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정말로 조종당하는 중인지 궁금해서 고고학의 눈이 맛이 갔는지부터 살폈다. 해 질 녘 어스름한 빛 탓에 눈의 초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으…… 가까이 오지 마!”
쳐다봐 달라고 성가시게 굴던 고고학이 도리어 내 시선을 피하며 물러섰다. 귀신 든 사람이 이혜준에게 보이는 기피 현상이 튀어나왔다.
이와 유사한 예로, 공숙선 역시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 게 가능했지만 내 눈에 남은 이혜준의 잔상은 꺼렸다. 본인이 쓰레기인 주제에 날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데 지금 고고학이 딱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혼백이라는 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자재로 이 사람 저 사람 몸에 옮겨 다니며 붙었다 떨어졌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속인조차 내림굿을 통해 몸주를 받아들인다. 잠시 잠깐 홀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고학 역시 그릇 체질이었나 보다.
나도 여러 해 동안 귀신이 붙었던 몸이지만 이처럼 의식을 점령당한 상태는 아니었던데다 고고학과는 사정이 좀 달랐다. 오히려 제사장이나 신관이 될 자질은 평균 이하라고 들었다. 조상희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잡귀 따위가 내게 붙어 해코지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아니, 그 전에?
서창경이 죽은 것도 아닌데 왜 그의 혼백이 산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을까. 본인 육신은 어떡하고.
뭐 또 해괴한 거 연구하는 중인가? 유체 이탈 실험 같은 거?
자기 자신을 그 무엇보다 아끼는 인간이 스스로 실험체를 자처하다니 영 미심쩍었다.
그렇다 치고, 지리교육에 이어 이제는 고고학마저 이혜준 앞으로 데려가서 보일 이유가 생겼다. 나 때문에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또 이런 꼴을 당하는 거다. 앞으로도 내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냥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를 말까. 집에도 가지 말까. 아예 사람을 만나지 마?
내 죄의식을 부추기려는 듯 물속에서 환청이 들렸다.
『강지헌,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지. 그 껍데긴 내버려 두고 너는 나하고 대화하면 돼. 네 상대는 여기에 있잖아.』
서창경의 속삭임에 경계심이 치솟아 도리어 연못가에서 한 걸음 더 떨어졌다.
“서창경 씨 이런 식으로 나타난 거 이 부적 효과야? 윤상현은 여태 당신한테 묶여서 조종당하는 거고?”
연못 쪽으로 향낭을 내보였다. 내 기가 약한 탓에 허깨비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이 주머니 속에 든 성분이 지금의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냐고, 덧붙여 지리교육에게 윤상현이 덮인 것도 네 지시였느냐고 물었다.
『윤상현 그거, 요즘 내가 다른 데 신경 쓰느라 내버려 두긴 했지만 내 손아귀에 있든 벗어나든 언제나 쓸모가 있는 놈이란 말이야. 어깨너머로 배운 걸 인간을 통해 만들어서 써먹어 줄 줄은 몰랐지. 그토록 집념이 강하니 너한테서 떨어뜨리는 데 애먹을 수밖에.』
“적어도 둘이 한 패거리는 아니란 얘기네.”
‘목적은 똑같겠지만.’이란 말은 혀끝에서 씹었다.
『조만간 그놈도 다시 내 뜻대로 움직이게 될 거다. 우선 내 첫 번째 인형부터 돌려받고.』
“…….”
그러네.
인형이란 말에 거듭 생각해 보니 서창경이 산 사람을 건드린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고학 이전에 나부터가 그의 꼭두각시였으니까.
『지헌아, 지금 내가 널 많이 봐주고 있는 거야. 내가 네 약점을 몰라? 진짜 무서운 꼴을 보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와.』
“날 연못에 빠뜨려 죽여서 어떡하려고.”
『사용할 제물은 네가 아니다. 네 두 번째 영결식 제물이 바로 옆에 있잖아. 죽으면 넋을 건져서 내 앞으로 데려와.』
터무니없이 당당한 살인 교사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했더니 중간에 끼워 넣을 제물을 찾는 구인 활동 중이었나 보다.
“이보세요, 사장님. 이 친군 사령 아니고 산 사람이라고. 아직 목숨 붙어 있어.”
『곧 뒈질 텐데 무슨 상관이야.』
“…….”
『살인죄를 뒤집어쓸까 봐서 그래? 괜찮아. 내버려 두면 저 혼자 알아서 연못에 처박힐 거야.』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고학이 연못가로 척척 다가섰다. 뻣뻣하지만 주저 없는 움직임이 주인에게 원격 조종당하는 로봇처럼 보였다.
환장하겠네.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됐다. 머리끝부터 연못에 다이빙하려는 고고학의 옷깃을 뒤에서 잡아챘다. 고고학은 일순 뒷걸음질 쳤지만 저항력이 보통을 넘어섰다. 오히려 당기는 힘이 모자라 내가 질질 끌려갈 판이었다.
이 새끼 지금 빙의 비슷한 거 걸린 모양새지? 어쩐지 아까 숨넘어갈 듯이 헐떡대면서도 끝까지 내 속도에 맞춰 따라붙더라니.
일반적인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판단이 서자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동생 놈을 두들겨 팰 때의 마음가짐이 됐다. 사정을 봐줄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뜻. 일단 다리부터 꺾어 버렸다.
뚝. 뚜둑.
발목 인대는 찢기지 않도록 관절만 건드렸다. 팔다리에 체중만 싣지 못하게끔 하면 그만이니까 부러뜨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걷지도 기지도 못하면 이놈이 무슨 수로 연못에 뛰어들겠어. 어긋난 뼈는 이따가 맞춰 주면 되지.
뚜둑. 뚜둑.
이지를 상실한 상태여서인지 고통을 가해도 더 잃을 정신은 없어 보였다. 비명 한마디 새어 나오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이탈한 뼈마디 탓에 몸이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팔다리가 땅바닥에서 헤엄치듯 허우적댔다. 지렁이처럼 몸뚱이를 휘저어서라도 끝까지 전진할 태세였다. 자살하고 싶어서 환장한 고고학의 등허리를 한 발로 지그시 밟아 눌렀다.
동물은 동력을 끊어 놓으면 그만이다. 실체가 있는 건 이래서 다루기가 쉬웠다.
『시발 강지헌, 그러고 보니 너 산 사람한테 빙의되는 것들은 전혀 겁내지 않았지.』
“어, 맞아. 그러고 보니 신령이라고 해서 뭐든지 가능한 건 아니네? 신내림이 왔다고 해서 날개 없는 인간이 하늘로 날아오르지는 못할 거 아냐. 하루아침에 엄청난 과학자가 돼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무당도 보지 못했거든. 모두가 제가 가진 토대 위에서나 움직이는 거지. 요즘 서창경 씨가 해커한테 사정없이 발리는 것처럼 말이야.”
내 손으로 직접 고고학을 처리하고 나니 귀신이 만능은 아니라는 이혜준의 논리가 비로소 가슴까지 와닿았다. 서창경이 무신으로 위협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와 똑같은 수단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체득했다.
『해커? 네 뒤에 있는 그 자식 해커였어?』
“어. 화이트 해커.”
내 편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이혜준이 내 동생 놈 게임 순탄하게 하라며 채집·사냥·이동 등의 매크로 프로그램을 짜 주는 걸 보면 서슴없이 위법을 넘나드는 위험 분자처럼 보이고, 동생 놈 혈압 올리는 핵쟁이들을 추적해서 잡아 주는 걸 보면 정의의 용사처럼도 보였다.
화이트 해커인지 크래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현재는 나를 도우며 통신망을 타고 타인의 전자기기에 침범해 정보를 변조하는 크래커에 더 가까운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제 발이 저린 그 도둑놈은 내게 절대로 개방된 공공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심지어 문자는 자기 회사 전용 메신저로 주고받자는 개소리까지 곁들이면서.
「폐쇄 회로도 침입할 수 있는 시대야. 조심해야지.」
그래서 지금 내 가방 안에는 이혜준이 따로 마련해 준 개인 무선 인터넷 접속 장치가 들어 있었다. 기존 서비스 제공 업체에서 빌린 통신망이 아닌 독자적으로 개발한 인트라넷이었다.
아무래도 무허가 같은데?
회사 빌딩을 텅 비워 둔 것도 다른 통신망을 들이기 싫어서가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해 본다.
『그 새끼가 해커인데 어쩌라고. 나는 해킹당할 만한 빌미를 제공한 적이 없는걸? 지헌아, 그딴 게 나한테 무슨 협박이 되겠어.』
서창경이 자신만만한 어투로 빈정거렸다. 해 볼 테면 얼마든지 해 보라고.
소극장 건물의 현관 비밀번호부터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의 여유로움이었다.
“당신 정보 다 털렸어요. 그러니까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음습한 짓 그만두고 이제 몸 좀 사려요, 사장님.”
『아하하하하! 미치겠네. 아하하하.』
항상 비웃음만 날리던 서창경이 저렇게 웃겨 죽겠다는 듯 가가대소하는 건 처음 봤다.
“…….”
『제법 재미있는 소릴 지껄이네? 너희가 정말로 내 정보를 털었다면 넌 지금 나하고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못 섞어. 그나마 내가 평화롭게 대화할 의지가 남아 있을 때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서창경 씨가 생각하는 평화로움은 이딴 거예요? 멀쩡한 사람 죽여서 넋 빼 먹는 거?”
이혜준은 이 남자가 본색을 드러내는 건 두 번째 혼사가 끝난 직후라고 내다봤다. 아직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목숨 한정일 뿐이었다. 대신에 내 주변의 다른 인물들이 이렇게나 위험해진다.
『너도 지긋지긋할 테니 나머지 저승혼사굿도 서둘러 마무리 짓자. 그놈 등을 떠밀어 죽이라는 것이 아니잖아. 넌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숨 끊어질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면 돼.』
“자살 방관이네.”
『지헌아, 추저분한 네 운명을 구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무신밖에 없어. 그 해커라는 새끼가 내뱉는 사탕발림이 듣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구원책은 아니거든. 인생 날로 먹으려고 들지 마. 뭐든 대가를 치러야 온전히 내 몫으로 돌아오는 거야. 희생이 필요하단 거지. 여태 내 말을 잘 따른 덕택에 수년 간 귀신이 달라붙은 상태에서도 네 목숨을 부지해 왔잖아? 인정하지?』
“아니. 이제 네 말은 통하지 않아요, 사장님. 나 알바 그만뒀잖아.”
『……. 그토록 애지중지 보살폈던 인형이 이제 와서 날 배신하려 드네? 짐승조차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너는 여태 거둬 준 은혜를 저버리겠다고. 네가 사람 취급받기 싫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