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귀안 틔우는 도구인가 보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잖아도 돌칼 정령과의 영결식에 필요하던 참이었다. 공숙선이 이 부적을 준비해 줄 거라고 했을 때 이혜준이 반대했다. 결혼하는 데 반드시 배우자의 생김새를 확인할 이유가 없다는 해괴한 논리였다.
나도 굳이 돌칼 정령의 얼굴을 보고 싶진 않았다. 가뜩이나 두개골이 손상된 해골이 잔뜩 출토되는 지역 출신인데 무슨 험한 꼴을 보려고.
하지만 예물로 딸려오는 흑요석 돌칼만은 내 눈에 직접 담아 챙기고 싶었다.
이혜준은 돌칼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니까 무기로써 휘두를 생각은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저 호신부로만 여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호신은 방어만을 뜻하지 않았다. 기껏 신령을 상대할 도구를 손에 넣었는데 가만히 들고만 있는 것도 아깝잖아. 신령을 벨 수 있다면 반드시 사용해야지.
만약 윤상현이 천도재를 거부하고 평생토록 내 주변에 엉겨 붙을 작정이라면, 그놈이 흑요석 돌칼의 첫 번째 시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윤상현, 내가 잘못돼서 목숨을 잃더라도 너하고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고. 기다려 봤자 아무 소용 없어. 날 돕는 척 접근해도 속지 않아.’
두 사람을 얽매던 주술의 속박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말려들 순 없었다. 지리교육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사실만을 머리에 새겼다.
“뭐래. 귀안 아니고 영안! 암튼 그거랑 비슷해요. 서서히 효과가 드러나니까 몸에서 한시도 떼어 놓지 마세요. 꼭!”
“예. 고맙게 잘 사용하겠습니다.”
서로의 연락처와 함께 진심을 숨긴 거짓말이 오갔다.
“내가 신령을 보는 눈을 가지려고 몇 년 동안이나 노력했는지 알아요? 다른 사람이 오랜 시간 투자하고 수행해서 얻은 결과물을 이처럼 쉽사리 손에 넣다니 친구는 얼마나 운이 좋아. 완전 떠먹여 주는 밥이지. 거부하면 양심 없는 거예요.”
불길한 거 던져 주면서 별 지랄을 다 했다.
∞ ∞ ∞
―그래 잘했어. 어디 떨어뜨리지 말고 조심해서 들고 와. 무서우면 내가 마중 나가 있을까?
자칭 저주받은 유물의 정화 전문가가 말했다.
“안 무서워요.”
―진짜?
“조금 찜찜한 게 다예요. 음식 주문했다면서. 앉아 계세요. 나 곧 도착합니다.”
역시 방상시 효과.
전화로 이혜준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꺼림칙함이 훅 가라앉았다. 가방에 넣기도 꺼려져서 바퀴벌레를 옮기듯 휴지에 감싼 호부를 손가락 두 개로 잡아 쥐고 걸었다. 그것도 내 몸에서 되도록 멀찍이 떨어뜨리면서.
교직원 식당 건물을 목전에 둔 연못을 지날 때였다.
“안녕하세요. 경영 강지 씨랬나?”
누가 또 아는 척을 해 왔다. 인문대 근처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라곤 인골파 조직원들밖에 없었다. 예의 없다는 욕을 듣더라도 내가 액이 낀 상태이기에 당장은 엮이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무시하고 걸었다.
“…….”
“시호네 학과 선배 아니에요? 나 유시호 룸메! 접때 내가 해 준 대만 귀신 괴담 듣고선 퍼렇게 질려서 도망쳤잖아요, 왜!”
아니다. 듣고 보니 날 알 만한 인간이 한 명 더 있었다. 그것도 같은 고고미술사학 짬뽕과에서.
뭐, 도망을 가? 이 새끼가 말을 참 예쁘게도 씨불이네?
학기 첫날에 놈의 전공 올 F를 기원했다.
“…….”
그래도 미운 말 한마디 했다고 동티가 되게 할 순 없어서 영향을 받지 않게끔 바깥으로 내밀고 있던 호부를 내 쪽으로 거둬들였다. 잔정 없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 나도 선은 지켰다. 이놈이나 나나 방어력 없는 물몸이지만 뻔히 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기는 어려웠다.
순간적으로 향낭이 뿜어내는 향기가 후각을 덮쳤다. 코를 가져다 대지도 않았건만 조그마한 주머니에서 발산되는 향이 지나치게 짙었다. 어째서인지 오래전부터 각인된 꽃향기가 여기서 재현됐다.
돌칼 정령이 일러 주기 전까지 소극장 건물 내부, 특히 내 침실에서 진동하던 이 꽃향기를 나는 방향제로 착각해 왔다. 원산지가 돌칼 정령의 출신 지역인 독말풀은 예로부터 천연 환각 물질로 사용됐다고 한다. 내가 흡입해 온 건 그 변종 식물에서 나온 성분이었다.
그날 돌칼 정령의 지적이 끝나자마자 수습해야겠다 싶었는지 공숙선 본체가 튀어나왔다. 수상할 정도로 길길이 날뛰면서 환각제 같은 거 저는 절대절대절대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그래서 더더욱 그 새끼가 주도한 일이었음을 확신했다.
「쓰레기 본인도 몰랐던 일을 챤 씨가 무슨 수로 아는데?」
이혜준이 정곡을 찔렀다. 돌칼 정령이 아는 소극장 내부의 사건 사고는 대부분이 공숙선 본체의 기억에서 읽어 낸 정보인 까닭이다.
「강지 너도 새겨들어.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지능지수가 상승하고 삼라만상을 깨우치고 절대 지식에 통달해서 인공위성을 설계해 우주로 쏘아 보낼 순 없는 거잖아. 지식이 있어 봤자 생전 그대로고 자기가 알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법이야. 귀신은 만능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가 없어. 쓰레기 보면 딱 답이 나오잖아. 본체 아이큐가 50밖에 안 되니까 챤 씨 뇌 용량도 저 모양이지. 너는 별 근거도 없이 귀신한테만 후한 점수를 주더라? 대단하게 올려 치지 마.」
「…….」
모욕적인 언사에 공숙선이 게거품을 물었지만 나는 그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내가 신령이 가진 능력을 부풀려 생각한다고?
「개천사가 사령을 부리며 농간질을 한다 해도 위축될 이유가 없는 게 우리가 지금 외과 수술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니까. 개천사가 다시 태어나서 전공을 IT로 바꾸고 빡세게 공부한들 정보를 다루는 내 기술을 넘어설까? 이 판은 내 방식으로 이끌어 갈 테니까 넌 무신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도록 해.」
─라는 그의 설득은 실패해서,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이혜준 몰래 ‘오늘의 운세’를 체크하고 왔다.
IT, 노, 노.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범국민적 과학은 토정비결이지.
내 주변에는 유사 ‘과학’인 타로 카드 운세나 별자리 운세, MBTI 신봉자도 수두룩했다.
무엇보다 신령을 상대로 첨단 과학 기술 어쩌고 하는 해결책은 미덥지가 않았다. 귀신에겐 먹히지도 않을 총 쏘고 대포 쏘는 광경을 보는 기분?
지금만 해도 오직 방상시의 정화만을 바라며 이 호부를 이혜준에게 들고 가는 길이었다. 뭐가 잘못될까 봐서 불을 붙여 향낭을 태우는 것조차 두려웠다.
정화한 다음에 태워야지. 또, 나처럼 신력도 없는 사람이 함부로 처리해선 안 되고 꼭 돌칼 정령이나 공숙선한테 맡겨야 해.
이게 내 뇌리에 박힌 순서였다. 실체 없는 존재를 상대하며 과학을 논하기엔 아직 무신에 염색된 물이 덜 빠진 상태였다.
그나저나 지리교육 새끼가 이제 불법 환각제 제조에까지 손을 대네. 후우-.
도로 뱉어 내는 시늉을 했지만 이미 후각에 침투한 냄새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현기증이나 구토 증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느낌만이 감돌았다. ‘이게 다행스러울 일인가? 아무런 자극도 없다는 건 중독될 대로 중독됐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끓어올랐지만.
그래 봤자, 강지헌의 의식 교란에는 효과가 없었던 환각 물질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소극장 건물 안에서 귀신이나 헛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야. 왜 자꾸 모른 척해? 할 얘기가 있다니까?”
고고학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내가 작정하고 속도를 내는데 이 왜소하고 보폭도 짧은 놈이 지치지도 않은 채 내 발걸음에 맞추어 쫓아오는 것이 의외였다.
보기보다 체력이 되네? 인간아, 액 옮는다. 제발 저리 가라.
“…….”
“유시호 이름을 팔아도 통하지가 않아? 기어이 내가 죽어 줘야 돌아보겠어? 그래, 나만 죽으면 되는 거지?”
뭐?
불길한 기척에 돌아보자, 고고학이 산책로의 나무다리 끝에서 연못에다 머리를 처박을 기세로 상반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고고학의 목덜미를 낚아채며 그때서야 관심 없이 지나치던 주변 상황을 인식했다. 평소 유동 인구가 상당한 연못 주변이 유난히 고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주술에 걸려든 것 같은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걸려든 건지, 정말로 들고 있는 이 향낭 탓인지, 내 행동을 되짚어 보는 머릿속으로 꽃향기보다 더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내 꼭두각시야, 널 데리러 왔어.』
도통 만나지 못했던 서창경이 연못 속에 잠긴 채 나를 향해 음산하게 손짓했다.
아무래도 오늘 이 인간이 날 물귀신으로 만들 작정인가 보다. 그러나 자진해서 물에 뛰어들고픈 생각은 들지 않으니 내 정신은 아직 멀쩡했다. 그럴 것이다. 홀린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가까스로 환각에서 눈을 떼고 수상쩍은 실물 고고학을 돌아봤다.
물가에는 고고학, 물속에 비친 그의 상은 서창경. 그러니까 서창경의 본체는 이곳에 없고 고고학의 몸을 빌려 나타난 거 맞겠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거 서창경 씨 방식 아니잖아.”
사령을 보내지 않고 산 사람 몸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다니 고용주답지 않았다. 날 겁박하는 게 목적이라면 더더욱 귀신을 내세워야 하는데도 말이다. 빙의한 것처럼 실체를 만들어 보여 주다니 날 두렵게 할 의도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궂은일을 대신 뛰어 주던 알바가 그만두면 작업 방식이 바뀔 거라는 이혜준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