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선배, 아까 서창경이 이놈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내가 수류탄을 던지자,
「붙어서 따라다니는 거 아니고 빙의 말하는 거지? 그럼 몸에서 끄집어낼 때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나 그러다 사람 죽여 봤거든.」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돌아왔다. 내가 ‘개놈이 죽은 거 알아.’라고 했더니 자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뭐야. 장르가 오컬트에서 범죄물로 바뀌었는데요?
서로 할 말이 많았지만 우선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끄아아아아악―!”
인문대 건물 옆 도로 주차 라인에 서 있는 밴 화물칸에서 갑작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발성자는 고고학이었다.
여기서 이혜준은 신령을 상대할 때 유독 무식해진다는 돌칼 정령의 고자질을 증명했다. 의식 잃은 고고학의 눈꺼풀을 엄지와 검지로 들추더니 다짜고짜 제 방상시 눈깔을 들이댄 것이다.
‘이 일이 같은 방을 쓰는 지리교육의 귀엔 들어가지 않아야 할 텐데 당분간 고고학 놈을 데리고 있을까?’
지리교육은 지금도 이혜준을 경계했고, 이런 극통까지 전해 듣는다면 좀처럼 함정에 걸려들지 않을 거였다. 거기도 어서 윤상현을 떼어 놓아야 하는데 말이다.
고고학이 야단스럽게 부르짖을 때마다 운전석에 앉은 돌칼 정령이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산 채로 심장을 뜯기는 시대를 살아 본 녀석이라면 어떤 험한 광경을 목격해도 의연할 줄로 알았는데 약한 모습을 보인다.
정령의 처형식쯤 되는 광경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그건 그거고, 이왕 울고불고하는 김에 고고학의 어긋난 관절도 원래 자리로 끼워 맞춰 주기로 했다. 어차피 아플 거, 동시에 해결하자. 뚜둑. 뚜둑. 뚜둑. 뚜둑.
“끄아아아아악―! 악! 악! 으악!”
이번에 터진 비명엔 이혜준의 어깨도 움찔했다.
“어… 어어…… 강지야. 이럴 때 보면 너 좀 많이 무식하게 보여. 사람한테 손쓰면서 너무 과감한 거 아냐?”
뭐래. 방금 고고학 놈 눈깔 까뒤집을 때 님은 더 무식했거든요?
공숙선 본체가 우리더러 “살벌한 새끼들끼리 잘 만났다!”라며 욕하는 이유가 모처럼 가슴에 와닿았다.
“이분이 발목을 접질려서 못 걸었잖아요. 지금 도와주는 거예요. 한 번에 끼워 맞춰야지 찔끔찔끔하면 더 아파.”
“접질렸다고? 아닌 것 같은데……. 그럼 팔목은 왜?”
어쩐지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우리 선배님, 겁먹었니?
3초 만에 공숙선 본체를 찾아냈다지만, 내가 고고학에게 손댄 시점은 이들이 연못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혜준이 봤을 리가 없었다. 우기자.
“이 칠칠치 못한 분이 자빠지면서 팔목도 같이 삐어 버렸네?”
“…….”
안 믿네. 좀 더 진실 되게 우기자.
“사실은 이놈 인간 아니고 안드로이드라서 뼈다귀 뺐다가 끼웠다가 할 수 있는 신체 구조거든요? 근데 국가 기밀이니까 선배님만 알고 계세요? 예?”
“어…… 음, 그래, 잘 알아들었어.”
과연, 결국 진실은 통하는 법이다.
“그나저나 접골은 언제 배운 거야?”
“나 나중에 취업 못 하면 접골원 차리려고 익혀 뒀어요.”
“회사 건물에 몇 층이건 자리 내줄 테니까 거기에다 차리는 건 어때? 그럼 우리 매일 함께 출근할 수 있겠다 그치?”
고고학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처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혜준은 해맑게 미래 행복 회로를 돌렸다.
선배님, 너 빙의됐던 사람 구하려다 죽인 적 있다면서. 이놈 어떻게 될지 걱정도 안 돼요?
역시 첫인상대로 이분은 인간이 아니거나 사이코어쩌구가 아닐까?
아니다. 지금 이혜준 내 편이니까 그저 신경줄이 튼튼한 거라고 쳐 주자. 원래부터 어떤 정신계 공격도 먹히지 않았고 멘탈 하나는 좋았잖아.
그 금싸라기 땅 위에다 태권도 도장을 열 수 있다면 나는 횡재한 거지. 그런데 님은?
“함께 출근? 일단, 선배님께선 날마다 출근이 가능하신가요?”
비가 와서, 햇빛이 쨍쨍해서, 날이 흐려서, 날이 더워서, 날이 적당해서, 도저히 사무실에 나갈 수가 없다던 인간에게 물었다.
“…….”
“또, 접골원을 차리면 방문객이 수시로 드나들 테고, 건물 안에 통신 3사 인터넷도 전부 들어올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건 심하게 암울한 전개다. 차라리 강지헌이 접골원의 꿈을 접고 ‘에스아이’로 입사하자. 그편이 낫겠어.”
이혜준이 설립한 회사 는 실드 인더스트리즈의 약자로, 기동용 자율성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 데라고 한다. 미 국방성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정부 기관이 주된 고객이라고 들었다. 나로서는 뭐 하는 회사인지 직접 듣고 나서도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겠는, 그런 분야였다.
공동 대표인 박양우 포함 사원 셋은 어느 국제 해킹 방어 대회 우승팀 출신이란 얘기도 들었고, 그런 회사에다 입사 지원서를 들이밀 만큼 내 낯짝이 두껍진 않았다.
“오! 낙하산인가요? 나 한 번쯤 낙하산 취직해 보고 싶었어. 첫 직책은 미래전략 본부장 같은 거로 주세요.”
어차피 안 될 거 꿈은 크게, 재벌 집 자제에게나 가능한 자리를 들이밀었다.
“강지야, 우리 회사엔 그런 부서도 없고 직책도 없어. 그냥 네가 대표이사직을 맡는 건 어떨까.”
“그럴까요? 고맙습니다. 연봉 많이 챙겨 주십시오.”
“당연한 소리를 하네. 다 가져가. 내 월급도 싹 다 긁어 줄게.”
“나사 빠진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나 다 주고 나면 선밴 뭐 먹고 살게요.”
“네가 나 먹여 살리면 되지.”
“이분이 위험천만한 인생 계획을 세우시네.”
이혜준의 호구 인증 쇼를 흐뭇하게 감상하는데, 그사이 정신을 차린 고고학이 끼어들었다.
“사람이 아파서 죽어 가는데 당신들 뭐 하는 짓거리야, 어? 지금 연봉 협상 연습할 때냐고. 여긴 어딘데. 뭐야. 차 안이잖아. 봉고차로 납치해서 나 팔아넘기려는 거? 억…… 진짜? 아, 아니, 선생님들, 제가 신체 등급이 낮아서 군대도 현역으로 못 갔습니다. 데려가서 일 시키셔도 밥만 축낼 거라구요. 근데 무슨 봉고차 의자가 우리 집 소파보다 더 고급지지?”
고고학은 흐느끼면서도 제 할 말은 꾸역꾸역 다 지껄였다.
“말하는 거 보니까 살 만한가 봐요.”
아까 돌칼 정령이 제물 표식을 지워 준 게 영향을 끼쳤나? 예상보다 후유증이 덜한 것처럼 보였다.
빙의됐다지만 기껏 반나절일까, 나처럼 윤상현이 몇 년씩이나 붙어서 따라다닌 정도는 아니었다. 끄집어낼 서창경은 이미 그릇에서 벗어난 상태였고, 그에 더해 돌칼 정령이 단발성 처치이긴 해도 서창경의 흔적을 없앴다.
이런 요소들 덕분에 ‘귀신뿐만이 아니고 사람도 해친다는’ 이혜준 효과가 반감됐다는 가설을 세워 봤다.
기생충을 떼려다가 숙주인 사람마저 죽였다는 얘길 듣고 났더니 축귀의 기운이 과한 것도 무서워졌다. 고고학을 구하는 것도 그의 안전이 보장되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미루기로 계획을 수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떤 무식한 작자가 고고학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덤벼들 줄은 몰랐지.
말릴 틈이 없었다.
“거봐. 인간 쉽게 죽지 않는다니까. 이 사람 어서 내보내고 우린 집에 돌아가자. 나 배고파.”
살인 날까 봐 걱정하는 남의 속도 모르고 예의 무식한 작자가 태평한 소리를 지껄였다.
“정화하다 죽은 사람 있다면서요.”
“그 영감님은 당시에 134세였어. 언제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잖아.”
나이를 듣자마자 ‘그 영감님’의 정체가 확정됐다. 이혜준의 외가에서 믿는다는 신흥 종교의 창시자이자 제1대 대종사.
교도들은 열반한 ‘그 영감님’을 거의 신격화해서 그의 생애가 적힌 책을 경전처럼 여기며 달달 외고 학습한다고 들었다.
“정정하게 장수한 사람으로 유명하다더니 안에 다른 게 들어 있었나 봐요?”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오래 살 수 있었구나. 영감님의 본체는 못해도 오륙십 년은 귀신에게 제 몸을 빌려주지 않았을까? 잘하면 백 년도 넘을 수 있겠고.
인간을 숙주로 삼아 옮겨 다니며 영생을 누리고픈 돌칼 정령의 워너비 영감님이셨네.
“가면서 얘기해 줄게. ……볼일 끝났으니까 내려요. 우연히 근처에 쓰러져 있어서 우리가 도.와.준. 거예요.”
이혜준이 내 말투와 수법을 그대로 흉내 내며 사건을 은폐했다.
“내가 쓰러졌다고요? 어, 여기 학교잖아! 나 뭐 땜에 여기에 있지? 분명 개총 뒤풀이하러 밖에 나가서 술 마시던 중이었는데? 그나저나 눈이 왜 이렇게 아프죠? 누가 바늘로 내 눈알을 쿡쿡 쑤시는 것 같아요. 어우 씨, 너무 아파!”
고고학이 다시 울먹거렸다. 방상시의 효력이 발생한 덕분에 팔다리뼈 맞춘 건 아픈 축에도 들지 않는 모양이다. 예상대로 이놈의 기억은 한 뭉텅이 날아간 상태였다.
생각 같아선 ‘너 이 새끼, 넌 귀신들이 좋아하는 그릇 체질이라고. 괜히 괴담 같은 데 솔깃해서 머리 들이밀지 말고 현실을 살아! 너는 음력 7월엔 대만 여행도 금지다!’라고 충고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신 의존증이 심각한 내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고, 나부터 잘하고 남의 인생에 참견하기로 했다.
어쩌면 본인도 제 체질을 모른 채 넘어가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지리교육 놈과 쿵짝이 잘 맞고 오컬트에 호기심이 넘치는 이놈은 ‘내가 그릇이라고요? 그릇이 뭐죠?’ 하며 더욱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컸다.
일단 지리교육 놈과 떨어뜨려 놔야 호빵이를 비롯해 같은 호실에 머무는 학생들이 무신의 영향권에서 멀어질 텐데 말이다. 잘못은 지리교육이 했으므로 다른 동거인들이 기숙사를 나오는 게 아니고 그 새끼가 쫓겨나는 그림이 그려졌으면 했다.
이왕이면 정신 병원으로 쫓겨났으면 하는데. 저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으로 미화하는 미친놈이니까.
이건 궁리해 볼 만한 결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