뿌리를 내린 건데? 우리 동업 관계에서 원한 같은 건 없었다고.’

공숙선이 웃음을 눌러 참으며 속으로 대꾸했다.

상성이라면 오히려 새로운 동업자인 이혜준보다 훨씬 나은 편이었다. 죽은 서창경이 공숙선을 고른 이유도 구마니 진혼이니 하는 재수 없는 짓을 일절 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뼛속까지 살기에 찌든 것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교집합이 많은 좋은 친구였지만, 이젠 잘 가라!

‘이건 또 누구야?’

공숙선을 붙들어 두고자 서창경의 부모가 조금씩 흘려 준 떡밥에 의하면, 이 여자는 자격도 없이 진맥하고 침을 놓아 주는 사이비 한의사 양반일 확률이 높았다. 무면허 시술의 달인인 그는 기 치료 등을 맹신하는 말기 암 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메시아 그 자체였다. 암 센터 의료인조차 이 사람보다 더 추앙받진 않을 것이다.

역시 살아 있는 신으로 승격하려면 전통 무용 나부랭이를 전공하는 것보단 신력을 광고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훌륭한 예시였다.

마침 이혜준의 외가가 불교에서 파생된―파생됐다고 주장하는― 어느 교단의 핵심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저를 비어 있는 대종사 자리의 후보로 세워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낸 터라 공숙선은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생긴 지 150년도 되지 않는 그 신흥 종교 단체의 정식 명칭은 <대한 극락 불토 수양회>였고, 이름만 들어도 수상쩍은 이단 냄새가 풀풀 났다. 실제로도 한때는 이단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집단이다.

수양회는 장학 재단이며 사학 재단을 설립해 해외 포교 활동을 할 정도로 자금력이 빵빵했다. 뒤에 세경 그룹이 버티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곳저곳 잔뜩 돈 칠을 한 결과 지금은 이색 종교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된 상황이다.

신도에게 금전을 뜯지도 않고, 길거리나 대인 전도 등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접근하지 않는 까닭에 점잖은 종교 단체로 평가되기도 했다.

사람 구하는 수행엔 관심이 없지만, 공숙선이 중생을 구하고자 아래 세상에 내려온 미륵 메시아 노릇을 하기에 최적의 판이 깔렸다. 미래의 직장, 수양회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공숙선은 좋았던 동료 서창경을 배신할 작정이었다.

“허-. 여기 이 시신이 신위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런데 그릇에 머물러야 할 혼백은 어디로 갔을꼬.”

청소 업체가 제공한 모자 아래로 성성한 백발이 보이는 노인이 이 시신에 들어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관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레둘레했다.

그러게?

공숙선 역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터주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곳은 언제나 그들이 일을 꾸미는 만남의 장소였는데 말이다. 도력과 법력으로 무장한 일곱 수행자의 침입에 수적 열세가 부담스럽다고 부딪혀 보기도 전에 내빼는 건 서창경답지 않았다.

의문도 잠시,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터주의 부재 이유를 짐작했다.

“여러분은 위층으로 가서 부적 떼고 벽 청소를 해 주시라니까 지하실엔 뭐 하러 몰려와 계세요?”

승강기 문이 열리며, 캡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택배 회사 조끼를 입은 이혜준을 필두로 검은 정장 바지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 와이셔츠 차림새의 남자 예닐곱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특이할 것 없는 복장이지만 공숙선은 이내 저들이 교단에서 나온 신도임을 알아보았다. 곧 그의 수족이 될 신도들을 훑어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어떤 장소인 줄 들었을 텐데도 몸을 사리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서창경 애비 에미보다 낫네. 윗선에서 시키는 일은 뭐라도 복종하는 분위기잖아? 좋아, 좋아.’

종교로 머리가 어떻게 된 인간들은 언제 보아도 바람직했다. 비록 그는 무신에 미쳤지만 사이비 집단에 몸담은 자들보다는 제정신이기에 저들을 잘 다스릴 자신이 있었다.

격이 높은 챤 발름 요팟조차 껄끄러워하는 이혜준의 등장에 터주는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처럼 보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특이함은 이미 알았다손 치더라도, 이처럼 근접하기 전까진 이혜준의 위험천만한 기운을 읽어 내지 못했을 테지.

신령과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가고픈 공숙선은 흉악한 괴물 놈의 등장에 기겁해서 내뺐을 옛 친구를 생각하면 속상했다.

이혜준 같은 변종이 튀어나오다니, 이 불공평한 세상은 귀신을 두 번 죽일 작정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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