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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신데렐라 (43/141)

 비운의 신데렐라 <7>   

“어, 어떡해…”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나봐! 아니면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인가? 

것도 아니면 오늘의 운세를 읽지 않고 나온게 잘못인가? 

머릿속으로 미친듯이 폭주하며 나는 도대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그래. 어딘가에 돈이 있을지도….”

나는 간신히 그 생각을 떠올리고 가능성이 희박한 기대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옷에 달린 주머니를 모두 뒤집어 샅샅이 훑어 보았다. 

만원짜리 한 장이라도 좋고 천원짜리 일곱장이라도 좋아. 집에까지 천리길에라도 걸어갈 수 있어. 그러니 제발!!!

그러나 그런 내 희망을 무참히 박살내듯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오후의 햇살에 무심히 반짝이는 백원짜리 동전 한 개뿐이

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절망을 애써 억누르며 동전을 손에 꼭 움켜쥐고 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

법을 떠올리기 위해 테이블에 바싹 붙어앉았다. 

“침착해….침착해야 해. 황보경.”

열두살 때 빈몸으로 도시의 밤거리로 도망쳐 나왔던 적도 있고 피라미드 조직에 잘못 걸려서 일주일간 지하실에 갇혔

던 적도 있쟎아. 그런 거에 비하면 지금 이 정도야….  

“그치만 그때는 진이형이 옆에 있었는데…”

아아. 안돼. 이런 생각은 전혀 도움이 안돼.

윤아가 남기고 간 스트로우 끝을 초조하게 씹으며 나는 힐끔힐끔 카운터를 곁눈질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두 테이블의 여

자들도 이야기가 다 끝났는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짐을 챙겨들고 있었다.  

차라리 일행인 척 하고 저 옆에 슬쩍 붙을까?

아니야. 안돼. 그러다 잡히면….으으….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차라리 솔직하게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고 얘기할까? 

아냐. 안돼. 

뭔가! 뭔가 다른 방법이…..

그치만 이 돈으로는 할 수 있는 거라곤 시내전화 두 통뿐인데….

“그래. 맞아! 전화!”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커피숍 안을 미친듯이 두리번거렸다. 지금이

라면 아마 진이형이 가게에 나와있을 것이다. 진이형한테 사정얘기를 해서 여기로 돈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면…! 

놀란 아르바이트생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보는 것도 개의치않고 나는 화장실 옆에 위치한 전화박스를 발견하자

마자 그 안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진이형, 진이형, 진이형 제발!!!

그 마음이 얼마나 초조했는지 평소에 전화기만 들면 저절로 생각이 나던 그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나 한참을 식은땀을 흘

리다 간신히 기억해내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 ㅡ 뚜르르르 ㅡ 

[네. 클럽 맨하탄입니다.]

그러나 두번의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은 것은 원망스럽게도 낯선 목소리의 젊은 남자였다.

“저, 지, 진이형 좀 바꿔주세요.”  

내 다급한 목소리에 남자는 조금 멈칫한듯 하더니 이내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일 때문에 지방 내려가셨는데요.]

“지방이요? 어, 언제 오는데요?”

[아마 내일쯤 올라오실 겁니다.]

“내, 내일이요?”

[네. ]

그러더니 매정하게도 뚝,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럴 수가! 형, 나는 어떡하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말 없었쟎아아!!!

나는 뚜 ㅡ 뚜 ㅡ 하고 발신음이 울리는 수화기를 멍하니 손에 든 채 카운터에 앉은 주인여자의 옆얼굴이 눈가에 고이

기 시작한 눈물로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절망에 빠졌다.

어떡해. 

이제 난 끝장이야.

끝났어. 나는.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패닉으로 인해 멍해진 머리에 놈이 떠오른 것은.

생각해보면 오후 여섯시에 놈이 집에 돌아와 있을 리도 없었지만 있다고 해도 나를 위해 달

려와줄 리도 없지만 놈의 이름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무의식중에 손가락에 힘을 주어 꾹꾹 집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응. 나야.> 

너무나 놀랍게도 벨소리가 채 한 번이 울리기도 전에 정말 기적적으로 놈이 전화를 받는게 아닌가!!!

“아, 저,저기….

<너 누구야?>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잠시 말을 더듬었더니 대뜸 날카로운 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화, 황보경인데요.”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놈도 놀랐는지 잠시 침묵.

그 사이 나의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들이 다 오가고 있었다.

놈한테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하지? 

오랫만에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셨는데 돈이 없으니 여기로 가지고 와달라고? 

그런 말을 어떻게 해 ㅡㅡㅡㅡㅡ!!!! 

그러나 나의 이런 걱정도 잠시, 놈은 왜 전화했냐, 무슨 일이냐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묻지 않고 평소의 그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너 거기 어디야?>

“…..** 백화점 커, 커피숍인데요….”

긴장이 풀렸는지 그때서야 마구 목소리가 떨려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울먹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눈치챘다. 

“거기서 기다려. 10분내로 갈 테니까.”

그 다음 말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뚝 하고 전화가 끊기자 나는 멍한 얼굴

로 또다시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발신음만을 멍 하니 듣고 있었다.

에…..

“전화 계속 쓰실 거예요?”

“…네?”

나는 조금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하며 등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붉은 투피스의 여자를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여자는 그런 내가 조금 당황스러웠는지 처음보다 조금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

“안 쓰실거면 좀 비켜주세요.”

“아, 네에….”

멍하니 대답하며 나는 비틀비틀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하고 창가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비닐봉지 틈으로 비어져나온 사과가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현실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놀라서 환청을 들은 거 아닐까?

이 시간에 놈이 집에 있을 리도 없고 있다고 해도 나를 위해 달려와줄리도 없쟎아?

혹시 잘못해서 다른 사람과 통화한 거 아냐?

그러나 그런 내 착각도 잠시 정확히 20분 뒤 커피숍 문이 벌컥 열리면서 정말로 놈이 그 안으로 성큼성

큼 걸어들어왔다. 어깨를 쫙 펴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휘익 걸어들어오는 그 기세가 얼마나 당당

했는지 카운터에 있던 주인여자가 놀라 어서오세, 란 말을 하다말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여자들도 화악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시선을 던질 정도였다. 옷장안에 가득한 옷 중에서도 유난히 

값비싸보이는 가느다란 세로줄무늬의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셔츠, 뒤로 빗어넘긴 헤어 스타일의 놈은 

마치 패션잡지 화보 속에서 그대로 걸어나온 것 같아 나는 그 와중에서도 셔츠가 참 잘 다려졌군. 하는 황

당한 생각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제껏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던 커피숍 내부가 너무나 초라해 보이며 

놈의 주위에만 금테를 두른 것처럼 번쩍번쩍 빛나 보이는게…

내가 너무 놀라 잠시 이성을 잃었나?

“가자.”

어, 어디로?

뭐라고 반문할 새도 없이 성큼성큼 단 다섯걸음만에 내 자리로 온 놈은 그 말만 남기고는 다시 휙 돌

아서서 입구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이대로 가다간 뒤쳐질새라 나는 백화

점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그 뒤를 허겁지겁 쫓아갔다.

“안녕히 가세,”

주인 여자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카운터에다 만원짜리 한 장을 휙 던져놓고 놈은 커피숍에서

 나와 곧장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 야! 좀 천천히 가! 쫓아갈 수가 없쟎아!

남이야 숨이 턱에 닿아 헉헉대든지 말든지 남보다 두 배는 되는 보폭을 자랑하며 성큼성큼 앞서

걷던 놈은 일층의 출입구 앞에 들어서서야 겨우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열심히 쫓아오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그 표정이 <아직 멀었어?>라는 말을 내뱉은 것과 다름이 없어 나는 흠칫, 하며

 전속력으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이놈은 정말 수틀리면 이대로 내버리고 갈지도 몰라.

“타.”

혼잡한 사람들을 헤치며 백화점을 나오자마자 도로 근처에 세워져 있던 번쩍번쩍한 검은색의 

일제 아큐라 레젼드의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가며 놈이 명령했다.  

이거 불법주차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내 생각을 뒷받침하듯 와이퍼에 끼워져있는 불법주차 딱지를 귀챦

은듯 찌익 하고 단숨에 뜯어내는 놈의 서슬에 기가 죽어 나는 손에 든 식료품 봉지를 그러쥐고 얼른 차에 올라탔다.

그러다 보니 조수석이 아닌 뒷자석에 앉게 되어서 조금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이 많은 짐들을 끌어

안고 조수석에 탈 수는 없으니까.

“안전벨트 매.”

자기는 매지도 않으면서 말 끝마다 명령조다. 빠직하고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그 심

사를 거슬렸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나는 놈의 말이 끝나자마자 뛰어오느라 이마에 맺힌 땀을 닦다말

고 후닥닥 안전벨트를 맸다. 놈은 백미러로 내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거칠게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히익 ㅡ

야! 출발하면 출발한다고 말을 해야할 거 아냐!

차가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몸이 앞으로 화악 쏠려 사과봉지와 함께 앞으로 나뒹굴뻔 했건만 놈은 미안하

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너 말야.”

그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는데 놈이 갑자기 차들로 가득한 도로에 시선을 던진 채 입을 열었다.  

"네?”

나는 혹시 들켰나 하고 깜짝 놀라 몸을 바로했다.

“길을 모르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왜 나와서 돌아다녀?"

엉?

"에....저기..."

이보세요. 뭔가 상당한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그게....

"다음부턴 함부로 나와서 돌아다니지 마. 알았어?"

야!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야할 거 아냐!

내가 두살짜리 어린앤 줄 아냐!

놈의 너무나도 어이없는 오해에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지만 그렇다고 커피숍 갔는데

 돈이 없어서 전화했다고 밝힐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여기서 그런 발언을 해서 이제껏 쌓아올린 나의 사회적 체면과 지위를 잃을 수는 없다

는 순간적이고 치밀한(?) 판단하에 나는 가까스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참고 뒷좌석 깊숙히 몸을 묻었다.   

여기서 놈을 진지하게 상대해봤자...

"알아들었어?"

나만 손해야....어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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