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운의 신데렐라 (54/141)

 비운의 신데렐라 <18>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고 난 후.

45층 아래의 야경이 현란한 거실에 제각각 대결구도로 자리잡고 앉은 세사람 중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까부터 말 한마디 없이 인상만 쓰고있던 놈이었다. 그 찌푸린 표정을 보아하니 <뉴욕에

서 사는 게 지겨워 휴가를 좀 즐길까 하다가 오랫동안 못 만난 네 생각이 나  한국에 왔다>는 큰누나

의 게릴라식 설명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생긴데로 딱 부러지는 타입이니 그 뒤

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기도 하겠지.

“너, 미리 말해두지만 이 집에서 사는 건 안돼. 절대 안돼. ”

그때 성욱의 작은 누나가 소파에서 등을 일으키며 놈과 똑같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

게 말했다. 세사람 중 가장 심플한 차림새였지만 자신도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긴 

다리를 겹친 완벽한 자세였다. 하지만 자신의 언니와는 달리 예의가 꽤나 바른듯, 나를 보자마자 그

 소란한 와중에도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하며 자신을 강하련이라고 소개했다.

그나마 셋 중에 가장 가정교육을 잘 받은 케이스. 

하지만 저 강세련이라는 여자와 얼굴이 너무나 똑같아 말할 때마다 소름이 좀 끼치긴 한다. 

똑같은 얼굴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고 생각해 봐. 엽기 아니면 호러지.

일란성 쌍둥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저건 닮은 정도가 너무 심하쟎아.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앉아 사과를 깎는 척 하며 옆눈으로 열심히 세사람을 관찰했

다. 그러나 갑자기 출몰한 강성욱군의 큰누나 강세련양도 만만치 않은듯, 날카로운 쌍동이 동생의 시

선에 한 치의 주눅도 들지않고 도도하게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왜 안돼? 내가 어디서 살 건 그건 내 마음이쟎아.”

참 내.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건방진 제스쳐도 놈과 똑같다.

“안돼. 니가 뭐라고 하건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맞아! 맞아!

작은 누나의 단호한 말에 나는 사과껍질을 토끼모양으로 자르다 말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저 놈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무슨….!

“이렇게 작은 집에서 어떻게 너까지 같이 살아? 말이 되는 소릴 해!”

캑. 그,그게 아니쟎아요!

좁다니…100여평이 가까운 이 집의 어디가 좁단 말인가!

내가 엎드려 바닥에서 굴러도 50여바퀴는 능히 뒹굴 수 있는 이 집이? 

너무나 엄청난 그 사상(?)의 차이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과도를 들고 세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

다. 하지만 쇼크를 받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는 아랑곳없이 두사람은 여전히 흥분한 얼

굴로 똑같이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야. 어떻게 좀 해봐. 너네 누나들이쟎아.

두사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나는 사과를 깎다말고 놈을 올려다보며 놈이 뭔가 이 사태를 진정

시킬만한 모션을 취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놈은전혀 그럴 기분이 아닌 모양이다.

“저….저 두사람…말리는게…..”

아무래도 놈이 나설 것 같은 태도가 아니길래 나는 조심스레 놈을 올려다보며 망설이듯 말했다. 

하지만 놈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마시더니 귀챦다는듯 대꾸했다.

“내버려둬. 지치면 알아서 그만두겠지.” 

뭐 그런 성의없는 대답이 다 있냐! 니 귀엔 이 시끄러운 소음이 안 들린단 말야?

나는 눈을 부릅뜨고 놈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놈은 내가 그러건 말건 본척 만척하며 소

파에 기대 창밖으로 펼쳐진 야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지리도 얄미운 놈!

“성욱아~ 나 정말 여기서 살면 안돼?”

우리 둘이 그러고 있는 사이 성욱의 큰누나는 형세가 불리해졌는지 고개를 휙 돌리더니

 눈물이 글썽글썽해져 놈에게 애교아닌 애교를 부렸다.

“싫어.”

그러나 결과는 여지없는  KO패. 

명백한 놈의 거절에 나는 쌤통이다, 하고 속으로 혀를 내밀었다.

“왜 싫어어? 응?”

“피곤해. 나는 잘 테니까 둘 다 여기 남아서 더 하던지 자던지 알아서 해.”

단호하게 말하고 난 뒤 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두어걸음쯤 갔을까, 갑자기 휙 뒤돌아서더니 나에게 말했다.

“넌 왜 안 따라와?”

“네?”

어라. 이건 갑자기 뭔 소리랴?

내 어리둥절한 표정에 놈은 한심하다는듯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예의 그 명령조로 물었다.

“너 오늘 어디서 잘 거야?”

제 방에서 잘 건데요?

“저, 저는 제 방에서….”

“그럼 누나들은 어디서 자?”

“그, 그건…”

어쩐지 몹시 불길한 예감이….!

“넌 오늘 내 방에서 자. ”

내가 남들보다 아이큐가 모자라 보이는지 놈은 전후사정은 다 잘라버리고 그 말만 했다. 하지만.

내가 왜 니 방에서 자냐! 내가 미쳤냐!

“미쳤어? 얘가 왜 니 방에서 자니! 난 싫어!”

그러나 나보다 한 발 먼저 흥분해서 소리친 건 성욱의 큰 누나였다. 방금 전까지 

맞은편의 여동생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듯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런데, 듣고 보니까 열받네. 내가 왜 놈의 방에서 자면 안되는 건데?

“그럼 누나가 얘랑 잘 거야?”

놈의 말에 우리 둘 다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한다!> 

에 있어서는 이 여자와 마음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싫지? 그러니까 우리 둘이 내 방 쓰고 누나 둘이 위층을 쓰고.”

그러자 놈은 다시 한 번 확인시키듯이 우리 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맞아. 그러는게 합리적이지.”

팔짱을 끼며 거드는 작은 누나의 말에 우리 둘은 아무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난 가서 잔다.”

“나도.”

“야아 ~ 이거 놔~”

그 말과 동시에 성욱의 큰누나는 작은 누나에게 팔을 잡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이층으로 끌려갔

다. 말싸움에선 비슷했지만 아무래도 완력에서는 작은 누나가 한 수 위인 모양이었다.

놈은 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복도 안쪽을 가리켰다.

“잔다.”

끄덕끄덕.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놈은 홱 돌아서더니 저벅저벅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덕분에 혼자 남게된 나는 거실 한가운데에서 망연자실.

그러니까…뭐야….내가 오늘 저 놈이랑…..같이 자야 한단 말이야!!!!!

갑자기 일목요연해진 상황에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더듬거렸다.

“마, 말도 안돼, 내, 내가,왜,”

너랑 같이 자야 하냐! 이 커다란 집에 방이 두개밖에 없단 얘기야 뭐야!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

18평짜리 집이라도 방이 세개인데 이렇게 100평 가까이 되는 집에 방이 두개밖에 없다니 말이 돼?

나는 필사적으로 그동안 청소했던 방들 중 하나를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썼다.

음 거실하고....일광욕실...세탁실....식당....다용도실....에....또.....

....생각이 안 난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봐도 놈의 방과 나의 방외에 달리 생각나는 곳이 없는 게 이

 집 대부분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실과 옷들이 가득 쌓인 탈의실, 왠만한 음식점 홀

만한 식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정말!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그 커다란 거실을 여기저기 서성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냥 거실에서 자겠다고 그럴까?

나는 불안한 눈으로 거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밤 10시가 넘으면 중앙난방이 꺼지는 거실은 춥기도 하겠지만 너무 넓어서 무, 무서워....ㅠㅠ

이렇게 크고 휑 하니 뚫린 데서 무서워서 혼자 어떻게 자.....ㅠㅠ 

그럼 탈의실에서 자겠다고 말해볼까?

아냐, 그러다 멀쩡한 방을 놔두고 왜 탈의실에서 자냐고 하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둘이 같이 잘 수도 없쟎아!

그렇다. 문제는 바로 그것.

그동안 수십번도 더 청소를 해봐서 알고 있지만 놈의 방에 침대는 하나뿐.

아무리 놈이 뻔뻔스럽기로 저는 침대에서 자고 나한테 바닥에서 자라고 하지는 않을 

테고…그렇다고 방주인인 놈한테 바닥에서 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분명 놈하

고 같은 침대를 써야한단 말인데….

우우, 정말 그것만은 절대 절대 싫단 말이다!

왜 싫으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바닥이 온통 타일 뿐인 일광욕실에서 자기도 그렇고.  

처음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불편한 잠자리는 정말 딱 질색이란 말이다.

“아아…어쩌지….”

아무리 거실 안을 서성거려봐도 적당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 나는 머리를 감싸쥔 채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기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을 한다더니 정말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결론이 나질 않아 나는 하아….하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다 마지

못해 놈의 방 쪽으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놈에게 물어보면 그 안쪽에 남은 방이 하나 더 있다거나…뭐 그런 말을 할 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기대를 하면서 나는 슬그머니 놈의 방으로 다가가 살살 노크를 했다.

똑 똑 ㅡ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질 않았다.

“저…저기요…”

역시 묵묵부답.

“저…들어가도….되요?”

……..

그 앞에 선 채 족히 1분은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게 진짜!

짜증이 난 나는 내가 방금 전까지 까치발을 하고 이 방앞으로 왔다는 사실을 잊고 휙 하고 문을 열었다.

“어?”

그러나…..방 안은 캄캄한 어둠뿐.

열린 문 틈으로 바닥에 떨어진 내 그림자만이 침대발치로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위에는 놈이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트를 머리 위까

지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는게 아닌가!

“하!”

기가 막혀서 정말 말도 안 나온다.

나는 문에 달라붙은 그 자세 그대로 자고있는 놈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깨금

발로 다가가 조심스레 시트아래 놈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가끔씩 규칙적으로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놈은 조용했다.

정말로 정말로 잠들었단 거야?

그럼 난 어떡하라구!

나는 커다란 킹 사이즈의 침대 위에서 여유롭게 잠들어 있는 놈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

고 싶은 걸 참으며 두터운 카핏이 깔린 바닥에 푹 주저앉았다.

자는 걸 깨워서 다른 방이 어디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옆으로 파고 들어

갈 수도 없고…..그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이 방에서 자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너를 믿은 내가 바보였어....ㅠㅠ 

하는 수 없이 나는 침대 밑 두터운 카핏이 깔린 바닥에 엎드려 비교적 두꺼운 러그를

 끌어덮고 쪼그려 누웠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침대 옆 창가에서 가늘게 흘러나오

는 달빛이며 방 안에서 나는 옅은 놈의 셰이빙 로션의 향기까지 느껴졌지만 내가 지금 그걸 감상할 기분이겠냐!   

꼭 주인님 침상을 지키는 사냥개가 된 기분이라고! 나는!

“두고보자. 강성욱.”

고고한 달빛 아래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잠을 이루지못해 이리저리 뒤척였다.

내일은 기필코 놈보다 늦게 일어나서 놈에게 나를 이런 꼴로 자게 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만들테닷!

아우우우. 내가 못살아,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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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분들 화이팅!! 멋진 소설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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