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제5장>
이혜준
대한 극락 불토 수양회의 핵심이 되는 총본산과 수련원은 지방에 소재했지만, 서울에도 교구가 하나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바야흐로 세를 불릴 당시에는 도심에 위치한 국내 사찰 중에서 손에 꼽을 규모였으나, 건물이 헐리고 이전한 후에는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홈페이지에도 서울 교구의 위치는 올라와 있지 않았고, 간혹 웹상에 주소가 올라올 때도 있지만 얼마 있지 않아 감쪽같이 정보가 지워졌다. 법회를 열지 않은 지도 일곱 해에 가까워 거의 빈 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 많던 법사며 신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계세요?”
교구장이자 유일한 교구 법사인 이혜준이 하 비서에게 연락하자, 106호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어느 타운하우스 1층 현관문이 열렸다.
“이쪽입니다, 교구장님!”
이혜준이 서울 교구를 맡은 후 줄고 줄어 딱 스무 명 남은 교무관 중 한 사람인 하성조가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교무관은 기독교로 치자면 목사급인 직위였다.
교세를 기울이는 게 이혜준의 파견 목적이건만 이 스무 명 아래로는 도무지 교무관 수가 줄어들지를 않았다. 법당을 닫아건 사찰에 신도가 꾸준히 잔류하는 것도 신기하기만 했다.
여기엔 다양한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세경 그룹에 빈틈없이 보고할 사람이 필요한 까닭에 하성조 포함 경영지원실 직원 넷이 교무관으로 위장했고, 초대 대종사 영감의 혼백이 이혜준에게 옮겨 붙었다고 믿는 자들이 나머지 교무관 자리를 차지했다.
믿음의 근거는 대종사 영감이 죽기 전부터 그들을 시켜 비밀리에 새로 들러붙을 젊은 육신을 찾아다녔다는 데 있었다. 그 젊은 육신이 바로 이혜준의 몸이라는 주장이고.
후자인 이들 광신도는 연봉을 없애고 무임금으로 돌려도 눈치 없이 수양회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대종사 영감이 집 없는 어린애들을 데려와 어려서부터 제 말만 듣도록 길들였다는 얘긴 들었다.
이들은 현신한 부처를 대하듯, 재생한 대종사를 대하듯 이혜준을 받들어 모셨다.
‘추종자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가세요들, 좀. 하루빨리 교구 문 닫고 쉬고 싶다고.’
이혜준은 오랫동안 이 미친 분들과 부대끼다 보니 공숙선 같은 인간을 다루는 데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월급은 없앴지만 활동비마저 없애기는 어려웠고, 지금껏 교단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을 홈리스로 만들 순 없었기에 집을 주고, 업무에 필요하니까 교단 소유의 차량을 내주고,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교육비를 지원하고, 생활비도 지원하고, 의료 서비스도 제공하고…….
여차여차하니까 오히려 예전보다 살림이 나아졌다고 한다.
자진 퇴사를 유도하고자 최소한의 편의만 제공했다고 여겼건만 이런 기이한 결과가 나왔다. 종교에 몸담은 수행자는 검소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교단 내 성직자들을 참기름 짜듯 쥐어짜 왔던 탓이다.
예전에는 있으나 마나 하는 급료뿐이었던 터라 생계마저 어려웠단다.
대종사 영감은 한 끼 식사에 교무관의 한 달 월급을 써재끼는 등 온갖 사치를 누렸다는데, 그럼에도 그를 말릴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
이혜준의 전대의, 전대의, 전대의, 전대가 끌어들인 신령이었다. 조상신도 아니었고, 어디의 장례식장에서 달고 온 귀신이라고 들었다.
처음엔 소소하게 복을 주는 데 그쳤지만, 그것은 인간의 욕심과 더불어 자라나 세대를 거쳐 내려올수록 강성해지고 소원의 대가로서 바라는 공양도 걷잡을 수 없을 만치 부피를 키웠다. 어느덧 그것은 흉신으로 거듭났다.
피의 제물, 이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인간들은 그것의 갖은 해괴한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만 했다.
이혜준의 조부 대까지만 해도 세경이라는 크나큰 부와 세력을 일구어내려면 어느 정도의 대가는 치러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도 아닌데 뭐가 어떠랴 했던 거다.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은 그 귀신의 수호가 없으면 세경이 망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특히 이혜준 부모의 가정에 관련해서는 막내 부부는 반드시 이혼시키라든지, 막내의 가족은 한국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해야 한다든지, 막내가 낳은 자식 탓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것이므로 일찌감치 축출해야 한다느니 하는, 예언을 빙자한 자기방어적 요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린 이혜준을 만난 날이 그것의 제삿날이 되었으므로 미리 몸을 사릴 만도 했다.
그날 이후 이혜준은 범죄자도 아니건만 줄곧 입국 거부를 당하다가, 조부가 노환으로 쓰러져 정신이 흐릿해지고 나서야 겨우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대를 이어 모셨던 그 존재는 세경 그룹의 치부가 됐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라도 세경 그룹은 수양회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다. 진행이 더디더라도 신중하고 시끄럽지 않게, 소리 소문도 없이 말이다.
혈육끼리 다 해 먹는 독점 재벌가였을 땐 샤머니즘과 공생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글로벌 경영을 표방하는 대기업과 수양회는 무관한 관계여야 마땅하니까.
이혜준이 이 도시의 교구를 맡은 이후로 친지 중 누구 한 명 법회에 참석한 인물이 없었다. 대도시마다 하나씩 있던 교구도 전부 정리한 터라 총본산이 있는 충청도까지 내려가지 않는다면 법회를 여는 법당이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간의 인식은 ‘수양회 = 세경 오너 일가의 종교’였다. 사람들은 세경의 묻어 버리고 싶은 과거를 쉽사리 잊어 주지를 않았다.
그나마 세경의 소유물에서 세경이 믿는 종교로 거리감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
또한, 종교를 통해 인맥을 형성하고자 접근하는 정·재계 인사들도 여전했다. 비밀리에 꿀 빠는 아이템이라 여겼는지 수양회를 기반으로 한 재단을 사업체처럼 인수하려는 다른 재벌 측도 기웃거렸고.
이혜준은 새 신도가 오면 무조건 지방에 있는 수련원으로 내려보냈다. 하루를 108배로 열고 108배로 마무리하는 그곳은 이혜준 본인도 피해 다니는 마의 구역이었다.
그곳 수장이 내세우는 수련의 취지는 ‘무욕을 통한 자아 구제’였고, 무엇보다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소비하는 삶’을 강조했다. 이는 그곳에 입소하면 밥도 거의 안 주고, 잠도 거의 안 재우면서 농사일을 시키며 굴리는 49일간의 지옥 훈련을 겪는다는 뜻이다.
명상 시간에 부족한 잠을 채우다가 걸려 죽비에 머리통이 깨지고 실려 가는 수행자도 상당수였다. 미쳤는데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디스트 꼰대 새끼가 수장으로 있으면 그런 지옥도가 펼쳐진다.
수양회가 뭔가 해서 호기심에 찾은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대다수 걸러졌고, 특정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기회주의자들과 진정한 종교는 이래야 한다며 고통을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겠다는 매저들만이 남아 이혜준이 담당하는 교구로 올라왔다.
이 신도들의 특징은 그만저만한 일에는 나가떨어지지 않는, 쓸데없이 굳센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데 있었다.
광신도의 비중이 심각하게 높다는 점! 이것이 윗선에서 우리 그만하자고 손을 떼도 이 이상은 교세가 기울지 않는 주요 원인이었다.
운전대를 놓아도 이 폭주 기관차는 계속해서 굴러 나갔다.
평소라면 ‘아, 기력이 달린다.’ 하고 한숨이나 내리 쉬며 느릿느릿 의욕 없이 행동했을 테지만, 오늘 밤만큼은 달랐다. 이혜준은 걸음을 서둘러 106호로 향했다. 귀안을 틔운 강지헌을 쓰레기와 함께 산속으로 보내 놓고서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붙은 것이 잘 떨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 비서가 아래층의 현관문을 잡아 주며 말했다.
입구 바깥쪽 벽에 달린 문패에는 이혜준이 사는 집도 아니건만 ‘이혜준’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갈아 끼운 지 몇 분 되지 않는 새 문패는 본가 대문에 새겨진 것과 마찬가지의 기능을 했다.
신령을 봉인하는 표식.
오늘의 일을 미리 내다본 건 아니지만 주변 건물을 서너 채 비워 둔 건 잘한 일이었다.
방향 감각을 잃고서 이 주변을 맴돌던 놈을 잡아들여 놓았다.
“안 떨어져? 흔한 잡귀라고 들었는데요. 지금 위에는 누가 와 있어요?”
이혜준이 물었다.
설립 초기부터 수양회에는 비공식적으로 구마를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해 왔다. 말이 불교에서 떨어져 나온 교파였지 무속인이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대종사 영감이 귀신을 물리쳐 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다른 귀신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웠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나돌았고.
‘그러고 보니 서창경도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구나. 사람 수십을 잡아먹고서도 윤상현을 떼어 내지 못했었지. 그렇다면 위에 저거 뭐지? 정말로 흔하고 힘없는 잡귀가 맞나?’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새삼 윤상현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흉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저 끈끈이주걱 같은 새끼가 수년 동안 강지헌에게 들러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제 마음 확인하기도 귀찮아서 바라보기만 하던 과거가 새삼 후회스러웠다.
“범종 스님이 오셨습니다.”
하성조가 수련회 수장의 법명을 대며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태생적으로 ‘적게 먹고 적게 자고’가 안 되는 이 가짜 법사 이혜준은 진짜 법사 범종과의 사이가 어색할 수밖에 없으니까.
위장 취업의 전말을 모르는 범종은 이혜준을 만날 때마다 너는 청정하게 불도를 닦아야 하는 수행자가 돼서 육식을 즐기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자고 싶은 거 다 자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꼰대 이제 잡귀 하나도 못 떨궈 낸대요? 잘됐네요. 이 기회에 법사 직위 내려놓으라고 해야지.”
“수양회에서 제일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그 바쁘신 와중에 철마다 책도 내시고. 범종 스님이 직위를 박탈당하면 신자들이 들고일어날 겁니다.”
누구는 영업을 종료하려고 애를 쓰건만, 또 누구는 저렇게 포교 활동에 열심이었다. 무엇보다 함께 고행하자는 취지에 뭐가 좋다고 그 난리들인지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