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신데렐라 <2>
제 2장: 황보경 가정부로 위장취업(?)하다.
“야! 일어나!”
….어라…..뭐지 이 목소리는….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린데…..
“셋 셀 때까지 일어나. 하나, 둘.”
벌떡 ㅡ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
는지 환한 방안에 역광을 받으며 서있던 그는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걸 보고는 좋아, 식당으로 내려와.
그러더니 그말만 남기고 바람처럼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맞아. 여긴 우리 집이 아니지.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
아니 그럼 내가 14시간이나 잤단 말야?
나는 깜짝 놀라 어젯밤 그대로 입고 자서 꾸깃구깃해진 옷자락을 펴며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기
억에 남아있는 것보다 더욱 어마어마한 아래층에 내려가자마자 식당에서 달그락거리며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안녕히 주무셨어요?”
쭈볏거리는 내 인사말에 싱크대 앞에서서 맨 상체에 청바지만 입고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가 돌아섰다. 방
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칼이 물기에 젖어 이마위로 흘러내려 있었다.
머리가 젖어 있어서 그런지 어젯저녁보다는 훨씬 덜 호전적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거기 앉아.”
턱짓으로 식탁을 가리키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전자레인지 안에서 금방 데운듯한 로스트 비프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놓는다.
이건… 먹으란 말이겠지?
“자,잘 먹겠습니다.”
금방 일어나 머리가 부시시하고 입안이 썼지만 가능한한 집주인의 비위를 거슬리지 말라는 진이형의 충고
를 떠올리고 나는 최대한 웃는 얼굴로 접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그가 내준 반짝이는 은포크로 끽, 소리
한마디 안하고 먹고 있는데 그는 그런 내 모습을 팔짱을 끼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얼굴 뚫어지겠네. 남이 뭐 먹는 거 처음 보나?
하지만 의외로 친절하쟎아? 아침 굶을까봐 이렇게 일부러 불러서 차려도 주고.
의외로 막되먹은 놈은 아닐지도 몰라.
“자, 잘 먹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싱크대로 가져가자 놈은 다 먹었어?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네.”
하면서 생긋 웃었더니 자, 하면서 뭔가 던져준다.
얼떨결에 받고보니 마른 걸레와 가구 광택제.
“…..에?”
“닦아.”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자못 백평은 될 것 같은 넓은 거실을 가리킨다.
“무,무슨?”
“밥값은 해야쟎아?”
그러면서 놈은 발걸음도 우아하게 거실로 가 허리를 굽혀 마룻바닥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 일하기 편하라고 카페트도 치워놨으니까. 참, 왁스 모자라면 식당 옆에 다용도실에서 가져다 쓰고.”
캑! 무, 무슨 전개냐! 이것은!
“저, 뭔가 잘못 아신 것 같은데, 저, 저는.”
내가 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리면서 말을 꺼내려고 하자 그는 어젯밤과 한치도 다름없는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진이형이 말 안 해? 너 집안일 아주 잘한다면서?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입주 가정부 구한다니까 너를 추천하던데?”
뭐,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나, 나는 그런 말….!”
“정 의심스러우면 전화해봐.”
그러면서 거실에 놓인 마호가니 테이블 위의 무선 전화기를 눈짓으로 척 하니 가리킨다.
그 엄청나게 자신감 있는 몸짓에 갑자기 내 심장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뭐야. 형. 설마 이 자식한테 나를 한 달동안 입주 가정부로 팔아 넘긴거야!
그제서야 나는 어제 진이형이 내 손을 꼭 잡으며 했던 말뜻을 알아챘다.
ㅡ 다 너를 위해서니까 이해해라. 보경아.
어쩐지 너무 좋은 집에다 너무 좋은 밥에다 너무 좋은 침대라 수상하다 싶었어!
그래도 이건 너무하쟎아!!!
내 피맺힌 절규는 개무시하고 놈은 창가의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펴더니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시작해. 아, 그것말고도 오늘 할 일이 있으니까 바닥 닦는 건 열두시까지 끝내도록 하고.”
아, 생각같아서는 이 걸레를 놈의 얼굴에 집어던지고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이 한겨울에 내가 갈
데가 어딨단 말이냐. 저주스런 AB형의 소극적이고 현실적인 사태파악으로 나는 금방 <비굴한 자세>로 돌
아가 걸레를 손에 꼭 쥐고 물었다.
“저, 어디부터 닦을까요?”
“이쪽 저쪽 다 닦아.”
놈은 한 마디로 잘라 말하고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듯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흐흐흐흑. 형은 알고 있었지. 내가 이렇게 될 것을.
원망해봤자 무엇하리. 이미 엎질러진 물.
방울방울 천연 떡갈나무 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그렇게 나의 처절한 가정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든 작가분들 화이팅!! 멋진 소설 만만세!!