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운의 신데렐라 (5/141)

 비운의 신데렐라 <4>   

제3장:  고난의 가시밭길

“난 반숙은 딱 질색이야.”

아니 이 자식이!

이른 새벽,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달라길래 냉장고를 뒤져 정성껏(?)계란후라이를 해다

 바쳤더니 한다는게 기껏 그런 소리다.

그치만 그럼 먹지 마. 라고 간단하게 무시해 버릴 수 없는게 또 나의 비극.

“저, 그럼 다시 할까요?”

나는 입고있던 분홍 레이스의 앞치마를 놈의 반반한 면상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참으며 억지로 속에서 쥐어짜

낸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기껏해야 읽고 있던 신문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던진 <필요없어> 라는 한 마디 뿐.

야! 넌 그 비싼 사립학교에서 얘기할 때는 사람 얼굴을 보고 해야 한다는 그런 기본적인 예절도 안 배웠냐!

그러나 내가 옆에서 혼자 활활 타올라 재가 되든말든 놈은 유유자적하게 읽고있던 페이지를 마저 다 읽고는 탁 하고 신문을 식

탁 위에 던져놓고 성큼성큼 자기 방 쪽으로 가버렸다. 

저, 저, 저, 저런….!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놈의 버릇없음에 대해 통탄해봤자 이십여년이 넘게 방약무인하게 살아온 놈이 갑자기 회개하여 주의 어

린양이 될 리도 만무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저렇게 보는 사람의 속을 뒤집는 반사회적인 인물로 성장을 한단 말이냐.

“내가 진짜 한 번이라도 니가 공손하게 구는 꼴을 보면 성을 간다! 성을!”

나는 놈의 등 뒤에 대고 흥분한 목소리로  ㅡ 물론 놈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성량으로(….ㅠㅠ비열한 보경….) ㅡ 삿대

질(?)을 한 뒤 놈이 손도 대지 않은 계란 후라이를 들고 식탁으로 가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했다. 사실 아침으로 계란 후라이 

한 장은 좀 너무한가…라는 생각이 쪼금, 아주 쪼금 들기는 했지만 아니 냉장고에 뭐가 있어야 내가 밥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왠만한 장정 두어명은 거뜬히 들어갈만한 저 집채만한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거라고는 달랑 얼음 두통과 계란 한 줄이 다인데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냐구. 산해진미도 하루이틀이지 완벽한 모양으로 랩에 씌워진 채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들어있는

 저 음식들도 딱 네 번 먹으니까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던데. 그나마 더 경악할만한 사실은 놈은 그걸 먹고 나면 접시째 쓰

레기통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일회용 접시나 프라스틱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여튼 기본이 안돼있어. 기본이.”

내가 그걸 일일이 쓰레기통에서 꺼내 세제로 싹싹 닦아서 장식장 안에 쌓아놓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니가 나한테 아침밥을 달래, 달라길.

내가 무슨 램프의 요정 지니라도 되는 줄 아냐?

나는 다 먹고난 접시를 싱크대로 가져가 뜨거운 물에 담가 박박 문질러 닦으며 인상을 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스스로 무덤을 팠지. 도대체 저 상식이하인 놈과 어떻게 이십육일이나 한지붕 아래 함께 사나?

아무리 참는 놈이 이기는 거다,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등등의 주옥같은 고금의 명언들

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타일러봐도 이건 도대체가 살인을 면하기 전에 내가 먼저 홧병으로 죽게 생겼으니….. 

“이 집안에서 놈과 안 부딪치고 사는 묘안은 없나?”    

내가 다 씻은 접시를 마른 행주로 닦으며 투덜대고 있는데 별안간 쾅 하고 놈

의 방문이 열리더니 한참있다 현관문이 철컹 하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이 얼마나 넓으면….ㅠㅠ)

정말로 웃기는 일이지만 이 맨션의 최상층에서는 버튼 하나로 엘리베어터를

 대기시킬 수가 있으니 놈은 벌써 일층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쳇, 나간다고 한마디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심지어는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도 나갈 때는 인사를 해주는 법인데 니가 이

러니 내가 어디가서 입이 열두개라도 무시를 안 당하고 산다고 말을 못하지.  

“도대체 직업이 뭐야? 직업이.”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걸 보니 분명 무슨 직업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설마….샐러리맨? (샐러리맨이 이런 무지막지한 집에 사냐…..ㅡㅡ;;) 은 아닐테고.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렇게 반사회적이고 비상식적인 놈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없지 않은가. 순전히 직업적인(

?)호기심으로 놈의 방 안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거기엔 읽다만 잡지 ㅡ 제기랄. 누가 부르죠아 아니랄까봐 읽는 

것도 <노블리스>같은 귀족잡지다. ㅡ한 권을 제외하면 놈의 숨겨진 사생활을 짐작할만한 그 어떤 단서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고 그에 못지 않게 엄청나게 버릇이 없다는 것 뿐인데….   

그런 걸로 미루어보아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면……예술가 정도?

“하, 말도 안돼.”

놈이 예술가면 지나가던 개도 웃겠다.

쓸데없는 생각말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해야지.

나는 맑은 물에 씻어낸 접시를 건조대에 올려놓고 그럴듯한 직업을 떠올리려던 노력을 포기한 채 다용도실에서

 왁스를 찾아들고 거실로 나섰다. 조금 전에는 너무나 분개한 나머지 잊고 있었는데 할 일이 산더미같으니 오전 

중으로 바닥닦는 것을 다 끝마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욕실타일을 닦고 세탁소에서 찾아온 셔츠 삼십장(불쌍한

 보경….ㅠㅠ)을 다림질해야 한다. 

뭐 그럭저럭 하면 저녁 전에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가련한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어디까지

나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첫날 이후로 놈은 나에게 말조차 잘 하지 않는데도 자격지심인지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인지 여기저기 둘러보면 할 일이 왜 그렇게 눈에 띄는지 도대체 내가 오기 전에는 이 드넓은 집안을 어떻게

 다 관리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놈이 손가락하나 까딱했을 것 같지도 않고.

사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놈이 이것저것 하인처럼 마구 부려먹지 않을까 싶어서 겁을 먹었는데 이건 왠걸. 오

히려 놈은 소 닭보듯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사람을 개무시한다고나 할까. 뭐 나야 서로 불편하니 신경 안 써서 

좋겠지, 내가 알아서 하란 뜻인가보다. 라고 제멋대로 해석했지만 이 넓은 집안을 쓸고 닦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가정부고 뭐고 매일매일 청소만 하다 하루해가 가니 이런 기가막힌 일이 세상에 또 어디있겠냐 말이다.

게다가 청소하는 것만해도 그렇다. 원래 청소라는 것은 온 집안 문을 다 열어놓고 이방 저방 먼지 털이개로 있는 

힘껏 턴 다음 걸레로 박박 서너번씩 문질러 닦아야 제맛인데 이거는 집안에 왠 조각이며 크리스탈 장식품이 그렇

게 많은지 섣불리 손댔다가 깨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 손이 벌벌 떨리니 뭐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휴…..내 팔자야….”

닦아도 닦아도 마룻바닥은 넓기만 하여라.

세시간 동안 허리도 펴지 못하고 간신히 일을 끝마쳤을 때에는 벌써 해가 한낮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어젯밤부

터 먹은 것도 별로 없었지만 그다지 시장기도 느껴지지 않아 나는 이왕 해버릴 거 끝장을 보자. 란 생각에 놈의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물기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여있는 욕실은 놈의 방과 마찬가지로 호화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장미무늬가 새겨진 장식타일, 강화유리로 된 연푸른색 샤워부스에 금도금한 수건걸이까지.

대리석 선반을 따라 일렬로 세워져있는 갖자기 이름모를 고급 셰이빙 용품을 살펴보다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반투명한 병입구에서는 옅은 라임향이 섞인 스킨향이 가볍게 풍겼다. 

놈에게서 이런 향이 났던가?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그 향기에 가볍게 이마를 찌푸리고 나는 다시 스킨병을 있던대로 세워놓고 바닥에 무

릎꿇고 타일을 닦기 시작했다. 한참을 닦다 어깨가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니 문득 눈앞의 욕조 밖으로 45층 

아래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밤이면 저 아래가 온통 불빛들로 가득해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부럽다….”

이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놓고 누워 45층 아래의 야경을 바라보면 정말 나라도 세상에 부러울게 하나도 없겠지. 

걸레를 빨기위해 틀어놓았던 물이 세면대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도 모르고 나는 욕조 턱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사람은 팔자를 잘 타고 나야한다고 돈많은 부모를 만났으니 저렇게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거겠지. 

나도…..부모만 잘 만났으면…..

“….뭐 버리고 싶어서 버렸겠어. 다 사정이 있었겠지…..”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해봤지만 그래도 서러운 나머지 손등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제기랄. 이게 뭐야. 

그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두고봐. 꼭 네놈 보란듯이 이 집을 나가고 말 테다!”

주먹으로 눈가를 쓱 문질러 닦으며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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