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운의 신데렐라 (56/141)

 비운의 신데렐라 <20>   

밥먹다 말고 끌고 온 데가….기껏 백화점이야?

두시간 뒤 나는 기가 막혀 손을 대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천장의 크리스탈 샹들

리에 아래 원형으로 늘어진 수많은 금줄과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총천연색 유리벽화, 그리

고 아래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분수의 오색조명이 흩어지는 일명 <다이아몬드 스트리트>라

 이름지어진 명품관 홀에 서있는 세사람을 질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침부터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무슨 궁리를 하나 했더니만…..

도대체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이런 백화점에 옷을 사러 오냐? 

아마 우리가 개장이래 첫손님일거다!

정말이지…부르죠아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 옷이야 동네 옷가게에서 폭탄

세일 할 때를 노려서 적당히 사면 되지 (아줌마 근성…..ㅠㅠ) 뭐하러 이렇게 으리으리한 번화가의

 백화점까지 일부러 기름값을 들여서 와야 하는 거냐구. 게다가 지름길로 오면 넉넉잡고 30분이

면 되는 거리를 일명 <드라이브> 라는 미명하에 외곽으로 돌고돌아 두시간 이 넘게 걸려서 오는 건 무슨 악취미야?  

나는 밥 먹다 말고 어디 장거리 여행이라도 끌려가는 줄 알고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보기와 달리 엄청 난폭한 놈의 작은 누나의 운전솜씨에는 정말 두손두발 다 들었다고나

 할까. 일요일이라 고요한 시내도로에서 시속 100킬로가 넘게 엑셀레이터를 밟아대는데 정말이

지 심장이 떨려 커브를 틀 때마다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어머, 얘. 뭐하니? 빨리 와.”

“너는! 반말 좀 하지마. 보경씨. 어서 오세요.”

아침으로 토스트 반쪽씩 먹은게 단데 참 기운들도 좋지.  

뒤를 돌아보고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티격태격하며 나를 부르는 두 여자의 

이중창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마지못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뭐 자기 돈으로 사겠다는데야 힘없는 내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은 없지. 

하지만 어째서 나까지 이런 쓸모없는 쇼핑에 끌려와야 하는 거냐구!

도대체가 심사숙고란 단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에게 팔을 붙잡혀 무슨 

회오리 바람에 휩쓸리듯 우르르 차에 태워진 후 외곽도로를 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서울시내, 아니 전국에서 옷값이 가장 비싸다는 **백화점 명품관 입구에 멍청한 얼굴로 서있었다. 

거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화살처럼 쏟아지는 백화점 아가씨들의 시선이라니!

가뜩이나 놈 하나만으로도 눈에 띄어 죽겠는데 이건 얼굴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장신의 미남미녀가 

셋씩이나 되니 그 따가운 눈초리들에 정말 얼굴이 뚫어지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세사람이 통로

를 걸어가기 시작하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무지막지하게 조용해 음산하기까지 한 명품관 안이 삽

시간에 소란스러움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하는데….멋모르는 남들이 보면 무슨 슈퍼모델 선발대회라도 하는 줄 알겠다.  

매장안의 디스플레이를 점검하던 여직원들도 앞다투어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힐끔거리며 수근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 어머! 저 여자 좀 봐! 인형같애! 인형!”

“영화배우 아냐?”

“얼굴이 꼭 조각같애! 어머, 어쩜 저렇게 스타일이 좋니?”

고상하긴 뭐가 고상하냐! 정말이지 남의 속도 모르고….

나는 졸지에 동물원의 원숭이 손에 들린 바나나가 된 기분으로 목덜미까지 시뻘개진

 채 놈의 뒤를 따라갔다. 나야 뭐 이 삐까번쩍한 무리들 사이에 섞여있으면 공작새 사이에 닭 

한 마리 낀 것처럼 눈에 띄지 않겠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

목을 받아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창피한 건지 무안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시선들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사람은 그런 분

위기에 너무나 익숙한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큰누나 강세련양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 넘치는 얼굴로 끝도없이 늘어선 고급 브랜드 매장 안을 제 집처럼 누비고 다녔다. 

“어때 이 옷. 나한테 너무 잘 어울리지 않니?”

그중에서도 가장 비싸보이는 매장 중 한 곳에 들어간 강세련이 걸려있던 슬립 원피스 중 하나를 들어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너무 많이 패이지 않았니? 그런 걸 어떻게 입으려고 그래?”

“야. 이렇게 입어야 몸매가 돋보이는거야.”

“아니야. 그것보단 자, 여기 장미꽃 무늬 원피스 어때? 이게 더 낫지 않아?”

“그건 너무 얌전하지 않아?”

“아니야. 네 피부색엔 이게 잘 받아.”

에휴…..끝도 없어. 끝도 없어. 

나는 샛노란 선드레스를 들고 거울 앞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여자를 기운없

는 얼굴로 바라보다 놈 쪽으로 원망스런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나까지 굳이 끌고와야 하는 이유가 뭐냐구. 그냥 집에서 청소나 하게 내버려두지.

난 오늘 시장가서 배추도 사야하고 일광욕실 유리도 닦아야하고 냉장고도 정리해야하고 정말 할 일이 태산같단 말이다.

도대체 어쩌자고 나를 이런데 끌고와서….!

….정말 나오느니 한숨뿐이요, 생각하니 탄식 뿐이다.

뭐 보아하니 놈도 그다지 기분좋은 얼굴은 아니지만. 

옷 고르는 것을 도와주는 척하며 그 옆에 선 여직원이 아까부터 놈의 주위를 빙빙 맴돌며 

무지 말을 걸고 싶은 눈치였지만 놈은 냉정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서서 그 옆으로는 눈길 한 번 주

지 않았다. 아마 놈도 고집을 부리는 큰누나에게 억지로 끌려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노골적으로 흘끔거리는데 신경이 쓰이지도 않나?

“…..하긴. 저 놈은 신경줄이 무쇠로 되어있으니까.”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다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태를 보아하니 옷 한 두벌 사는 것 가지고 끝날 것 같지가 않은데 여기서 쓸데없이 시간낭

비를 하느니 온 김에 시장이나 봐가지고 집에 가야겠다. 저 무리들한테 이렇게 대책없이끌

려다니다가는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식품매장이 지하 1층이었나?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본 안내문을 생각하며 나는 여러 개의 통로 가운데서 비상구를 찾아 코너를 돌았다.

보니까 생선코너에서 세일을 하던데….꽃게도 있으려나? 

게나 몇 마리 사가지고 가서 찌개나 끓여야지. 남은 건 삶아먹고.  

게는 살을 발라먹기가 좀 어렵지만 그래도 끓이면 제법 잘 먹으니까….    

한꺼번에 많이 사서 냉장고에 저장해둘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막 통로를 지날 때였다.

어…..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다말고 나는 통로 끝에 있는 

맨 마지막 코너의 쇼케이스 앞에서 저도 모르게 발길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청남색.

나는 원래 사치스러운 사람도 아니고 옷은 비바람만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

는 실용주의자였지만 레몬빛 할로겐 조명등 아래 걸린 그 옷이 너무나 따스하고 부드러워

보여 나는 순간적으로 넋을 잃고 말았다.

“….예쁘다아…..”

저런 걸 캐시미어라고 하던가. 푹 파묻혀 버릴듯한 섬세하고 투명한 블루.

놈도 저렇게 빛깔이 근사한 캐시미어 스웨터를 여러벌 가지고 있었다. 잘못 세탁하면 어김

없이 늘어나버리기 때문에 놈이 한 번 입고 던져놓을 때마다 거실의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던져버릴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나였지만 저 옷을 보니 그런 소재만 고집하는 놈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따뜻하겠다....

유리에 그대로 녹아버리기라도 할 듯 나는 쇼케이스에 얼굴을 박고 서서 선망어린 시선으로 그 옷을 올려다 보았다. 

……진이형한테도 하나 사주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들자 시선이 자동적으로 코트 아래에 붙은 가격표로 향했다. 

뭐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곳에서 파는 옷은 조금 비싸겠다, 라는 짐작은 쬐끔이나마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조금 많이 비싸도 어떻게든 사줘야겠다, 고 마음먹었지만.

0 이 하나, 둘, 셋, 넷, 다…..

“히이이익!  사,사,사, 사십만원!”

가격을 읽은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유리에 철썩 달라붙었다.

내 눈으로 확인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사십만원이라니! 그게 말이 돼! 그 돈이면 꽃게가 몇마린데!

“아,아냐. 내가 요즘 눈이 침침하고 자꾸 어지러운게 시력이 나빠졌을 수도 있어.”

떨리는 목소리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을 접어가며 찬찬히 가격표에 붙어있는 0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세어보고 또 세어봐도 그 스웨터에 붙어있는 가격은 틀림없는 사십만원이었다.

만원이…만원짜리가 마흔개나!

어지러워……

스웨터 하나에…..사십만원이라니…..

저런 옷을 사가는 사람이 진짜로 있단 말인가!

어디의? 누가?

우리나라에 재벌 2세가 넘쳐나는 것도 아닌데 저기 걸려있는 옷들을 다 누가 산단 말인가.

미치지 않은 이상 저런 옷들은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너무나 천문학적인 가격에 현기증을 느낀 내가 비틀비틀 돌아섰을 때였다.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듯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에 백화점 명찰을 단 여직원이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활짝 미소지으며 말을 걸었다. 

“손님. 그 옷이 마음에 드세요? 보여드릴까요?”

아니, 저, 그게, 저는요. 그걸 사려는게 아니구요, 저,

당황한 내가 뒤로 한발짝 물러선 것과 동시에 뭔가가 푹, 하고 뒷통수에 닿았다.

“그것보다는. 좀 더 밝은색이었으면 좋겠는데.”

켁! 너는 또 어디서 이렇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거얏!

홱 돌아선 내 눈에 비친 것은 예상대로 짙은색 정장을 입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놈이었다. 

대체 누나들은 다 어디다 버려두고 온 건지 시선이 마주치자 놈은 나에게 까딱, 하고 고갯짓을 해보

이더니 성큼성큼 나를 지나쳐 매장 한가운데의 푸른색 비단소파에 걸터앉아 짧게 명령했다.

“입어.”

뭐, 뭘?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얼빠진 내가 입구에서 눈만 크게 뜨고 있자 좀전의 그 여직원이 잽싸게 방금 전의 그 푸른색 스웨터

를 손에 든 채 나를 불렀다. 놈의 옷차림을 보고 한눈에 모든 걸 다 파악했는지 방금 전 그 초연했던 태도

가 돌변하여 언제 그랬냐는듯 적극적이었다. 힘을 주면 뚝 부러질듯한 가냘픈 팔목 어디에 그런 힘이 숨

어있었는지 반항하는 나를 거울 앞으로 질질 끌고 가 코트를 벗기고 이리저리 팔을 끼워넣더니 순식간

에 머리위로 뒤집어 씌워서 돌려세워 놓는데 정말이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떠세요. 너무 깜찍하게 잘 어울리시죠?”

깜찍하다니! 깜찍하다니! 

이봐요, 그게 스물두살먹은 성인남자한테 어울리는 형용사입니까! 

속으로 흥분한 나와는 달리 자리에 앉은 채로 나를 바라보는 놈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

저 조금 고개를 기울인 채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내 짧은 표현력으로는 도저히 뭐라

고 형용할 수가 없는 묘한 표정이었다.

덕분에 뭐하는 짓이냐! 라던지 나 갈래! 라던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모조리 입 속으로 사라

져 버리고 나는 잘못 움직였다간 사십만원짜리 스웨터의 팔이라도 늘어날까봐 꼼짝도 못하고 

초조하게 놈의 눈치를 살폈다. 

“맘에 안 드세요? 그럼 이건 어떠세요?”

대어를 놓칠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눈에 띄게 초조해진 표정의 여직원은 더할 나위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눈웃음까지 치며 눈앞에 대여섯벌이 넘은 옷을 꺼내 주욱 늘어놓았다.

하나같이 100% 캐시미어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가격표가 달린 고급옷들. 

“하나씩 다 입어봐.”

놈은 한 팔을 소파 뒤에 걸친 채로 명령했다. 그러나….

내가 뭐 옷갈아 입히기 인형이냐! 이 옷 저 옷 입히면서 거울 앞에서 빙빙 돌리게!

분통이 터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가 놈에게 반항다운 반항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던가.

왜 그렇게 놈의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못하는지 몰라도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이옷 저 옷, 스웨터에서부터 코트까지 내 옷을 갈아입히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여직원의 에스코트

를 받으며 탈의실을 들락날락, 열두벌도 넘는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말도 잘 듣지.

하지만 생긴 것처럼 까다로운 놈은 좀처럼 맘에 드는 옷이 없는 건지 좀처럼 O.K 사인을 내지 않았다. 

제기랄. 한 번에 사십만원짜리 스웨터 입고 벗기도 심장 떨려 죽겠는데 아무거나 고르지!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놈이 저거, 라고 정확하게 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골라놓은 새하얀 패딩코트였다.

“어떠세요? ”

흰 색에 어울리는 코디라며 푸른색 체크무늬 목도리까지 나비모양으로 두른 나와 열두벌도 넘는

 옷을 입히고 벗기느라 조금 지친듯한 여직원은 이제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놈의 대답을 기다렸다.

열 두벌이나 입어봤으니 이제는 제발 결정해. 라는 간절한 희망을 동시에 마음에 담고. 

하지만 놈의 대답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 차가운 분위기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건만 

놈은 푹신한 흰색 패딩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향해 오만하지만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좋은데.”

자, 잠깐!

놈이 지금 뭐라고 그런 거야? 

좋은데? 분명히 좋은데라고 그랬어!

내가 뭔가 잘못 본 거 아냐! 미소라니! 저 냉혈한이? 진짜로?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내 눈이 어떻게 된게 아닐까 잠시 의심스러웠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진짜 웃음이었다.

여느때처럼 차가운 표정이 아닌, 눈까지 온기가 어린 듯한 진짜 미소.

한 달이 넘게 같이 살았지만 그런 놈의 얼굴을 보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언제나 차갑다고만 생각했던 그

 이목구비가 가벼운 미소 한 번으로 그렇게 매력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시선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당황스러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목덜미에 닿는 고급 캐

시미어의 촉감조차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금방이라도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박동하는게 느껴졌다.

내, 내가 왜 이러지….

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나는 두터운 패딩코트를 걸친 채 깨끗하게 닦인 바

닥 위의 내 발끝만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맘에 드세요? 이걸로 포장해 드릴까요?”

이제야 놈의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냈다는 기쁨에 반색을 한 여직원을 향해 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전부 다.”

뜨아아아 ㅡ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저, 전부…다요?”

나 못지 않게 놀란 여직원에게 놈은 말없이 재킷 안에서 은색 신용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우우 ~ 저건 바로 한도액이 상상을 초과한다는 전설의 오리지날 플래티넘!  

야! 너 미쳤어! 이게 한 벌에 얼만데!

“며,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일시불로.”

버둥거리는 나와는 달리 놈의 맘이 변할까봐 두려웠는지 여직원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

게 계산을 하더니 쇼핑백을 들고와 카운터 위에 산처럼 쌓여있는 옷을 모조리 쓸어넣다시피 했다. 

“여기 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는 순식간에 불룩하게 찬 쇼핑백 일곱개를 건네주며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들어.”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넣으며 놈이 다시 명령했지만. 

야! 저 옷이 도대체 얼마짜린 줄 알고 내가 덥석 받냐! 정신 나갔냐!

“저….저는 정말 이런 거 별로 필요가,”

“싫으면. 버릴까?”

당황해서 거절하려는 내 말을 무우 자르듯 단칼에 잘라버리며 놈이 그렇게 말했다. 

버려? 뭘? 지금 새로 산 이 옷을?

그 말뜻을 이해하자마자 나는 어맛, 뜨거라 하면서 놈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인 쇼핑백 꾸러미를 번개처럼 받아 안았다.

“버, 버릴 것 까진…..” 

이 놈은 말을 꺼낸 이상 정말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이다.  

사십만원이 아니라 사백만원이 넘은 옷이라도 맘만 먹으면 던져버릴 수가 있는게 

바로 이 강성욱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태는 애초에 미리미리 막아야지.

이 옷을 다 팔면 꽃게가 몇마린데 버리긴 뭘 버려! 

뒷말을 억지로 삼킨 내가 쇼핑백을 품에 안은 채 놈을 올려다보자 놈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선물이야.”

.….선물?….선물이라고?

초여름에 활짝 피어나는 장미꽃처럼 머릿속에 그 말의 뜻이 커다랗게 박힌 순간

, 나는 멍해져서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놈을 쫓을 생각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니까…..선물이라면….남들이 생일날이나 크리스마스에 받는 그거?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들…또는 애인한테 받는?

“…..선물이라고…? 나한테?”

품 안 가득한 쇼핑백의 묵직한 무게조차 느끼지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이십평생 살아오면서 누구한테든지 <선물>은 고사하고 그 비슷한 거라

도 받아본 적이 있어야지. 

고아원에 있을 때야 말할 것도 없고 도시로 도망쳐 나와서는 먹고살기 바빠 그럴 여유조

차 없었다. 진이형한테야 평소에 이것저것 받은 게 많지만 우린 서로 가족이나 다름없으

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그동안 나를 스쳐지나갔던 애인들조차 나를 위해 뭘 사준다던지 

선물한다던지 그런 적은 ....전무하다.

하지만.

그렇구나…이게 바로 선물이라는 거구나….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을 깨달은 순간 별안간 마음속에서 불이 켜진 것처럼 따뜻한 기

운이 확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기운은 이내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행복한 기분.

뒤늦게 알아챈 사실인데 나 남들 클 때 다 한 번씩 받는 거 스무살이 넘어서 한 번 받았다고 

감격할 정도로 감상적인 인간이었던 거 있지.

물론 그 선물의 양과 질, 그리고 내가 선물을 준 놈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 그게 문제야?

나, 황보경이 난생 처음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거라구!

지금 이 시점에서는!

“너 빨리 안 올래?"

뒤를 돌아보며 내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자 놈은 확 인상을 썼다. 

"네, 네. 금방 가요!"

혹시라도 놈의 마음이 바뀌어 그대로 가버릴까봐 나는 네! 하고 평소처럼 다급한 목

소리로 대답한 후  패딩코트를 입은 채 눈사람처럼 뒤뚱거리며 열심히 놈을 따라갔다.

물론 놈이 내게 들려준 쇼핑백 일곱개는 소중히 품에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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