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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신데렐라 (100/141)

 비운의 신데렐라 <29>   

그로부터 사흘 뒤. 누나들이 떠나기로 한 날.

“잘 있어요, 보경씨. 건강하고.”

“네, 작은 누나도….안녕히 가세요….”

나는 슬픈 작별인사를 하며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작은 누나의 손 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별이 서운하리라는 것은 알았어도 이렇게 슬프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내가 훌쩍거리자 작은 누나옆에 서있던 강세련은 헤어밴드 대신으로 쓴 에스카

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치켜올리며 어머, 너 우니? 라면서 신기한 얼굴을 했다.

하여튼 이 여자는 끝까지 밉살스럽다니까...!  ㅡㅡ#

그전에 놈이 이미 한차례 경고를 했지만 그 사흘동안 나를 괴롭힌

 강세련의 심술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나를 신경쇠약으로 앰블란스에 실려가기 직전까지 만들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이유도 모르고 사흘내내 시달릴 대로 시달려 두 사람이 떠나

기로 한 오늘 아침에는 정말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게이트 앞에 서자 콧날이 시큰거

리고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나는 정말이지 당황했다. 작은 누나도 나와

 같은 생각인듯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내 손을 꼭 쥐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울지 말아요.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요, 뭐.”

작은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성욱이 좀 잘 부탁해요, 응?”

“….네.”

집에서는 동물무늬 파자마만 입고 뒹굴던 작은 누나가 센죤의 정장을 입고 소형 

보스턴백을 멘 모습은 좀 낯설었지만 나는 눈믈을 삼키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만날 수 있는 걸까….

“둘 다 그만 좀 해! 누가 보면 이산가족인 줄 알겠어!”

우리 둘이 그렇게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세련이 우리 둘을 억지로 떼어냈다.  

“넌 아쉽지도 않아?”

작은 누나의 말에 강세련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쳤다.

“아쉽긴 뭐가 아쉬워? 한 달이나 있었는데 지겹기만 하지.”

지겹긴 뭐가 지겨워요! 한 달 내내 나를 그렇게 괴롭혔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쏘아보는 내 눈길은 아랑곳없이 강세련은 내 뒤에 서있는 놈에게 말을 걸었다.  

“성욱아, 이번 여름에는 니가 뉴욕으로 오는 거지?”

“글쎄.”

코트도 없이 얇은 프리만 스웨터 차림에 짙은 레이밴 설글라스를 쓰고 있는 놈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듯 그렇게 대답했다. 

오늘 날씨도 추운데 자칫 잘못했다가 놈이 감기라도 들까봐 나는 아까부터 걱정이 됐지만

 슬랙스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서있는 놈은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을 하고 있었다.

“꼭 와, 성욱아. 보경씨도 같이. 우리 다함께 플로리다로 놀러가자. 응?”   

“봐서.”

“정말?”

“그럴 줄 알았어.”

아까보다는 조금 긍정적인 대답에 작은 누나와 강세련은 동시에 말하며 활짝 미소지었다. 

그치만 플로리다라니…나는 이번 여름에 놈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르는데….

그 생각을 떠올리고 조금 침울해져 있는데 강세련이 손목시계

를 들여다 보더니 늦겠다, 들어가자. 하고 작은 누나를 재촉했다.   

“알았어, 보경씨, 꼭 놀러와요. 내가 전화할께요!”

“우리 들어간다! 성욱아, 잘있어!”

“그래. 조심해서 가.”

“얼룩 강아지 너도 잘 있어라! (….캿 ㅡㅡ#)”

마지막까지 얄미운 강세련의 말에 잠시 발끈했지만 나는 결국 분

위기에 도취되어 난간을 붙잡고 눈물젖은 얼굴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정말 떠나는구나.….

처음 만난 게 정말 엊그제 같은데….

“닦아.”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며 슬퍼하고 있는데 갑자기 놈이 주머니에서 전

날밤 내가 깨끗하게 다려놓은 연갈색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고, 고맙습니다.”

쳐다보는 놈 앞에서 차마 코는 풀 수 없고 눈가의 눈물자국을 

문지르고 있는데 놈이 조금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뭐가 그렇게 슬퍼?”

“그럼…안 슬프세요? 누나들 가는데….”

손수건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올려다보며 물었더니….

“다섯 달 뒤면 다시 만나는데 슬프긴 뭐가 슬퍼.”

라는 참으로 놈다운 대답이 즉시 나온다.  

잘났어, 정말. 너랑 나랑 똑같애?

나랑 작은 누나는 이제 헤어지면 다시 언제 만날 지 알 수 없는 사이라구.

입술을 삐죽거린 후 구깃구깃해진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앞서가는 놈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놈이 휙 돌아서서 오더니 내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짜증을 낸다.

“넌 왜 그렇게 항상 느려?”

답답해 죽겠다는 어조다.

야, 니 다리가 길은 거지 내 걸음이 느린 거냐!

가뜩이나 사람도 많은데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니가 걷는 속도하고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내가 걷는 속도하고 같을 수가 있어? 

방금 전까지 슬픈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놈의 뒷모습을 노려보

는 것도 잠시, 나는 혼잡한 사람들 틈에 낑낑거리며 끼인 채 간신히 놈에게 손을 잡혀 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갔다. 

평일날 아침부터 공항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야?

나는 생전 비행기는커녕 배 한 번 타 본 적도 없는데 외국 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세상은 정말 불공평해….

“넌 가고 싶어?”

놈의 손에 한 손을 잡힌 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놈이 그렇게 물어왔다.

“어딜요?”

“어디긴. 플로리다 말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당연히 가고 싶지! 거기가 플로리다 아니고 제주도라도 난 여행 한 번 가보는 게 꿈이란 말야. 

“예…”

속으로야 나불나불대고 있지만 겉으로는 수줍게 고개를 약간 숙이며 대답하자 놈은 흐음, 하고 다시 시선을 돌린다.  

뭐야, 그 <흐음>은? 

설마 내가 그때까지 여기에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거야?

후훗, 하지만 그거라면 걱정 마.

내 너를 위해서 엄청나게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놨으니깐.

아무도 모르게 놈을 훔쳐보며 나는 후후후훗, 하고 속으로 음험하게(?) 미소지었다.

일단 시작은 고전적이면서도 찬란한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 위를 먼저 공략하라!>는 계획! 

캬캬캬캿. *^▽^*

첫번째 시도.

“식사하세요오~”

놈이 집에 돌아온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저녁시간을 몽땅 투자해서 식

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음식을 식탁 위에 늘어놓은 다음 놈을 불렀다.

해삼탕, 편수채, 오향장육, 떡갈비 등등 그 외 다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를 홀릴려면 요리를 잘해야 하는 법. 

일단 매일 이렇게 배불리 먹여놓은 다음 분위기가 훈훈해지면 자연스럽게 접근을 해서.….

훗, 어쩌면 난 천재인지도….

자아도취에 빠져있는데 어째 한참을 불러도 놈이 오지 않는다.

이상하네. 자나?

연달아 서너번을 더 불러도 감감무소식이라 나는 참다못해 방으로 가 문을 두들겼다.

그래도 역시 대답이 없다.

“저….”

빼꼼히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 위에 길게 누워 한 팔로 눈가를 가리고 있는 놈이 들어온다. 

“저녁…안 드세요?”

분위기가 심상치않아 살살 물었더니 팩, 하고 고개를 돌린다.

뭐야, 자는 게 아니었쟎아!

“저기 오늘 저녁엔….”

“안 먹어.”

“네?”

“속 안 좋아. 너나 먹어.”

지가 먹은 게 뭐가 있다고 속이 안 좋아. 그래서 저번날 찬바

람 쐬지 말라고 그렇게 코트까지 꺼내놔도 잘났다고 스웨터 바람으로 돌아다니더니!

“그래도요…그럴수록 더 밥을 잘 먹어야….”

“안 먹는다쟎아! 자꾸 귀챦게 할래?”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이씨…!!1”

나는 식당으로 돌아와 커다란 양푼을 꺼낸 다음 반찬을 모조리 다 넣고 밥을 비빈 다음 분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퍼먹었다. 

놈이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앞으로 일주일은 족히 날카로울텐데. 

하필이면 오늘같은 날 속이 아프고 그러는 거야!  

안 맞아도 나랑은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어. 아주 상극이야, 상극.

“흥, 그래도 내가 포기할 줄 알아?”

이제 시작이다 이거야.

전투적인 자세로 숟가락을 휘두르며 나는 밥그릇을 박박 바닥까지 긁어댔다.

<하면 된다> 쟎아! 하면!

일주일 뒤 두번째 시도.

“뭐야, 집 안이 왜 이렇게 어두워? 정전이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어두컴컴한 집 안을 보고 놈은 신발을 벗다말고 대뜸 인상을 썼다.

“아, 네 그런가봐요….”

겉옷을 받아들으며 아무렇지도 않은…듯…그렇게 대답했지만….

정전은 무슨 정전! 내가 두꺼비집 찾아 이 넓은 집안을 뒤지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는 옆눈을 가늘게 뜬 채 놈을 보며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왠만하면 그냥 좀 넘어와주지. 내가 첩보원도 아닌데 그 구석진 전기배선실로 기어들어가 두꺼비집 퓨즈까지 끊어야겠니?  

하지만 그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데 어떡해. 

이게 바로 그 유명하고 쓸만하다는<로맨틱한 분위기♡>쟎아. 

거실가득 반짝이는 촛불, 식탁위에 정성껏 차려진 저녁식사, 어디선가 은은하게 들리는 음악,

후훗. 넌 이미 나한테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저…저녁은 지금 드실 거죠?”

은은하게 촛불이 일렁이는 거실을 가로질러 가며 그렇게 회심에 찬 미소를 지었지만,

“지금 저녁이 문제야? 언제부터 정전이었어? ”

“저, 좀전부터….” 

언제부터긴. 내가 퓨즈끊은 다음부터지. 

놈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터폰을 들고 대뜸 아래층 경비실을 눌러댔다.

“네. 여기 45층 펜트하우스인데요. 불이 안 들어와서 그러는데요. 네, 이유는 잘 모르겠고 네. 지금 올려보내세요. ”

뚝!

기세좋게 전화를 끊자마자 2분도 안되어 회색잠바를 입은 남자들 대여섯명이 우르르르 현관으로 들이닥쳤다.

“어딥니까? 불이 안 들어오는게.”

“전체가 다 안들어오신다구요?”

“저런, 그럴 리가 없는데. 김기사! 우선 배선실로 가서 손 좀 보고!”

“저는 2층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그래! 꼼꼼하게 살펴봐.”

선두에 선 둥뚱한 대머리 아저씨가 정신없이 지시하더니 나란히 선 우리 둘을 보고 하하, 웃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금방 해결될 겁니다.”

아니…저…그게요….

나는 걱정스런 나머지 식은땀을 흘리며 다용도실 안쪽의 전기배선실까지 따라갔다.

“이런, 이런!”

두꺼비집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살펴보던 대머리 아저씨가 혀를 차며 뒤돌아볼 때는 정말 숨이 넘어갈 정도로 두근두근.

드, 들킨 건가?

하지만 대머리 아저씨는 흔히 있는 일이라는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용구상자를 열었다.

“집안에 쥐가 있나보죠? 퓨즈가 끊어져 있네요. 요즘 쥐들이 아주 극성이라니까요.”

“네? 네에…쥐요….하하…저도 청소할 때 가끔…”

다행이다! 하며 더듬거리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놈은 <집안에 쥐가 있단 말야?>하고 아까보다 더욱 기분나빠진 얼굴로 물었다.  

“어디서 봤어?”

“네? 저, 그게…”

“큰 거야 작은 거야? 회색이야, 검은색이야? 집쥐야? 설마 들쥐는 아니겠지?”

있지도 않은 쥐가 들쥐인지 집쥐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ㅠㅠ

“안되겠어. 당장 잡아야지.”

한참동안 집요하게 나를 추궁하던 놈은 그렇게 말하더니 배선실을 나가 거실로 가 아까 벗어두었던 자켓을 다시 걸쳐입었다.

“어디 가시게요? ”

“보면 몰라? 쥐덫 사러 가는 거쟎아. 아, 넌 그동안 쓸만한 미끼나 준비해 놔!”    

그리고는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혼자 남게 된 나는 조금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있다가 터덜터덜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삭탁 위에는 저녁내내 정성껏 마련한 저녁식사가 촛불아래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줍은 듯한 와인잔 두개.

“흐흐흐흑!”

그 광경을 보자마자 서러워져서 나는 식탁에 얼굴을 묻은 채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쾅 쳐댔다.

못살아, 정말!

다음날 세번째 시도.

첨벙 첨벙 ~

“우우….ㅠ0ㅠ”

나는 뜨거운 욕조 속에 목까지 부글부글 잠긴 채 신음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이제 곧 놈이 올 시간이 되었는데….

장미향이 풍기는 향기로운 물 속에 잠겨서도 마음은 몹시 초조했다.

어제의 뼈아픈 실패를 생각하면 정말 분해서 잠도 안 오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법. 

너무 노골적이라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어!

“으윽….”

무, 물이 너무 뜨거워...ㅠㅠ

급한 김에 그냥 받았더니.....

게다가 어제 다용도실에 쥐덫을 설치한다는 놈을 따라 두시간이나 구부리고 있었던 허리가....

강성욱. 니가 정말 이 정도로 가치가 있단 말이냐….

내가 너 땜에 진짜 별짓을 다 해보는구나. 

머리까지 푹 잠겨서 다시마처럼 물 속에 둥둥 떠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벨소리가 들렸다.

왔다!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욕조 안에서 벌떡 일어나 미리 준비

해 두었던 얇은 하얀색 반팔 티셔츠에 정신없이 팔을 끼워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와 마찬가지로 얇은 반바지를 입고 쌩, 하고 방을 뛰쳐나가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도 참을성 없는 벨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 가요!”

진이형이 그랬지.

난 목욕하다 나온 얼굴이 제일 이쁘다고.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물방울을 툭, 떨어뜨리며 나타난다면.

후후후훗. 그 뒤는 안 봐도 뻔하지.

이번에야말로 나의,

우왓!!!!

쿠당탕탕탕ㅡㅡㅡㅡㅡ!!!

이게….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시야가 거꾸로 뒤집혀 나는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깜박깜박했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내가 왜 층계참에 거꾸로 누워있지?

“무슨 일이야? 너 왜 그래!”

어느새 현관에 들어선 놈이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저…그게요….

“계단에서 미끄러졌어?”

내려올 때의 충격 때문인지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겨우 눈동자만 움직였다.

“일어나. 일어날 수 있어?”

두두두두 무서운 기세로 놈이 다가와 나를 일으켰을 때 나는 갑자

기 덮친 등의 통증에 아! 하고 비명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야! 머리  안 부딪쳤어? 이거 몇 개야?”

손가락을 쫙 피면 다섯개지 몇 개야.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아?

등의 통증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다, 다섯개요. 하고 정확한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을 듣자 놈은 나를 들어서 자기방의 침대로 옮기더니 거꾸로 뒤집어놓고 젖어서 달라붙은 티셔츠를 걷어올렸다.

“이 바보야! 시퍼렇게 멍들었쟎아!”

우우욱…ㅠㅠ

소리 좀 지르지 마!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잘했다. 왜? 아예 목을 부러뜨리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침대 옆 테이블을 뒤져 타박상 연고를 

꺼내 등에 꾹꾹 발라주며 놈은 불같이 화를 냈다.  

“넌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목욕하다 말고 뛰어내려왔지! 계단이 온

통 물투성이인데 그런데서 뛰다가 잘못해서 척추라도 다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너 바보야?”

그래, 나 바보야…ㅠㅠ       

“너 거기 꼼짝말고 누워있어! 눈꺼풀도 깜박거리지 마! 그대로 자!”

그 말만 남기고 놈은 갈아입을 옷과 노트북을 챙긴 채 성질을 내며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은 것은 축축한 침대 시트 위에 억울한 얼굴을 하고 모로 누워있는 나.

“….엉엉!!!”

뭐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머리 끝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몸부림치며 나는 밤새 울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일곱번째까지….

모조리 연이은 처참한 실패.

세상에 백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너니, 그게 바로 놈일 줄이야. 

팔자고 뭐고 이제 난 포기했어.

<하면 된다> 고?

흥, 누가 그래! 

세상엔 아무리 해도 안되는 일투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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