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75)화 (75/96)

75화

<제4-3장>
그날, 강지헌

이혜준은 인파가 넘치는 경영대에 잠깐 다녀가더니 정신이 너덜너덜해져서는 오후 내내 지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전공 과목만 남은 그는 매번 경영학도들에게 둘러싸여 수업을 들어야 할 텐데 저토록 낯을 가리고 체력도 저질이라 과연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졸업이 가능할지 마음이 쓰였다.

결국 술꾼들이 우글거릴 산공 개총 뒤풀이에는 그를 데려가지 않기로 했다. 거기에 갔다간 반나절이 아니라 일주일을 앓아누울 각이 나와서다.

―그거하고 강지 씨가 불참하는 거하고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죠? 댁의 애긴 혼자선 집에 못 갈 정도로 편찮으시대요?

통화 상대인 김재원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내 애기 아니라고, 이 자식아. 혜준 선배님 앞에선 진짜 입조심해라. 말이 씨가 될까 봐 무섭잖아.”

―씨가 되면 어때서. 뭐가 문제야? 그 형이 무척추 연체동물인 게 그렇게도 큰 걸림돌인가? 평생 가도 너한테 그렇게 콩깍지 씌고 눈깔 삔 남자를 또 어디서 만나죠? 자꾸 드러누우려는 지병쯤은 눈감아 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건 응원이 아니라, 똑바로 앉혀 둬도 어느 순간 등뼈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흐물거리는 자세가 돼 버리는 이혜준을 멕이는 거였다. 잠시 한눈팔다가 돌아보면 당연한 듯이 또 드러누워 있다.

자기가 그 연체동물을 수습할 사람이 아니라고 김재원이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무엇보다 이혜준이 나한테 콩깍지가 씌었다는데 그걸 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지 모를 일이다. 당사자인 나조차 실감이 나지 않아서 어리둥절한데 말이다.

고용주에겐 내 존재가 그 기괴한 취미 생활에라도 쓸모가 있었지. 이혜준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필요 없는 완전체이고, 나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에게 줄 것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내 쪽에서 의존하는, 공평한 거래가 성립되기 어려운 관계였다.

어쨌거나 이런 화제에서 그분의 게으름을 편들어 주거나 흥분했다간 김재원의 도발에 휘말려 놀림감이 될 뿐이다. 신경 쓰지 않는 척 미적지근하게 대꾸한 뒤 연락한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어, 나는 그런 지병은 감당이 안 된다. 아무튼 애들한테 안부 전해 주고 다음에 한 번 날 잡아서 보자고 해.”

―앞으로 강지 씨는 자기 애기 돌보느라 바빠서 동창들 얼굴 볼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김재원아, 이거 그냥 새로 구한 운전 알바라고. 헛물켜지 마라. 너 자꾸 나대면 나도 호빵이랑 너 사이에 끼어들어서 훼방 놓는 수가 있거든. 요즘 재미 좋지? 근데 네가 걔한테 아무리 잘해 줘 봤자 아직까진 자기 학부 선배를 더 따르고 챙기더라고. 잘 생각해 봐, 응?”

―말 나온 김에 제발 끼어들어 와 주라. 너 있으면 브레이크 장착한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놓이지. 오늘 아침에 기식에서 만났는데 호빵이 얼굴이 완전 빵떡 돼 가지곤 미치도록 귀여웠거든? 그 자리에서 유시호 얼굴 터뜨리고 살인마 될 뻔했잖아. 눈두덩도 퉁퉁 부어서 눈도 제대로 못 떠. 크크. 앞으로도 계속해서 야식을 퍼먹여야겠어.

협박해 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매의 눈과도 같은 이혜준의 감시가 무서워서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협박이란 사실을 이놈도 눈치챈 걸까.

“산공 김재원 무죄.”

―감사합니다, 재판관님. 그리고 너 전에 하던 알바 그만뒀다니 다행이다. 그럼 일은 다 해결된 거지?

김재원도 내가 수상쩍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로 학교도 뒷전으로 두고 점점 상태가 이상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겐 나중에 전부 설명하겠다며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아니, 아직인데…… 조만간 너한테도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꼭 그러길 바랐다.

도움을 주려고 늘 대기 중이던 녀석이 섭섭해할까 봐 이혜준과 함께 움직인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방상시급의 인물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전화를 끊고, 후문 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인문대로 돌렸다. 이 무렵 대학가 사정은 어딜 가나 붐빌 게 뻔하기에 한산한 교직원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해가 지는 캠퍼스를 빠져나가는 가운데 혼자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었다.

“안녕하세요.”

스쳐 지나는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해 왔다.

“……?”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서창경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붙은 습관이다. 낌새가 수상할 땐 이름을 불려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걸 삼세번만 무사히 넘기면 귀신에게서 벗어난다는 설이 도는데, 그런 수월한 퇴치 방법이 있다면 세상에 귀신에게 홀리는 사람이 없게.

인간이 방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걸 사람 탓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귀신이 작정하면 한밤중에 홀로 걷는 산길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이 오가는 어수선한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들러붙는다. 오히려 산 사람인 척 섞여들기 쉬웠다.

귀신이 해코지하려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둔감하거나 그것들이 꺼리는 특별한 기운을 지니지 않는 이상, 어찌할 도리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사고 같은 거였다.

나처럼 평범한 인간이 무슨 수로 신령을 상대하겠냐고. 방상시, 방상시, 방상시…….

점차 움츠러드는 마음을 깨닫고 부적을 소환하듯 머릿속으로 이혜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친구, 나 모르겠어요? 나 유시호 룸메예요. 만나면 밥 사 준다며.”

서늘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역시 이거 사람이 아닌 거지?

“…….”

“친구의 친구가 도와 달라고 날 찾아왔더라고. 전문가를 제대로 알아본 거지.”

“…….”

“와, 진짜 걷는 거야 달리는 거야! 속도 좀 늦춰 봐요.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라던데?”

“…….”

“윤상현 씨 몰라요?”

“……!”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 내 발목을 붙들었다. 우뚝 멈춰서 돌아보았다.

싸한 기분이 들더라니 취미 활동으로 오컬트를 과하게 즐기는 복학생, 지리교육이었다. 어이없게도 얌전히 숨죽이고 있을 줄 알았던 윤상현이 이쪽으로 옮겨 붙은 듯했다.

그나저나 이 인간도 일단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어째서 귀신이 접근했다고 착각했을까. 과몰입 탓에 반귀신이 다 된 몰골이라서 그런가?

보면 볼수록 개놈의 닮은꼴이다.

다행이라면 목적지에서 이혜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그에게라면 사람이든 아니든 무엇을 달고 가더라도 문제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상대방에게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 건 지리교육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친구, 지금 몸에 뭐 지니고 있어요?”

지리교육이 찜찜해하는 시선으로 나를 위아래로 쭉 훑었다.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웃음이 스며 나왔다. 이혜준과 시간을 보낸 후 소극장 건물 앞에서 공숙선을 마주쳤을 때 어디 축사 기도회에라도 다녀왔느냐는 말까지 들은 전적이 있으니까.

과거의 나를 비롯해, 귀신 붙은 인간들은 하나같이 이혜준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왜요.”

“소름 끼치긴 한데 친구한테서 나는 기운은 아닌 것 같고……. 거참 수상하네. 불쾌한 거 말곤 별 영향이 없어 보이니 뭐, 일단 됐어요. 윤상현 씨 얘기로 돌아가서, 친구, 내가 도와줄게요. 나만 믿어요. 나 이런 거 완전 잘하잖아.”

지리교육은 나를 쫓아오느라 힘들었는지 연신 숨을 헐떡이면서도 근거 없는 자신감만은 여전했다.

무신이라는 수렁에 빠진 이 돼지 새끼를 어떻게 건져 내야 할지 막막했다. 당장 나조차 내 앞가림을 못하는 처지에 귀신 불러내서 노는 짓 그만두라는 충고를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선배님이 애쓰실 필요는 없고요, 윤상현한테는 괜히 나서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전해 주세요. 고용주 일이 해결되면 아는 무속인을 찾아가서 천도재를 지내 줄 테니까.”

불쑥 윤 의원 집안에 연락해 ‘윤상현이 여태 이승에 머물고 있으니까 천도재 한 번만 더 지내 주십시오.’라고 요구할 순 없었다. 거긴 지금 윤 의원의 형제들과 그 자식들 간에 서열 싸움, 재산 싸움이 나서 아수라장이라고도 들었고, 나는 여전히 그 집안의 풍비박산을 기원했다.

윤상현의 넋을 떠나보내는 일은 내 손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그나저나 서창경에게 매여 있다더니 무슨 수로 벗어났을까.

선업을 쌓고자 갈 곳 잃은 혼백을 도와 왔다는 서창경의 거짓말을 이제는 믿지 않았다. 그가 제 손에 들어온 윤상현의 넋을 고이 풀어 줄 리가 없는데 수상쩍었다.

연락도 없고, 역시나 서창경의 일신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이 친구는 떠나기 싫다는데 천도재는 무슨 천도재? 영가가 싫어하는 짓은 함부로 하지 마세요. 다 자기 업보로 돌아온다고.”

죽은 놈 편드는 꼴이 마치 공숙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가 산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는지 공숙선은 무조건 귀신 입장에서 대변했다. 그래서 ‘천도재 = 매정한 짓, 귀신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짓’ 이런 자체 공식도 창조해 내고.

공숙선과 서창경을 반반씩 섞어 놓은 듯한 지리교육의 행태에 그저 암울해졌다. 수많은 인간 군상 중에서도 하필이면 내가 다룰 줄 모르는 족속들이라.

“왜 싫은데. 남아서 뭐 하려고.”

“사정 얘기 전부 들었어요. 둘이 영결식까지 한 애틋한 사이인데 강제로 떨어져 나갔다며.”

여기서 ‘애틋’이 왜 튀어나와?

“그래서요?”

“친구 사주에 혼사 운이 세 개나 끼었다면서요. 완전 부럽다. 현실에선 장가 한 번 가기도 어려운데 말이죠.”

“그게 이미 떨어져 나가서 남남이 된 윤상현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돌아올 대답은 짐작이 갔다. 그새 놈의 마음이 바뀐 거다. 결정적인 이유는 뻔했다. 개놈에게서 자유로워지자 다시 욕심을 부릴 만한 상황으로 돌아왔다는 것.

시발 누가 윤 의원 핏줄 아니라고 할까 봐 인성 꼬락서니 하고는.

미안하다며.

나한테, 우리 식구들한테 미안하다며 윤상현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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