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74)화 (74/96)

74화

챤 발름 요팟이 말하길, 인간 아닌 존재라면 누구나 이혜준을 마주했을 때 소멸의 공포를 감지할 것이라고 했다. 천도도 내세도 없고 흙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존재 자체가 말살되는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 말이다.

그처럼 귀신의 혼백까지 흩어지게 하는 영살靈殺은 무속인도 금기시하는 지독한 짓이었다. 신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선 영살을 시도하지 않는다.

이혜준의 본가에서도 몰이를 당하듯 수천 년 묵은 신령들이 체통을 잃고서 이쪽저쪽 우르르 도망치기에 바빴다. 무슨 결계를 둘렀는지는 몰라도 신령들은 그 저택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처 피하지 못해 밟혀 죽은 신령도 있고, 우연히 휘두른 손이나 팔꿈치에 잘못 맞아 격이 쪼그라든 신령도 수두룩하다고 들었다.

죽은 자에겐 저놈의 걸음걸음이 재앙이란 뜻이다.

편 먹고 움직이는 챤 발름 요팟조차 움츠리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곳 터주가 처음 접하는 재앙에 기겁해 물러난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 지독한 주술을 내버려 둔 채 태평하게 벽 청소나 할 순 없잖습니까.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우선 이 관부터 해결해야지요.”

어느 도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자, 일행도 그게 순서라는 듯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숙선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날 것 같아 시급 알바 무리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갔다.

‘씹. 도덕군자들 납셨네. 역시 나는 이것들하고 안 맞아. 모인 김에 여기서 모조리 뒈져 버렸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고귀한 신분이었던 챤 발름 요팟은 이런 하찮은 제물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의 피라미드 제단에 드러누워 심장을 뜯기려면 이 도시의 왕―서울 시장―쯤 돼야 겨우 자격이 갖추어졌다.

“시신이 건물 터의 귀기를 돌리는 동력 장치라면서요. 이 배터리만 빼 가면 이제 전기 에너지를 빨아들일 일은 없겠네.”

이혜준이 간단히 해결책을 제시했다. 배터리는 서창경의 시신이고, 에너지는 강지헌의 생기.

더 이상 생기를 빼앗기지 않고자 빼앗는 주체를 없애 버리겠다는 얘기였다.

“이걸 어디로 가져간다는 말씀이세요?”

“함부로 옮기면 안 됩니다!”

“지박령을 풀어 주면 당장 위험해질 사람이 있을 텐데도?”

무리의 항의에 공숙선도 말을 얹었다. 염려 따윈 하지 않았고, 배터리의 주인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된다면 일이 한층 더 재미있어지겠다고 기대하면서.

서창경이 강지헌을 이 소굴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떠보았다. 터주로 지낼 때보다는 힘이야 좀 잃겠지만 설마 강지헌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할까.

“그 전에 결착이 나게끔 해야죠. 이 물건의 처리는 제 소관이고, 이 터에 둥지 튼 것을 상대할 사람도 저예요. 여러분은 맡은 일만 실수 없이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이혜준이 오지랖 떨지 말고 당신들 임무나 완수하라며 내쫓았다. 무슨 약점이 잡혔는지 일곱은 금세 얌전해져서는 그의 지시를 따랐다.

“층계참에도 부적이 많이 붙어 있더라고요. 슬슬 걸어 올라가면서 제거해 주시면 되겠네요.”

편하게 승강기를 이용하려던 시급 알바 어르신들이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 건물은 층고가 높아 계단 개수가 상당했던 탓이다.

“그런데 공 선생님은 무슨 일로 남아 계시죠?”

시선을 피하느라 눈빛을 읽을 순 없지만 정중한 척 구는 말투가 쓰레기 너도 어서 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원래 감독관은 마지막에 움직이는 거야. 그거 수양회로 가져가려고?”

위에서 기다리는 건 육체노동밖에 없기에 이 인간들이 뭘 할 셈인지 구경이나 하며 미적거릴 셈이었다.

‘부적 붙인 새끼, 주리를 틀고 싶은데 내가 저지른 일이라서 참는다.’

교구 신도들이 두꺼운 골판지를 조립하자, 곳곳에 손잡이용 구멍이 뚫린 포장 상자 형태가 만들어졌다. 관 크기에 짜 맞춰 왔는지 부피가 얼추 맞아떨어졌다.

“아니, 달리 선물할 데가 있어서요.”

“……아! 어딘지 알겠다. 나도 같이 갈까?”

추측하는 장소가 맞는다면 시퍼렇게 썩어들어 가는 임원주 부부의 낯짝을 구경할 수 있을 터였다.

이 귀신 터를 가동하는 경제적 기반을 날려 버리겠다더니 그 위에 기똥찬 선물까지 하나 더 얹어 줄 셈인가 보다. 오늘은 임원주 부부가 임원으로 있는 병원의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고, 의결 주제는 비리 병원장의 해임과 고소라고 알고 있다.

신령을 상대할 땐 신령의 힘을 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 왔건만, 이혜준의 해결책은 노선이 달랐다. 서양 귀신을 끌어들였으나 그건 순전히 강지헌 달래기 용도였고, 이 남자는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 했다.

그러니까 전국적으로 내로라하는 신력의 소유자들을 불러다 벽보 떼기에나 활용하지.

이렇게까지 무신에 아무런 기대도 신뢰도 없는 인간은 처음 보았다.

만약 저 시급 알바 일곱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강지헌을 설득해 그를 무신의 세계로부터 끌어내는 데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거라는 생각 같았다. 어떡하든 무신의 도움은 구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절절히 전해졌다.

“공 선생님은 그쪽에서 걸려 오는 연락이나 성의껏 응대해 주세요.”

“그것도 좋겠지.”

동동거리는 임원주 부부를 만나 주지 않고 골리는 일도 재미있어 보였다.

“…….”

이혜준이 관과 이어진 두툼한 케이블을 툭툭 뽑아내다 말고 우두커니 시신을 응시했다. 서창경의 얼굴은 생전의 사진을 통해 확인해 뒀을 텐데도 새삼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는 흉신이 된 시신을 앞에 두고도 수십 년 수양을 쌓아 온 도인들보다도 더욱 태연해 보였다.

문득 이혜준의 속을 들쑤시고 싶어졌다.

“괜찮게 생겼지. 강지헌 걔가 이렇게 서늘한 인상의 미남을 좋아하더라? 이런 짓 저런 짓 당하면서도 여태 서창경 곁에 붙어 있었던 이유가 뭐겠어. 그놈 취향이라니까.”

“강지헌 이상형은 내가 꿰뚫고 있으니까 헛소리 집어치우세요.”

“그래? 나도 그동안 지켜보니까 걔 이상형이 절대 이혜준 씨 아닌 건 꿰뚫어 보겠더라고. 크크큭.”

“쓰레기, 옛 친구 시체 옆에서 엉엉 울어 볼래요? 장례식장 분위기 연출하게 해 줄까?”

이혜준이 신도들 앞이라고 차려 주던 예의를 접고 이를 드러냈다.

“……!”

다시 찾아올 고통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장래 종교 지도자로서의 위신이 떨어질까 봐 신경 쓰였다.

시간이 흐르자 아파서 눈물 콧물 빼내던 기억은 바랬고, 이혜준의 본가에 득실거리는 신령들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뷔페 상차림을 보는 것처럼 상상만으로도 포만감이 들었다.

‘그래, 눈깔이 아파서 우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 지금 붙은 서양 귀신을 잃으면 또 다른 신령을 골라잡으면 되니까.’

공숙선은 서창경 일가를 배신하듯이 챤 발름 요팟 역시 경우에 따라 언제든 내다 버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다.

또, 이혜준을 경계했지만 챤 발름 요팟처럼 그를 두려워하면서 바들바들 떨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기어올라 본 건데 본전도 못 건지게 생겼다.

“징징 짜면 어때. 챤 씨가 떨어져 나가도 괜찮잖아요. 정령이라면 또 골라잡으면 되지.”

가끔은 이 새끼가 저보다 더 큰 신을 내림 받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속마음을 읽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이고 진짜, 내가 농담 한번 꺼내 봤어요! 큼큼. 나는 여태 혜준 씨하고 지헌 씨처럼 근사하게 어울리는 커플을 본 적이 없다니깐요? 큼큼.”

눈짓을 보내는 대신에 체면 좀 세워 달라고 연신 헛기침을 뱉어 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신도들은 묵묵히 제 할 일에만 열중할 뿐 두 사람의 대화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그들은 연결된 전선을 모조리 제거하고 운반 수레 위로 상자를 펼쳐 놓은 다음 뒤로 물러섰다. 들은 얘기가 있었는지 관에 직접 손을 대는 만용은 부리지 않았다.

본가에서도 오직 이혜준만이 액이 낀 유물을 건드렸다. 저 게으른 몸뚱어리에 붙은 근육은 전부 유물을 운반하는 노동을 하느라 생긴 결과물이었다.

“남 일에는 신경 끄시고 댁이 저질러 놓은 쓰레기나 치우러 가세요. 자기가 버린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고 있는데 할 일 안 하고 노닥거리려고 드네. 이분은 양심을 어디 가져다 팔았어.”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어 줬건만, 이혜준은 좋아하는 기색 한 톨 없이 공숙선을 나무랐다.

‘양심? 그 쓸모없는 걸 뭐 하러 키워? 양심 쪼가리라도 있었다면 애초에 이곳을 부적으로 도배해서 강지헌을 반귀신으로 만들 생각을 했겠냐고?’

“알았어요. 지금 바로 올라가서 리더로서 열심히 작업을 진두지휘하겠습니다.”

인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마음이 앞서 달려가 공숙선의 지위는 이미 저 일곱 도인의 위대한 지도자였다.

“계단을 이용하세요. 걸어 다녀요, 좀. 공 선생님도 이제 연세가 있는데 다리 근력 운동에 신경 쓰셔야지.”

그러는 저는 승강기를 타고 내려왔으면서!

호래자식 새끼가, 제 아버지 승용차를 가로채서 몰고 다니면서 지껄이는 소릴 여기서 꺼낸다. 자기는 굴러다니느라 하루에 오십 걸음도 걷지 않고 사는 주제에.

강지헌이 부를 때에나 부리나케 달려가지.

“아하하. 그래야죠.”

다소곳하게 방향을 바꾸어 지하실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가증스럽게 그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 진짜 순종적인 매력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니까. 말 잘 듣고 착해.”

뇌 새김이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인가. 처음엔 욱하던 저 대사도 하루에 열두 번씩 듣다 보니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반응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쓰레기인지 슬그머니 의문도 피어오르고, 이젠 그러려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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